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일감을 보내기로 했는데 마치지 못했다.
어제는 아예 알라딘 근처에 걸음도 안하겠다 생각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서재 방문객 수를 보니 형편없이 떨어져 있어 주먹을 불끈 쥐고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다. 마이리스트에 뽑히고 난 이후 내 서재 방문객 수는 엄청 늘었다. 아니 어쩌면 슈렉 체스판을 페이퍼에 올렸던 게 원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 방문객 수가 줄어드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데 그래도 이상하게 신경이 조금 쓰인다.
방을 처음 만들었을 떄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게 있었다. 사람들이 몇 명 오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차분히 앉아 좋은 글을 쓰겠다고. 나중에 우리 주하가 커서 엄마의 방에 써놓은 글들을 보고 나를 좀 더 이해해주고 좋아해 주기만 바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상상은 안하무인지경이 되었다. 내가 죽고 나서 예쁘게 성장한 주하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글들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리뷰를 보고 감동, 책꽂이에서 그 책을 찾아내어 읽고 오래 전의 영화들을 구해 보는 것이다.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하나하나 내 글을 꺼내어 읽으며 '아아, 우리 엄마는 정말 멋진 분이었구나!', 하고 주하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었다. 그 장면은 상상만 해도 황홀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의 형편무인지경의 망상은 계속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의 발행인이나 편집자가 우연찮게 나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좋은 글들이 방치되어 있었다니! 놀라서 서재 주인을 수소문해보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남편과 아이는 뒤늦게 세상에 나온 엄마의 책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큰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렇게 고상하고 원대한 꿈을 꾸며 시작한 알라딘 서재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어쩌자고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즐겨찾기해준 사람 숫자나, 또 내가 쓴 글에 코멘트가 달리나 안 달리나 따위에나 신경을 쓰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아아, 나는 이래봬도 인생을 번쩍 들었다가 놓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술까지 한잔 마시고 얼근하여 서재에 기어들어왔다. 막상 들어왔더니 뭐 하나 쪼가리 글이라도 써볼까 하는 욕심이 생겨 쓴 것이 페이퍼 40캐럿. 아침에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알라딘 서재 시작한 지 어느 새 한달 열흘째. 생각해보니 그때 막연하게나마 세웠던 여러 가지 원칙들 중 형체라도 조금 보존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의욕 없던 인생에 알량한 의욕이나마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담당자에게 일이 하루 늦어지겠다는 전화를 하려면 출근을 해야 하니까 한 시간이나 남았다. 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도 그 비슷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술 먹고 쓴 페이퍼를 사람들이 보기 전에 없애기 위해 아침부터 알라딘 서재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두어 줄 정도만 고쳐주면 뺄 것까진 없겠다 싶어 조금 손보고 밤새 내 글에 남겨진 코멘트를 따라 서재 마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이라는 사실을 잊고,,,
아뿔싸, 컴퓨터 하단에 기록된 시간을 보니 8시 50분. 어린이집 버스는 8시 57분에 정확하게 우리 동 앞으로 온다. 미친듯이 거실로 뛰어가 어린이 프로를 넋놓고 보고 있는 아이 손에 팥빵을 하나 앵기고 머리를 묶고 옷을 갈아입히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점심 먹고 나서 먹을 감기약까지 약통에 담아 챙기고 나니 8시 57분.
아슬아슬하게 아이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보내고 집에 들어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편집자가 휴가중이란다. 야호!야호호호!
그리하여 아까 꺼지도 않고 나갔던 알라딘 서재, 다시 기어들어와 이렇게 주옥같은 글을 쓴다. 정말 예사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