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셀러
아우구스토 쿠리 지음, 박원복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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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대구 북로거모임을 했던 때, 똥집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술 한 잔 했던 그때,『드림셀러』가 출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모임에 참석한 분 중 binsante님도 계시기에 화가 박항률의 그림이 들어간 책이 나왔더라고 말씀 드린 기억이 난다. 누군가와 새롭게, 처음 만난다는 것, 어떤 좋은 기운을 북돋워주는 그런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생각보다 흥미로움을 넘어서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듯하다. binsante님을 뵈면서 화가 박항률을 알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꿈’이라는 단어가 갖는 추상적인 베일을 조금이나마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꿈을 이룬, 다시금 그 꿈을 일구고 가꿔가는 사람을 나는 만났던 것이다.  

언젠가 쥐뿔도 없고 모른 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어쩌면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려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좋게 말해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제대로 말해 이 얼마나 오만하고 부끄러운 생각인가! 나는 그런 환상에 젖어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어떤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한 변명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관계란 이처럼 내 어리석음을 하나씩 벗기는, 서서히 알몸으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주술이 아닌가 싶다.

*

『드림셀러』는 여태껏 내가 생각해온 소설이라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로선 아주 생경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우화 같기도 한 이 소설이 갖는 맛이란 마치 잘 익어 달콤한 귤인 줄 알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아주 시큼한 레몬이더라는. 시큼한 이 레몬즙에는 의식에 대한, 삶에 대한, 꿈에 대한, 우리 내면의 세계에 대한 것들이 담겨 흐른다. 이야기는 장황한 설명과 철학적인 대사들로 조금은 팍팍(?)하게 흐르지만 아예 신 맛으로만 된 것도, 그렇다고 아예 우중충하게 무거운 것도 아니다. 시큼하긴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레몬 같은 이야기랄까.  


 “인생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사람에게는 쉼표 하나, 그저 쉼표 하나를 팔고 있소.”(p48)

‘스승’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스스로를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살소동을 벌인 주인공에게 다가가 ‘쉼표’ 하나를 팔게 된다. 그 쉼표란 가령 삶을 포기하려는 자에게 어떤 누구의 말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그렇게 ‘스승’은 한 사람의 생명 혹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한 영혼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양각색의 빛깔로 반짝이는 고귀한 ‘삶’을 하나씩 되살려낸다. ‘스승’은 마치 삶을 되살리는 순례길에 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있다네. 하지만 덩치 큰 동물에게서는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지. 그들은 약한 자를 이해하기보다, 비난을 일삼으며 병적으로 권력을 지향할 뿐이니까.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은 위대한 영웅이 되거나 역사의 장에 훌륭한 업적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야. 그대들은 묵묵히 이 사회를 돌아다니며 모르는 자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작은 제비가 되었으면 하네. 자신의 날개에 걸맞은 존재가 되길 바라네. 의미 있는 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되는 법이니까.”(p111)

어느덧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되살린 사람들은 ‘스승’의 제자가 되어 그 순례길에 동행하게 된다. 불씨를 되살렸을 뿐, 아직까지 각자 완전한 삶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자들이 다시금 오르기엔 이 사회의 시선이나 편견이 쟁쟁했던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스승’은 용기를 북돋우고 의지를 불태우도록 격려하고 저마다 삶의 제 궤도를 찾아가도록 힘쓴다. 스스로가 가진 역량만큼의 날개를 갖게 하고 그걸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용기는 스스로 피어나고 의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걸 일깨워준다.

아무튼(?) ‘스승’과 그의 제자들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부조리함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해나간다. 그렇게 내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내면의 세계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갖게 된다. 예수의 삶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또한 그의 열두 제자들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들의 발자취에서 예수의 삶과 열두 제자가 떠올랐다. 그네들의 발자취는 현대판 영적 순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이 소설은 우화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다 분량도 생각보다 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꿈을 파는 사람’ 즉 ‘스승’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화자 역시 시시각각 자신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과 ‘스승’이 일으키는 기적(?)을 통해 심적 변화를 고백하고 그를 믿고 따르면서도 늘 ‘스승’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에 목이 탄다. 그 목마름이 해소되는 순간! 화자는 격심한 혼란을 경험한다. 아마도 ‘스승’의 정체가 밝혀지는 종반부는 정말이지 드라마틱하면서도 허무한, 장엄하면서도 김빠지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인상적이고 느낀 게 많은 장면이 아닌가 싶다.  


하나를 더 들자면, 화자의 심리변화가 우화적인 이야기에 걸맞지 않게(?) 아주 더디다는 것일지라. 말인즉슨, 순차적으로 화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긴 하지만 여느 우화에서처럼 모든 상황을 수긍하면서 혹은 단번에 확!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랄까, 생각보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아주 충실했다고나 할까. 순식간에 모든 삶, 생각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물들어가듯, 그 과정 속에는 여전히 불신과 의심이 내재되어 있는 채로 변화한다고 할까.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고 궁금증을 양산하면서도 영적 가르침을 따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변화하는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화자의 시선은 인간 본연의 모습, 그런 심적 상태에 충실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끝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선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한 박항률의 그림이 책 중간 중간에 독립된 작은 페이지로 삽입되어 있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이야기의 내용과 분량 사이를 그림이 적절하게 조율함으로써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지와 삽화라고 생각했었지만, 전체적으로 참 괜찮은 조합이다 싶었다. 박항률의 그림을 적절하게 조합한 기획과 편집이 책을 다 읽은 후 참으로 인상 깊게 남는다.   

 

 

***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어떤 의미를 갖는 세계인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는 세계의 모습과 현재는 얼마나 닮았는가. 우리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우리는 ‘정상인’인가 ‘비정상인’인가.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그런 질타와 소외를 한 몸에 받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째서 ‘비정상인’이라고 부르는가. 어쩌면 ‘스승’이 말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아주 거대한 ‘정신병동’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정신병동에서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비정상인’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경쟁, 불신, 다툼, 선긋기 등도 불필요한 이 거대한 정신병동에서 정상이라고, 정상인이라고 발악하면서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정상이 뭔지 비정상이 뭔지도 모른 채 이기심 하나를 위안 삼아 정상인 척 하는 ‘비정상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곳은 정녕 어디이고 무엇이며,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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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청소부와 할리우드 배우 중에 누가 더 갈채를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가? 정신세계가 더 복잡한 사람은 누굴까? 역사적으로 볼 때 누구의 정신세계를 해독하기가 더 어렵겠나? 사실 아무 차이가 없다네. 둘 다 똑같아. 하지만 ‘정상인’은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지.”(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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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사회체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사는지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사회가 원하는 소비를 하면서 자동화기계나 로봇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이다. 마치 생각은 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데에만 익숙한 전문가들처럼 살고 있다. 그야말로 정신적인 혼란을 가중시킬 뿐인 삶이다.(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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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늙음 사이의 시간적인 차이는 생각보다 짧다네. 나이 든 사람들의 세계를 탐구하지 않는 젊은이는 청춘을 즐길 자격이 없지. 인간은 심장이 멈출 때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마음을 잃어버릴 때 죽는 법이라네.”(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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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가장 음흉하고 치명적인 함정을 준비했다. 여자들의 현명함과 삶의 훌륭한 감각을 찬양하는 대신 여자의 몸을 찬양하는 데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자의 몸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겉보기에 여자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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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체제는 새로운 노예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자식과 아내, 친구와 꿈이 남겨졌고, 그들 앞에는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강제적인 정신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노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들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꿈을 파는 사람’이 우리에게 말했듯 역사는 돌고 있는 셈이다.(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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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상적인 진리로 과학을 배신했으며,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들을 배신했다. 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배신했다. 그리고 사람을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아메리카인, 유럽인, 동양인, 백인, 흑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등으로 나누며 인류를 배신했다.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꿈을 살 수밖에 없는 배신자들이다.(p319~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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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0-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YES24도 하는데..ㅋㅋ 거긴 안하시죠?? (사실 북카페도 하고..ㅋㅋ혼자 뭐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ㅋㅋ) 거기에선가 드림셀러 독서감상문 행사했는데....^^ 아꿉다. 이 글 지원했음 바로 당첨인데...제가 원래 안 읽은 책 리뷰 안 읽는 것 아시죠.ㅋ 그러나 특별히 읽어준다...ㅋㅋ 뭐야. 쟤 싶으시죠..ㅋㅋ

ragpickEr 2009-10-22 22:20   좋아요 0 | URL
예스24..그 동네는 아직 안하는데요..아마도 조만간 만들 것 같아요..^^*;
이벤트로 받은 책이 하나 있는데 그 동네에도 리뷰를 좀 올려달라고 해서..;;ㅋ 여기 저기 많이 하시나봐요~^^* 으흐흐~

아깝긴요..;; 이런 낙서를 어따 써요..;; ㅋㅋ

고마워요~^^*; 읽어주셔서~헤헤..

에샬롯 2009-10-0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쉼표 팔고 싶으네요.^^

ragpickEr 2009-10-22 22:20   좋아요 0 | URL
쉼표..^^*

충분히 많은 분들께 쉼표를 공짜로 나눠주고 계신 거 다 알아요~후훗..
복받으실 거예요~헤헤..

늘 건강하셔요~^^*
 
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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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죽음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무엇이 어찌될지 모르고, 어디에 캠프를 쳐야 할지,
거기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죽어 가는 과정에 관해 썼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죽어 가는 이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곧 무엇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고 언제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을 배우는 일이다.
버텨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계속될지 모른 채로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원래의 내 방식과는 다르게,
그 익숙하지 못한 낯선 삶의 조류에 대항해 헤엄쳐 나가기보다는 그저 떠내려가듯 살았다.
..  


∥..본문 中..∥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 이유 때문도, 절망의 한 켠에 그대로 방치된 것 같은 이유 때문도 아닌데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그저 멍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게 조금은 솔직하고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담긴 어떤 절망과 고뇌, 아픔과 슬픔이 나를 옥죄는 덫으로 작용한 게 아니라 이 모든 감정선을 훌쩍 뛰어 넘어 마치 넋이 나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한다면, 나만 이해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어머니를 돌보며』는 파킨슨 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본 7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절절한 모녀간의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 아닐까, 하고 읽기 전에 생각했었다. 만약 내 예상이 적중했다면,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가 꽤나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그 이상의 것이라기보다 7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이라는 존재, 이성과 감성, 육체와 의식, 시 · 공간에 대한 성찰이 담담하고 빼곡하게 담겨 있다.

밤낮없이 환시에 시달리고,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저자의 어머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고 표현능력까지 상실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자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누구나가 말하듯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어느 누가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자식된 당연한 도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 당사자의 문제이다. 그리고 주변 이웃들 친지들이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 말들조차도 당사자에겐 크나큰 고통의 한 조각일 뿐이다. 하기 좋은 말, 응당 그렇게 해왔던 말이 당사자에겐 어떤 현실적인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어느 날 불현듯 불어 닥친 이 고난의 시간을 담담하고 현명하게, 때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다. 파킨슨 병에 관한 의학 자료를 수집하고, 시간에 맞춰 약을 챙긴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병원을 예약하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은 부지런하게 찾아 검진을 받는다. 결국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손쉽게 내린 결정만은 아니었다. 한없이 밀려드는 자괴감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선택을 최선이었다고, 항변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은 삶에서 불가피한 것이며 오직 선택 그 자체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미래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노인 요양원으로 부모를 보내고는 일 년에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리 매일 같이 어머니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어머니가 최대한 편리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힘쓴다. 어머니의 성격을 고려해 부분 부분이나마 생활 패턴을 조율하고 건의하는 모습은 우리가 ‘희생’이라는 단어나 ‘사랑’ 혹은 ‘헌신’이라는 단어로 쉽게 치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저자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아주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를 스스럼없이 써내려간다. 화가 날 때도 있었으며 어머니를 원망할 때도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저 거짓 없이 모든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내보이면서 좀 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 자신, 남편이 한 인간으로써 겪는 고통에 대해, 한 인간으로써 감내해야하는 존재의식과 존재이유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해나간다. 어쩌면 꾸밈이 없다는 것으로부터, 가장 솔직한 인간의 속내로부터 이러한 성찰은 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자신된 도리로써 당연한 것이니까, 헌신이나 희생이니까 하는 자기부정이 아니라 ‘인정’을 통해서였기에 고난의 시간이 성찰의 시간으로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다.

 

*

덧붙여, 저자와 어머니를 통해 안타까운 현실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노년의 삶이란 병들고 쇠약하기 마련이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노년의 삶은 무수히 많은 병원을 전전하고 갖가지 약과 처방으로 점철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혹은 몇 십 군데씩 병원을 예약하고 진료를 받으며 거기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고 의료혜택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노년의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평온하지 못하고 더욱더 치열하게만 느껴지는 노년의 삶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돋을 만큼 치가 떨렸다.

죽음이란 과연 두려운 것에 불과한 것일까. 두렵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떤 ‘축제’의 한 형태처럼 특별한 무엇일까. 특별하지 않다, 라면 과연 죽음이란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죽음은 삶 속에 있으며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라고 쉽게 말하고 생각해온 나를 질책하게 된 것은 저자가 보여준 끝없는 자기갈등과 고통 속에서 어렵사리 길어 올린 삶과 죽음, 인간의 존재 등에 대한 성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 스스로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나의 손쉬움과 가벼움이 어리석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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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7-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슬플 것 같아서 보기 싫어요.;; 책 안 읽으려는 핑계죠.^^ㅋ

에샬롯 2009-07-2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 부모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니까요.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선 3년은 걸린다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 치르는 거구요. 내가 의지가 없었을 때 나를 돌보아주신 것처럼 부모님이 의지가 없으실 때 돌봐드려야죠. 그래야 사람인 거죠. 부모가 아이에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부모가 아이를 돌보는데 이유가 없었듯 말이죠. 뭐 이 책에선 저자가 어머니 요양소에 보냈나보네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거니깐 상황에서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어머니의 병에는 전문적인 요양소가 더 적합할 수도 있고요. 어머니에게나 딸에게나...이런 이야긴 마음이 안 좋아서 싫어요. ㅜㅜ;; 사람은 한번은 죽기 마련이지만..ㅜㅜ;; 어머니도 안타깝고 딸도 안타깝고...내게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이 싫고..;; 그렇습니다. 부모님께 잘하자는 마음이지만 별로 잘해드린 것도 없는 것 같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샬롯 2009-07-2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셉의 집에요. 노인요양소가 있는데요. 한달에 한번씩 목욕봉사해요. 저 말고 제가 아는 사람이요.^^; 그분이 어떤 할머니 씻어드리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더래요. 자식들이 서울에 사는데 재산 다 뺏들고 자기를 여기에 보냈다고요.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는데...자식분들 늙어서 할머니와 같은 대접 자식에게 받음 어쩌려고...아 저의 스승님께서 그랬어요. 친구 말이죠.자신의 가족에게 잘못하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고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그런데 하물며 남인 친구에겐 어떻겠냐고요. 그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사람은 배울 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것이 뭐 뛰어난 점 이런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배울 점이요.^^ 그러고 보면 넝마님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가르쳐 주세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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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 binsante님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적에, 주제가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그때 작업실 한구석에 높다랗게 쌓인 책 더미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보여주셨다. 이 사람 사진을 참 좋아해요, 하시면서 내게 소개해준 책은 다름 아닌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에 시인 조 은이 글을 단『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였다. 마침맞게 최민식의『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야금야금 보고 있던 나로서는 또 한 번 일상의 오묘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율이란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의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순례를 거듭하며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닮은 구석이 있다. 나를 찾아가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를 얻으면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변화와 그 다채롭고 오묘한 빛깔이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전율! 감히 생각건대, 수없이 오간 binsante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지금 이 순간 기억을 더듬거리며 찾아낸 것은 영혼이 닮은 이를 위한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 그것이 곧 일상 속 오묘함이고 전율의 전조가 아니었나 싶다.  


*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에 시인 조 은이 글을 단 작품이다. 이 시대 최고의 리얼리티와 휴머니즘의 대명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투철한 정신이 배어있는 그의 사진 위로 세밀하고 탄탄한 시인의 감수성이 은하수처럼 펼쳐진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꼴일까. 단언컨대, 결코 내가 오버하는 것 같진 않다. 이처럼 멋진 궁합이, 조합이 어디 있으랴! 하나의 세계를 각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다른 형태로 표현할 뿐, 이 둘의 오감은 처음부터 같은 것을 느끼고 있으며 마치 영혼의 닮은꼴처럼,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 방울의 물과 물이 만나 새로움도, 어떤 변화도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이 둘의 이성과 감성의 조합은 엄청난 힘을 표현하고 이끌어낸다.  


냉철한 시각,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사진가 최민식. 반대로 절대 냉철할 수 없을 것 같은, 한없이 유약한 듯 보이지만 아주 세밀하고 촘촘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 조 은. 이 둘이 이끌어낸 것은 무엇일까. 잔잔하면서도 처절한, 확고하면서도 유연한 이 둘은 실로 엄청난 힘을 빚어낸다. 이 둘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끌어내고야 말았던 그 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힘이란 진부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누구나가 입에 올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대서 찾을 수 있다.

이 둘이 풀어내는 사랑은 충격적이고 색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신선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사랑의 본래 모습일 뿐이다. 사랑, 그 속에 감춰진, 우리가 간과하거나 동정이나 연민 따위로 이름 붙인 또 다른 하나의 사랑을 그저 들춰내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자문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골 깊은 관념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정녕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현실적이고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감동이고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 둘은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물론 그 이전에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뿐더러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고 한다. 출간 직전 책 속에 들어갈 사진 촬영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 만났다고 한다. 서로 알지도 못한 채 단 한 번 보지도 못한 이 둘의 세밀한 교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른 시대와 삶을 걸어온 이 둘은 닮은 영혼, 적어도 영혼의 민감성이 긴밀하게 잇닿아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책 속을 흐르는 이 둘의 교감은 정말이지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할 만큼 긴밀하면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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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 은은 인간의 불행을 악성바이러스라고 말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악성바이러스가 다시금 불행을 이기는 항체 역할을 하고 기필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가 최민식이 가난과 불행을 온 몸으로 떠안은 체 기필코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사진에 담았더라면, 그의 사진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저 불행의 한 단면, 악성바이러스로만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진은 물론 작가에게도 지난한 작업에 불과했을 것이며, 생명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최민식의 사진을 통해 불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를 만난다. 또한 그것을 이기는 항체 역시 만나게 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사진이 철저한 리얼리즘을 통해 얻은 사진의 생명성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저 불행의 한 단면, 그 순간을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 둘의 철학과 메시지 그리고 인간 대 인간을 뛰어넘는 영혼의 교감을 엿보고 들으며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늦은 밤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이 세계에 만연한 불행의 씨앗들이 궁극적으로 피워 올려야 할 것은 무관심과 이기주의를 살포시 보기 좋게 덮어 체면을 차리는 연민이나 동정이라는 악성바이러스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는 ‘끌어안음’의 인간적인 항체가 아닐까 싶다. 어둠과 추위와 폭풍우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라는 초를 켜 올리기 위해서는 기필코 우리는 살포시 끌어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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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만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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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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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입니다
고도원 지음, 황중환 그림 / 오픈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고도원을 처음 알게 된지도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아마도 군을 전역하고 이듬해 복학하면서 신청해 들은 경영대학의 어느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리포트에 적은 이메일 주소로「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날아들어 여태껏 좋은 글귀며 좋은 생각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작으나마 실천하려 노력중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확인도 잘 안했었는데 요즘은 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며칠 몰아서라도 확인할 때면 위안도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한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는 앞서 말한「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만화와 함께 새로 엮어낸 책이다. 눈에 익은 내용도 더러 있어서 부담 없이 읽었으며, 카투니스트 황중환의 그림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도 저자 고도원을 아는 독자라면, 더불어「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익숙한 독자라면 더없이 의미 있거니와 아기자기하고 색다른 맛까지 느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저자에 대해, 아침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라 할지라도 편안하고 의미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재능’은 어떤 뛰어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좇는 사람에게 있고, 그 뒤에서 박수 쳐주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p101)  


나는 종종 재능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는 어떤 재 능이 있는가하고.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다른 이들의 재능에 더 관심이 많고 그들이 발휘하는 재능을 내심 부러워하고만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작 내게 잠재된 재능을 찾아내고 구체화시키기는커녕 스스로를 재능 없는 인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한 문제 혹은 나에게만 미안해할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곰곰이 생각건대, 결국은 여태껏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기만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정녕 꿈을 좇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고, 이를 응원하는 이들의 박수소리가 재능을 키우는 것이라면, 생각보다 나는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 있답니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지만 물살이 무척이나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하나씩 짊어진답니다.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돌을 짊어지고 건너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것은 거친 강물에 휩쓸리지 않게 해줄 고마운 돌인지도 모릅니다.(p21) 

 

요즘 읽고 있는 조셉 M. 마셜의『그래도 계속 가라』에 보면, 삶이라는 여정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나 사건은 양면성을 지니고 인간은 늘 그 속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맥락이지만 약점이 곧 장점이고, 장점이 곧 약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며 이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활용하라고 말한다. 슬픔이나 고통, 비탄, 근심 등의 부정적이거나 안 좋은 상황 역시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을 깨닫고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되새기게 할 만큼 앞서 인용한 구절은,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이 일화는 의미가 깊지 않나 싶다.  


카투니스트 황중환의 그림(만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의 좋은 구절뿐만 아니라 저자 고도원이 삶을 바라보는 어떤 시각 역시 의미 깊지만, 그림 역시 다채로우며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서려있는 듯하다. 때론 잔잔한 색감으로 슬픔에 잠긴 우리를 위로하고, 지친 영혼을 가볍게 터치한다. 유머와 위트로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미소를 잃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 쏟고 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어찌 보면「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오래도록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조금 심심했을 수 있을 이 책을 더욱 감칠맛 나게끔 한 게 황중환의 그림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 이웃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살아간다. 때론 세상으로부터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우주로부터 힘을 얻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늘 누군가로부터, 당장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어느 시공간으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응원하고 박수쳐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거니 받거니 어떤 편에 서 있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스스로를 위해 밝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일 수 있는 아주 작은 힘이나마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희망이고 희망의 전령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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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에 다섯 번 씩 미소를 지으세요.
평화를 위해서 for Peace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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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진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야 한다.
리얼리즘 사진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리얼리즘 사진은 현실에 대한 물음을 그 시작으로 한다.
단지 미학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  


∥..본문 中..∥

때론 아주 겁 없이 달려들 때가 있다. 내 능력으로는 쉽사리 풀어내지 못할 문제에 대해 나도 모르게 달려든다는 말이다. 물론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처럼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고민도 해보고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결론은 늘 모자란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임을 안다. 그저 겁 없는 척 달려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

『사진이란 무엇인가』는 사진작가 최민식의 물음인 ‘나는 사진을 왜 하는가?’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왜’를 시작으로 ‘어떻게’ 와 ‘무엇을’로 나아가는 저자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갈증이 해소되는 듯하다. 적어도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중요시되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묵직한 물음 앞에서 양껏 겁을 먹고 뒷걸음치며 외면할 때마다 느꼈던 답답함은 해소되는 듯했다.  


최민식이 말하는 사진, 즉 ‘가치 있는 사진, 힘 있는 사진’이란 아주 선명하고 명확하다. 리얼리즘과 사실주의를 기본으로 한 사진, 작가정신이 뚜렷한(투철한) 사진,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을 딛고 진화하는 사진, 굳이 컬러만을 고집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진, 객관과 작가의 철학적 교감의 산물로 탄생한 사진, 역사성(기록) · 고발성(사회부조리, 모순 등에 대한) ·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진을 최민식은 생명력이 있는 사진이라고 말한다. 리얼리티! 최민식은 이 리얼리티를 사랑하고 이 사회를, 사람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힘이 느껴진다.

어느 책에선가 최민식에 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딸이 ‘아빠는 다른 사람의 가난을 팔아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했다던 말을 듣고 몹시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한없이 유약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유약하다는 느낌과는 달리 단호하고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한없이 따뜻한 감성, 그런 마음을 지닌 멋진 사람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최민식은 참으로 강골하면서도 유연하고 부드럽다. 신념과 주관이 뚜렷하다 못해 투철하다. 그의 카리스마가 페이지마다 작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사진작가 김홍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민식과 김홍희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물론 나는 아직 이 두 사람에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태 내가 접한 이 둘의 작품(김홍희의『나는 사진이다』와 최민식의『사진이란 무엇인가』)만을 가지고 비교했을 때, 느낌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나는 사진이다』의 경우는 사진에 입문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았고,『사진이란 무엇인가』는 대체적으로 전문사진작가들의 프로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느낌은 기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김홍희는 편안한 어투이면서 친근한 느낌이다. 그는 내 고물 휴대전화에 탑재된 볼품없는 카메라마저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에 반해 최민식은 대체적으로 전문사진작가를 대상으로 냉정하고 확고한 어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같이 사진에 대해 문외한 사람은 멋모르고 들었던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즉, 최민식은 사진예술을 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관이나 사진에 대한 정신, 철학이 정립되어야 함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최민식 앞에서는 꼭 야단맞는(??) 기분이랄까.  


가장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내가 사랑한 작가’ 와 ‘나의 사진이야기’라는 부분이었다. 최민식이 소개하는 ‘내가 사랑한 작가’에는 대부분 리얼리티를 목숨과 같이 생각하는 작가들이 열거되어 있다. 덕분에 여태 몰랐던 사진작가를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또 ‘나의 사진이야기’에는 최민식의 진솔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한층 더 그에 대한 내 마음이 깊어진 것 같다.  


**

포토저널리스트.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인 지성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이 세계의 모습을 얼마나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가급적 윤색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진 포토저널리스트와 그것을 다이렉트로 받아들고는 스스로 이 세계를 인식해가는 독자(민중)층이 두터워지고 현명해짐으로써 세계는 좀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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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
“나는 어떻게 찍으려 하는가?”
“나는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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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사회란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된 사회를 말한다. 나는 이를 위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한다. 모든 사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이란 작가의 집요한 관찰에 의해 순간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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