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태어났어요 과학 그림동화 6
조애너 콜 지음, 이보라 옮김, 제롬 웩슬러 사진 / 비룡소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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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나의 사직동』이 꽂혀있던 서가부근에서『강아지가 태어났어요』를 만났다. 이 책은 웹서핑 중 어느 독자의 리뷰 덕분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책이다.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보고, 읽었다. 지나던 학생들과 같은 책상에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던 학생이 슬몃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싱글벙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꼬맹이들이 볼법한 책을 탐하고 있었으니 ‘이건 또 뭐임?’ 했겠다 싶다.

앞이며 뒤며 표지가 참으로 귀엽다. 웬만큼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표지에 혹! 할 만큼, 괜스레 온몸이 오그라드는 그런 기분이랄까. 더구나 강아지를 비롯해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주 작고 귀여운 녀석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다. 뒤뚱뒤뚱 거리며 표지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고 한다면 ‘뻥치시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지? 아마 이 책을 접하는 분들은 내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다. ‘우리 함께 뻥치실까요?’라고 당당하게(?) 권유할 것을 믿는다.(후훗..)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강아지의 탄생에 대해 적고 있다. 엄마개의 뱃속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눈과 귀가 열릴 때까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나(?)랑 재미나게 놀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진 덕분에 더욱 자세히 고 귀여운 녀석의 성장과정을 생생하게 함께 할 수 있다. 사진이 표지를 제외하고는 흑백이라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참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강아지의 탄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다. 그냥 쑥~(?) 나와서 어미젖을 빨고 있는 새끼강아지를 본 게 전부다. 엄마개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때 아주 얇은 막에 싸인 채 웅크리고 있는 사진은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 얇은 막과 탯줄을 엄마개가 제거해주고 연신 핥아주면 더듬더듬 거리며 어미의 젖꼭지를 찾아드는 녀석의 본능과 마주할 때 역시 생명의 숭고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문득 사진작가 김홍희 씨가『방랑』에서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던 구절이 생각났다. 엄마는 나 어릴 적에, 엄마개가 임신하고 새끼를 낳을 때쯤 되면 엄마개와 나를 격리(?)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 손 타면 지 새끼 물어 죽인다. 그러니 보지 마라.’ 혹은 ‘지 새끼 태어나는 거 사람들이 구경하면 새끼를 먹어버린다.’ 등의 전설(?)을 각인시켜주었다. 뭐 다 틀린 말이고 거짓말은 아니었겠지만, 문득 이 책에서 새끼강아지의 탄생 전 과정을 다루고 있는 걸보면서 나도 김홍희 씨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거짓부렁쟁이!’(후훗..)

녀석이 어미젖을 떼고 접시에 담긴 우유를 핥는다. 어색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잘 먹지 않는다. 서툴러서 그런지 먹는 것보다 얼굴에 칠하는 게 더 많은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내게도 모든 게 서툴던 때가 있었지, 하고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 좋은 말로 아장아장했겠지만 분명 뒤뚱거렸을 내 어린 날, 그 선명하지도 어렴풋하지도 않은 시간이 왠지 그립게 와 닿았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나싶다.

우유하니까 생각난다. 어릴 적, 안집에서 키우던 검둥이가 낳은 새끼에게 내 우유를 주던 기억. 그때 우리 집은 병에 담긴 우유를 받아먹었는데, 내게 허락된 양을 홀짝홀짝 검둥이 새끼에게 주다주다 나는 한모금도 못 마셨던 기억. 그땐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냥 녀석이 먹는 것만 봐도 좋았던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쭈그려 앉아 우유를 주다가 엄마한테 빗자루 세례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는 아빠개(?)가 안 나온다. 아빠개도 나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어린애 같은 감상에 젖어본다. 태어나고 8주 정도 지난 새끼강아지 토토(이 책에 주인공 강아지 이름)는 줄에 묶여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집을 떠난다. 엄마 품을 떠나 옆집 꼬마의 친구가 되어. 괜스레 씁쓸하게 눈에 거슬리는 토토의 목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어른이라서, 쓸데없이 가련하다는 연민을 갖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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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더군요.
혹시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상품정보에서
미리보기로 먼저 접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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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다신전 - 차 생활 입문을 위한 최고의 고전
전재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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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술 한 잔 해야지!’가 ‘밥 한 끼 묵자!’로 변했음을 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차 한 잔 해야지!’로 연신 바삐 사는 친구들을 꼬여보지만, 그 여유란 게 쉽사리 나지 않는가보다. 막상 그렇게 붙들듯이 꼬여내고서도 편안하고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실 공간이란 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야 복닥거리는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트는 게 고작이니까.

차茶라고 해봐야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 눈에는 일반의 커피가 가장 손쉽고 단순하게 찾을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차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몇몇 차라고 불리는 종류들을 접해보긴 했기만 대게 인스턴트식이었다. 그나마 내 똘끼(?)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나무인간 강판권 교수) 덕분에 다도茶道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과 그에 맞춰 슬금슬금 흉내를 내본 게 전부이다. 내가 무슨 차를 마셨는지도 조차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만한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무얼 바라 허둥지둥 생활하고 있는가, 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직접 차 한 잔 마실 호사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요즘이기에 차와 관련된 책을 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강의 시간에 들어본 다경茶經이나 다신전茶神傳을 어설픈 호기심만으로 접해보는 것 또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았던지 서가산책을 하던 도중에 뜻밖의 도우미(?)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사진으로 읽는 다신전』이다.

이 책은 초의선사가 지은 다신전을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원문을 옮기되 짤막하게 옮기고 직역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또한 사진이 매 장마다 삽입되어 있어서 더더욱 내용을 이해하기 편리하다. 나 같이 차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도우미가 있을까 싶은, 굳이 차 생활에 들어서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 작은 여유조차 없이 허둥지둥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촐하게나마 여유라는 ‘향기’로 위로해 줄만한 책인 듯하다.

또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로 접하게 되는 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면서 차를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잘 마시는 법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법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달리 말해서, 차가 가진 좋은 성질들을 보다 잘 우려내서 되도록 그 진가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게끔 한다고 할까.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이런 기술적인 면에 대한 부분도 상술되어 있어서 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새삼 진중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도 매 장마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신전이 가진 가치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차를 우려낼 때 불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에서 중화中和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차를 넣는 순서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리를 되짚어보게 된다. 또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단순한 행위나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 한 잔으로 태어나 내 손에 들려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정들 속에 녹아있는 정성을 생각게 하고 차를 이루는 불, 물, 바람, 빛, 찻잎 등이 서로 다투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함으로 인해 비로소 좋은 차 한 잔을 낳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교훈까지 맛보게 된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오묘함이란 제 본분을 지키면서 상생相生하기 위해 정당하고 이로운 경쟁을 근본으로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차 한 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제 본분을 다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이치가 그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울 때야말로 좋은 차 한 잔에 녹아 있는 향과 맛처럼 모든 이들이 이롭게 다투고 서로 존중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윽한 정취로 가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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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火候화후; 불의 조절∥
烹茶旨要 火候爲先(팽다지요 화후위선)
爐火通紅 茶瓢始上扇起要輕疾(노화통홍 다표시상선기요경질)
待有聲 稍稍重疾(대유성 초초중질)
斯文武之候也(사문무지후야)
過於文則 水性柔 柔則 爲茶降(과어문즉 수성유 유즉 위다강)
過於武則 火性烈 烈則 茶爲水制(과어무즉 화성열 열즉 다위수제)
皆不足於中和 非烹家要旨也(개부족어중화 비팽가요지야)

차 생활의 첫째는 불을 잘 다루는 일이다.
화로의 불이 활활 피워지면 주전자를 위에 놓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고,
끓는 소리가 나면 부채를 더욱 짧게, 빨리빨리 부친다.
이것을 불과 물의 조절이라 한다.
불이 약하여 물이 덜 익으면 차의 맛이 나타나지 않고,
불이 너무 강하면 물이 너무 익어 차의 맛을 제압한다.
불이 약하거나 너무 강한 것은 중화를 잃은 것으로, 차(茶) 우리는 방법이 아니다.(p65~p71)

∥⑨投茶투다; 차 넣기∥
投茶行序 毋失其宜(투다행서 무실기의)
先茶湯後 曰 下投(선다탕후 왈 하투)
湯半下茶 復以湯滿 曰 中投(탕반하다 부이탕만 왈 중투)
先湯後茶 曰 上投(선탕후다 왈 상투)
春秋中投 夏上投 冬下投(춘추중투 하상투 동하투)

차를 우릴 때에는 그 정해진 순서를 잘 따라야 한다.
차를 먼저 넣은 다음 탕을 나중에 부으면 하투(下投)요,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물을 붓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찻물을 먼저 붓고 차를 넣는 것은 상투(上投)라 한다.
봄, 가을에는 중투(물-차-물), 여름에는 상투(물-차), 겨울에는 하투(차-물)로 한다.(p120~p123)

∥⑬味미; 차의 맛∥
味 以甘潤爲上 苦滯爲下(미 이감윤위상 고체위하)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좋으며, 떫고 쓴 맛이 있는 것은 나쁘다.(p143)

∥⑯品泉품천; 물의 품성∥
茶者 水之神 水者 茶之體(다자 수지신 수자 다지체)
차는 물에 색향미(色香味)를 주고, 물은 차의 색향미(色香味), 곧 다신(茶神)을 담는 몸이다.(p155)

眞原無味 眞水無香(진원무미 진수무향)
진수(眞水)는 본디 맛도 향기도 없다.(p167)

∥⑱貯水저수; 물의 저장∥
飮茶惟貴夫 茶鮮 水靈(음다유귀부 다선수령)
茶失其鮮 水失其靈 則 與溝渠何異(다실기선 수실기령 즉 여구거하이)
차 생활에서 소중한 것은 오직, 차가 변하지 않아야 하며, 물의 기운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 변질되고, 물이 싱그러움을 잃었다면, 이는 곧 도랑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p181)

∥茶衛다위; 다도의 요체∥
造時精(조시정)
藏時燥(장시조)
泡時潔(포시결)
精燥潔 茶道盡矣(정조결 다도진의)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는 건조하게 하며,
달일 때는 청결하게 해야 한다.
정(精) · 조(燥) · 결(潔)이 다도(茶道)의 전부이다.(p194~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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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그 후 - 환경과 세계 경제를 되살릴 그린에너지 혁명이 몰려온다
프레드 크럽.미리암 혼 지음, 김은영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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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내해야 할 시절은 어수선하고 한숨이라도 돌려야 할 내 하루마저 지난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움츠려들다 보면 한없이 너른 이 세상도 고작 방 한 칸 남짓하게 좁아지기 일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좁디좁아진 세상에 누군가의 부고(訃告)까지 날아들면 천 길 낭떠러지가 따로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져 지낼 수만은 없는 일. 때론 삶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진리는 소소하지만 아주 명징하게 나를 일으켜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심히 ‘불편한 冊(?)’으로 다가온《지구, 그 후》.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듯하다. 제목만 보고 혹은 책 표지를 보며 내 마음대로 내용을 추측했던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이반 일리치나 앙드레 고르의 길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을 그린 줄로만 알았다. 또 근래에 접하기 시작한 격월간지《녹색평론》과 그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내 추측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이영표 선수만큼이나 아주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쉽게 말해, 이 책에서 부단히 구슬땀을 흘리며 에너지 혁명(?)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시장, 정책, 설비, 기술혁신 등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가(기업가)들이다. 이들은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 공급단가를 낮추어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나아가 자본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이윤추구를 달성하고 세계를 감동시킴으로써 자유경제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신기술을 통한 에너지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잘못됐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럴 만한 능력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결국 일반의 세계민들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거의 배제적인 입장이다. 현재 우리가 떠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자본과 기술로써 타계해나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조금은 불분명하고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기술만 완성된다면, 더 많은 투자자본이 확보만 된다면 우리는 충분히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지금의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는 논리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이룬다.

내가 뭐 아는 것도 없는 미천한 사람이지만, 녹색혁명이니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이니 목소리를 높이는 이 노력가(?)들의 행태는 노력이라는 측면을 벗어나 비체제적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反생태적인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들의 노력이겠지만, 사실상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율을 따지고 경제성을 따져가면서 일단 ‘막고’, 다음으로 ‘차고’, 끝으로 ‘때리기’ 식의 해결책에 정력적으로 구슬땀 흘리는 게 아닌가 싶어 자못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나로서는 이들의 노력이 일단 ‘막고 보자’ 식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쓸데없는 이야기(?)가 좀 많이 가미된 듯. 대체에너지 개발에 뛰어든 신생기업들의 초기자산규모는 얼마였는데 지금은 얼마고 시가총액은 이만큼 상승했고, 앞으로 공급단가를 낮추고 좀 더 기술개발을 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는 식의 서술이 이 책에 나오는 기업만큼 빠짐없이 나온다. 이런 부분들만 적절하게 조절했었어도 이들의 구슬땀은 좀 더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런 부분들에 조절이 가능했다면, 책값도 조금은 대중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읽고 있는《숲에게 길을 묻다》와 비교해보면 책의 디자인이나 구성면에서도 조금은 부족함이 많은데 그 값은 대중적이지 못한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아는 거 없이 너무 거칠게 소감을 적은 듯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反생태적인 노력의 대가들이 써내려가는 성공신화를 위한 스케치(?)’ 쯤이 아닐까 싶다. 진정으로 지구를 위한다면, 일단 자본이 바탕인 체제를 넘어서야 되는 게 아닌가, 과감하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자본이 여태껏 우리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많은 혜택과 편리성, 금빛세상(?)을 쥔 손을 좀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 심각한 문제이며 생명의 존속 여부마저 불확실하다면 체제를 넘어선 유연한 사고와 노력들로 성공신화를 그려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는 많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으로 지금의 환경문제가 나타나게 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불가피한 결과로써 이미 그 씨앗 속에 지금의 문제들은 오롯이 성찰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잡히지 않은 채 쑥쑥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끊임없이 문제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결함이 아닐까 싶다. 전 지구적인 시각을 갖고 근원적인 문제인식을 한 것 치고는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너무 빤한 노력이 아닌가 싶어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의 목표이자 당면과제는 지구온난화를 불러오는 대기오염을 줄여 지구의 생태환경과 기후패턴이 너무나 급격하고도 광범위하게 변해 우리가 더 이상 재앙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다.(p57)

이들의 탈출계획(?)에 동참할 생각이나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을 듯싶다. 훗날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종속되고 변변찮게 살면서 그네들이 일궈낸 결실을 넙죽 받아들게 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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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소리를 너무 많이 했네요.
워낙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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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온 2011-0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코드 그린"이란 책에서도 미국인들의 혹은 자본주의자들의 "돈이 되는 것"이란 얄팍한 생각, 지금의 지구를 만든 그런 생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더군요.
아쉽고 무섭습니다.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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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수돌 교수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부전공을 신청해 들은 사학과 강의 중, ‘한국사회경제사’와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강의를 맡으신 교수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솔직히 알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의 저서를 읽은 건 몇 안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작은 풍요》,《1%의 대한민국(공저)》그리고 이 책《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밖에 없다. 앞서 말한 두 책은 그래도 힘이 덜 들었는데, 이 책은 좀 많이 힘들었다.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리가 안 되는 걸 보니 나는 아직도 멀었나보다.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는 아주 작고 두껍지 않은 녀석이다. 솔직히 좀 만만하게 봤다. 이틀이면 읽어낼 수 있으리라. 웬걸, 크지도 않은 내 코가 완전 뭉개지고 아주 보기 좋게 작살(?)이 났다. 요 조그만 녀석을 거의 한 달 가까이 붙들고 씨름했으니 남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일지라. 그래도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겠지, 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장하다 인마!!(ㅡ,.ㅡ*;;)

『삶과 일, 가정에 대한 작은 에세이; 2. 일에 대한 가치관』
사실 우리의 현실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가정의 이미지는 더 이상 ‘보금자리(nest)’가 아니라 단순한 ‘버스정류장(bus-stop)’으로 변하고 있다. 가정은 노동에 종속되어 노동의 긴 여정을 다니기 위한 간이정류장이 되었다. 아이들도 노동하는 어른과 삶의 의미와 행복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 갖기 어려워 그 간이정류장에 간간이 들러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만 챙겨 먹고 바삐 떠난다. 어른들은 삶이 고달플수록 고통을 잊기 위해 일에 더 매진하는 병적 경향이 있다. 가시적 성과를 올리면 다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p20)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이런 현상이 알게 모르게 가정을 변화시키고 있음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결과를 낳는 그 과정에는 우리의 ‘일중독현상’이 그 몫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업무에 몰입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함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낳는, 이러한 일에 대한 우리의 아이러니한 가치관.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고 조급증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그로부터 우리는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재생산한다. 그렇게 생산된 스트레스를 재가공하여 우리는 일중독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초래된 결과(일중독현상)의 심각성에 따라서 가정은 조금 ‘덜한’ 버스정류장, 조금 ‘더한’ 버스정류장, ‘심각한’ 버스정류장의 모습을 보이는 것일 뿐, 맞벌이를 하는 요즘의 추세에서 보면 그리 놀랄만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노동시간이 월등하게 높은 것(어떤 국가와는 거의 2배 가까이 우리가 높다)으로 분석하고 있고,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일을 할 때와 일을 통해 어떤 성과를 올렸을 때 대다수가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니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은 직장에서 업무달성·성취로부터 얻는 행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행복과 기쁨이란 게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해 나타난다고 본다면, ‘보금자리’에서 ‘버스정류장’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무책임; 2.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_ 2) 기업의 ‘5D전략’』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의 압박이 증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진정성을 갖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개 세 가지 전략(‘3D전략’)으로 대처한다. 첫째, 부정(Deny), 둘째, 지연(Delay), 셋째, 지배(Dominate)전략이 그것이다. 먼저, 부정전략이란 기업이 책임질 직접적 대상이나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것이다. 상황 자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대개 인과관계를 부정하거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린다. 다음으로 지연전략이란,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나 상황 자체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경우 그 해결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론을 편다. 아직 문제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거나 그 해결을 위한 역량이 아직 구비되지 않았다는 식이다.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저항세력이 지치게 되거나 세력관계가 뒤바뀌면 포장만 달리하여 자기들의 의도를 관철한다. 끝으로, 지배전략이란, 어차피 부정도 못하고 지연도 못할 조건이라면 문제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기업이 장악하려는 것이다. 문제 상황의 규정 자체를 기업에 덜 불리하게 한다거나, 우호적인 학자나 전문가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어 해결방식을 기업에 유리하게 끌고 가는 식이다. 그리하여 ‘전화위복’을 꾀한다. 대단한 위기에 휘말린 기업이 오히려 그 위기를 딛고 더욱 번창하게 되는 것은 지배전략이 효과를 낸 결과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판단으로 나는 위 ‘3D전략’에다가 두 가지를 더 부가해 ‘5D전략’이라 명명한다. 하나는 왜곡(Distort)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사기(Deceive)전략이다. 왜곡전략이란 문제 상황을 비틀어 더 이상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보상적인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특히 건설이나 개발과 관련된 사례에서 두드러지듯 애초엔 사업 그 자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가부문제로 시작하지만 대개 끝은 보상문제로 귀착한다. 다음으로 사기전략이란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는 준수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뇌물, 감투, 암약 등을 통해 대 사회적 사기를 치는 것이다. 서류조작, 자료조작, 통계조작, 수치조작이 기본이다.(p70~p72)

위와 같은 기업의 ‘전략’에 관해서 저자는 태안 앞바다에서 있은 기름유출사고와 충남 연기군 신행정수도이전에 관한 사례 등을 가지고 상세하게 분석·설명을 하고 있다. 너무 순진한 물음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잘못을 했거나 실수를 저질러 놓고는 저런 추악한 짓을 해가면서 모면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경영학 강의와 기업윤리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회적 책임이란 것을 학교에서는 마치 대단한 선행을 한 것처럼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던 것 같다. 사회적 무책임에 관한 사례분석은 결론적으로 오직 기업의 이윤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귀결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한심한 강의를 들은 것 같아 후회가 막심하다.

물론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올바른 과정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윤을 기본 전제로 한다고 가르치기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요나 압박에 못 이겨 하는 척이라도 하는 놈(?)들은 그나마 양반이고, 왜 내가 힘들여 장사한 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날뛰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격이고, 더 어리석은 것은 우리 다 굶어죽고 나면 지네가 말하는 경쟁력이다 생산력이다 하는 것을 어디에다 팔아먹을 심산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다.

언제까지 돈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것이며, 언제까지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 때울 작정인지. 스스로 저지르거나 실수로 발생한 잘못에 대해서만큼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하는 걸 가지고 그런 것까지 기업경영의 ‘위기상황’이라는 원론적인 틀에 넣고서 스스로 자초한 위기가 아닌 그저 예상치 못한 ‘발생한 위기’로 치환하여 어떻게든 손해를 최소화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게 참 안타깝고 어리석을 따름이다. 차라리 무책임하면서 고통이라도 안 주는 게 백배 천배는 나은 처사일진데, 왜 그리 사누.

『삶과 사랑, 그리고 마무리; 1.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삶과 평화』
하지만 이런 혼란은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가치관을 내면화한 결과일 뿐이다. 자, 여기서 정신을 바짝 차리자. 경제든, 평화든 우리 삶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행복’이 아닌가? 삶의 행복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경제든 개발이든 교육이든 평화든 발전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아무 쓸 데 없다. 그렇다면 행복 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민중 평화를 깨는 경제 개발인가, 아니면 민중 평화 그 자체인가? 단연컨대, 민초들이 자신의 살림살이(자급의 문화, Subsistence culture)를 우애롭고 평화롭게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행복한 삶의 과정이다. 이 중심 잣대, 즉 줏대를 잘 세운 다음에 다른 요소들을 하나씩 고려할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 올바른 선택, 올바른 행동이 가능할 것이다. 자, 이제부터,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라는 올림픽 구호 대신, “더 느긋하게 더 적게 더 낮게”를 외치며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참되게 구조조정하는 건 어떨까?(p157)

저자는 우리가 잘못 받아들인, 내면화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경쟁력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경쟁력 중심이 아니라 ‘삶의 질 중심’으로 그 패턴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고 평안하지 않은들 무엇이 이로운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말처럼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여태껏 길들여져 온 경쟁력 혹은 생산력 중심의 패턴을 뒤엎기는 힘이 들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대안으로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범지구적인 연대’를 통한 소통을 강조한다. 즉, 소규모 혹은 지역적인 ‘자급의 문화’를 형성해나감과 동시에 범지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그 기대치와 효과를 높이며, 그에 따르는 불안과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바 있는 일에 관한 우리의 가치관에서 선진국과 차이를 보이는 게 있다. 정년에 관한 사례가 그것인데, 선진국에서의 관념은 정년이 줄어드는 게 노년의 삶과 행복을 앞당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정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학을 뗀다는 것이다. 즉, 선진국의 관점은 자신에게 주어져야할 마땅한 행복이 정년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 ‘유예’된다는 것. 반대로 우리는 그 ‘유예기간’을 늘임으로써 더욱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러니 일중독은 가정의 버스정류장화, 경쟁력 중심의 삶을 내면화함으로써 발생되는 문제들,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연대와 소통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행복은 고통과 불안 속에서 언제까지나 유예되거나 유폐될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게 아닐는지.

『삶과 사랑, 그리고 마무리; 3. 제도화, 체계화, 상품화에 대하여』
또한 우리들 모든 삶의 과정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오늘날 ‘서비스 경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서비스 경제’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잉태하거나 낳는 행위(정자/난자 은행, 산부인과 병원), 아이를 키우는 행위(유아원, 놀이방, 학교, 학원), 식의주 등 살림살이 행위(식당, 세탁소, 주택 시장), 어려울 때 돕기(금융, 사채, 보증, 보험), 문화 향유(콘서트, 콩쿠르), 여가(여행, 관광, 엔터테인먼트), 소통(정보통신, 전화, 인터넷), 그리고 심지어 사랑 행위(성매매, 전화방, 섹스 쇼)까지도 온통 ‘서비스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 결과 서비스는 있되 참된 봉사는 없고, 학교는 있되 참 교육은 없다. 또 고급 아파트는 있되 참 살림은 없고, 레스토랑은 있되 참된 먹거리는 없다. 사실이 이럼에도 오늘날 주류 경제학에서는 서비스 경제, 즉 3차 산업이 발전할수록 ‘선진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지배하며 현실 삶을 피폐하게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환상에서 탈피하여 삶의 자율성, 삶의 친밀성, 삶의 직접성을 복원해야 한다.(p163)


우리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들이 ‘서비스 경제’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역사적인 생활 패턴에 대한 이해랄까, 그런 부분들에 대한 학습이랄까, 어떤 ‘연결고리의 부재’로 인해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패턴들에 대해 ‘당연성’을 부여한 채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모든 상황과 현상, 체제들이 인류가 여태껏 가장 합리적인 모델로써 진화시켜온 바로 그것이라고 일말의 의구심도 품지 않은 채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오로지 현재가 선사하는 ‘합리성’이라는 의미만을 맹신한 채 말이다.

예전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오래된 미래》를 읽고서 생태적인 삶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던 게 생각난다. 지금도 내 삶의 패턴을 모조리 바꾸지는 못한 채로 살고는 있지만, 적어도 잃어버렸거나 혹은 잊은 채로 살았던 그 ‘연결고리’를 찾고 붙잡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냐고, 지금이 어떤 시댄데 그런 고리타분한 삶을 이야기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대부분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왜?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편리한 시대에 불편함을 쫓는 다는 게 어리석어 보이고 그로부터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불안심리 혹은 반발심에 대한 예상이 분명하기에 연대를 통한 소통이라는 대안이 더더욱 최선의 선택으로 와 닿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밖에도 고전적 자유주의 단계와 케인즈주의 단계를 지나 현재의 단계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특징과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매우 시급하며, 그 한계성을 극복할 방안을 논의해야할 단계가 바로 지금이고,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다. 단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고 조급해하다가는 지치고 불안을 겪고 포기까지 단숨에 이르기 십상이다. 편리한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우리 주변의 문제와 각자 삶의 설계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보는 것이 최선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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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워낙에 못하는지라 늘 횡설수설입니다.
목차를 덧붙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참고하시길 바라며.. 

 

[삶과 일, 가정에 대한 작은 에세이]
1. 우리의 현실 / 2. 일에 대한 가치관 / 3. 과연 삶과 일에 대한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가? / 4. 국제 비교에서 두드러진 한국의 특성 / 5.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길로

[경쟁 압박은 어떻게 내면화하나?]
1. 이른바 ‘팔꿈치사회’ / 2. 팔꿈치사회 속 ‘생존논리’의 함정 / 3. 박수치기 시합을 통해 본 ‘경쟁과 지배’ / 4. 경쟁의 내면화는 자기소외의 기초 / 5. 소통과 연대가 대안 / 6. 연대지향적 사회의 밑그림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 열 가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무책임]
1. 머리말 / 2.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 / 3. 기업의 사회적 무책임 / 4. 기업의 사회적 무책임에 관한 사례 / 5. 맺음말

 

[구조조정; 계속 위로부터 아니면 다시 아래로부터?]
1. 구조조정의 개념적 차이들 / 2. 구조조정의 결과와 저항 / 3. 구조조정과 실업대란 / 4. 경쟁력 중심의 구조조정과 삶의 질 중심의 구조조정 / 5. 맺음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우리의 미래]
1. 머리말 / 2. 현 단계 세계화의 특성 / 3. 풀뿌리의 반작용과 우리의 미래

 

[삶과 사랑, 그리고 마무리; 앙드레 고르, 이반 일리치, 우리 어머니]
1. 이반 일리치(영문이름)의 삶과 평화 / 2. 우정(영문)과 환대(영문)에 대하여 / 3. 제도화, 체계화, 상품화에 대하여 / 4. 앙드레 고르와 도린의 아름다운 사랑 / 5. 나비처럼 날아가신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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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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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입니다. 여러 권을 살 정도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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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8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gpickEr 2009-05-28 23:30   좋아요 0 | URL
흔적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머리가 좀 나빠서..혹시 아는 분인데 제가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으니 이점 양해바랍니다..^^*;;
저는 꽤나 괜찮게 읽은 책이라서요.. 여러 권을 주문해서 선물도 하고 그랬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쯤 접해보셔요~! 코멘트 고맙습니다..^^*

에샬롯 2009-05-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서재 다녀가셨더군요. 답변 감사.^^ 어제 만들어서요. 그래서 아무도 안오는 곳인데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책 소개받아서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읽어볼게요.^^ 저 리뷰도 읽어봤어요. 잘 쓰셨네요. 그런데 엄청난 길이에 놀랬습니다. 글을 참 길게 쓰시네요. 전 능력부족으로 그러지 못하는데.가끔 놀러와도 되지요? 안녕히 계세요.


ragpickEr 2009-05-29 00:14   좋아요 0 | URL
아하! ^^* 책은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셔요~ 실망하게 되실지도..^^*; 본래 글재주가 없어서..할 말은 많고..그러다 보니 영양가 없이 길어지기만 하고..^^*;; 자주 뵈요~^^* 편안한 밤 되시구요~ 헤헤..고맙습니다~!!

에샬롯 2009-05-2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십니다. 글이 좋습니다.^^ 오늘도 한편 읽고 가겠습니다.

ragpickEr 2009-05-30 07:15   좋아요 0 | URL
^^*;죄다 인용문인걸요.. 요즘 에샬롯님 덕분에 서재에 자주 들어오게 되네요~리뷰만 올리고 슝~나몰라라 했었는데..후훗..^^* 귀한 시간 영양가 없는 낙서에 투자해주셔서..고맙습니다..^^* 헤헤..

에샬롯 2009-06-0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도 하시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인터넷과 실제의 모습은 보통 같은 것일까요.
넝마님을 의심해서가 아니고 전 좀 달라서^^;

ragpickEr 2009-06-01 08:21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겸손이 아니라..전 그저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후훗..^^*;;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 저 역시 몇몇 이웃님께서 저를 실제로 보시더니.. '인터넷에서 뵐 때랑 느낌이 다르네요~' 이러셨다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