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언젠가 binsante님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적에, 주제가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그때 작업실 한구석에 높다랗게 쌓인 책 더미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보여주셨다. 이 사람 사진을 참 좋아해요, 하시면서 내게 소개해준 책은 다름 아닌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에 시인 조 은이 글을 단『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였다. 마침맞게 최민식의『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야금야금 보고 있던 나로서는 또 한 번 일상의 오묘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율이란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의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순례를 거듭하며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닮은 구석이 있다. 나를 찾아가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를 얻으면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변화와 그 다채롭고 오묘한 빛깔이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전율! 감히 생각건대, 수없이 오간 binsante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지금 이 순간 기억을 더듬거리며 찾아낸 것은 영혼이 닮은 이를 위한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 그것이 곧 일상 속 오묘함이고 전율의 전조가 아니었나 싶다.  


*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에 시인 조 은이 글을 단 작품이다. 이 시대 최고의 리얼리티와 휴머니즘의 대명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투철한 정신이 배어있는 그의 사진 위로 세밀하고 탄탄한 시인의 감수성이 은하수처럼 펼쳐진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꼴일까. 단언컨대, 결코 내가 오버하는 것 같진 않다. 이처럼 멋진 궁합이, 조합이 어디 있으랴! 하나의 세계를 각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다른 형태로 표현할 뿐, 이 둘의 오감은 처음부터 같은 것을 느끼고 있으며 마치 영혼의 닮은꼴처럼,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 방울의 물과 물이 만나 새로움도, 어떤 변화도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이 둘의 이성과 감성의 조합은 엄청난 힘을 표현하고 이끌어낸다.  


냉철한 시각,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사진가 최민식. 반대로 절대 냉철할 수 없을 것 같은, 한없이 유약한 듯 보이지만 아주 세밀하고 촘촘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 조 은. 이 둘이 이끌어낸 것은 무엇일까. 잔잔하면서도 처절한, 확고하면서도 유연한 이 둘은 실로 엄청난 힘을 빚어낸다. 이 둘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끌어내고야 말았던 그 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힘이란 진부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누구나가 입에 올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대서 찾을 수 있다.

이 둘이 풀어내는 사랑은 충격적이고 색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신선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사랑의 본래 모습일 뿐이다. 사랑, 그 속에 감춰진, 우리가 간과하거나 동정이나 연민 따위로 이름 붙인 또 다른 하나의 사랑을 그저 들춰내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자문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골 깊은 관념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정녕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현실적이고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감동이고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 둘은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물론 그 이전에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뿐더러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고 한다. 출간 직전 책 속에 들어갈 사진 촬영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 만났다고 한다. 서로 알지도 못한 채 단 한 번 보지도 못한 이 둘의 세밀한 교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른 시대와 삶을 걸어온 이 둘은 닮은 영혼, 적어도 영혼의 민감성이 긴밀하게 잇닿아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책 속을 흐르는 이 둘의 교감은 정말이지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할 만큼 긴밀하면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시인 조 은은 인간의 불행을 악성바이러스라고 말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악성바이러스가 다시금 불행을 이기는 항체 역할을 하고 기필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가 최민식이 가난과 불행을 온 몸으로 떠안은 체 기필코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사진에 담았더라면, 그의 사진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저 불행의 한 단면, 악성바이러스로만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진은 물론 작가에게도 지난한 작업에 불과했을 것이며, 생명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최민식의 사진을 통해 불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를 만난다. 또한 그것을 이기는 항체 역시 만나게 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사진이 철저한 리얼리즘을 통해 얻은 사진의 생명성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저 불행의 한 단면, 그 순간을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 둘의 철학과 메시지 그리고 인간 대 인간을 뛰어넘는 영혼의 교감을 엿보고 들으며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늦은 밤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이 세계에 만연한 불행의 씨앗들이 궁극적으로 피워 올려야 할 것은 무관심과 이기주의를 살포시 보기 좋게 덮어 체면을 차리는 연민이나 동정이라는 악성바이러스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라는 ‘끌어안음’의 인간적인 항체가 아닐까 싶다. 어둠과 추위와 폭풍우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라는 초를 켜 올리기 위해서는 기필코 우리는 살포시 끌어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주워 담기¨¨‡‡‡‡‡‡‡‡‡‡‡‡‡‡‡‡‡‡‡‡‡‡‡‡‡‡‡‡‡‡ 

 

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만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p124)
====================================================================  


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p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