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피터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6
이시다 이라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통칭 I.W.G.P. 총 6권을 모두 읽다.
드라마로부터 시작된 여정이 이제 마무리된 셈이다. 다소 길었지만 매우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코드는 '2급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순결한 자만이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한다.
맞다. 그것은 분명히 착각이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명분, 권력, 전략 등의 3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명분을 획득하지 못한 권력은 폭력에 불과하며,  
권력을 동반하지 못하는 명분은 허울에 불과하다.
또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전략이 필요하며,
전략이 부재한 권력은 비효율적이 된다.

하지만 순결한 자는 단지 명분 만을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권력은, 더구나 전략을 가진 권력은 순결하기만 해서는 절대로 얻어낼 수 없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피어나는 꽃인 것처럼,
권력 역시 진흙탕에 손을 적시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여, '순결한 정의'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는 순결하지 않은, 하지만 순결을 지향하는 자만이 지킬 수 있다.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법칙에 가깝다.

처녀는 순결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순결이 깨지고, 처녀라는 이름을 잃어버릴 때, 여자는 비로소 생명을 만들 자격을 획득한다.
그 자역의 이름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순결하지 않다. 하지만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고, 양육한다. 그럼으로써 위대해진다.
처녀는 순결하다. 하지만 생명을 잉태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위대할 수는 없다.

정의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위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2급수적인 인물로 하여금 정의를 지키게 한다는 것, 즉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징벌한다는 설정이야말로 작가의 세계 인식이 성숙하다는 증거이다.


사실, 이러한 설정이 이시다 이라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하드보일드 추리물의 핵심코드 역시 '2급수 정의'이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타락한 경관이나 탐정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적은 그들보다 훨씬 나쁜 놈들이거나, 보다 타락한 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유형의 작품이 대부분 도회적이고, 냉정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가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순결한 자의 싸움은 스스로의 우월함에 대한 확인일 뿐이지만, 타락한 자들은 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와 타락과 비열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엔 스스로를 회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I.W.G.P가 독창적이 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마코토는 분명 순결한 인물은 아니다. 건전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하드보일드 류의 주인공과 비슷하지만, 보다 경쾌하다. 회의하지도 않는다.

이유는?
그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리지 않지만, 세상물정을 다 맛본 기성세대도 아니고,
마마보이 찌질이는 아니지만, 독립하여 가정을 만들지도 않았으며,
의리에 목숨 걸만큼 어설프지는 않지만, 이해 관계가 아닌 유대를 나누는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곳, 즉 가족과 동류(同類)들이 있다.
이것이 그가 하드보일드 주인공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가 보다 타락한 자들과 싸울 수 있는 이유도, 그 싸움의 끝이 피로하긴 하지만 회의로 빠지지 않는 이유도, 그럼으로써 끝내 정의로울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소통하고 연대하는 2급수 정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또한
그가 지역문화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고자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케부쿠로'는 도쿄의 부도심 지역이다.
도심이 되지 못하는 부도심, 소비+향락+문화가 버무려진 지역, 오다이바 같은 신시가지처럼 세련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색창연하지도 않다.

※ 이케부쿠로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아래의 링크들을 참고
-
http://100.naver.com/100.nhn?docid=883883
-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443075

이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바로 마코토라는 인물이고, 그가 지키는 정의이다.

 

이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 올바른 '정의'를 다룬 것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반영하는 캐릭터는 있는가?

있다면 발전시켜야 하고, 없다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찾자.
'정의의 사도'야말로 모든 스토리텔러들의 로망이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