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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蘭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가라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저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감잎 쓸면서

 

  오늘 아침으로

  감잎들 다 쏟아져

  그쪽 유리창에 새소리 유난했구나

 

  빗자루 세우고,

  말이 더디다던 이웃의 아이에게

  이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였네

 

  헌데

  감잎 쓸고 나니 마당은

  하늘로 다 가고 말았네

 

  나는 그제야 말문도 귀도 트여

  발등에 이파리들

  다 떨어뜨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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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살아왔던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혼자서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들에게 나는 그 만큼의 가치를 더해주지 못해던 것 같다.

  그저 내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조르기만 했던 것 같다. 부끄러울 뿐이다.

 

또 나뭇잎 하나가

 


그간 괴로움을 덮어보려고

너무 많은 나뭇잎을 가져다 썼습니다

나무의 헐벗음은 그래서입니다

새소리가 드물어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허나 시멘트 바닥의 이 비천함을

어찌 마른 나뭇잎으로 다 가릴 수 있겠습니까

새소리 몇 줌으로

저 소음의 거리를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내 입술은 자꾸만 달싹여

나뭇잎들을, 새소리들을 데려오려 합니다


또 나뭇잎 하나가 내 발등에 떨어집니다

목소리 잃은 새가 저만치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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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2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을 걷다 문득 뭔가를 두고 온 것처럼 멈출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세상엔 참 좋은 시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들었다.

  서산마애불을 보고 돌아서던 날이 생각났다.

  다시 가서 그 미소에 빠져들고 싶은 날이다. 

   

 

미소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울적한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그냥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애를 걸고

암벽을 쪼아

미소를 새긴

백제 석공의 지극한 정성과 공력을 보며

되집어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생애를 두고 가꾸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을 구하리라 믿은

천사백 년 전 웃음의 신도여

그대의 신앙이

내 마음의 진창에

연꽃 한 송이 피우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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