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두 심장

 

 

  고결한 두 심장이 진정으로 서로 사랑할 때

  그들의 사랑은 죽음 자체보다 강하다네

  우리가 흩뿌린 추억 우리가 주워 모으세

  서로 사랑한다면 당장 곁에 없음이 무슨 문제이랴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처음 읽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온 우주를 뒤감는다고 생각하고 젊은 연인의 사랑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던 순진하던 그때의 그 시절, 그리고 누군가 그리워 몸부림치고 뜨겁게 열망하던 날들이 있었던 그 어느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100여년전의 젊은 시인의 사랑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이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한번도 들어보지, 아니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편지, 싯구들은 나를 은근 부럽게 만든다.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보면 한 남자의 욕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을정도로 관능적인 싯구들이 많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은밀하고 황홀한 밀어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폴리네르와 루의 비밀편지를 몰래 엿보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가슴 뜨거운 편지가 한 편의 시집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폴리네르가 루이즈 드 콜리니샤티용이라는 여인에게 한 눈에 반하여 프로포즈한다. 그녀는 그 시대에 생각하기 어려운 팜므파탈이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결혼초 이혼을 경험한 그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아폴리네르를 외면하던 그녀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아폴리네르를 찾아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고 다시 그를 떠나고 심지어 다른 애인까지 두고 있었단다. 그래도 아폴리네르의 사랑은 그녀만을 향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녀에게 보낸 1년여의 편지 2백여통이 시집 한 권으로 100여년이 지난 내 손 안에 와 있고, 난 그것을 읽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내 사랑의 그림자를 나 또한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밤이 새도록

 

              밤이

             새도록

              기는

        물고 늘어진다

             천하가

              루인

              꿈을

        전쟁 중이지만

              기는

        전쟁 생각 없다

                밤은

 별빛 찬란하고 밀짚에는 금빛 감돈다

 사내는 흠모하는 여인 생각 골똘하다

 

                                 1915년 4월 27일 밤

 

  예쁘고 별나고 사랑스러운 사람아(p.139)라고 누군가 불러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야말로 행복해하지 않을까.

 

  오 루 내 사랑/ 요술을 부리자꾸나/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오묘하게/ 순결하게(p/118)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은 욕정으로 들끓는 수컷의 본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 잔인하여라 독수리의 심장을 가진 종다리여/ 순진한 시인에게 그대는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황혼녘 숲의 신음 소리를 나는 귀담아 듣는다네/ 그 길로 떠난 백작부인 얼마 후 다시 나타나 말했지/ 시인아 내겐 또 다른 사랑 있으니 나를 숭배만 할지어다/(p.109) 잔인한 루라는 생각을 잠시했다.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사랑은 했던 걸까? 그 시대에 정말 보기 드문 팜므파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자신을 향해 있는 한 남자의 사랑을 지배할 줄 아는 놀라운 여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슬퍼한다 생각지 말라 풀 죽었다 생각지 말라/ 네가 암만 그래도 세상이 암만 그래도 나는 장밋빛 인생을 본다/(p.101)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다고 해도 행복을 꿈꾸는 시인의 마음을 본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도 그리워하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장미빛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보초를 서며 나는 너를 생각한다 나의 루/ 저 위 별들의 반짝임 속에 너의 눈빛이 도사린다/ 하늘 전체가 너의 몸이다 내 거창한 욕망을 수태한 (중략)/ 사랑이여 그대는 부재가 무엇인지 모른다/ 부재를 죽음으로 아는 사람이 있음을 그대는 모른다/ 시시각각 괴로움이 끝없이 증가한다/ 날이 저물면 괴롭기 시작해서 밤과 더불어 다시 아픔이다// 나는 추억 속에서 희망한다 오 내 사랑아/ 추억은 젊어지게 한다 스스로를 지움으로써 아름답게 한다/ 그대는 늙어 갈 것이다 사랑이여 언젠가는 늙어 갈 것이다(생략) (p.76) 보초를 서며 사랑을 그리워하는 시인, 그를 애타게 만든 그녀가 나도 모르게 얄밉단 생각까지, 그래도 시인은 사랑의 편지를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름답게 읽은 부분은 '추억 속에서 희망한다, 추억은 젊어지게 한다, 스스로를 지움으로써 아름답게 한다'이다. 내가 '루'였다면 나는 아마도 이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 매일 밤 그를 생각하고, 그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애태우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루는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었나보다. 시인의 마음을 헤집어 놓고 어느 때는 사랑에 목말라 애태우게 했으니 말이다.

 

 

 

     야영지 모닥불

 

  야영지 흔들리는 모닥불이

  꿈의 형상들을 비추네

  뒤엉킨 나뭇가지들 속

  몽환이 천천히 올라가네

 

  이제야 한심해하는 회한은

  딸기처럼 온통 흠집투성이

  추억과 비밀에서

  남은 것은 오직 숯덩이

  추억과 비밀에서 남은 것은 오직 숯덩이, 한참 타오른 나무장작이 숯이 된다. 불꽃은 높이 오르지만 그을음은 어쩌지 못한다. 나무장작보다 더 오래 은근하게 타오르지만 그을음은 없다. 시인의 사랑은 숯덩이가 되었지만 결국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젊은 연인들에게는 유용한 시가 될 것 같다. 물론 나같은 아줌마에게도 유용하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이제는 가족들에게 향해 있지만 어느 날엔가는 한 남자만을 향해 있었고, 그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날엔 나도 누군가를 사랑했고 누군가도 나를 사랑했던 한 여인이었다는 추억에 잠길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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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14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아요 꿈섬님. 서로 사랑한다면 당장 곁에 없음이 무슨 문제이랴~

[그장소] 2016-01-14 13:07   좋아요 0 | URL
서로 사랑한다면 ㅡ
왜 제마음이 서글픈지...^^;;;

꿈꾸는섬 2016-01-14 13:25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이 시가 가장 좋았어요.^^
그장소님 저도 부르면 와주는 거 좋아요.ㅎ

[그장소] 2016-01-14 13:31   좋아요 0 | URL
그쵸ㅡ꿈꾸는 섬 ㅡ님 !^^
시의 의미에 저는 함께 못하는 애절이 더 읽혀서 아프고 그러네요~^^

꿈꾸는섬 2016-01-14 14:25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정말 시인의 애절함에 그녀가 살짝 얄밉기도 했답니다.

[그장소] 2016-01-14 15:29   좋아요 0 | URL
와 ㅡ꿈꾸는 섬님 ㅡ은 완벽히 시인에 동화되서 시를 보시는 군요.저는 제 입장에서 보는가봐요..아직 내 책이 아녀서 그런지 몰라도..^^

꿈꾸는섬 2016-01-14 15:39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그게 완벽하게 시인에게 동화되었다기보다는 밀당에 서툴던 저와는 다르고 한 남자의 사랑을 온전히 받은 그녀에 대한 질투심도 있었을거에요.

다락방 2016-01-14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프레이야님이 꽂히신 그 문장에 꽂히네요.

서로 사랑한다면 당장 곁에 없음이 무슨 문제이랴.

[그장소] 2016-01-14 13:0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부르면 와주시는게..좋은걸요.^^

꿈꾸는섬 2016-01-14 13:26   좋아요 1 | URL
그쵸..저도 그 글이 정말 좋더라구요.^^

[그장소] 2016-01-14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섬 님 ㅡ아..그런 질투 라...그렇군요.
그럼 제가 느끼는 슬픔은 어쩌면 그와도 비슷한 건지 모르겠어요.
부질없어라...ㅎㅎㅎ
시 ㅡ하나로 이런 대화 좋네요.^^
그쵸?

꿈꾸는섬 2016-01-14 15:56   좋아요 1 | URL
ㅎㅎ좋아요.^^

[그장소] 2016-01-14 15:58   좋아요 0 | URL
덕분에 ㅡ좋은 시를 알고 그걸 느끼는 분을 알게되서 기뻐요.꿈꾸는 섬님도 오늘 남은 오후 포근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또 뵈어요~^^♡

꿈꾸는섬 2016-01-14 16:03   좋아요 1 | URL
네~^^그장소님도 춥지만 따뜻한 오후되세요.^^

2016-01-14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저도 서로 사랑한다면 당장 곁에 없음이 무슨 문제랴~ 에 한 표*_*

꿈꾸는섬 2016-01-14 16:24   좋아요 0 | URL
ㅎㅎ당장 곁에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함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거란 생각도 들어요.^^
멀리 있어도 물론 그 마음 변하진 않겠지만요.
 

 

 

 

 

 

나비의 꿈


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 내 숨소리 허공을 향해 올라갔을 때.

우리의 기질이 나비의 날개를 가진다면

우리는 다만 있는 일만으로 족하리라. 왜냐하면
버려버릴 것을 모두 가벼운 날갯짓으로 벗어버린 뒤에

우리는 알몸으로 비로소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때에 내가 내 육체를 향해 새삼스러이 말을 걸리라.
"안녕! 예쁜 나여!"

나비는 언제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찾는다. 그가 말했다.
"가능하면 더 깊은 곳을"

어느 날인가 나는 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어째서지?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그는 날아갔다.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엔 바람이 칠흑이 그리고 핵이 남았다.

꿈꾸는


나는 다시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

내가 모든 여행길의 돌짝밭에서 돌아올 때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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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8-3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ㅅ
덕분에 시를 감상해요

꿈꾸는섬 2011-08-31 17:28   좋아요 0 | URL
시만 달랑 올려놓았어요.
요즘 머리 복잡한 일이 많아요.ㅜㅜ

2011-08-3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좋아요 좋아요...^^

꿈꾸는섬 2011-08-31 21:21   좋아요 0 | URL
섬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너무 좋아요.^^

치유 2011-09-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있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으니 더 좋아요..

가을 길을 걸어야 할것 같은...느낌 플러스에 커피도 한잔 마셔야할것 같고,,

꿈꾸는섬 2011-09-08 21:21   좋아요 0 | URL
가을이 성큼 다가왔어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죠.
배꽃님 이 가을에 많이 많이 행복하세요.^^
 
2011년 7월 보리암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후애님,
남해 금산에 대한 추억을 불러오게 만드시네요.
벌써 10년도 전에 남해 금산을 다녀왔었답니다.
유난히 날씨도 맑았고, 남해 금산을 오르는 발걸음도 가벼웠지요.
사진첩을 뒤적여보다가 몇장의 사진을 올려봅니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을 꺼내 보았어요. 오랫만에 꺼내들었는데,  비에 젖었다가 마른 그때의 그대로네요. 남해에 여행갔던 어느 날에는 비가 왔어요. 배낭 속에 넣어 두었던 <남해 금산> 시집이 비에 조금 젖었었지요. 그래도 그때 읽고 또 읽었던 시집이었답니다. 

그때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남해에 갔던 날들이 생각이 나네요. 남해에서 보길도에 들러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 둘러보고 왔었던 것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 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빰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 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불현 그리움이 물밀어


  불현 그리움이 물밀어
  거기, 名山이 大德이 이를 보이며 껄껄 웃고


  너울거리는 강과, 강의 엉덩이를 핥는 바다의 넘실거리는
  너울을 넘어 그가 나를 부르고,
  반갑게 내가 대답하고


  그가 나를 불러 껄껄거리는 名山과 大德의
  뜨거운 이마를 짚게 하고,
  내게 소리쳐 太平歌를 부르고


  해가 지면 거기 가서 누울 수도 있으리라
  나무들은 검은 둥치를 습기찬 언덕에 비비고
  풀숲으로 타닥타닥 겁 많은 벌레들이 튈 때


  오, 해가 지면 거기 누워 죽을 수도 있으리라
  이 몸, 거친 몸, 이 어이 거친 몸 

    강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未知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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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7-3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꿈섬님. 사진 속 여자분이 꿈섬님 10년전 사진이란 거예요? 우와, 까악!!! 더워서 놀러가고 싶은 마음도 안생겨요. 이제 곧 휴가를 떠나야 할텐데.........^^ 좋은 주말!!!^^

꿈꾸는섬 2011-07-31 21:06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여자가 10여년전의 저 맞아요. 제가 봐도 좀 신기해요. 10년동안 10Kg이 늘어나서 그런가 좀 어색하고 그러네요.
아이리시스님의 휴가 계획은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좋은 주말 보내셨죠?

프레이야 2011-07-3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산보다 이성복의 시보다 10년전 꿈섬님만 보여요.ㅎㅎ
아앙~ 이뻐요 ^^

꿈꾸는섬 2011-07-31 21:07   좋아요 0 | URL
프레아야님 이쁘다고 해주시니 너무 좋은걸요.
금산보다 이성복의 시보다 제가 더 예뻐 보였다는거죠.ㅎㅎ

하늘바람 2011-07-3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쁜 섬님
덕분에 저도 시 감상 하며 옛생각했네요

꿈꾸는섬 2011-07-31 21:0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도 옛생각에 젖으셨군요.
세월이 흘러간다는게, 예전 일을 생각할 수 있다는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서 꺼내들 것이 있다니 참 좋네요.

마녀고양이 2011-07-3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데요... 중간에 사진, 무지하게 인상깊구요. ^^
저는 올 여름 휴가로 주왕산에 가볼까 합니다, 몇년 전 가봤는데 코알라가 힘들어해서 많이 못 올라갔어요.
너무 아름다운 산이라 다시 한번 가보고파요.
그런데.... 비가 너무 오는군요.

꿈꾸는섬 2011-07-31 21:09   좋아요 0 | URL
주왕산...아름다운 산이군요. 우린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산은 생각도 못해요. 아이들 스스로 산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ㅎㅎ
마녀고양이님 가시는 날엔 비가 안 오길 빌게요.^^

순오기 2011-08-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해금산 시집만 갖고 있어서 궁금했던 곳인데~ 저런 모습이군요.
10년 전의 꿈섬님~~~~~ 반가워요!^^

꿈꾸는섬 2011-08-02 10:30   좋아요 0 | URL
남해 금산 오르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포근하고 아늑한 어머니 같은 산이었어요.^^

순오기 2011-08-02 14:47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에 상품넣기로 남해금산을 넣으면 좋겠어요.

꿈꾸는섬 2011-08-02 23:28   좋아요 0 | URL
생각도 못했어요. 상품넣기 할게요.^^

양철나무꾼 2011-08-0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시보다, 절경보다, 꿈섬님의 10년전이 인상적인걸요.
전 저렇게 싱그러웠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추천은 꿈섬님의 어여뿐 사진을 향해서랍니당~^^

꿈꾸는섬 2011-08-03 23:09   좋아요 0 | URL
싱그럽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입이 헤~~벌어져요.ㅎㅎ
10년 전 사진을 보면서 '그래, 나도 풋풋했던 것 같아' 생각했다가 '우왁~~저 허벅지를 어쩌지? 지금이나 그떄나......' 그랬어요.
양철나무꾼님의 10년전은 어떤 모습이셨을까요? 지금처럼 아름다우셨을 것 같아요.^^
 

순오기님 서재에서 보고 첫눈에 반했다. 걸걸한 입담에 구수한 사투리.  아무래도 나는 입이 걸진 사람을 좋아하는 듯, 구라로 유명한 황석영 선생님도 고개를 절래절래 한다니 그럴 것도 같고 비슷한 것도 같고 어째 시집을 읽으며 유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픈 것도 같은데 웃긴 것 같고 재밌는 것도 같은데 짜릿한 것도 같은 그런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얽히고 설켰다. 참 매력적인 시집 한권을 읽고 있단 생각을 했다. 소리내어 읽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순오기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다. 충청도 사투리가 전라도 사투리의 질펀함을 넘어선다. 맛깔난다. 

스무살 무렵에 읽었어도 좋아했을까? 라는 생각도 잠깐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세상 물정 조금 알만하단 생각이 드니 시인의 정서가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듯, 어찌보면 참 야한 것도 같고, 어찌보면 청소년들 보기에 민망한 것도 있는 것 같고, 뭘 모르고 보면 모를까 모르지만, 어느새 알 거 다 아는 나이가 되니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다. 

   
 

조개구이집에서

빙판길이든
눈 녹은 진창길이든
조개껍데기가 그만인 겨
조개란 것이 억만 물결로 이엉을 얹었는디
같잖게 사람이나 자빠뜨리겄남?

죽으면 썩어 읎어질 몸뚱어리,
조개껍데기처럼 바숴질 때까지 가야 되잖겄어?
나이 사십 중반이면 막장은 거짐 빠져나온 겨
피조개 빨던 입이라고 사랑하지 말란 법 있간디?
연탄 한 장 배 맞추는 것도, 연탄집게처럼
한꺼번에 불구녕에 들어가야 되는 겨
자네 하날 믿고 물 건너 왔는디
하루하루 얼매나 섧고 폭폭허겄나?
요번엔 뗏장이불 덮을 때까지 가보란 말이여
관자 기둥까지 다 내어주는 조개처럼
몸과 맘을 죄다 바치란 말이여
사랑도 조개구이 같은 겨
내리 불길만 쏴붙이다간
칼집 안 낸 군밤처럼 거품 물다가
팍 뛰쳐나간단 말이지


조개는 혓바닥이 발바닥이여
제발 혓바닥으로 노 젓지 말고 발품을 팔란 말이여
산 조개만이 혀 깨무는 고통이 있는 겨
갱개미 바람벽 쳐다보듯 멀뚱멀뚱
자작만 하지 말고 한잔 따라보랑게(66~67쪽)

 
   

 52쪽 '참 빨랐지 그 양반', 87쪽 '잘 나간다는 말', 94쪽 '내포석재 애기불'은 내 맘대로 19금으로 지정한다.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는 아무래도 24쪽 '도깨비기둥'이다. 

   
 

도깨비기둥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내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 정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겨울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앗빛, 그 솟구침, 그 얼음 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을 처박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 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하늘 주소까지(24~25쪽)

 
   

이정록 시인은 고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신단다. 그래서 한자에 대한 이해가 담긴 시도 간간이 있는데 그 해석이 참 마음에 든다.  

시인들은 언어의 천재성을 가진 분들임에 틀림없단 생각을 오늘도 한다. 그의 걸걸한 입담에 섬세한 관찰력, 세심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오늘 오후를 유쾌하게 보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시를 읽는 재미가 톡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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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5-3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내어 읽으셨군요.^^
초등학교 단짝이 부산으로 시집가 30년을 살았는데,
이 시집보내서 부산아지매들한테 충청도 사투리의 진수를 들려주라고 하려고요.ㅋㅋ

꿈꾸는섬 2010-06-02 15:32   좋아요 0 | URL
ㅎㅎ충청도 사투리도 정겹고 좋은데요.^^

마녀고양이 2010-06-0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를 오기 언냐 서재에서 보고 좋아졌는데. 다시 봐도 좋은 시네요.

꿈꾸는섬 2010-06-02 15:3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더라구요.^^

전호인 2010-06-0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걸걸한 것이 서정적일 때도 있고, 답답한 세상에 속을 확 뚫어주는 맛을 느끼기도 하지요. ^*^

꿈꾸는섬 2010-06-02 15:33   좋아요 0 | URL
ㅎㅎ맞아요. 걸걸한 것이 막걸리 한사발 마시며 농을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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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3-1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마음에 바람이 불고 가네요. 모래 바람이

꿈꾸는섬 2010-03-16 13:02   좋아요 0 | URL
어째요. 하늘바람님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곧 꽃이 피겠죠. 기다려보세요.^^

비로그인 2010-03-1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네에.

꿈꾸는섬 2010-03-18 09:30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