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중심주의에서의 탈피.
생계에 대한 중압감 또는 물신주의(物神主義)라는 다소 낡은 표현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현실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겨 생존을 쟁취해야 하고, 휴식하기보다 준비를 해야 하며, 채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경쟁으로 내몰린다. 이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것은 경제적으로 처분해버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하거나, 다소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풀어낼 여유조차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생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걱정은 정말 생존에서 비롯되었는가? 혹시 공포 때문은 아닐까. 정말 위협당한 것이 아니라,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 우리를 생계 유지에 급급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이성을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포와 힘”이라는 히틀러(Adolf Hitler)의 말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공포는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난 세기, 우리 문단을 사실상 주도했던 리얼리즘도 결국 생존에 대한 추구와 그를 위한 지난한 쟁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 문단의 토양이 SF처럼 현실을 벗어난 상상은 자라기 어려운 환경으로 고착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앞으로 문학의 지향점은 ‘서정’이 되어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에서 이완되기 위해서는, 일단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SF가 보완해야 할 내용이 된다. 그동안의 SF가 새로운 과학기술 소개와 알레고리를 통한 현실 비판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앞으로의 SF는 삶을 위무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를 위한 도구는 다시,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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