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동 보림 창작 그림책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 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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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옆골목 사직동 129번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가 사진과 그림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그 골목과 그 사람들을 한 권의 그림동화책에 담았다.

이 책이야말로 포토리뷰로 올리기에 딱 적합한 책이다. 몇 장의 사진에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 이야기를 풀어넣어도 무리가 없으렷다.

몇 해 전 요절한 문학평론가 이성욱 씨가 브니엘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그의 책을 읽다 알고서 깜짝 놀랐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 나도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다. 게다가 브니엘고등학교에는 짝사랑하던 남학생 박모 군도 있었으니......
브니엘고등학교는 테니스부로 유명했는데 우리 집이 바로 그 테니스 코트 위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어 담장 안으로 날아온 테니스볼을 돌려달라고 까까머리들이 걸핏하면 벨을 눌렀다.
테니스 코치 중 장선생이란 이는 멋장이 여자 택시운전사인 우리 막내고모를 짝사랑하여 퇴근 무렵이면 똥 마려운 강아지모양 우리 집 앞을 서성였다.

'빠마'를 '야매'로 하는 골목.
나도 '빠마'를 '야매'로 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상 짧은 단발 아니면 상고머리였는데 어느 날 친구의 꾐에 빠져 모르는 아줌마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친구의 집, 머리가 완성되는 동안 심심하다고 친구가 김치전을 부쳐왔다. 피어리스 '피어니' 로션과 스킨 산 걸 자랑해대서 뚜껑을 열어 그 향기를 맡아보며 부러워했던 기억. 나는 내 몫의 로션이 없었고 엄마 로션을 아침마다 조금씩 얻어서 발랐다.
내 친구 머리는 근사하게 잘 나왔는데 내 머리는 이상하게 나와 울고 싶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피기'라고 놀렸다.

조그만 책방을 열어놓고 하루종일 책이나 읽으며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도서대여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디오 대여점도...... 책이나 비디오를 연체하고 떼먹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지라 내 성격에 그런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언젠가 도서대여점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논픽션 같은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요즘도 신동아에서 논픽션을 공모하는가 모르겠다.

나는 끝내 나만의 방은 가져보지 못했다. 방, 하면 여동생과 함께 쓰던 다락방이 제일 생각난다. 앉은뱅이 책상과 그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책들.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 나무액자와 루오의 예수님 얼굴 그림을 잡지에서 오려 바람벽에 붙여놓았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분위기 있다고 했던 방. 그 방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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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5-04-0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니엘고 - 부산의 몇 안되는 남녀공학... 부산 남고생들의 선망과 질투의 대상 (리뷰 댓글이 뭐 이래..)

로드무비 2005-04-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직동에 나의 연산동 시절을 써넣었다.
너무너무 재밌다. 님들도 사진 퍼가서 해보시기를......

날개 2005-04-0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다닐때 빠마를 하셨단 말여요? +.+ 사진 남아있는거 혹시 없나요?^^

로드무비 2005-04-0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서림님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요?
혹시 고향 까마귄가요?

로드무비 2005-04-0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대학 막 들어가서요.^^

릴케 현상 2005-04-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니엘이라^^ 우리 누나는 데레사 여고 다녔는데

로드무비 2005-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레사, 오오, 그 자주색 교복.^^

2005-04-0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06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5-04-0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데레사 나온 여자와 사귄 적이 있어요

로드무비 2005-04-0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거기가 가톨릭 계통인데 교복이 자줏빛이었어요.
언제 연애하셨는데요? 궁금.^^

숨은아이 2005-04-0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분위기 있는 글... /전 교복을 입어보지 못했는데, 제가 다니던 여고의 옛날 교복과 지금 교복도 자주색이에요. 자주색으로 교복을 입는 신기한 학교가 부산에도 있군요. ^^

로드무비 2005-04-0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있는 글 알아보는 숨은아이님.^^

하루(春) 2005-04-0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멋지구리합니다. 사진보다는 님의 글이 더 제 눈에 꽂혀서 떠나기 싫어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4-0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추천해요. 빠마를 야매로 하는 골목, 가보고 싶어요. 전 백조미용실이라는 허름한 곳에서 늘 머리를 맡겼더랬죠. ㅎㅎㅎ

icaru 2005-04-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나 비디오를 연체하고 떼먹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지라 내 성격에 그런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ㅎㅎ...

로드무비 2005-04-0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조미용실은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 있지요.
이안님, 추천 고마워요.
하루님도 멋지구리한 댓글 감사.^^
복순이 언니님, 속에 천불나서 저 장사는 못해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새벽별님, 거기가 어딘데요? 자주색교복?

플레져 2005-04-0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참 부지런하십니다. 저는 요새 리뷰와 담쌓고 사는데...^^ 저두 추천할거에요~~

로드무비 2005-04-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도 요즘 포토리뷰나 설렁설렁 올려요.
2,30분이면 되거든요.^^

balmas 2005-04-0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똥 마려운 강아지모양 우리 집 앞을 서성였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하나~~

로드무비 2005-04-0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언제나 추천에 후하신 분.
그런데 님도 똥마려운 강아지 꼴로 어느 집 대문 앞을 서성인 적이 있으신가요?
그래보지 않은 인간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로드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