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셀러
아우구스토 쿠리 지음, 박원복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대구 북로거모임을 했던 때, 똥집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술 한 잔 했던 그때,『드림셀러』가 출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모임에 참석한 분 중 binsante님도 계시기에 화가 박항률의 그림이 들어간 책이 나왔더라고 말씀 드린 기억이 난다. 누군가와 새롭게, 처음 만난다는 것, 어떤 좋은 기운을 북돋워주는 그런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생각보다 흥미로움을 넘어서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듯하다. binsante님을 뵈면서 화가 박항률을 알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꿈’이라는 단어가 갖는 추상적인 베일을 조금이나마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꿈을 이룬, 다시금 그 꿈을 일구고 가꿔가는 사람을 나는 만났던 것이다.  

언젠가 쥐뿔도 없고 모른 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어쩌면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려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좋게 말해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제대로 말해 이 얼마나 오만하고 부끄러운 생각인가! 나는 그런 환상에 젖어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어떤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한 변명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관계란 이처럼 내 어리석음을 하나씩 벗기는, 서서히 알몸으로 겸손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주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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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셀러』는 여태껏 내가 생각해온 소설이라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로선 아주 생경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우화 같기도 한 이 소설이 갖는 맛이란 마치 잘 익어 달콤한 귤인 줄 알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아주 시큼한 레몬이더라는. 시큼한 이 레몬즙에는 의식에 대한, 삶에 대한, 꿈에 대한, 우리 내면의 세계에 대한 것들이 담겨 흐른다. 이야기는 장황한 설명과 철학적인 대사들로 조금은 팍팍(?)하게 흐르지만 아예 신 맛으로만 된 것도, 그렇다고 아예 우중충하게 무거운 것도 아니다. 시큼하긴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레몬 같은 이야기랄까.  


 “인생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사람에게는 쉼표 하나, 그저 쉼표 하나를 팔고 있소.”(p48)

‘스승’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스스로를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살소동을 벌인 주인공에게 다가가 ‘쉼표’ 하나를 팔게 된다. 그 쉼표란 가령 삶을 포기하려는 자에게 어떤 누구의 말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그렇게 ‘스승’은 한 사람의 생명 혹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한 영혼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양각색의 빛깔로 반짝이는 고귀한 ‘삶’을 하나씩 되살려낸다. ‘스승’은 마치 삶을 되살리는 순례길에 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있다네. 하지만 덩치 큰 동물에게서는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지. 그들은 약한 자를 이해하기보다, 비난을 일삼으며 병적으로 권력을 지향할 뿐이니까.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은 위대한 영웅이 되거나 역사의 장에 훌륭한 업적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야. 그대들은 묵묵히 이 사회를 돌아다니며 모르는 자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작은 제비가 되었으면 하네. 자신의 날개에 걸맞은 존재가 되길 바라네. 의미 있는 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되는 법이니까.”(p111)

어느덧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되살린 사람들은 ‘스승’의 제자가 되어 그 순례길에 동행하게 된다. 불씨를 되살렸을 뿐, 아직까지 각자 완전한 삶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자들이 다시금 오르기엔 이 사회의 시선이나 편견이 쟁쟁했던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스승’은 용기를 북돋우고 의지를 불태우도록 격려하고 저마다 삶의 제 궤도를 찾아가도록 힘쓴다. 스스로가 가진 역량만큼의 날개를 갖게 하고 그걸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용기는 스스로 피어나고 의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걸 일깨워준다.

아무튼(?) ‘스승’과 그의 제자들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부조리함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해나간다. 그렇게 내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내면의 세계를 제대로 보는 눈을 갖게 된다. 예수의 삶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또한 그의 열두 제자들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들의 발자취에서 예수의 삶과 열두 제자가 떠올랐다. 그네들의 발자취는 현대판 영적 순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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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우화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다 분량도 생각보다 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꿈을 파는 사람’ 즉 ‘스승’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화자 역시 시시각각 자신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과 ‘스승’이 일으키는 기적(?)을 통해 심적 변화를 고백하고 그를 믿고 따르면서도 늘 ‘스승’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에 목이 탄다. 그 목마름이 해소되는 순간! 화자는 격심한 혼란을 경험한다. 아마도 ‘스승’의 정체가 밝혀지는 종반부는 정말이지 드라마틱하면서도 허무한, 장엄하면서도 김빠지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인상적이고 느낀 게 많은 장면이 아닌가 싶다.  


하나를 더 들자면, 화자의 심리변화가 우화적인 이야기에 걸맞지 않게(?) 아주 더디다는 것일지라. 말인즉슨, 순차적으로 화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긴 하지만 여느 우화에서처럼 모든 상황을 수긍하면서 혹은 단번에 확!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랄까, 생각보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아주 충실했다고나 할까. 순식간에 모든 삶, 생각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물들어가듯, 그 과정 속에는 여전히 불신과 의심이 내재되어 있는 채로 변화한다고 할까.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고 궁금증을 양산하면서도 영적 가르침을 따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변화하는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화자의 시선은 인간 본연의 모습, 그런 심적 상태에 충실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끝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선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한 박항률의 그림이 책 중간 중간에 독립된 작은 페이지로 삽입되어 있다.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이야기의 내용과 분량 사이를 그림이 적절하게 조율함으로써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지와 삽화라고 생각했었지만, 전체적으로 참 괜찮은 조합이다 싶었다. 박항률의 그림을 적절하게 조합한 기획과 편집이 책을 다 읽은 후 참으로 인상 깊게 남는다.   

 

 

***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어떤 의미를 갖는 세계인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는 세계의 모습과 현재는 얼마나 닮았는가. 우리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우리는 ‘정상인’인가 ‘비정상인’인가.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그런 질타와 소외를 한 몸에 받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째서 ‘비정상인’이라고 부르는가. 어쩌면 ‘스승’이 말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아주 거대한 ‘정신병동’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정신병동에서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비정상인’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경쟁, 불신, 다툼, 선긋기 등도 불필요한 이 거대한 정신병동에서 정상이라고, 정상인이라고 발악하면서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정상이 뭔지 비정상이 뭔지도 모른 채 이기심 하나를 위안 삼아 정상인 척 하는 ‘비정상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곳은 정녕 어디이고 무엇이며, 어떤 곳인가.

‡‡‡‡‡‡‡‡‡‡‡‡‡‡‡‡‡‡‡‡‡‡‡‡‡‡‡‡‡‡¨¨주워 담기¨¨‡‡‡‡‡‡‡‡‡‡‡‡‡‡‡‡‡‡‡‡‡‡‡‡‡‡‡‡‡‡

 

“이름 없는 청소부와 할리우드 배우 중에 누가 더 갈채를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가? 정신세계가 더 복잡한 사람은 누굴까? 역사적으로 볼 때 누구의 정신세계를 해독하기가 더 어렵겠나? 사실 아무 차이가 없다네. 둘 다 똑같아. 하지만 ‘정상인’은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지.”(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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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사회체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사는지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사회가 원하는 소비를 하면서 자동화기계나 로봇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이다. 마치 생각은 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데에만 익숙한 전문가들처럼 살고 있다. 그야말로 정신적인 혼란을 가중시킬 뿐인 삶이다.(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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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늙음 사이의 시간적인 차이는 생각보다 짧다네. 나이 든 사람들의 세계를 탐구하지 않는 젊은이는 청춘을 즐길 자격이 없지. 인간은 심장이 멈출 때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마음을 잃어버릴 때 죽는 법이라네.”(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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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가장 음흉하고 치명적인 함정을 준비했다. 여자들의 현명함과 삶의 훌륭한 감각을 찬양하는 대신 여자의 몸을 찬양하는 데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자의 몸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겉보기에 여자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것 같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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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체제는 새로운 노예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자식과 아내, 친구와 꿈이 남겨졌고, 그들 앞에는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강제적인 정신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노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들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꿈을 파는 사람’이 우리에게 말했듯 역사는 돌고 있는 셈이다.(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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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상적인 진리로 과학을 배신했으며,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들을 배신했다. 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배신했다. 그리고 사람을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아메리카인, 유럽인, 동양인, 백인, 흑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등으로 나누며 인류를 배신했다.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꿈을 살 수밖에 없는 배신자들이다.(p319~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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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0-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YES24도 하는데..ㅋㅋ 거긴 안하시죠?? (사실 북카페도 하고..ㅋㅋ혼자 뭐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ㅋㅋ) 거기에선가 드림셀러 독서감상문 행사했는데....^^ 아꿉다. 이 글 지원했음 바로 당첨인데...제가 원래 안 읽은 책 리뷰 안 읽는 것 아시죠.ㅋ 그러나 특별히 읽어준다...ㅋㅋ 뭐야. 쟤 싶으시죠..ㅋㅋ

ragpickEr 2009-10-22 22:20   좋아요 0 | URL
예스24..그 동네는 아직 안하는데요..아마도 조만간 만들 것 같아요..^^*;
이벤트로 받은 책이 하나 있는데 그 동네에도 리뷰를 좀 올려달라고 해서..;;ㅋ 여기 저기 많이 하시나봐요~^^* 으흐흐~

아깝긴요..;; 이런 낙서를 어따 써요..;; ㅋㅋ

고마워요~^^*; 읽어주셔서~헤헤..

에샬롯 2009-10-0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쉼표 팔고 싶으네요.^^

ragpickEr 2009-10-22 22:20   좋아요 0 | URL
쉼표..^^*

충분히 많은 분들께 쉼표를 공짜로 나눠주고 계신 거 다 알아요~후훗..
복받으실 거예요~헤헤..

늘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