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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섣불리 책을 충동적으로 사들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도서관을 학교 다닐 적보다 조금 더 자주 가기 때문에 서가를 돌며 ‘간보기’에 맛이 들려서 새롭게 얻은 ‘병’인 듯하다. 스윽 책등을 훑으면서 간을 보고는 느낌이 괜찮은 책은 집어서 속을 훑는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있는 내 생각과 ‘통함’을 어렴풋이 느낀 책을 선택해서 탐하는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그렇게 책을 끝까지 ‘만나보고’ 입맛에 맞다싶을 때, 책을 사들인다.『책, 세상을 탐하다』는 이런 ‘선보고(?) 후조치(?)’를 통한 책 중 하나다.

배부른 얘기(?)가 가득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책’이고 여러 ‘책벌레(?)’들이 어떻게 탐닉하는지(했는지)를 담고 있다. 또 책이 가진 다양한 모습과 의미들을 만질 수 있으며 사진만 봐도 배가 부를법하다. 아무리 탐해도 배부르지 않다(?)는 아이러니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책벌레를 닮고 싶은 깊숙이 자리한 내 욕망의 달음질 때문에 여전히 배가 고픈 건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에게 책이란 혹은 책읽기란 어떤 의미일까. 책벌레까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가급적 책읽기가 일상이 되기를, 아주 일상적인 행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한자리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길을 걷다 횡단보도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펼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이런 것이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책읽기이면서 지극히 특별한 일상 속 ‘만남의 장’이 아닐까 싶다.

책은 그런 것 같다. 늘 모든 걸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지식이건 경험이건 지혜건 간에 온전히 퍼주지 않음을 느낀다. 늘 화두를 던지듯이 ‘툭!’ 뇌리를 때리는 단출한 충격을 통해 스스로 모자란 부분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나만의 색으로 채워가기를 바란다고 할까. 책은 비슷한 듯하지만, 또 전혀 다름을 느낀다. 같은 작가라도 그 형태와 표현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그 오묘한 차이 때문에 책을 쉽사리 ‘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가며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과거가 현재를 거쳐 미래를 계획하고 실현한다는 뜻도 담겨져 있지만, 책 속 혹은 삶 속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과거와 미래 속으로 현재의 나를 포함시킴으로써 현실 속의 지금을 창조하고 재창조한다는 의미가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느냐 혹은 어떤 좋은 책과 만나고 있느냐를 통해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체인 ‘지금’을 빚고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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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현(만화가); 파페포포, 탈레스를 읽다∥
책이 모든 해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가야할 올바른 길에 대한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해주었던 것 같다.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는 오직 나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인생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독서는 내 인생에서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p011)

그는 헌책방 입구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몇 권의 책을
빠르게 고르고 총총히 사라집니다.
호기심에 따라가 보니 공원 구석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 그와 책만이 존재하는 듯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미동도 없습니다.
∥사진_ 전미숙; 서울 천연동 독립문공원, 2001년 11월∥

∥정은숙(시인); 좀 즐기면 안 되겠니?∥
그렇다, 책 읽기는 즐겁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영상매체가 주는 즐거움과는 좀 다른 형태다. 만약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다고? 그럼 치우고 다른 책을 읽기로 하자. 지금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그렇다면 책을 펴라. 바로 그 책이 그대를 지겨움과 귀차니즘의 세계에서 재미와 건강한 노동에 대한 환기를 불러올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잡스런 상념들이 엄습해 온다고? 그렇다면 그 상념을 따라가도 좋다. 상념들 가운데도 건설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또 책 읽기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그 상념 끝에 우리는 우리 현실의 다른 모습을 새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잘 상상할 수 없다.(p051)

∥송경아(소설가);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처음 만나도 최근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보고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맞춰 보다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까지 공유하게 되는 경우는 언감생심이다. 한때는 책 안 읽는 것이 창피스러운 일인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순간은 여전히 풍요롭지만, 그 감격 그 느낌을 같이 나눌 친구를 찾다 보면 어느새 가난해진다.(p057)

∥허병두(숭문고 교사); 책을 꿈꾸는 도서관∥
도서관은 단지 책이 모아져 있는 곳이 아니다. 도서관은 인간과 우주와 책을 부화하는 거대한 자궁이다.(p067)

∥홍세화(한겨레신문사 기획위원); 세상을 보는 눈∥
독서는 ‘세계를 향한 창을 여는 것’이다. 창은 열려졌을 때 그 참된 의미를 지닌다. 닫혀 있는 창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이다.(p090)

∥도정일(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대표)
;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책의 세계는 정신의 자기회귀를 강화하는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의식이 의식을 만나 협상하고 교섭하는 대화의 극장, 인간이 유한성의 조건 속에서 그 유한성에 보복할 모든 가능한 책략들을 꾸미는 음모의 극장이다. 그 극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비용은 싸구려가 아니다. 지금 문명과 사회는 일종의 갈림길에 서 있다.(p110~p111)

∥이병률(시인); 가슴에 품은 책∥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읽은 책을 또 읽는 사람의 옆모습이다. 두 번도, 세 번도 읽을 수 있는 만큼 읽는 것. 그리고 그 책을 다 읽었으니 더는 읽지 않겠다며 멈추거나, 그치지 않는 사람. 책을 마치 소중한 사람처럼 아낄 줄 알며 다룰 줄 아는 사람. 자신은 비록 귀퉁이가 낡고 헐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위해 수도 없이 그 책을 사서 건네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무엇이 와두 두렵지 않을 사람이다. 그 뭔가로 뭉쳐져 이미 강해진 사람이다.(p117)

∥공선옥(소설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나는 바란다. 시장 보고 오는 아줌마들의 손에 언제나 책 한 권이 들려 있기를. 자전거 짐바리에 짐을 싣고 가는 아저씨의 짐들 틈에 책 한 권이 끼어 있기를. 젊은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그 시간만큼 책 읽을 생각에 가슴 떨리기를. 공원을 산책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에도 책이 들려 있기를.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나온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기를.
나는 다시 바란다. 아줌마들이 찜질방에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면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그리고 나는 정말로 바란다. 나야말로 이제부터 시간 타령 하지 말고 정말 책을 읽자고.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법. 책을 읽지 않고 불행해하지 말고 책을 읽어서 행복해지자. 지금 바로 당장!(p123~p124)

사춘기 시절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모두 신이 납니다.
방과후 친구들은 집과 학원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시간에
두 친구는 책과 함께 그들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듭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만이 상쾌하게 공기를 가릅니다.
∥사진_ 전미숙;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2001년 9월∥

∥최재봉(한겨레신문사 기자); 왜 침대를 그림이라고 하면 안 되지?∥
책을 읽는 일은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지식과 가치를 다시금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소간의 불편과 거부감이 따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초의 불편과 거부감을 통과하고 나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발견, 그리고 넓고 깊어진 자기 자신이다.(p163)

∥함성호(시인); 보이지 않는 손∥
······좋은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는 항상 책과 나 사이에도, 사물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어딘가로 이끄는 것인가? 알 수 없다.(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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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슬픔 - 조병준, 사진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2008년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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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표지 사진에 한눈에 반해버렸어요. 살뜰한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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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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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내 꾀에 ‘꼴까닥’ 보기 좋게 당할 때가 있다. 그리 두껍지 않으니 수삼 일 안에는 읽어낼 수 있겠거니, 사진이 많으면 그만큼 만만하겠거니, 글이 많지 않으니 이번에는 굼벵이 책읽기를 면할 수 있겠거니 하며 집는 책들은 죄다 나를 정신 못 차리게 옭아맨다. 종종 이런 나의 오만방자함은 보기 좋게 ‘즉결심판’ 당한다. 세상 어느 것도 만만한 게 없듯이, 책 역시 적어도 ‘읽어내기’라는 끈기와 의무, ‘주워 담기’라는 자기화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하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이 그 출처이다. 그보다 앞서 출간된『지울 수 없는 이미지1·2』에 담은 사진 1천2백여 매 가운데 1백 장면을 엄선해 문인들이 직접 겪은 체험담(「내가 겪은 6·25전쟁; 김원일·문순태·이호철·전상국」)과 함께 엮은 것이 바로『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다. 다시 말해, 앞서 출판된 책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은 일반 대중을 위한 보급판 포토에세이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글이 참 빼어난 책이다. 6·25전쟁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을 만큼 생생한 네 문인의 체험담은 정말이지 ‘명품’이라 할만하다. 조금 과장해 덧붙이자면, 신랄한 굿판에 빠져드는 기분이랄까. 신명나게 한(恨)서린 넋두리를 풀어내는 그들의 필력은 단숨에 나를 당시의 전쟁고아로 만들어버렸다. 말로는 죄다 표현할 수없는 내 속에 숨은 응어리와 글로는 죄다 담아낼 재간 없는 나를 아예 6·25전쟁 통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귀중한 자료로써 사진이 갖는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것 또한『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 갖는 매력 중 하나이다. 한 컷에 담긴 이미지들은 6·25라는 시공간의 ‘현재진행형’으로써 살아 숨 쉰다. 내 시선은 과거를 보는 초점을 상실한다. 아득한 미지의 소실점으로 내달리다 그 ‘현재진행형’에 동화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체된 것 혹은 지난 것, 과거사에 대한 사실이나 하나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나와 함께 숨 쉬고 생동하는 ‘공간성’을 확보한다고 할까. 사진과 메모, 문인들의 생생한 경험담, 문학작품을 비롯한 참고문헌들이 빚어내는 빛은 가히 눈이 멀고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충분하다.

가슴이 아픈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학살에 대한 증언들과 마주할 때마다 치가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사진은 학살의 과정을 차례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운명조차 가늠하지 못한 표정으로 손이 묶인 채 카메라를 의식하는 모습, 곧장 손에 쥐어진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간 모습, 그 위에서 많은 총부리들이 구덩이를 향해 발악한 뒤 죽은 자들의 표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처형을 담은 한 장의 사진 속 까까머리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자갈밭에 엎드린 채 서로의 허리께 높이로 묶은 손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그 까까머리 청년의 표정은 아직도 지우기 힘들다. 너무도 앳된 얼굴에 곧 온몸에 총구멍이 날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메라에 복잡한 표정을 들이민다. 내 눈을 응시하던 청년의 서글픈 눈빛과 복잡한 표정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말을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어디 가슴 아픈 사연과 사진이 앞서 말한 것뿐이랴. 그 원혼들을 고작 한 시간 가량에, 그것도 달랑 종이 몇 장도 안 되는 공간에서 위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그럴만한 능력도 내겐 없지만. 이 책에서 사진이 전쟁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전하고 있다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네 문인들의 경험담은 60년 가까운 그 기나긴 세월을 좁혀준다. 여러 문학작품과 참고문헌들은 설득력 있게 사진과 경험담을 뒷받침해주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을 곱씹어보며 반성해본다.

‘당신은 6·25전쟁에 대해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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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겪은 인공치하 석 달」_ 김원일 소설가
전쟁으로 농사조차 짓지 못한 들판은 황량했고, 더러 철길 가에 버려져 있는 시신을 보기도 했다. 한데라 밤이면 추위가 살을 저몄다. 누울 자리조차 없으니 누나와 나는 꼭 안고 하늘에 뜬 별빛을 바라보며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났다. 가장 고통스럽기는 기차가 굴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석탄의 힘으로 가는 증기기관차가 뿜어내는 매연 탓이었다. 기차가 속력이 늦은데다 아무리 코를 막아도 스며드는 석탄 매연을 참을 수 없어 모두 기침을 쏟아내며 어질머리를 앓았다. 굴이 길 때는 그 매연에 질식하고 마는 갓난애와 병약한 노인도 있었다.[p41~p42]

*「골짜기마다 떠도는 고혼들」_ 문순태 소설가
어느 사이엔가 다발총을 든 카키색 제복이 사라지자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경찰들이 돌아왔다. 그 무렵 낮에는 경찰들이 진을 쳤고, 잠에는 산사람들이(빨치산을 산사람, 밤손님이라 불렀다) 마을로 돌아와 밥을 지어 달라고 하여 먹거나 식량을 가져가곤 했다. 산사람들이 마을에 나타난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경찰들이 몰려와서 밥을 해준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낮과 밤의 세상이 서로 달랐으며 마을 사람들은 양쪽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지서에 붙들려 간 사람들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문을 받았고, 성한 마을 사람들이 초주검이 된 이들을 지게에 짊어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나타난 밤손님들은 마을 남정네들한테 식량을 지워서 산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낮 세상과 밤 세상 사이에서 시달리게 된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살얼음판을 딛는 듯했다. 단 한 순간도 생과 사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p72~p73]

그날, 나는 토벌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죽은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당이며 고샅, 동구 밖 느티나무 밑, 하천가 자갈밭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이날 우리 마을에서는 일곱 사람이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골 할머니와 아낙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p77]

한국전쟁이 남긴 결과를 먼저 살펴보면, 우선 지적돼야 할 것은 엄청난 규모의 인적 손실이다. 전쟁은 무려 4~5백만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남겼는데, 이것은 당시 남북한 인구 3천만 명의 약 6분의 1, 즉 약 6명당 1명의 한국인이 전쟁으로 인해 손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좁은 영토에서 이토록 집중적으로 많은 인명이 손실된 전쟁, 도는 혁명적 격변은 근대 이후의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그리 많지 않다. 1가구당 최소한 1명의 피해를 말해 주는 이 수치는 당시 한국인 누구도, 어느 가족도 전쟁의 광포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말해 준다.|박명림「한국전쟁의 구조: 기원, 원인, 영향」.『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박현채 엮음), 소나무, 1992, 124쪽|[p83]

전쟁은 대규모 집단학살을 수반했다. 전쟁 초기의 학살로는 형무소 재소자 학살과 보도연맹원 학살이 규모가 컸다. 가장 규모가 큰 집단학살인 보도연맹원 대학살은 경찰과 군에 의해 7월초 평택 부근에서부터 시작되어 북한군이 들어오지 못한 경상남도와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자행되었다. 이 대학살로 최소한 5만 명 이상, 많으면 1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은 최고위층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학살은 빨치산 등 좌익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서중석 지음,『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05, 104쪽|[p83]

어린 남매가 이미 숨을 거둔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길가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이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사진자료; p115]

한 미군 병사가 안양에서 전투중 눈먼 소녀를 돕고 있다. 소녀는 왼쪽 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때때로 전쟁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홀로 살아가야만 했다. 전쟁이 잔인하다는 것은 아이들은 전쟁의 부조리에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양, 1951. 2. 5.[사진자료; p118]

해군 소장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낮 없이 폭격했다. ··· 그것은 아마도 한 도시에 이루어진 함포 공격이나 공중 폭격으로는 역사상 최장시간일 것이다.” 그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산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원산에서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다. 24시간 내내 어느 곳에서도 잠을 잘 수 없다. 잠은 죽음을 의미했다.”|브루스 커밍스·존 할리데이 지음, 차성수·양주동 옮김,『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89, 158쪽|[p143]

*「내가 겪은 6·25전쟁」_ 전상국 소설가
내가 북한군 병사를 처음으로 가까이 본 것은 우리 집 마루에 걸터앉아 여봐란 듯이 자기 키만큼 긴 총을 내게 보여주다가 오발 사고를 낸 한 열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빡빡머리 소년 병사였다. 그날 이후 나는 북한군 생각만 하면 그날 자신이 낸 총소리에 놀라 나와 함께 마루에 나자빠졌던 그 어린 병사의 얼굴부터 떠올랐다.[p154]

무서웠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낯선 사람은 낯설어서,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무서웠다. 다른 세상을 만나 살기 띤 눈으로 기세등등하던 어른들이 그해 9월쯤에는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을 청년들한테 잡혀 죽임을 당했다.
마을 사람들 칼에 찔린 자식이 빠져나온 창자를 끌어안고 신음하다가 죽자 그 시신을 부둥켜안고 밤새 절규하던 그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해 가을 퇴각하는 북한군 패잔병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키고 숨어 있던 어른들의 살기 띤 눈만 봐도 우리는 오줌이 마려웠다. 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힌 북한군 하나가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우리 집 부엌에 숨어들었던 북한군 병사가 마을 청년들한테 잡혀 나가면서 나를 바라보던 그 절망적인 눈빛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붙잡힌 북한군 패잔병들은 진격해 오는 국군에게 인계되기도 했지만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의해 대부분 마을 인근 골짜기로 끌려가 땅속에 묻혔다.
어른들이 북한군을 산속에서 그렇게 처치하고 돌아온 밤은 유난히 마을 사람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북한군 부대가 곧 마을로 들이닥쳐 그 보복을 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가 산 속에 숨은 채 밤을 새웠던 날도 있었다.
사람 목숨이라는 게 정말 별게 아니었다.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비행기 폭격에 온 가족이 살점을 흩뿌리며 죽었어도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원초적인 증오심과 동물적 공포감만이 번뜩였을 뿐이다.[p155~p156]

청주 근처 그 광산촌에서 장질부사를 앓을 때, 바로 우리 옆의 움막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피란을 나온 만삭의 아낙네가 해산을 한 뒤 배가 고파 실성을 한 끝에 낳은 아기를 끓는 물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그 아낙네도 죽고 말았는데 경찰 가족으로 아버지마저 만나지 못한 그 집의 어린애들 둘이 움막 앞에 쪼그려 앉아 볕쪼임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p157~p158]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민족상잔의 전쟁도 3년으로 끝났다. 얼마나 많은 동포가 서로 쏘고 찌르고, 죽고 죽였는가! 얼마나 많은 동포가 남북에 들어온 외국 군대의 폭격으로 살상되었는가. 가뜩이나 가난한 겨 례 의 재산이 잿더미로 화해 버렸으니 살길이 막막하였다.|이영희,『분단을 넘어서』, 한길사, 1984, 304쪽|[p161]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
|최인훈,『광장』, 문학과 지성사, 1980|[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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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4-2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가면 꼭 한 번 봐야겠군요. 눈빛은 좋은 빛깔의 책을 만드는 곳인 듯...

ragpickEr 2009-04-29 03:51   좋아요 0 | URL
나무처럼님^^* 반갑습니다. 한 번 접해보셔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눈빛'은 그래도 의미있는 책을 많이 만든 곳이라 들었답니다. 코멘트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라며..

에샬롯 2009-05-2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농사를 잘 지으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육이오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겠지요.

ragpickEr 2009-05-30 07:17   좋아요 0 | URL
글농사..^^* 정감있는 표현이네요~(기억해뒀다 몰래 써먹어야겠어요..후훗.)이 책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진도 있고..오는 달 25일에 그 아픔 되새겨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에샬롯 2009-06-01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데가 있다니 기쁜데요. 다음달에 육이오가 있군요. 잊고 있었어요. 잊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하 마음이 또 무거워지네요. 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어선 안되는 것이죠. 동포가 겨레가 피를 흘린 그날 기억해야겠지요.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ragpickEr 2009-06-01 08:19   좋아요 0 | URL
정감있는 표현을 만나서 저 역시 기쁩니다..^^*
네. 육이오가 있지요.. 잊으면 아니되는..^^*..
맞아요..다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요. 요즘의 불안감이 그로 그치기를..^^*
 
따뜻한 슬픔 - 조병준, 사진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2008년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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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슬픔.

어떤 슬픔들은 따뜻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그 알량한 온기로
서로 기대고 부빌 때,
슬픔도 따뜻해진다.

차가운, 아니다, 이 형용사는 전혀 정확하지 않다.
따뜻한 슬픔의 반대편에서 서성이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주어야 하는가.
시린 슬픔?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다.

기대고 부빌 등 없는 슬픔들을 생각한다.
차가운 세상, 차가운 인생 복판에서 서성이는 슬픔들······
「따뜻한 슬픔」전문; p77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그 ‘기적’같은 말을 믿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말로는 정확하게 꼬집을 수 없지만 그 ‘느낌’이란 게 좋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교감에 나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를 때가 있다. 느낌이 좋은 사람, 느낌이 좋은 가게, 느낌이 좋은 그림 등을 만날 때, 그 알 수 없는 ‘한순간’은 내 몸을 파고든다.

책과 첫눈에 반하기. 아마 이번이 처음이거나 몇몇 손꼽을 만큼도 안 되는 듯하다.《따뜻한 슬픔》은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게 파고든 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 한 장과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애달피 우는 듯 한 ‘거부할 수 없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나 할까. 우연일지도 모르고, 운명일지도 모를, 어쩌면 아주 우아하게 ‘숙명’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그 ‘한순간’은 나를 다독이고 내 안의 모든 슬픔을 녹이는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다채로운 사진과 더불어 시를 함께 담고 있다. 오롯이 이해할 수도, 그럴 만한 능력조차 없는 내게 조금은 버겁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영상미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시인이 남긴 흔적(시)을 내 낙서로 채워갈 수 있게끔 이끌었다. 정제된 단어로 완성된 시가 사진을 통해 영롱한 빛깔로 날아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시구들은 제 빛깔을 찾아 방황하다 내 손에 잡혔다. 오롯이 이해할 수 없던 시들이 그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엇을 읽어냈으며 무엇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그 ‘한순간’을 느꼈을 뿐이다.

때때로 사진과 시가 너무 착! 하고 달라붙는다. 억지로 구겨 넣어 구색을 맞추려한 실수(?)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귀여운 어린애 장난처럼 보이는 것은, 시가 그렇던 사진이 그렇던 간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것’들로 구겨져 있기 때문이랄까. 좋다면 한없이 좋아 책이 지저분해질 만큼 부인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해, 그렇게 끝남이 없었다. 그뿐이다.

모든 생은 더부살이어라. 당장에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결별을 선언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다짐해보지만, 결국은 어느 곳에, 누군가의 어깨와 잇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그걸 순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런 꼬리를 달고 애써 닿아있지 않은 척해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닿아있는 우리네 생.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의 시린 겨울 앞에 조금은 담담하고 따뜻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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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친 것 맞습니다.
물에 허천 들린 것 맞습니다.
마른 땅에서 자라야 하는 천성 따위 엿먹이고 싶었습니다.
굴러 굴러 물가로 갔고 거기에 뿌리내렸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홍수 찾아와도 뿌리 악물고 버텼습니다.

네, 미친 것 맞습니다.
물에 허천 들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천성 따위 내 알 바 아니었습니다.

마른 땅에 자라는 나무에는 내려앉지 않는
당신들, 날개 달린 종자들이 그리웠습니다. (「물 속의 나무」전문; p21)

분별하지 않고 살기,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생,
고단하다.

저 안개 속 강처럼, 나무들처럼,
분별없이, 분별하지도, 분별당하지도 않으며 살고 싶다는,
흐릿한 욕망. (「분별」부문; p45)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그래서 멈춘 시간 속에 함께 멈춰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린다」부문; p60)

비 그친 도시에 내리던 마지막 햇빛.
그 추운 햇빛 아래 겨울 나무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에 날개 젖은 새 한 마리 있었다.

내가 나무였는지 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생인들 나무였던 적, 새였던 적 없을까.
상대가 나무이길 원하면 새가 되고
새이길 원하면 나무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들, 누구에겐들 찾아오지 않을까.

추운 겨울비 속을 날아온 새 한 마리 위해
겨울비 그친 저녁의 차가운 햇살 가려줄
이파리 하나 없는,
참 한심하게도 가난한 나무,
내가 그 나무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추워졌다.

너와 나, 숲으로 가자꾸나, 새야 (「새, 나무」전문; p64)

언젠가 그런 꿈을 꾼 듯하다.
나, 나무처럼 늙었을 때
역시 나무처럼 늙은 그대와 함께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서는 꿈.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저 나란히 늦은 오후와 이른 저녁 사이를 걷다가
늙은 나무 옆에서
어느 여행자의 카메라에 들어가는 꿈. (「오래 나이 먹은 꿈」전문; p123)

우기에는 비가 내려야 옳다
우기에 쏟아지는 땡볕은 옳지 않다
벼가 시들고 소가 여위고 개가 마르는 건 옳지 않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세상은 옳지 않다
쏟아지는 땡볕을 향해 방패 치켜드는
검은 피부를 향해 비웃는 것도 옳지 않다
눈물 한 방울 보태야 옳다 (「방패」전문; p125)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는
어린 햇빛을 기억하라
틈만 있으면 뿌리내리고 덩굴손 뻗는
담쟁이 잎을 기억하라
산책 나오는 노인들보다 더 일찍 깨어
서로 간지럼 태우며 키득대는
어린 햇살과 담쟁이 잎을 기억하면
생에 놓은 거대한 심연 따위
가볍게 뛰어넘지 않겠느냐 (「틈」전문; p161)

흥, 어떻게 뿌리내린 생인데요
죽기는요
악착같이 기어서
저 높은 햇빛 세상 살아서 봐야죠 (「기어라」부문; p174)

오래 사랑한 자들은 서로 닮는다고?
그리하여 오래 사랑한
꽃과 벌, 꽃과 나비, 꽃과 등에,
꽃과 풍뎅이까지 서로 닮는다고?

잎들 다 똑똑 떨어져 나가도록
꽃잎 너덜너덜해지도록
사랑 찾아오지 않은 저 꽃은
누구를 닮았는가?
하필 장마에 태어난 죄에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오래 외로운 자들은
누구를 닮아야 하는가? (「꽃이 피는 방식에 관하여 3」전문; p189)

종종종 한 시절 살다간 발자국들
저리 고운데 아직도 매달려들 있느냐
집착이라 욕먹고 천하다 구박받던 한 시절
이제 다 지나갔으니
툭 놓아버리면 편해질 것을
훨훨 가볍디가볍게 날아갈 수 있을 것을 (「흔적」부문; p203)

날마다 죽는 해
날마다 뭐 볼 거 있다고 모여드는가
날마다 죽어가는 생 확인하며 서럽기만 할 것을
죽어야 아름답기 때문이지
죽어야 또 살아나기 때문이지 (「선셋 포인트」전문; p230)

모든 흐르는 것들은 덧없다
흐르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없다

덧없는 것들도 모이면 무거워진다
무겁지 않은 기억은 없다

구름, 흩어져 있어도 좋을 텐데
자꾸 모인다
기억, 꼭 그 자리에서 덧나
피고름으로 터진다 (「구름, 기억」전문; p235)

플라타너스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몸에 버짐 퍼진 채로
쑥쑥 키만 자라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손가락 닮은 봄이파리
비 오면 우산 되던 여름잎
방울방울 대롱대롱 따고 싶었던 겨울씨
그렇게 얼른얼른 쑥쑥 자라서
무성하게 그늘 던지고
장난감 선물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방울도 되어주고 총알도 되어주고
그러고 싶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버짐 온몸에 퍼져도
빼빼 말라서 키만 커도
플라타너스로 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착한 나무로 살고 싶었던 시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플라타너스」전문;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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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의 약속 -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 이창성 사진집
이창성 지음 / 눈빛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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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을 시작으로『장날』,『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인상 깊게 보면서 사진집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졌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28년 만의 약속』은 일단 제목에서 뭔가 사연이 있음이 느껴져 관심이 증폭(?)됐다. 5·18에 관한 사진집이라기에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부제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을 포착(?)하고는 뭔가 불안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특종과 낙종사이에서’라는 목차를 보면서 내 불안(?)은 깊어졌다. 반면, 취재일지를 통해서 그날의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던 건 꽤나 괜찮은 수확이었다.

전체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진집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강의시간에 여러 영상자료를 통해본 암울하고 보다 사실적인 장면들을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 사진들만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저자 서문 ‘광주항쟁과 나의 사진기자 30년’이라는 제목을 찬찬히 뜯어봤다면, 도중에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서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사진기자 30년’을 회고하고 때론 ‘특종’을 통한 기념의 순간, ‘낙종’을 통한 아쉬움의 순간이 ‘광주항쟁’보다 더 짙게 배어있기도 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혼자만의 기대감 때문에 ‘항쟁에 관한 보고’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감흥이 줄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5·18에 관한 사진들은 여태 본 것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도입부 스무 장 남짓 사진은 컬러사진이다. 5·18을 늘 흑백사진으로 접해온 나로서는 컬러사진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굉장히 다채롭고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는 점은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들의 중요도(?)와는 무관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또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사진, 발악하는 사진 등의 일색이 아니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운이 감도는 순간을 담고 비장함까지 서려있는 모습들을 주로 담아냈다. 5·18전체를, 그 피의 현장이 타깃이 아니라 그해 오월, 그곳에 살았던, 오로지 오월을 견디고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담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달리 보면, 아주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나부러져 있는 시신들, 도청 진압작전 직후 상황,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군이 아닌 일반 시민의 죽음, 시신운구 과정에 투입된 청소차량(일명, ‘쓰레기차’) 등의 사진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진 속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씁쓸하고 건조한, 어떤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듯 한 그 표정들이 더더욱 나를 아프게 했다. 그네들의 마음을 죄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늘도 한두 시간이 고작이지만 조용히 그 ‘오월’을 잊지 않으려 애쓴 나를 위로해본다.

저자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매년 5월이면 나는 광주항쟁 기간에 마주쳤던 시민군들의 그 형형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게 취재편의를 제공해준 시민군 지휘부는 계엄군 진압 때 거의 모두 사망했다. 살아남은 자로서 그들에 대한 채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낸 의도가 무엇인지 잘 배어있다. 하지만 사진집을 덮고 이 구절을 곰곰이 되새겨보며, 차라리 제목(‘28년 만의 약속)을 부제(‘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로 정했다면 좀 더 솔직한 책(?)이 되어 좋았을 걸, 생각했다. 그랬다면, 내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독자가 이 책의 리뷰에 “책 제목을 ‘28년 만의 약속’보다 차라리 ‘28년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 했던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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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의 약속』찾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다. 도서관에서 혼자 30여 분 동안 책을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총 두 권 중 한 권은 다른 캠퍼스에, 나머지 한 권은 분명 이곳에 있다고 나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은 근로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참을 찾더니, ‘이 책 여기 없네요. 잠시만요.’ 어디론가 가더니 담당자를 포함해 세 명이 두 팔 걷어 부치고 와서 뒤적뒤적한 결과 근 한 시간 만에 찾았다. 무튼 엉뚱한 곳에 책이 꽂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책을 찾느라 고생한 그네들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던 게 생각난다. ‘다들 시험공부 하느라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건(?) 뭐임?’하는 눈빛이랄까. 전공서적도 아닌, 전혀 연관성조차 찾을 수 없는 책 네 권(『말과 사람』,『다신전茶神傳(사진으로 읽는)』,『탐욕의 시대』, 그리고 어렵게(?) 찾은『28년 만의 약속』)을 든 나를 의심스레 쳐다보더라. 책상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책을 뒤적이는 내내 뒤통수가 따갑더라니.(ㅡ,.ㅡ*;) 앞으론 열심히(?) 혼자 힘으로 책을 찾으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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