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따라해 가치만세 2
고여주.위혜정 글, 윤희동 그림 / 휴이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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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파일을 뒤지다가 우연히 김광진의 <유치원에 간 사나이>를 들었다. 김광진씨가 <마법의 성>을 부를 때는 몰랐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이 나이에 그의 노래에 웃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그가 데뷔하던 때는 내가 10살 근처의 아이였기도 했지만. 회사생활하면서 노래를 부르다니. 거기다 작곡가이기도 하니 존경스러울 뿐이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의 가사를 더 듣다보니 김광진 이사람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다. 아이 같은 인상도 받았다. 훈육하기보다는 같이 놀아주는 아빠라는 느낌이다. 김광진네 아들 딸들은 참 행복했겠구나. 아이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 아이를 기르는 모습이 어떤 이에겐 염려스럽겠지만, 난 좋아만 보인다. 아마 내가 철딱서니 없는 애미의 자질을 고루 가진 덕일 거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앉는 모양새 자체가 다르다. 엄마는 아기를 꼭 안고 고요한 그림이라면, 아빠는 아기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난스런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아이 앞에서는 같은 눈높이로 놀아줄 수 있는 애비가 최고다. 애미는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겠지만, 원래 인간이 그렇게 태어났고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가부장을 근엄주의로 착각해서 노년에 소외받는 애비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아이와 신나게 놀아줘라.   

나? 좋은 애미가 되긴 글렀고, 유치는 한 유치한다. 눈높이도 딱 초딩. 지적 역량도 초등학생 때가 제일 좋았다. 이래서 내가 동화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10년 뒤엔 아이에게 너랑 놀아주기 위해 10년 동안 동화만 읽어 왔노라고 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 때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딱서니 없는 처자거나, 애와 함께 낮잠 잘 수 있는 팔자 편한 새댁이 되어 있을 진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놈 때문에 소설을 못 읽고 있다고 징징될 지도 모르지만, 책이나 보고 조용히 놀라며 던져 줄 동화책은 많아 다행이다. 그 때 던져 줄 책 중에 한 권이 <왜 나만 따라 해>다.  

첫 장을 펼쳤을 때 깜짝 놀랐다. 누가 책에 낙서를 해놓은 것이다. 제대로 보니 어린 여자애가 낙서 그림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서있다. 모르쇠로 보이는 녹색 괴물의 꼬리가 반쯤 비친다.



본문 페이지로 넘어가면 그 녹색괴물에게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 여자애를 괴롭히고 곤란케 한다. 그 녹색 괴물은 침질질이 괴물이다. 





일러스트 중에 가장 귀엽고 예쁜 그림이었다. 



침질질이 괴물의 정체는 기저귀 찬 동생이었는데 이 장면에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누나의 새침함과 애처로움이 닿았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요 귀여운 것들’하며 궁둥이를 팡팡 쳐주고 싶었다. 

꼬마 숙녀의 억한 심정과 누이의 자애가 교차하는 따뜻한 동화였다. 나에게도 침질질이 괴물과 살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주인공 여자애처럼 지내지 않았던가 싶어 책장을 덮을 때까지 웃음이 났다. 참, 그 놈이 크니까 돈질질이로 변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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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아버지가 왔다. 그가 건네 준건 화장품 든 상자였다. 봉입 테이프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 책상에 놓고 기분이 묘했다. 책상 위에는 읽다만 책들이 어질러 있었고, 그 중 한권이 동화책이었다. 동화책 위해 화장품을 올려다 놓았는데 그 조합이 의미심장했다. 아이의 장난감과 성인의 장난감, 거기에 그 간극을 즐기는 내가 있었다.

머릿속이 번쩍하여 그 순간을 찍어 두었는데, 나르시시즘의 아이콘들이 찍혀있다. 아이의 나르시시즘이 화장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책을 들지 않아도 아이 자체가 자기애로 충만할 테지만, 만족해하는 어린이와 아름다움을 경배하고 자기만족을 즐기는 처자가 한 몸으로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 애와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고 싶은 늙은 애도 거기 있었다.

한 참을 봤다. 이게 내가 동화책을 보는 진짜 이유였다. 어린 날의 나르시시즘을 갈망하고 있었던 거다. 동화책을 좋아한다며 댄 이유들은 둘러 댄 것들로 전략해 버렸다. ‘난 유치하다. 어린애 좋아한다. 동화책도 볼 만하더라. 동화책을 보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참조 일뿐이었다.

“전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슬쩍 웃어주는 어린놈의 영악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만, 지금은 새파랗게 안 보인다. 아이스러움이 그냥 좋다. 

“전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동화책을 좋아하는 걸 보면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낯짝에 분가루 두텁게 바른 사람이다. 동화책 본다고 그 사람이 순수하게 포장되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저렇게 말하고 싶다. 동화책을 보며 소녀다움을 얻기엔 너무 늙었다는 걸 알면서도 분가루를 바른다.

사진은 <언젠가 너도>란 동화책과 <로트리 로사 다브레카 트리플 케익>이라는 긴 이름의 분가루. 뒤는 <로트리 듀열 레아 젤 틴티드>라는 조금 긴 이름의 연지.

<언젠가 너도>는 아이를 위한 책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짧은 문장 속에서 엄마가 딸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특별하다. 로트리 제품은 아직 써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케이스를 여니 아이의 장난스럽고 달콤한 향이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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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상상마당 창비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김형경, 최규석 작가의 신작소개였는데 초대가수로 서영은이 나온다는 희보에 동생이 희희낙락 따라왔다. 여유있게 도착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승주나무님, 라주미힌님, 웬디양님이 나란히 들어오고 계셨다. 처음 뵙는 롤러코스트님까지 동행이 4분이셨는데, 안부를 오래 물을 수 없었다. 왜냐? 동생은 제 누나가 모과양인 줄 몰랐으니까. 승주나무님이 다음에 같이 보실 분 없으면 자기와 함께 보잔다. 사모님은 어쩌냐고 응수했지만, 동생만 없었더라면 그 날부터 함께 했을 것이다.


초대가수로 나온 서영은의 무대는 노래처럼 ‘완소그대’였다.

김형경 작가의 책이라면 <천 개의 공감><사람풍경>을 본 것이 다였다. 20대 후반 때부터 심리학책을 읽어왔다는 그녀는 참 평안해 보였다. 정신분석도 받아보고, 나름 공부한 것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알아 가는 데 심리학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자신은 “괜찮은 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이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참 좋은,괜찮은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 힘들 때 주변 지지자를 찾으라는 것, 자신은 동시대인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




김형경 작가보다 최규석 작가를 뵈러 간 것이 더 컸다. 웃는 표정이 적어 겨우 찍었다.




초대가수로 나온 토미키타의 노래는 낯설었다. 락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도 한 몫.


사인회 때 최규석님 앞에 <습지생태보고서>와 <대한민국 원주민>을 내밀었다. 2개의 캐리커쳐를 그리시는 동안 말을 걸었다. 동향이라는 것과 알라딘에 리뷰를 썼다는 것, 그리고 내 아이디가 모과양이라고 말했다. 그의 홈페이지가 모과넷인 이유도 함께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는 질문을 다시 들었는데 모과라는 아이디는 30대가 넘어가야 쓰는 아이디란다. 작가님이 알려주신 데로 그의 기사를 검색을 해봤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과’라는 호(號)를 쓰고 있는데요. 뜻이 뭐죠?(최규석 작가의 홈페이지는 www.mokwa.net이다.)
=속담에도 있잖아요. 모과나무처럼 배배 꼬인 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에) 어 많이 쓰는 말인데? 모과나무는 꼬여서 목재로 못 쓴대요. 보통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을 보고 기둥이 되어라, 서까래가 되어라 이야기하고 아이들도 “어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테야”라고 다짐하죠. 저는 어디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사는 건 참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도 날 쓸 수 없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좌중 웃음) 그런데 20대 초반 군대 휴가를 나와 보니 인터넷 세상으로 변해 모두들 닉네임을 갖고 있더라고요. 제대하면 홈페이지 만들어 그림을 올려야겠다 싶어서 닉네임으로 삼았어요. 

[김혜리가 만난 사람 中]

 
   


내가 모과양인 이유는 서재를 만들 때, 모과차를 마시던 참이었다. 모과차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드러내고 숨는 데 용이한 아이디가 필요했었다. 실용성과는 상관없는 관상용 나무, 그 나무의 별 쓸데없는 열매, 향기는 나는 빛 좋은 개살구.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르륵 쏟아 놓고 싶었다. 그래서 내 닉네임은 모과양이 된 것이다.

앞으로 북 콘서트는 자주 가게 될 것이다. 그때 알라디너들을 더 뵐지도 모르겠다. ‘모과양님’ 하고 인사를 건네준다면 빙그레 웃고 있을 것이다.



ps. 가까이 앉질 않아서 미쳐 작별인사를 못했다. 반가웠어요. 승주나무님, 라주미힌님, 웬디양님, 롤러코스트님.(그런데 롤러코스트 님은 검색이 잘 안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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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2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양님의 습지생태 보고서는 녹용이를 그려줬군요 저는 둘다 같은 캐릭터였는데, (부러워요) 재호군을 그려달라고 할 걸 그랬어요 ㅋㅋ 그날 끝나고 못뵈어서 아쉬웠어요 나름 좀 찾았었는데 말이죠 ㅜㅜ 근데 최규석은 정말 잘생겼죠? 으흑

모과양 2008-06-2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공연장 앞자리에서 미적거리다가 늦게 나오게 됐어요 덕분에 사인도 늦게 받고요.ㅠ.,ㅠ 다음엔 함께해요~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잘 생겼더라구요. 인터뷰 기사를 검색하다 알아낸것인데, 모두 왜 검은 두건일까요. 뭔가 의미가 있으신건지, 그냥 1개뿐인건지. 콘서트에서도,책 뒤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다른 인터뷰에서도 모두 같은 두건이네요. 패션은 잘 몰라서 머리에 얹은 저것을 두건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건이 되고 싶습니다.ㅋㅋ

시비돌이 2008-06-2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녹용이다,,

모과양 2008-06-2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비돌이님도 그림을 배워보심이 어떠신지?ㅋㅋ

Heⓔ 2008-07-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닉네임에 그런 의미가 있으셨군요~

전 그냥 이름 끝 글자 딴 닉네임 ㅎㅎ;;

모과양 2008-07-20 16:50   좋아요 0 | URL
**희님, 알고 있어요 ㅎㅎ
 



김중혁님의 <뮤직비디오 낭독회>를 다녀왔다. 한10일 전쯤에..

게을러서 페이퍼를 못썼다. 뭘 듣고 왔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사진은 남았으니 올려 본다.


설해목님과 김중혁님

노래부르는 김중혁님, 왼쪽은 문학동네의 장으뜸님

싸인하는 작가

얻어온 문학동네 책들과, 그날 먹었던 과일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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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오즈마님? 아 반갑다. 모과양님은 여름을 맞아 더 예뻐지고 있는 중이신가봐요 ^_^ 사진도 어제 만난 실물도 너무 예뻐요 ^_^ 어제 반가웠어요~ 제가 그만 최규석 때문에 눈이 하트로 변해서 끝나고 인사도 못드렸는데~ 즐거운 시간 보내다 가셨죠?

모과양 2008-06-2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사인회때는 최규석님께 말도 걸었답니다.함께 사진1장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쑥스러워서 그 말은 못했답니다ㅠ.,ㅠ

동행분들과 2차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다음엔 저도 함께 해요~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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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 TV를 보게 됐다. TV없이 사는 중이라 TV만 보면 재떨이를 바라보는 옛 끽연가처럼 오랫동안 TV를 본다. 광고만 송출하는 TV에서도 담배 향을 맡는다고 할까. 하지만 오늘 아침 TV는 오래 못 봤다. 리포트가 지방 명물에 대한 소개와 지역민의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어색한 재연과 엉성한 체험은 못 볼 것 이었다. 아직도 저런 촌스런 방송을 하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요일 아침TV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볼게 없어서 보는 TV였다. TV광이었던 어린 시절에도 싫어했었다. 남루한 옷에 검게 그을려진 그 들은 가난을 업으로 삼는 게으른 이라고 생각 했다. 양복을 입는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 달랐었다. 어렸을 때부터 싫어했던 프로그램은 20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TV를 껐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는 이와 찍히는 이가 있으니 방송되는 게 아닐까.

맞다. 아직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빨리 변하는 세상에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최규석이 있었다. 그는 가난을 부끄러워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손찌검하는 아버지와 가족에게 희생되는 누나들과 가난의 열등감을 가진 어린 시절을 표현 했을 때는 분명 그랬다. 아기가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 어린 아기를 안아주는 주는 그림이 많다. 누나가 안아주고, 저자가 직접 안아주기도 한다. 지금은 화해 한 것일까.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 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p.144)

어린 날과 다 화해했다고 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억지표현하지 않는 점이 더 솔직했고 좋았다. 이번 자전적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의 <습지생태보고서>도 그랬었다. 만화학도 시절의 궁핍이 유치와 유머로 보는 이를 웃을 수 밖 에 없게 만들어 놓았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조금 울면서 봤다.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온 이유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눈물을 닦아주던 형제 없이, 혼자 세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도 분명 가족이 있다. 가정적이여서 집안의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직접 하시는 아버지와 무던한 어머니, 욕심 좀 많은 남동생과 별 볼일 없는 나로 구성된 교과서적 가족이 있다. 역사에서 기록되기도 뭣하고 무시되기도 뭣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기엔 뭣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어릴 때는 가족이란 삶의 시작이요, 중요한 무엇인 줄 알았다. 조금 컸을 땐 얼마든지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다시 재구성하는 건 어렵고, 이해하고 넘겨야 하는 운명론에 가깝게 변했다. 가족과 사는 것, 가족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동안 50년을 볼 새로운 가족을 만들 처자가 됐다는 생각에 심란해져버렸다.

울고 웃기고 심란하게 하는 대단한 작가, 꼭 좋은 만화가로 계속 남아주시길 간절히 빈다. 좋은 처자랑 결혼하셔서 신혼일기라던가, 육아만화를 볼 날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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