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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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 TV를 보게 됐다. TV없이 사는 중이라 TV만 보면 재떨이를 바라보는 옛 끽연가처럼 오랫동안 TV를 본다. 광고만 송출하는 TV에서도 담배 향을 맡는다고 할까. 하지만 오늘 아침 TV는 오래 못 봤다. 리포트가 지방 명물에 대한 소개와 지역민의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어색한 재연과 엉성한 체험은 못 볼 것 이었다. 아직도 저런 촌스런 방송을 하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요일 아침TV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볼게 없어서 보는 TV였다. TV광이었던 어린 시절에도 싫어했었다. 남루한 옷에 검게 그을려진 그 들은 가난을 업으로 삼는 게으른 이라고 생각 했다. 양복을 입는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 달랐었다. 어렸을 때부터 싫어했던 프로그램은 20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TV를 껐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는 이와 찍히는 이가 있으니 방송되는 게 아닐까.

맞다. 아직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빨리 변하는 세상에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최규석이 있었다. 그는 가난을 부끄러워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손찌검하는 아버지와 가족에게 희생되는 누나들과 가난의 열등감을 가진 어린 시절을 표현 했을 때는 분명 그랬다. 아기가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 어린 아기를 안아주는 주는 그림이 많다. 누나가 안아주고, 저자가 직접 안아주기도 한다. 지금은 화해 한 것일까.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 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p.144)

어린 날과 다 화해했다고 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억지표현하지 않는 점이 더 솔직했고 좋았다. 이번 자전적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의 <습지생태보고서>도 그랬었다. 만화학도 시절의 궁핍이 유치와 유머로 보는 이를 웃을 수 밖 에 없게 만들어 놓았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조금 울면서 봤다.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온 이유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눈물을 닦아주던 형제 없이, 혼자 세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도 분명 가족이 있다. 가정적이여서 집안의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직접 하시는 아버지와 무던한 어머니, 욕심 좀 많은 남동생과 별 볼일 없는 나로 구성된 교과서적 가족이 있다. 역사에서 기록되기도 뭣하고 무시되기도 뭣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기엔 뭣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어릴 때는 가족이란 삶의 시작이요, 중요한 무엇인 줄 알았다. 조금 컸을 땐 얼마든지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다시 재구성하는 건 어렵고, 이해하고 넘겨야 하는 운명론에 가깝게 변했다. 가족과 사는 것, 가족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동안 50년을 볼 새로운 가족을 만들 처자가 됐다는 생각에 심란해져버렸다.

울고 웃기고 심란하게 하는 대단한 작가, 꼭 좋은 만화가로 계속 남아주시길 간절히 빈다. 좋은 처자랑 결혼하셔서 신혼일기라던가, 육아만화를 볼 날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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