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와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오길주 지음 / 제이앤씨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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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히고 싶은 것은,
에듀테인먼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그와 관련된 이론서는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연구는 선구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 자체는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보다 발전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의문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현재 문화콘텐츠 및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연구들이 가진 공통된 문제는
당위를 설파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자체도 충분히 가치 있는 활동이다. 
그러나 이제 논의의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즉, 당위성은 충분히 지적되었으니 본격적이고 집중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단순한 아이디어보다는 보다 실증적인 차원에서 창작방법론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 역시 현재 같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옛이야기'가 문화적인 중요성과 가치를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그를 활용한 콘텐츠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특히 에듀테인먼트와 관련해서는 '옛이야기'야말로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는 스트로텔링의 원천소스라는 점도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그 활용방법에 있어서는 보다 심도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그렇다.  

   
 

<금강산 구미호>와 비슷한 유형으로는 <여우누이>를 들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들만 셋을 둔 부부가 고대하던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자라면서 자고 일어나면 가축들이 죽어 나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딸은 사람이 아닌 여우였는데, 부부의 막내아들이 여우 누이를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특히 이런 대결 구조를 가진 옛이야기는 에듀게임 중에서도 RPG게임에 적합하다. - p.106

 
   

'대결 구조'가 어떻게 RPG와 바로 연관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대결'을 구조화하는 것은 여타의 게임 장르에서도 흔하게 확인되는 부분이다.  

물론 RPG에도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역할극'의 양상이 더 강하다.
RPG의 핵심은 '대결'이 아니라, 게이머가 '역할'을 맡게되는 것이고, 그러한 역할 부여가 이루어진 뒤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의 명칭도 'Role Playing'이 아니던가.  
RPG에서 대결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행동 양상에 불과하다. 그러하기에 RPG에서는 대결 이외의 행동, 예를 들어 파티 구성, 교류, 아이템 습득 등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자면, '대결 구조'만으로는 RPG와 바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대결'만을 보자면 '어드벤처'나 '액션' 게임에 더 부합하고, 나아가 게임 이외의 장르인 영화/드라마/연극 등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 <바리공주>에서도 동일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의 규칙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에도 규칙이 존재한다. <바리공주>에서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먼저 생명수를 앗아갈 위험한 세계와 대면하게 된다.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을 무사히 빠져 나가야 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수많은 위험 요소들, 이를 테면 함정, 수수께끼, 맹수, 킬러 등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 p.128.  
   

이 부분 역시 위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련의 부여와 그 극복 과정은 게임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강한 대부분의 문화콘첸츠 장르에서 발견되는 스토리텔링 양상이다. 즉, 그것은 게임과 유사할 수는 있으나, 게임하고만 유사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보편적 스토리텔링 양상을 왜 구태여 게임과 연결시키려 했는지 그 이유가 제시되어야 했는데, 논의는 위의 인용을 끝으로 종결되어 버린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칼산, 불산, 독사 등의 공간을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영화/드라마/공연 등의 문화콘텐츠 장르가 시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데 반해,
게임은 공간(map)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는 사실에 기인해서
인용과 같은 주장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그 논리를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막바로 게임과 연결시키는 주장은 무리가 따른다.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바리공주> 이야기에 포함된 게임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제시되어야 한다.
얼핏 드는 생각만으로도, 공간 구조보다는 '퀘스트'(생명수 구하기), 아이템 습득, 방해자(몬스터)의 제시 등등이 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의문점과 함께 표현력의 문제, 즉 부정확한 문장의 사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쓰는 것도 하나의 스토리텔링 창작이다.  

문화콘텐츠의 스토리텔링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각 매체의 표현도구를 정확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카메라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고, 게임 디자이너가 그래픽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글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글을 잘 다루어야 한다. 

여기에서 '잘 다룬다'는 것은 맛깔나게 문장을 쓰거나, 멋을 부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정도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
(김훈이나 신경숙의 소설은 문장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일단은 표현이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 책의 후반부, 특히 <테일즈 런너>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비문과 오류가 많다.
초반에는 그런 문제를 찾을 수 없는데, 후반에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해당 부분을 집필한 필자께서 퇴고를 미처 하지 못한 것인지, 아쉬울 뿐이다.  

예를 들어 다음 부분, 

   
  <테일즈 런너>에 삽입된 동화들은 첫째, 캐릭터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놀부와 흥부>, <설녀>처럼 말이다. 둘째는 주인공들의 모험담이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요괴, 호랑이들을 물리치는 여정을 보여준다. 셋째, 주인공들의 변신과 사물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제크와 콩나무>에서 콩나무의 변화, <알라딘>에서 램프의 요정의 변화, <개구리 왕자>에서 왕자의 변신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테일즈 런너>의 이야기는 캐릭터가 벌이는 모험과 대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요소는 게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 p.193.  
   

위에 인용된 문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 주술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동화들은 ~ 뚜렷하다는 점이다"가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이 뜨렷하다는 것인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2) 부연설명이 적합하지 않다. 인용의 첫째 부분에서 캐릭터의 특징이 뚜렷하다는 진술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채, 예시만 제시되어 있다. 둘째 부분에서도 요괴와 호랑이들을 물리치는 여정을 바로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3) 종합이 적절하지 않다. 첫째, 둘째, 셋째를 종합한 내용이 어떻게 '모험과 대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진술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모험이야 둘째에서 설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결'과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 

4) 모험과 대결이 주류를 이룬다고 해서, 그것이 곧 게임 창작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이는 앞서 설명한 내용과도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아쉬움이 생긴다. 기대가 없다면 아쉬움 또한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옛이야기와 스토리텔링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보다 엄격한 논리를 갖추고, 보다 적확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더 좋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부디 다음 연구에서는 보다 좋은 결과를 내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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