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아버지가 왔다. 그가 건네 준건 화장품 든 상자였다. 봉입 테이프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 책상에 놓고 기분이 묘했다. 책상 위에는 읽다만 책들이 어질러 있었고, 그 중 한권이 동화책이었다. 동화책 위해 화장품을 올려다 놓았는데 그 조합이 의미심장했다. 아이의 장난감과 성인의 장난감, 거기에 그 간극을 즐기는 내가 있었다.

머릿속이 번쩍하여 그 순간을 찍어 두었는데, 나르시시즘의 아이콘들이 찍혀있다. 아이의 나르시시즘이 화장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책을 들지 않아도 아이 자체가 자기애로 충만할 테지만, 만족해하는 어린이와 아름다움을 경배하고 자기만족을 즐기는 처자가 한 몸으로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 애와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고 싶은 늙은 애도 거기 있었다.

한 참을 봤다. 이게 내가 동화책을 보는 진짜 이유였다. 어린 날의 나르시시즘을 갈망하고 있었던 거다. 동화책을 좋아한다며 댄 이유들은 둘러 댄 것들로 전략해 버렸다. ‘난 유치하다. 어린애 좋아한다. 동화책도 볼 만하더라. 동화책을 보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참조 일뿐이었다.

“전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슬쩍 웃어주는 어린놈의 영악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만, 지금은 새파랗게 안 보인다. 아이스러움이 그냥 좋다. 

“전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동화책을 좋아하는 걸 보면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낯짝에 분가루 두텁게 바른 사람이다. 동화책 본다고 그 사람이 순수하게 포장되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저렇게 말하고 싶다. 동화책을 보며 소녀다움을 얻기엔 너무 늙었다는 걸 알면서도 분가루를 바른다.

사진은 <언젠가 너도>란 동화책과 <로트리 로사 다브레카 트리플 케익>이라는 긴 이름의 분가루. 뒤는 <로트리 듀열 레아 젤 틴티드>라는 조금 긴 이름의 연지.

<언젠가 너도>는 아이를 위한 책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짧은 문장 속에서 엄마가 딸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특별하다. 로트리 제품은 아직 써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케이스를 여니 아이의 장난스럽고 달콤한 향이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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