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달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여 기록을 남기라는 숙제가 있다는 걸
지난주, 숙제 제출 하루 전 오밤중에 알았다.
동생네와 오랜만에 저녁을 겸하여 술을 한잔하고 얼큰하여 왔더니 전화가 왔다.
딸아이와 단짝인 친구 엄마가 몇 월 며칠에 달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미처 기록을 못 했다며 좀 알려달라는 것이다.
"에잉? 저는 그런 숙제가 있다는 것도 지금 전화 받고 알았어요."
늦은 시간이었는데 고맙게도 지금 당장 공책을 들고 주하와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술 냄새를 입에서 폭폭 풍기며 밤 열 시에 그 집으로 갔다.
놀라운 건 시내의 대형마트 식품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딸아이의 숙제 때문에 한 달 동안 퇴근길에 달을 유심히 관찰했다는 것.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하루를 빼먹었단다.
아르바이트는 김치냉장고를 사는 데 보태기 위해서란다.
마음 같아선 하루종일 집안일 하고 아이들 공부만 돌봐주고 싶다나?
집안일도 거의 하는 둥 마는 둥 아이 숙제도 공부도 잘 안 봐주는 나로선
심히 마음에 찔리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딸아이는 그날 친구의 숙제를 그대로 베껴 선생님의 꾸지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 끝에 며칠 전 치른 기말고사 이야기가 나왔다.
"주하가 이번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면서요?
밤 열두 시까지 공부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대요."
"밤 열두 시까지 공부한 건 맞아요. 실컷 놀다가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까지.
그것도 지난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한 시간, 한 과목."
그건 사실이었다. 과목당 딱 한 시간 공부.
딸아이의 친구와 엄마는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시험을 앞둔 주말, 우리 모녀가 왕복 다섯 시간을 달려 영화를 보러 간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쪽팔려서 말 안했다.)
며칠 전 기말고사 성적이 나왔다.
100점짜리는 하나도 없고 사회 점수는 엉망이었다.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는데.
오늘 무슨 일로 그 엄마와 통화하다가,
"이번 시험은 사회 문제가 그렇게 어려웠다면서요?"하면서 조심조심 물었더니
자기 딸은 '올백'이란다.
이번 시험이 쉬워서 아이들 성적이 잘 나온 편이라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런데 시험 공부는 얼렁뚱땅 해놓고, 밤 열두시까지 공부했다고
친구들에게 뻥을 친 딸아이가 사랑스러워 죽겠으니
이것도 병(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