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대학 2학년 땐가 부산 영도 동삼동 무슨 세무서의 부가가치세 신고기간 도우미였다. 빼어난 미모와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의 회계학과 친구가 주선한 거였는데 영도에 살던 그녀에게 우연히 접수된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회계학과도 아니고 더더구나 수학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세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강아지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라길래 집도 무지 먼데 해보기로 했다. 출퇴근이 어떤 건가 궁금하기도 했고......

우리는 두 명의 주사에게 각자 배속이 되었는데 나를 맡은 40대 초반의 주사님은  실망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처음 경험하는 사회, 무능력자로 밀려나기 싫어 나는 무조건 천진한 표정으로 제법 상냥하게 굴려고 노력했으니 선머슴같은 애가.....ㅎㅎ 아마 그 모습이 더 가관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마시는 커피 한잔과 점심때 얻어먹는 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아, 이런 맛에 사람들이 졸려죽겠는데도 일어나 눈비비고 출근들을 하는구나,  감격했다. 퇴근 시간의 그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나이브한 분위기와 차창으로 바닷바람(태종대)을 맞으며 집에 돌아오는 즐거움은  어떻고......

우리가 하는 일은 전자계산기로 부가가치세 신고된 금액 합산해 주는 것. 가끔 실수를 하긴 했지만 이래봬도 꼼꼼한 구석은 또 조금 있어서 큰 실수는 하지 않고 잘 넘어갔다. 세무공무원들이 월급은 얼마 안되지만 잘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가까이서 본 그들은 숨겨진 재산 따위는 하나도 없어 보일 정도로 꼬질꼬질하고 궁기가 흘렀다. 하루종일 하는 일도 너무 따분해 보였고......

아무튼 일주일인가 열흘 간의  일이 무사히 끝나는 날, 두 주사님은 맥주집으로 우리를 인도, 송별회도 간단하게 해주었다. 술이 몇잔 들어가자  말도 너무 유창하게 잘하고 거기다 멋들어진 유머까지 구사하자 내 담당 주사님이 나를 다시 보는 눈초리가 느껴졌는데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그들과 헤어져 남포동까지 진출, 기분좋게 한잔 더 했다.

나로서는 처음 만져보는 거금. 그것도 나의 노동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여 가슴이 설레었다.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당시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던 여동생과 까까머리 남동생을 위해 세고비아 기타를 사줬다는 것.

기타를 선물받고 기뻐하면서도 "세무서에서 누나 니가 무슨 일을 했는데?" 하고 의심쩍은 시선으로 묻던 남동생에게 "서류정리!"라고 뻐기며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으응, 바람이 불면 책상 위 서류들이 날아가잖아. 그거 정리!"

동생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며 놀린다. 너무 솔직해도 탈이다.

 



 

(한 명의 시선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제목에 마태우스님 이름을 들먹여보았다.  효과가 얼마나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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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4-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월급으로 동생들을 위해 세고비아 기타를 선물하셨다는 로드무비님... 뭐예요. 너무 낭만적이잖아요.....^^

인터라겐 2005-04-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드무비는 여기서도 역쉬 캭~은 안빠지네요...

로드무비 2005-04-1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바이트 이력 중 재밌는 게 생각나 하나 쓰려 했더니 첫 아르바이트가 떠오르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제 딴에는 마태우스님 풍으로 써보려고 했는데 괜찮았나요?^^
인터라겐님, 물론입니다.
술 이야기 안 빠집니다. 님의 기대에 부응코자.^^

날개 2005-04-1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아르바이트가 세무서라니! 정말로 번듯한 곳이었군요.. 저는 길에서 설문조사하기였는데..ㅎㅎ

로드무비 2005-04-13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에서 설문조사하기는 저 더더욱 못해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무지 떨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친구 빽으로 얻어걸린 일이에요.^^

플레져 2005-04-13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롯데월드에서...^^
바람에 날아가는 서류 정리라니요... 흐흐...

릴케 현상 2005-04-1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첫 아르바이트는^^ 자동야구장 볼보이였는데... 9살 때(근데 돈이 떼여서 울었지)

울보 2005-04-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님의글을 읽고 나서 저 그림들이 너무 이뻐요..

야클 2005-04-1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첫 알바비 잘 쓰셨네요. 전 처음 번 돈으로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

kleinsusun 2005-04-1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처음 반 정도는 진짜 마태우스님 스타일이예요.
근데...쓰다 보니 나머지 반은 로드무비님 스타일로 바꼈네요.
저는 첫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으로 스키 샀어요.
로드무비님 글 정말 잼있다.....말할 수 없는 나이브한 분위기...우하하하.

마태우스 2005-04-1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님의 글은 님 특유의 매력이 있답니다. 저는 사실 글은 잘 못쓰잖아요. 삶이 워낙 그래서 그렇죠^^ 세고비야 기타 사주신 거, 정말 감동적이어요.... 제가 그랬다면 저희도 우애가 좋았을 텐데......

마태우스 2005-04-1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새벽별님이 라켓 사준 사람이 바로 저예요

하얀마녀 2005-04-1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마태우스님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로드무비님은 이미 글로써 일가를 이루었다고 봅니다만. 로드무비님이 쓰셨다는 것만으로도 읽고 싶다구요. ^^

2005-04-14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자꾸 댓글 다는 걸 까먹어요.(모든 분께 죄송!)
속삭이신 님, 저같은 인간도 사회의 일원으로 버젓하게 노동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감격이었습니다. 제가 일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보이세요?ㅎㅎ
백발마녀님, 흐윽, 감격이옵니다.
어쩌면 그리 꿀처럼 달디단 말씀을 하시는지......^^
새벽별님, 마태우스님 따로 만나서 얘기하세요. 흥=3
마태우스님, 저는 사실 글은 잘 못 쓰잖아요, 라뇨.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님이 잘하시는 게 글 잘 쓰시는 것밖에 더 있냐고요.^^;;
수선님, 마태우스풍으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보기보다 어렵네요.
반응도 신통치 않고요.^^;; 아, 반응이 괜찮은 건가?^^;;


로드무비 2005-04-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2탄도 올릴까요?^^
새벽별님, 무슨 일을 하셨는지 몰라도 많이 버셨군요.^^
울보님, 피규어예요. 갖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눈요기라도 하자고...^^;;
산책님, 자동야구장 볼보이, 거기다 돈을 떼였다니 너무 멋지잖아요.^^
플레져님은 역시 아르바이트도 환상적인 곳에서 하셨군요.^^

숨은아이 2005-04-1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아르바이트라... 뭐였더라. 설문조사였던 것 같아요. 받은 돈은 그냥 며칠 점심 값으로 썼을 듯. 재미없게시리. ^^ 학교 다닐 적에는 점심에 먹을 라면 값 500원하고 전철 승차권만 갖고 다녔거든요.

로드무비 2005-04-1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설문조사.
무난한 걸 하셨군요. 그런데 돈을 왜 그렇게 조금 주었을까요?^^;;
하기야, 우리나라 아르바이트 뭔들 안 그렇겠어요.
이상한 데서 일하는 거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