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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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가 <슬럼독밀리어네어>로 영화화 되어 나왔다.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겨 지인과 영화관에 갔다. 대기실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인이 말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노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단경리 여직원도 퇴근하면 자기계발하려고 바쁜데, 너는 그냥 놀려고만 해. 너는 전문직이잖아. 자신의 커리어를 더 쌓고 있어야지.”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반박을 하거나 공부 중이라고 뻥이라도 쳤어야했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영화 상영만 기다려야 했다. 지인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영화보기에 앞서 <Q&A>를 다 읽었었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갑자기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한량하게 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주인공이 보여준 험난한 인생교훈들에 동화된 탓이다. 이런 빈민가의 자식도 살아보려 발버둥을 치는데, 따뜻한 밥 먹고 자란 나는 뭐하고 살았나 싶어 얼굴이 화끈했었다. 이제부터라도 뜨겁게 공부하리요 했다. 그러나 뜨거운 결심은 한 때요, 본래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금방 돌아왔다.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머스(이하 토머스)는 일자무식의 고아였다. 그러다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란 퀴즈쇼프로에서 최종 우승을 한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는다. 억대 상금을 지급할 돈이 없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그를 사기죄로 고발한 것이다. 어떻게 빈민가의 바텐더가 퀴즈를 다 맞출 수 있었는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퀴즈 순서대로 정답 도출과정이 나오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쓰여 있지가 않다. 사건마다 잘라서 시간 순서에 맞게 이해해야한다. 거기다 주변인물들이 퍼즐같이 맞물리는 구조라 추리의 재미도 있었다.

토머스는 입양과정부터 불운했고, 추한 현실을 많이 본다. 우상으로 생각하던 영화배우의 추행, 앵벌이 생활, 지식을 버리는 비정한 모정등 많은 사건을 겪는다. 그래서 그럴까 ‘내면의 믿음과 행운’이라는 참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시니컬한 면도 가끔씩 보여준다.

꿈은 오직 정신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p.446

빈민가가 배경이다 보니 살인청부, 폭력과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도라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인가 싶어 좀 안된 생각도 들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태국의 마약처럼 말이다. 우리나라판 <Q&A>는 어떨까. 그렇다고 더 나은 소재 거리가 있을 거란 생각도 안 든다. 청년실업에 인터넷 중독, 청소년 폭력, 경제 파산에 대한 이야기 더 추가 되겠다. 황금만능주의는 당연하고.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본 김영하의<퀴즈쇼>가 <Q&A>와 비교될 수 있다. <Q&A>주인공이 빈민가의 17세 고아라면, <퀴즈쇼>의 주인공 민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Q&A>가 토머스가 퀴즈 정답을 풀어간 경위를 쫒는 형식이라면 <퀴즈쇼>는 민수가 퀴즈어 양성소에서 겪는 이야기다. <Q&A>가 현실적이라면 <퀴즈쇼>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Q&A>가 인도의 빈민층과 상류층을 다 무대로 썼다면 <퀴즈쇼>는 한국 이태백층의 좁은 무대를 썼다. 그 넓은 무대 덕에 <Q&A>는 영화로 찍히고 영화는 오스카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퀴즈쇼>도 영화화 되면 좋겠지만 비디오가게로 직행할 까 걱정된다. 기묘한 스토리 좋아하고 원작 각색을 잘하는 감독을 만나면 다르겠지만.

<Q&A> 읽는 동안 즐거웠다. 영화에, 원작에, 원작과 대비되는 소설까지 3중으로 비교해 보니 썩 재밌다. 나도 오버랩하면서 읽게 되다니, 놀랍다. 그동안 책이라는 문화산업 속에 잘 놀아온 증거가 아니겠는가. 노는 것도 중요하다. 열심히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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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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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CGV에 <슬럼독밀리어네어>(이하 슬럼독)시사회를 보러갔다. 오후 2시가 상영시간이었는데 좀 일찍 도착했다. 월요일 오후2시에 영화를 보겠다니, 도착한 사람들은 영화 마니아던가 마니아로 위장한 백수거나 백수가 되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일 거였다. 그러나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조용했다. LCD광고만이 전기는 끊기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2시간 일찍 도착하긴 했다. --; 오곡 쉐이크와 머스타드 소스를 뿌린 핫도그를 우적거렸다. 핫도그 포장지를 버리러 잠깐 눈 돌린 사이, 대기실은 꽉 찼고 2시가 되었다.  

원작<Q&A>를 읽고 갔었다.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란 퀴즈쇼와 퀴즈를 맞추게 된 경위를 따라가는 줄거리는 똑같다. 그러나 원작과 영화는 많이 달랐다. 원작에서 주인공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다. 힌두교와 이슬람, 기독교가 섞인 이 이름은 사연이 많다. 작명 때부터 새로운 사건 때 마다 이름이 바꿔진다. 그만큼 험난한 고행길을 드러내는데, 영화에선 깔끔하게 자말 말리끄로 불렸다. 450쪽의 두꺼운 이야기가 필름두께로 재단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형제로 나오는 살람은 영화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형으로 바뀌어 있었고,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은 라띠까가 주인공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자말이 퀴즈쇼에 우승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문하는 장면이 첫 컷이다. 이후 자말의 7살 시절, 엄마와 함께 살던 슬럼가 장면이 나온다. 경찰에게 쫒기는 설정인데 빈민가 아이들이 도망가면서 비춰주는 빈민가 장면은 압권이다. 세계 최고의 슬럼가란다. 실제 인도의 뭄바이와 그 변두리 지역은 약 2200만 인구가 몰려있는 데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금세 수천만의 사람이 몰려 인도 제작자조차 꺼릴 정도라고 한다. 그 곳을 감독 데니 보일이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신나게도 찍었다. 유명 배우에게 싸인을 받겠다고 푸세식 화장실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웃음코드도 잘 챙겨 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은 정말 처절하다. 종교 폭동으로 엄마를 잃고, 넝마주이를 거쳐 앵벌이 견습소에서 봉사가 될 위기도 빠진다. 여기서 미워할 수 없는 형, 살람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다. 형과 함께 무임승차한 기차여행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떨어진다. 타지마할 관람을 하게 되는 데 여기서 낮에는 관광객 안내요원으로 밤에는 뒷골목 청소년들로 성장 한다. 
 
인도하면 카레와 같이 유명한 타지마할이, 실은 영화 촬영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곳이란다. 책 한권 분량의 공식 문서도 준비해야 하고 인도를 펌하할 것을 우려하여 실제 사용 승인을 받은 방송과 영화가 없단다. 그런데 담당자가 감독에게 신뢰도 했었고, <슬럼독>시나리오도 좋아 촬영 승인해주었단다. 

이래서 상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도 좋았겠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세계최고의 슬럼가와 타지마할을 찍었다는 게 아카데미에 반영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면에서 주제는 평범하다. 가난한 아이가 노력하여 부자가 된다는 식상한 스토리에, 위험을 무릅쓰고 얻은 사랑이야기는 진부하다. 하지만 그걸 포장하여 전하는 공감과 리얼리티가 영화의 힘이다. <슬럼독>은 주인공과 관객이 함께 있는 듯 리얼리티가 강하다.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인도에선 실제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국민 퀴즈쇼가 있었단다. 영화에서 나오는 문제들도 실제 퀴즈쇼의 문제였고, 퀴즈의 진행방식과 무대를 그대로 재연하기위해 실제 프로듀서와 작업했다고 한다.
 
원작의 순서가 추리소설을 이어 붙이듯 서로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하지만 영화는 순차적이고, 쉽다. 결과적으로 원작과 영화의 이야기가 달라서, 더 좋았다. 원작조각 찾는 재미도 컸고, 소설이 영화로 바꿀려면 어떻게 각색해야 되는지도 봤다. 기왕 재미있게 보고 싶다면 소설과 영화 둘 다 보라고 추천하겠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지만, 원작은 성행위 묘사없이 야하다. --;) 인도의 종교분쟁, 빈부격차, 역사, 정규교육에 대해 확장해석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쉽게 즐길 휴먼 드라마였다. 

티켓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시사회는 일반 당첨자는 볼 수가 없었다. 영화기자거나 파워 블로거만 초대받는 행사였다. 영화잡지를 구독하지도 않고, 파워 블로거도 아니었지만 덕분에 좋은 영화를 보고 왔다. 덤으로 ‘기자시사회도 영화상영 시간은 똑같다’는 시간의 공평함(?), 그 진실도 확인하고 왔다. 

ps. 상영 2시간 전에 도착하면 안 된다. ‘다 때가 있다’는 어머님의 잔소리도 진실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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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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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많기로 유명한 소설가 공지영. 그녀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괜찮다, 다 괜찮다>를 읽은 후였다. 그 전엔 <봉순이 언니>가 내가 아는 전부였고, 각각 성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에 지나지 않았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그녀의 개인적 아픔과 그것을 견디고 얻은 것을 괜찮게 엮은 인터뷰 집이었다. 이후 <즐거운 나의 집>을 찾아 읽고 위로의 문장들을 잔득 베껴놓았다. 처절한 1년 전에.

아직도 가끔 <즐거운 나의 집>에서 얻은 이 문구를 들춰 본다. 

 

   
  “그래, 사는 것는 어렵지, 아주 어려운 일이야. 스님도 어려웠으니까 깨달음을 찾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위녕, 사는 게 어려운 일이다. 이걸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사는 게 더 이상 어려워 지지 않아. 왜냐면 어려운 삶과 내가 하나가 되니까.” p. 226  
   


<즐거운 나의 집>에서 보여 준 작가의 캐릭터는 명랑한 캐릭터였다. 낮술하며 울기도 하지만, 결국엔 웃는 명랑한 소녀였다. 그녀가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만 썼다며 에세이집을 냈다. 책은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재미난 캐릭터의 친구들, 짧게 드러난 깊은 사유들이 인상남는다.

공지영씨의 다른 에세이집은 읽어본 적이 없어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에세이집도 가벼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명랑한 게 어울리는 작가다. 그리고 이제는 맹랑하게 쫑알댈 수도 있을 거다. 그녀의 연륜과 인세,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가 든든한 배경이 될 거다. 오해하는 대중과 에고이스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새침하게 “난 늬 들을 이해 못하겠거든.”이라고 쏘아 붙이는 공지영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웃음이난다.

개인적으로 공지영 작품들이 내게 위로를 많이 줬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지만, ‘공지영=위로 작가’란 틀에 갇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작품 <아주 가벼운 깃털>에서도 조금씩 묻어난다. 가벼운 에세이에서 굳이 위로 점을 끄집어내는 내가, 아직 여물지 못한 지도 모르겠지만. 

 

   
  “새싹과 낙엽에 손톱자국을 내본다면 누가 더 상처를 많이 받을 까. 아기의 볼을 꼬집어 보고 노인의 볼을 꼬집어보면 누구의 볼에 상처가 더 깊이 남을 까”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위해 몸을 바꾸어야 하는 본질을 가졌기에 자신을 굳혀버리지 않고 불완전하게 놓아둔다. 이 틈으로 상처는 파고든다. (중략)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 만큼 살아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 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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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9-03-09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음에서 연재하는 '도가니'는 꽤 무거운 주제의 소설이라던데요. 다음 댓글을 보니 글 쓰다가 우울증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구요.

모과양 2009-03-0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비돌이님. 공지영씨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지 궁금해지네요. 무거운 소설이라니, 시간내서 읽어야겠는데요. 너무 어려운 소설로 쓰신다면 안티로 돌아서버리겠습니다.ㅋㅋ

마법천자문 2009-03-1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문학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공지영 작가는 왜 안티가 많은가요?

모과양 2009-03-1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relude님 미인에겐 안티가 많잖아요ㅋㅋㅋ
저도 공지영님이 왜 안티가 많은지 이해가 잘 안가요.^^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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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다 읽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흡인력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 달래 듯 써내려간 글이었는데, 청자인 그 아이는 이해하기 힘들 반전에 반전이 숨겨져 있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주인공인 막스 티볼리이고 청자는 어린 새미와 여러분으로 지칭되는 독자다. 흥분과 차분이 교차되어 자신의 일생에 대해 들려주는데, 다 읽고 나니 어린 새미를 위한다기 보단 기막힌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싶다.

주인공 막스는 일흔 살 늙은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부유한 집안 덕에, 이 기형적 회춘(?)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란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갈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을 하나 받는다. 실제 나이완 상관없이 남들이 보는 나이대로 행동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지.

막스가 16살 때 생부 아르가르가 미스테리하게 사라진다. 아비의 부재로 가세가 기울자  아랫집에 세를 놓는데, 거기서 평생의 사랑 14살의 앨리스를 만난다. 하지만 중년의 모습을 한 17살의 막스는 앨리스의 엄마 레비 부인과 통하게 된다. 정작 열망하는 앨리스에겐 제 나이를 고백하는 바람에 첫사랑은 황망히 막을 내린다.

2부에선 이혼녀로 돌아온 앨리스가 막스와 우연히 같은 사고를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을 운명의 만남으로 돌리려 막스의 노력은 눈물겹다. 서로에게 나이가 자연스레 맞춰진 때, 둘은 결혼하고 큰 행복에 다다른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호사는 당신의 미소, 상쾌함을 주는 당신의 그 미소를 구매하는 일이었소. p.266

그러나 막스의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막스는 결혼을 위해 실종된 아버지로 신분위조를 했었고,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늙어보이도록 머리염색을 하고 옷을 구식으로 신경 써 차려입었지만 앨리스의 애정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숨겨둔 펜던트가 발견되면서 비밀탄로가 난 막스는 자기고백을 앨리스에게 또 하고 만다. 사랑을 붙잡기 위해 한 고백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함 뿐이었다. 참 처절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천형은. 

막스는 죽기를 마음먹고 입대했으나 전쟁영웅만 됐고, 부상으로 실려 간 병원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한다. 폐인 삶을 살다 친구 휴이가 전해주는 소식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바로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할아버지가 된 휴이와 꼬마가 된 막스는 같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당도한 곳엔 4번째 결혼으로 들뜬 앨리스와 개구진 새미가 있었다. 막스와 휴이의 결론은 좀 충격적이다. 그리고 휴이의 궤적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작가 앤드루 손 그리어의 상상에 감탄하고 뜨거운 필력에 감복했다. 주인공 혼자만 나이를 거꾸로 먹는 설정은 신선함을 넘어 서늘했다. (소설을 읽을 당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몰랐다.) 평범한 성장과정도 생과의 전투였고, 어린 마음에 겪을 남들과 다른 고통이 걱정 됐다. 거기에 역순회하는 일생을 걸고 사랑을 쫒는 막스의 행동은 읽는 이를 뜨겁게 한다. 책의 첫 페이지에 막스가 이런 문장이 써놓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막스는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비틀어 보자면 앨리스의 존재로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인 것 같다. 막스 스스로의 삶에서, 자신을 가장 소중히 했다면 결론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막스의 사랑, 앨리스는? 자신의 삶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영특한 여성이셨다.

막스가 6살 때, 우드워즈 가든스로 가족 소풍을 간다. 그 곳에서 재주부리는 곰과 처녀 비행하는 열기구도 보고, 평생의 친구 휴이도 본다. 공원장소만 쓰일 줄 알았던 우드워즈 가든스는 계속 나온다. 휴이를 짝사랑한 앨리스가 고백의 장소로 쓰고, 세 남녀의 재회 장소로 활용 된다. 소설은 공원의 퇴락까지 보여주는데, 열기구 비행은 사고가 나고 늙은 동물들은 사살된다. 공원이 쇠락이 시간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셋이 만남으로써 보이는 긴장의 장소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공원의 흥망성쇄가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s 1. ‘자연스레 맞춰진 때’라, 내가 쓰고도 왜 이 문장에서 놀랐다. 사랑하더라도 서로의 ‘때’가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는 ‘시절 연인’이라는 말,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때’가 된 사람끼리 한다는 격언과 통하는 것 같다. 이놈의 ‘때’를 기다리느라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ps 2. 난 아직도 팬던트 목걸이에 새겨진 1941의 의미를 모르겠다.

ps 3. 이 책과는 약간 다르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왔다.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를 보면서 감탄하고 왔다. 그러다 오늘 <벤자민 버튼..> 원작 소설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라딘에 감탄한다.     비교하면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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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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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위로와 유머가 어울어진 책. 각박한 삶에 쉼표같은 에세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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