알라딘에 들어오면 사야 할 책이 매일 최소한 두세 권은 눈에 띈다.  에지간히 마음에 드는 걸로 국한시켜도 말이다. 더구나 미술 애호가들에 음악에 영화에 귀밝고 눈밝은 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여러 님들의 리뷰나 페이퍼를 읽다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식한 사람인 것만 같다.

나는 한때 원없이 책을 읽는 몇 해를 겪어 적어도 내게 책에 대한 허영 같은 건  없는 줄 알았다. 영화도 마찬가지......이 정도면 됐다, 하고 자족하고 있었는데......

어젯밤 자정 무렵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뮤지션의 얼굴과 음악에 반해 가지고 오늘도 음반 한 장을 주문하러 아침일찍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또 문득 눈에 띈 책들을 여러 권 보관함에 담았다.

그런데 주워듣는 게 그만큼 많으니 나날이  유식(?)해지는 것 같긴 한데 왜 마음의 평화와 만족감은 그만큼 늘지 않는 걸까. 아니 늘기는커녕, 왜 해골이 복잡하고 허무하기만 할까!

침대 머리맡에 선반이 하나 있으면 마시던 커피잔도 놓고 읽던 책도 놓아두면 좋겠다 싶어 선반을 단 것이 지난해 말. 그리고 나니 선반 밑에 공간박스가 하나 있으면  당장 읽을 책도 몇 권 넣어두고 참 좋겠다 싶어 마트에서 두 칸짜리 MDF 책꽂이를 사온게 그 몇 주 뒤. 지금은 그 부근이 아수라장이다. 며칠 전 그 부근의 책들을 대강 세어봤더니 100권을 넘는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 아니고 뭔가!

읽을 책을 쌓아두고 새책을 자꾸 주문하는 것이 너무너무 부끄러운데도 좀처럼 그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이것은 명백한 탐욕이다!

이번주 월요일 아침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일주일 동안 마트든 슈퍼든 절대 가지 않겠다고. 꽉꽉 차서 문도 잘 닫기지 않는 냉장고 속의 음식과 재료들로 한 주일을 온전히 버텨보겠다고......

두 번째는 알라딘 방에서 노는 시간 두 시간 이내 제한과, 가급적 책도 DVD도 주문하지 않겠다는 것.

냉장고와의 엄숙한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데 책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서재에서 노니는 시간이 줄어든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집에 읽을 것이 없어 대문 앞에서 저녁신문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옛날 순결한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엄청난 부피와 무게로 늘어난 나의 살과 책들(그렇다고 해봤자 정말 많은 다른 분들께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이 심히 부끄럽고 민망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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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6-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 무비님 같은 생각해요. 동감의 뜻으로다 추천을...!

瑚璉 2005-06-2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 싱크로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돌바람 2005-06-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읽을 것이 없어 대문 앞에서 저녁신문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옛날 순결한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저는 저때 저녁신문 돌리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동네 오빠들 꾐에 빠져 그만두지도 못하고 한달 동안 무쟈게 고생했더랬는데...

바람돌이 2005-06-2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과 책들 늘어난다는게 같은 점이군요. 그래도 책 늘어나는게 조금 덜 부담스럽죠.... 저는 한편으로는 또 책 사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아가도 그래도 꽉찬 책장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하던데....

아영엄마 2005-06-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죠. 괜히 리뷰 하나 써볼까 들어왔다가 서재마실 다니느라 오전 다 보내놓고는 책은 언제 보나~~. 저도 서재 들어오는 시간을 줄여야 할까봐요. ^^:;

로드무비 2005-06-2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오늘 저도 30분씩 계속 연장해가며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람돌이님, 전 살과 책 권수가 비례하네요.
책꽂이 보면 저 또한 뿌듯하지만 그것도 잠시...읽지를 못하니까요.^^
돌바람님 그 시절 이야기 페이퍼로 올려주시와요.
재밌겠습니다.^^
호정무진님, 님의 서재는 정말 놀랄 노자더군요.^^
스텔라님, 추천 고맙.^^

urblue 2005-06-2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전 새로 산 책들 중에서 절반 이상을 읽지 않으면 다시 책을 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죠. 물론 선물받거나 빌린 책들은 제외지만. 읽지 않은 책이 한동안 마구 늘어서 100권쯤 되었는데, 뭐 더는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략 성공이랄까. -_-a

hanicare 2005-06-2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마다 석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소녀라...그건 저의 옛날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순결(?)한 소녀는 아니었네요.최인호의 적도의 꽃을 열심히 탐독했으니 말입니다.하긴..초딩때부터 썬데이 서울도 몰래 봤으니 -_-;
모처럼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책의 홍수속에 오히려 책의 결핍을 맛봅니다.이걸로 유추해보면 엄청난 부자는 늘 어지럽지 않을까. 하나라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너무 많다는 것도 결핍의 결핍이 아닐까(말장난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소화할 시간과 애타게 갈망하는 시간들의 결핍...등등의 잡념이 휙휙 스쳐갑니다. 저도 안빈낙도를 꿈꿉니다. 중용.공자님 말씀.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게 정말 아는 거다. 날이 갈수록 공자님 말씀이 사무치는군요.(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역호아인지 불역낙호아인지, 학이시습지 불역낙호아인지 불역역호아인지 그런 거 배울 때 입 삐죽거리며 저딴 말이 뭐 대단하다구 하던 불경한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사족;로드무비님과 저는 다른 취향과 다른 성향의 인간이라 생각하는데 왜 이곳에 오면 이렇게 수다가 길어지는 걸까요?
*사족2; 아, 여기에 만만챦은 무식의 소유자가 또 하나 있습니다만, 이 인간의 경우는 꽤 뻔뻔합니다. 오늘 이 안님 서재에서 좋은 말이 있길래 훔쳐와서 쓰자면, 아 좀 그러면 어때? 지식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도 웃기지 않나요? 마치 가발때문에 목이 부러져버렸다는 어느 귀부인처럼.

인터라겐 2005-06-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트에 가면 훌쩍 넘어버리는 금액때문에 안간다 안간다 하면서 그병을 못고쳐요..
지금 저도 이래 저래 책이 잔뜩 밀려있는데 어제 결국 못참고 주문했잖아요..

음 지름신을 날릴수 있는 방법하나...컴터에 저장한 인증서를 없애는거야요..
저두 그랬더니 인터넷으로 물건 사는 횟수가 팍 줄었어요.. 인증서 찾기 위해 가방을 들춰 내기가 귀찮거든요..

그래도 다른 욕심이 아닌 책욕심이니 과하지는 않을듯 한데요.

서연사랑 2005-06-2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마트 한 번 가면 십만원 넘기기 일쑤....게다가 백화점에 가서 장을 한 번 보기라도 할 거 같으면 십만원도 우습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저도 마트 안가기 작전 수행중이예요. 오히려 책은 안 읽은 책이 있으면 사지 않는 스타일이라(많이 읽지도 않구요) 괜찮은데...
저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다행(?)이네요.^^

클리오 2005-06-23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살과 책들(그렇다고 해봤자 정말 많은 다른 분들께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 제 살과 비교하시는겁니까... ^^ 호호...

저도 마트가면 돈이 많이 나와서 될 수 있으면 대형마트를 안가고 동네슈퍼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책은 뭐, 당연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릅니다. 다만, 대가들께서도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고 사냐. 책도 사전과 같다. 언제든 참고할 수 있게...' 뭐 이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을 거울 삼아, 보고 싶은 책들을 사들이고 있지요.. ^^

날개 2005-06-23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말이 필요없는 페이퍼군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Phantomlady 2005-06-2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책은 많은데 읽을 게 없다니~~ 제 경우 진득히 앉아 책을 읽으려면 먹으러 가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흑흑.. 살과 책이 부담되시면 책이라도 방출하세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ㅎㅎ

저는 이년 전부터 책꽃이를 더 안 늘리기 위해(그래봤자 다른 분들에 비해 얼마 되지도 않지만) 사는 만큼 헌책방에 갖다 버리거나 친구들을 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답니다.

로드무비 2005-06-2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님 책들 중 읽고 싶은 거 한꺼번에 모아서 좀 빌려읽고 싶습디다.
쌓인 책이 많아 빌려달란 소리는 안할게요.^^
(저도 책 읽고 한꺼번에 모아서 동생에게 보내곤 한답니다. 책은 그러니
살은 어떻게 좀 나눠 드릴까요?ㅎㅎㅎㅎ)
날개님, 추천은 고맙기 짝이 없지만 말도 좀 하고 가시지.^^
클리오님, 제 글 인용하신 부분은 책에만 해당하는 건데......
이렇게 반성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속으론 좋아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마이 도러 읽을 책까지 미리 사들이는 바람에......^^
서연사랑님, 마트에가면 돈 잡아먹는 도깨비가 있나봐요.
얼마쯤 계산이 나오겠다 하면 꼭 3분의 1쯤 초과된 금액이 찍히죠.
너도나도 아구아구 사들인 엄청난 수레 보면 한숨 나올 때가 많아요.
꼴에 의식있는 척은 하느라고......^^
인터라겐님, 그게 글쎄, 나는 책만 사지 옷은 안 사입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는 변명을 하면 남편왈, 제발 옷 좀 사입으라고...흑흑.
제가 얼마나 거지꼴로 다니면 그러겠습니까.
아무튼 책 너무 많이 사는 것도 병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자기 형편에 비해 과할 경우.^^;;;


로드무비 2005-06-2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왜 님같은 귀부인이 가끔 제 앞에서 수다스러운 소녀가 되시는지......
물론 그 이유를 알죠.
저만한 이야기 상대가 어디 흔하겠습니까!ㅎㅎ
나이로나 뭐(?)로나......
그리고 저도 뭐 좀 멋을 부려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그닥 순결한 소녀는
아니었습네다.ㅋㅋ
'모처럼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라는 표현에서 웃음을 마구 터뜨렸답니다.
님은 항상 진지한 댓글을 남기시거든요.
때로는 약간 의아스러울 정도로.(나쁜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전 주렁주렁 걸치고 다닐 지식도 없지만 가끔 목이 부러질 정도로
매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울 때도 있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습디다.
하여튼 실천하지 않으면서 반성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건 저도 밥맛인데요.
그게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아무튼 님의 댓글 무지 재밌었습니다.^^

2005-06-2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5-06-2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라고 저 인용부분이 그런 뜻인거 몰랐겠습니까. 웃자고 한 말이었는뎅... 흑흑.... ^^

로드무비 2005-06-2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클리오님, 물론 잘 알죠.
제가 아직 유머 감각이 많이 부족해서......
'살'에 대한 확인사살이었다고 봐주심 돼요.^^

클리오 2005-06-24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