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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울때 너를 그린다
박항률 지음 / 효형출판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이웃북로거이신 binsante님의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여태껏 전시회를 손에 꼽을 만큼 밖에는 다니지 못한 나로서는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뭐 하나 준비해간 것 없이 덜렁덜렁 시집 한 권 들고 찾아뵌 게 아직도 부끄럽고 실례를 범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처음으로 접한 binsante님의 작품은 경이로웠다.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있진 않지만 색색의 볼펜들이 꼬불거리며 일궈낸 작품들은 기법적인 면에서는 단연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음 깊은 어느 곳으로부터 오래도록 간직해온 또 다른 자신을 나무로 표현해낸 binsante님의 감성은 꼬불꼬불한 선이 전하는 것만큼이나 복잡·미묘하다. 그녀의 그림을 맞대고서 나는 엉뚱하게도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내 생의 원형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던졌던 것 같다. 광활한 대지 위에 ‘나’와 또 다른 나의 원형인 ‘나무’ 한 그루, 그것을 이어주는 좁지만 선명하게 뻗은 길 하나. binsante님의 작품은 또 다른 나를 찾아 더듬거리게 하는 듯하다.
그렇게 연이 닿은 binsante님의 부탁으로 박항률의『그리울 때 너를 그린다』를 구하게 되었다. 드리기 전에 먼저 읽어보았는데, 세상에나! 그 속에 새겨진 그림들을 보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닮았을까. 그 구불하다 못해 꼬불꼬불한 선들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흡사했다. 그 기법만 놓고 본다면 전문가가 아닌 나처럼 일반적인 감상자들은 서로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닮았다. 나중에 책을 드리면서 binsante님도 몹시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정말이지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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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면 어렴풋한 내 어릴 적 크로키에 대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미술시간에 사람을 그리라면 졸라맨(?)을 그릴 만큼 미술에 재능이 없었고, 흥미 또한 없었다. 한데, 크로키에는 좀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크로키장을 사서 집에서 스윽스윽 이것저것 그려본 기억이 난다. 윤곽만을 대충 그려내는 크로키에는 세밀한 터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게 나에겐 더없는 위안이 되었을지라.
박항률의 그림 속에는 ‘실밥’ 같이 비저 나온 생의 ‘연’이 있다. 무심한 표정과 절망 혹은 회한이 그 슬픈 눈동자 속에서도 생의 ‘연’은 빛나고 빛난다. 실밥이 흘러 풀어져내려 바람에 나부낀들, 그것이 어찌 내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나와 무관한 것이라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그는 보이지 않는 생의 ‘연’을 눈에 보이는 실오라기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 크나큰 여백 속에 ‘자유’의 이름으로 풀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모든 것은 서로 잇닿아 있으며, 그렇게 잇닿은 모든 것은 서로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는 듯 한 기분이랄까. 내가 ‘너’를 바라보고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시선은 늘 나 혹은 너에게로 쉴 새 없이 달음질 치고 교차하고 뒤엉킨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 중 중요한 생의 단서가 아닐까. 어쩌면 박항률은 이러한 시선까지도 예의 그 실밥처럼 삐져나온 꼬불꼬불한 선에 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시어들을 죄다 길어 올려 내 것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오롯하게 전해진 듯하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의 근원적인 물음으로 시작해 그런 걸음걸음마다 채이고 새겨지는 흔적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 그로부터 얻어지는 의미의 조각들, 그렇게 시간 속에 갇혀버릴 것만 같은 어떤 두려움 등등 고뇌와 번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꿈도 자유도 잃어버렸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흘러가는
시간 뿐이다.
생활은 무력해지고
영웅 없는 시대에 소인으로 살고 있다.
내가 욕망을 갖는 시간이란
하루 24시간 중에 단 1분도 없다.
∥「욕망의 시간」중에서; p75∥
욕망으로부터 초연한, 즉 체념의 상태. 지독한 고독의 상태와 대면함으로써 전정한 예술적 혼을 불태울 수 있는 박항률. 그 속에서 그의 그림은 생명력이 넘치는 꼬부랑 선으로 탄생한다. 그 극단에서 길어 올린 가녀린 선들이 모이고 모여, 그런 무념의 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일반 사람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듯하다. 욕망의 시간과 무념의 시간의 간극은 한없이 넓디넓지만 때론 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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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뿐만 아니라 박항률의 글에서 풍기는 생에 대한 생각들 역시 나와 닮은 것 같다, 고 binsante님이 말씀하셨다. 나이도 비슷하다고. 지금에야 고백하건데, 그림과 글, 생각, 나이까지 비슷하다 못해 흡사한 이 두 분을 보면서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한 몸을 하고 태어난 게 아닌가, 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조차 이렇게 오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받았는데, 당사자인 binsante님의 기분은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언젠가 이 두 분의 대면이 성사되고, 한 전시회에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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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이 발그레하던 시절의 무모한 야망, / 꿈을 먹으리, 꿈을 먹으리. / 백년을 사는 하루살이처럼, / 해를 등지고 별을 잊은 채, / 하물며 뽀얀 갈빛 먼지가 / 머리 속을 송두리째 흐트러 놓은, / 꿈은 허망한 착각. //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일까?」중에서; p18∥
너의 눈은 내 손에서 태어나 / 슬픈 표정으로 날 괴롭히나 / 난 그 분위기에 취해 널 완성하련다.
∥「3월의 시」중에서; p20∥
내가 그를 사랑했었는지 아닌지 / 확실하지가 않다. / 모두가 벽처럼 망각되어진 / 막연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 그것은 /기민하고도 다행한 약혼이다. / 벽과의 거리만큼이나.
∥「전화」중에서; p28∥
해 거름에 산들거리는 바람은 // 처마 밑에 빗방울, // 흠뻑 머금은 거미줄을 떨구는데, // 달빛 소소한 // 슬레이트 지붕위, // 고염나무 그림자 사이로 // 푸릇푸릇 돋아난,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 웅크리고 도사린 내 모습은 알거지.
∥「내 모습은 알거지」중에서; p46∥
저 들판 위로 부는 가시 바람에 / 눈이 멀어도, 좋아서 / 노래부르며 가야 할 그곳으로 / 흩어지는 꽃잎처럼, / 끝없이 움직여 간다.
∥「나는 가야할 그곳으로 간다」중에서; p51∥
황무지를 방랑하여, /사랑과 희생에 굶주린 독사들이 / 도사리는 누런 들판을 / 발바닥이 닳아 없어지도록 맴도는 자여!
∥「무상한 시간 속으로」중에서; p59∥
나는 신의 캔버스에 그려진 초라한 / 물감 덩어리 // 나의 가슴 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 때문에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덩어리.
∥「캔버스에 비친 나」중에서; p60∥
꿈을 사르련다 / 빛바랜 시래기 다발처럼 변해버린 / 가늘게 떨리는 둥지 않에서 / 못내 회생못할 꿈을 // 모질게도 긴 / 밤이 지나가도록 너는 / 별빛으로부터 가슴 깊숙이 전해 받은 / 숨죽인 속삭임을 들으려무나 // 그래 / 너는 활갯짓하며 / 하늘 끝 점이 될 때까지 / 망각 속으로 흐터져 // 갈기갈기 찢기운 마음속 / 상처를 어루만지다가 / 그 푸르디 푸른 회한의 모서리에 / 나를 몰아 세우려느냐?
∥「새벽녘」전문; p62∥
가장 높은 관념을 매일매일 취하지 않으면 // 흔들리는 자아는 또 죄악을 저지른다. // 평범으로 금의 환향한 인간, // 자신을 뒤쫓던 운명을 뿌리친 후 // 안도하는 인간, 그래도 좋아서, // 아예 억지로 팔자소관을 피해 달아난다.
∥「흔들리는 자아」전문; p73∥
나는 그녀의 허리에 감겨진 혁대 //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무명 베일 // 그러나 나는 그대로 벌거숭이 // 나는 추워서 파랗게 질린 // 얄팍한 종이 한 장 // 바람에 쉽게 날리는 먼지.
∥「먼지」전문;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