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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의 약속 -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 이창성 사진집
이창성 지음 / 눈빛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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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을 시작으로『장날』,『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인상 깊게 보면서 사진집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졌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28년 만의 약속』은 일단 제목에서 뭔가 사연이 있음이 느껴져 관심이 증폭(?)됐다. 5·18에 관한 사진집이라기에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부제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을 포착(?)하고는 뭔가 불안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특종과 낙종사이에서’라는 목차를 보면서 내 불안(?)은 깊어졌다. 반면, 취재일지를 통해서 그날의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던 건 꽤나 괜찮은 수확이었다.

전체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진집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강의시간에 여러 영상자료를 통해본 암울하고 보다 사실적인 장면들을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 사진들만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저자 서문 ‘광주항쟁과 나의 사진기자 30년’이라는 제목을 찬찬히 뜯어봤다면, 도중에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서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사진기자 30년’을 회고하고 때론 ‘특종’을 통한 기념의 순간, ‘낙종’을 통한 아쉬움의 순간이 ‘광주항쟁’보다 더 짙게 배어있기도 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혼자만의 기대감 때문에 ‘항쟁에 관한 보고’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감흥이 줄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5·18에 관한 사진들은 여태 본 것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도입부 스무 장 남짓 사진은 컬러사진이다. 5·18을 늘 흑백사진으로 접해온 나로서는 컬러사진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굉장히 다채롭고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는 점은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들의 중요도(?)와는 무관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또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사진, 발악하는 사진 등의 일색이 아니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운이 감도는 순간을 담고 비장함까지 서려있는 모습들을 주로 담아냈다. 5·18전체를, 그 피의 현장이 타깃이 아니라 그해 오월, 그곳에 살았던, 오로지 오월을 견디고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담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달리 보면, 아주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나부러져 있는 시신들, 도청 진압작전 직후 상황,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군이 아닌 일반 시민의 죽음, 시신운구 과정에 투입된 청소차량(일명, ‘쓰레기차’) 등의 사진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진 속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씁쓸하고 건조한, 어떤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듯 한 그 표정들이 더더욱 나를 아프게 했다. 그네들의 마음을 죄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늘도 한두 시간이 고작이지만 조용히 그 ‘오월’을 잊지 않으려 애쓴 나를 위로해본다.

저자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매년 5월이면 나는 광주항쟁 기간에 마주쳤던 시민군들의 그 형형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게 취재편의를 제공해준 시민군 지휘부는 계엄군 진압 때 거의 모두 사망했다. 살아남은 자로서 그들에 대한 채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낸 의도가 무엇인지 잘 배어있다. 하지만 사진집을 덮고 이 구절을 곰곰이 되새겨보며, 차라리 제목(‘28년 만의 약속)을 부제(‘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로 정했다면 좀 더 솔직한 책(?)이 되어 좋았을 걸, 생각했다. 그랬다면, 내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독자가 이 책의 리뷰에 “책 제목을 ‘28년 만의 약속’보다 차라리 ‘28년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 했던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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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의 약속』찾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다. 도서관에서 혼자 30여 분 동안 책을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총 두 권 중 한 권은 다른 캠퍼스에, 나머지 한 권은 분명 이곳에 있다고 나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은 근로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참을 찾더니, ‘이 책 여기 없네요. 잠시만요.’ 어디론가 가더니 담당자를 포함해 세 명이 두 팔 걷어 부치고 와서 뒤적뒤적한 결과 근 한 시간 만에 찾았다. 무튼 엉뚱한 곳에 책이 꽂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책을 찾느라 고생한 그네들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던 게 생각난다. ‘다들 시험공부 하느라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건(?) 뭐임?’하는 눈빛이랄까. 전공서적도 아닌, 전혀 연관성조차 찾을 수 없는 책 네 권(『말과 사람』,『다신전茶神傳(사진으로 읽는)』,『탐욕의 시대』, 그리고 어렵게(?) 찾은『28년 만의 약속』)을 든 나를 의심스레 쳐다보더라. 책상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책을 뒤적이는 내내 뒤통수가 따갑더라니.(ㅡ,.ㅡ*;) 앞으론 열심히(?) 혼자 힘으로 책을 찾으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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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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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햇귀님 덕분에 ‘최종규’라는 작가와 이 책을 알게 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접해보면서 왜 진작 접하지 않았나, 하고 나를 책망했을 만큼 의미 있고 좋은 책이다. 묵혀 뒀다 읽어야지,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핑계와 게으름 탓에 늘 가벼움과 흥미위주의 유희에 의미 있는 시간들을 저당 잡힌 꼴이 되기 일쑤이다. 이젠 좀 재깍재깍(?) 바지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추천받은 책, 선물 받은 책, 괜찮은 느낌이 드는 책 등등을 너무 묵혀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헌책과 헌책방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헌책의 개념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이는 굳이 헌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이며, 우리가 암암리에 잘못 규정하고 받들고 있는 책에 대한 오류(?)들을 다잡아주는, 다잡아가자는 노력이 잘 배어 있다. 다시 말해, 책이 갖는 총체적 의미를 하나씩 뜯어봄으로써 우리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기도 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다음과 같다.

∥헌책이란?∥
*‘누군가가 읽거나 보며 사람 손을 거친 책 가운데 상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책이거나, 다른 손을 거치지 않았지만 새책방에서 더는 팔 수 없는 책이거나, 비매품, 자비출판물 가운데 책에 붙은 값(정가)을 안 따지고 요즘 시세에 맞춰 파는 책’(p54~p55)

*‘어느 곳을 가더라도 다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책’
*‘비싼 찻삯을 치르고 품과 시간을 들이면서도 책 한 권을 찾으러 먼 나들이를 떠날 수 있도록 이끄는 책’
*‘두 손과 얼굴, 옷과 몸에 책때와 책먼지를 잔뜩 묻히면서도 씩 웃으면서 고를 수 있는 책’
*‘세상에 딱 하나뿐인 책’(p56)

*‘어떤 책 하나를 읽고 만지고 다루고 즐긴 사람들 손길과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
*‘우리 문화사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
*‘옛사람들 발자취를 거슬러올라가면서 살필 수 있는 터전’
*‘어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모습과 느낌을 간직한 자취’(p57)


이렇게 헌책에 대한 저자의 색다른 해석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또 다른 맛인 헌책방 탐방(?)과 맞물려 그 재미를 더한다. 대체로 수도권지역에 있는 책방을 위주로 정리를 해놓았으며, 부분적으로 부산, 청주, 대전 등등의 헌책방도 몇몇 정리가 되어 있다. 각각의 헌책방에서 자신이 만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책방 임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사진,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한홍구, 백창우, 윤구병),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오에 겐자부로, 최민식, 이오덕, 안정효) 등 먼지를 한 움큼씩 머금은 채로도 즐거울 수 있는 알곡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헌책방의 책손으로서 지켜야 할 다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헌책방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어서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해묵은 책들을 다시금 책장에서 꺼내 손질(?)하게 된 것도 저자가 말해준 책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본래 갖고 있던 책뿐만 아니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보다 깨끗한 모습으로 기존의 책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을 선사해준다.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뿐만 아니라 책등이나 책날개, 그 속, 내지 등의 묵은 때와 먼지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책을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둘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을 아끼고 바로쓰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이를 알리기 위해 집필을 하기도 한다. 격월간 1인 잡지인《우리말과 헌책방》을 통해서도 그를 만날 수 있고,《헌책방에서 보낸 1년》에는 수도권지역을 위주로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는《모든 책은 헌책이다》보다 더 많은 전국의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북로그(‘함께살기’라는 북로그 제목으로)활동을 한 경험도 있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저자와 그가 말하는 헌책방,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를 엿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많은 자료와 좋은 정보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도움이 될 만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저자만큼 골수까지 헌책방을 탐닉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헌책방을 자주 가는 책손 중 한사람이다. 매번 불규칙하긴 해도 한 달에 적어도 두어 번은 헌책방에 들러 묵은 먼지와 함께 몇 시간씩 그 좁은 곳에 쪼그려 앉아 반가운 책, 생소한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잡지 등을 만난다. 덤으로 주인할아버지(책방 임자)와 일상적인 담소도 나누면서 책에 대해, 요즘의 책손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요즘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고른 책을 셈할 때처럼 긴장된 순간도 없었다. 마치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한 순간이랄까. 좋은 책을 골랐구먼, 나도 자네만할 때 이 책을 본 것 같아, 등등 한마디씩 던지시는 말씀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마냥 기분 좋은 무엇이다.

재미난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면,《모든 책은 헌책이다》 이 책을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구입했다는 것이다. 신기하면서도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나 스스로 만족함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오묘한 만남이었다고 할까. 또 자주 가는 헌책방 주인할아버지께서 내가 들고 간 이 책을 보시면서 알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시며, ‘참 재미난 책도 다 있네, 한 번 봐도 되겠나?’ 하시며 뒤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저자 최종규 씨가 이곳, 내가 자주 가는 이 헌책방에도 들린 적이 있고 앞서 말한 다른 책과 인터넷에 그 정보를 올려둔 걸로 안다. 기억하시는지 어떤지 모를 주인할아버지의 미소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 흐뭇한 그 무엇으로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끝으로, 책 곳곳에 ‘즐김이’라고해서 헌책방 주변의 괜찮은 먹거리, 산책로, 식당 및 포장마차, 술집 등의 정보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헌책방 찾아가는 길을 저자가 설익은 그림솜씨로나마 직접 그려놓아 그 주변에 사는 책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헌책방 나들이를 통해 ‘책’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기호에 따른, 취미나 직업적인 성향에 따른 책 혹은 책읽기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알게 모르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함께 삶아가는 ‘책’이란 존재와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워 담기¨¨‡‡‡‡‡‡‡‡‡‡‡‡‡‡‡‡‡‡‡‡‡‡‡‡‡‡‡‡‡‡

우리는 보통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이 헌책방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예요.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은 새책방에 많습니다.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돈벌이 거리로 만든 시류와 흐름을 타는 책들이 새책방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달라요. 헌책방 헌책은 맞돈(현금)을 주고 사서 책방 안에 갖춰 놓는 책들입니다. 반품이 없이 파는 헌책방 헌책이기에 엉뚱하거나 안 읽힐 책은 한 권도 안 갖춥니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기에 갖추는 게 헌책방 헌책이에요.(p23~24)

책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이 하나되어 묶여야 나옵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려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 위에 또 한 가지 더 붙여야 됩니다. 그건 바로 좋은 책을 알아보는 우리들입니다. 알아보고 사서 읽는 우리들이에요.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서 읽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p84)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책방도 가 보고 동네에 있는 작은책방도 가 보세요. 그리고 가끔은 먼 곳에 있는 헌책방으로 마실가듯 가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책을 느껴 보아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어떠한지, 책 한 권이 가진 느낌과 무게가 어떠한지 말이에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우리 삶에 어떤한가를 찬찬히 느낄 수 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서 나 한사람도 튼실하게 가꾸고 내가 몸담은 사회와 나라나 모임도 알뜰히 북돋을 수 있답니다.(p141)

출판 문화와 사회 의식구조 모두에게 헌책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그냥 ‘폐기물’로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분리수거로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헌책방을 돌고 돌며 싼값으로 여러 사람들이 즐겨읽을 수 있도록 내놓을 수 있는 ‘사람 손을 타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p150)

==>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화의 그늘이랄까, 그것은 철저하게 고급정보를 소수자들이 공유함으로써 빈부의 격차와 계급간의 격차를 발생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며, 끝내는 소수에게 다수가 종속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나 책이라는 정보의 형태는 팍팍한 가계를 꾸려가는 많은 이들에게는 섣불리 쥘 수 없는 정보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빌어, 헌책방이 보다 체계적이고 좋은 발전을 함으로써 계급간의 정보력의 격차를 줄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천 원짜리 책이라고 헐하거나 모자란 책은 아닙니다. 다만 값이 천 원밖에 안 할 뿐이에요. 값이 천 원이든 만 원이든 책마다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는 남다릅니다. 헌책방을 다닐 때 천 원짜리 책도 꼼꼼히 살피고 눈여겨본다면, 책마다 다르게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를 느끼고 익히는 가운데 책을 보는 눈길도 새롭게 익힐 수 있다고 봅니다.(p172)

라면값, 콩나물값 오르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이요, 농산물값은 늘 제자리걸음이라 등허리가 휘도록 죽을 고생을 하는 농사꾼 걱정도 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삶이 참 팍팍합니다.
어둡고 어려운 곳에서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 이야기는 묻힙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낡은 가계부와 편지와 일기장 속에 그런 이야기가 묻혀서 흐르고 흐르지 싶어요.
어렵던 사람들 삶, 힘들던 우리들 삶, 애먹고 가슴 아픈 이야기는 묻힌 채 흐르다가 어느 때엔가 헌책방에서 다시 살아나지 싶어요.(p222~p223)

<흙서점>아주머니는 거의 그냥 얻다시피 하는 그릇이 많아, 흠이 있는 물건은 거저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공짜로 줄 수는 없어 500원, 100원 정도 받고 판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을 남을 생각해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알아 보셨답니다. 바깥에 내놓는 헌 그릇이 한 달에 십만 원어치쯤 팔린다고 하시는데, 그 그릇을 팔아 얻은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신다고 합니다.(p247~p248)

<고구마>아저씨는 “대학교에 헌책방학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과가 없어도 “문헌정보학과에서 헌책방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현실 감각에 맞는 수업도 하면서 책 문화를 키워 나가야 좋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p284)

==> 요즘 대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비인기학과와 생산성과 경쟁력 면에서 매력이 없는 학과들을 ‘줄 폐업’시키고 있다. 장영희 교수가 말하는 ‘문학의 수난시대’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나도 얼마 전까지 느꼈었다. 친구 녀석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는데, 녀석의 수업을 자주 숨어(?)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강의내용이긴 했지만, 너무 틀어박힌 듯 한 느낌이 강했다. ‘하이브리드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언제고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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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글쓰기 나남산문선 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기획 / 나남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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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전에 사들이고는 드문드문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본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사들일 당시에는 내가 아는(?) 작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분히 이름만 들어봤거나 작품을 한두 개 혹은 아예 접하지 못한 내 부족한 경력(?) 때문에 다소나마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뭔가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저자들의 작품을 차례차례 접해보는 것?)를 거쳐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은 판단미스(?)였다. 작품에 이끌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 못지않은 매력이《내 인생의 글쓰기》에 배어 있다.

전체적으로 ‘그’들의 사생활이 잘 녹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어떤 시절을 거쳤으며 어떤 동기들이 지금에 그들이 있도록 했는지 간략하게, 비교적 상세하게 녹아 있다. 더군다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각자 한마디씩 던지고 있어서 기분 좋은 무게감(심오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조금은 친숙한 느낌. 동네 아저씨, 삼촌, 이모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문학의 길’에 대한 이야기랄까. 무튼 편안함을 기본으로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적잖은 무게감까지 두루 섞인 그들의 ‘문학일기’를 엿본 건 정말이지 행운인 듯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그들 대부분은 ‘읽기’로부터 다시 태어났다. 무엇을 읽었나? 동시집, 시집, 세계문학전집 등등 통칭 ‘책’읽기가 그들을 시인, 소설가로 재탄생하게 만들었다.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를 하거나 어떤 책을 읽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딱딱함은 없다. 그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그때 이러이러한 책을 만났지, 그냥 책이 좋았어,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지,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험(감동)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러웠어, 아마도 그래서 글을 쓰게 된 건지도 몰라, 내 속에서 용솟음치는 어떤 강렬한 욕구가 내게 펜을 들게 한 것 같아, 라고 회상하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도 글쓰기에 대해 거창하거나 고귀한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보는 책을 쓴 사람이 ‘사람’이니까, 뭔가 의미가 있든 없든 한 편에 글을 썼다는 것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에 빠져 등 소소한 자기성취라는 개인적인 욕구와 보편·단순한 진리를 따라 실행에 옮기다보니 어느덧 글쓰기가 인생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 세상 누구나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며 그 책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읽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적인 것이며, 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며, 그런 서로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읽음으로써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학의 근본은 무엇일까.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문학의 뿌리는 외로움, 슬픔, 고독, 불완전, 물질로는 죄다 채울 수 없는 뭔가 아쉬운 것에 대한 의문, 마냥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 물밀듯 밀려오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 등등이다. 문학은 글을 씀으로써 탄생하지만 그 시작은 앞서 말한 이 모든 것에 기인한다. 자기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생각이 견고해지고, 세상을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려 기꺼이 펜을 들게 되는 것. 그로 인해 문학은 시작되고 만들어지며 비로소 탄생한다. 읽는 이와 교감함으로써 문학은 끊임없이 재탄생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비록 문학의 길이 좁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그 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일상과 삶 속에 그 씨앗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고 싹을 올리고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소멸하더라도 이곳은 문학을 기억할 것만 같다. 물질적인 모든 것과 육신의 소멸과는 무관하게 우리네 의식은 어느 곳이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의식은 문학적 씨앗이 가진 가능성을 기억할 것이고, 찬란하면서도 일상적인 소소한 멋을 자랑한 꽃봉오리를 추억할 것이다.

어쩌면 ‘문학수난시대’라 일컫는 요즘, 역설적이게도 그 좁은 길은 더욱 뚜렷해지고 보이지 않는 의식의 끈으로 묶인 결속력은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문학의 뿌리는 고통과 슬픔, 외로움 등등을 근간으로 하기에 이러한 시련을 먹고도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문학수난시대라는 지금의 위태로운 이 시기에 비로소 문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곳곳에서 피어나는 그윽한 문학적 향기에 취해보는 것, 그 향기를 직접 세상으로 날려 보내보는 것, 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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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시작되었고, 나는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썼다. 그 길고도 긴 인생의 길이 책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내 책이 다른 책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나는 신기하다. 내가 처음 글을 써보려고 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많은 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저 책을 쓴 것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그리고 나는 글을 써보기 시작했던 것이다.(p030)

【김원우; 책읽기와 글쓰기의 고락】
잘 썼든 못 썼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그 득의감은, 과장이 심한 상투적 표현을 끌어다 쓰면, 천하를 얻은 성취감과 견줄 만하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세상의 이치에 대한 부분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나름의 시각·설명·해석으로 풀어보였으므로 자가당착의 빈말만도 아니다. 게다가 극소수의 독자들로부터나마 동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자부심은 꽤나 알찬 것이기도 하다.(p053)

【도종환;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려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삶에서 받은 상처를 오래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해와 사랑의 부족, 그 결핍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소외의 기억, 소통의 부재 그런 것이 글을 쓰게 하는 원인인 경우가 있다. 이런 상처와 소외와 고통이 도리어 재산이 되는 분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상처가 스승이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인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인 것이다.(p064)

글을 쓰는 이들 중에는 개인적 시간, 개인적 공간 속에 오래 갇혀 지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언가를 쓰고 또 쓰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끝없이 자기를 알리고 싶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표현이야말로 자기존재의 확인인 것이다. 부재의 시간 속에서 소통을 향한 신호를 끝없이 날리는 일이다.(p065)

【서정오; 글장이는 별종인가?】
이제는 정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 농사꾼과 행상과 어부와 노동자가 글을 써야 한다. 공연히 어려운 말로 젠체하는 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절로 터져나오는 내 생각과 내 느낌과 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글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글이 온 세상에 강물처럼 흘러넘쳐야 한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글을 읽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쓴 글을 국회의원이 읽고, 농사꾼이 쓴 글을 대학교수가 읽고, 염전노동자가 쓴 글을 장관과 법관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감동하며 배워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바꾸어 말해도 물론 마찬가지다.(p092~p093)

【성석제; 문학의 뿌리와 샘, 감동】
“내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흙손이다. 언제나 밭을 매고 김매고 흙과 떨어지지 않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은 흙처럼 거칠다. 흙처럼 메마르다. 흙처럼 볼품없고 푸석푸석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싸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바로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
왜 나는 감동했을까.(······) 내 어머니의 손에는 흙이 묻어 있기보다는 부지깽이가 들려 있을 때가 많았다. 동네에서는 비교적 농사를 많이 짓고 식구가 많은 집안인 데다 머슴까지 두고 있어서 늘 밥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손은 빨래 때문에 거칠 수도 있었지만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흙 묻은 손이나 어머니 때문에 감동한 게 아니었다.
나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 보편의 감동에 닿았던 것이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감정, 감각에 나는 당황했다. 왜 머리카락이 곤두설까. 왜 눈꼬리가 시큰할까. 왜 침이 마르고 혀끝이 아릿할까. 나는 일어나 앉아서 다시 그 동시를 읽었다.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이가 두 자리 숫자인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눈물이.(p101~p102)

【신달자; 문학적 자전 - 여자의 길, 문학의 길】
그 많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고 외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얼굴은 보이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찾는 마음의 내면읽기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문학 그리고 시를 찾아 나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p118)

【안도현; 처음처럼】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p155)

【안정효;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된 사연】
나는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어디엔가 응모하고 당선되어 나의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과정은 설계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썼다.
밤낮으로 썼다.
정말로 행복했다.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답답한 구석방에 틀어박혀, 바깥세상을 뒤덮은 한여름 열기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방석 깔고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는, 서예라도 치는 듯 펜촉에 잉크를 듬뿍 찍어 검(劍)처럼 치켜든 다음,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채워 나갔던 모든 순간이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는, 거의 50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p178~p179)

【우애령; 뗏목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과 슬픔이 평안과 기쁨보다 더 많이 삶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휘두르는가···, 우리는 운명에 맞서 싸울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한 무력한 존재인가···. 의문은 지금도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해 보려고 절망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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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
흥재 사진, 안도현 글 / 마음의창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도서관 6층에 들어서면서부터 숨이 턱하니 막힌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는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공기임을 실감한다고 할까. 그나마 4층(인문학자료실)이나 5층(사회과학자료실)에 비해서 학생 수가 적다고 하는 6층(자연과학자료실)도 옛말이 된 듯하다. 이렇게 숨이 턱 막힐 땐 ‘서가산책’이 제일임을 이젠 몸이 먼저 안다. 이리저리 산책(?)하다 사진관련 도서가 있는 서가에서 바닥에 아예 엉덩이 붙이고 앉아 책등을 살피다『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을 만났다.

 

내가 왜 사진집을 집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만화나 그림으로 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 보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랄까.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있는 만화책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도무지 몰랐다고 할까. 안 그래도 기억력이 나쁘고 끈기가 부족한 내게 만화책은 흥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집 역시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사진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기교가 함유(?)된 사진은 늘 내게 고답적이게만 보일 뿐이었다. 
 

『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은 특별히 고답적이거나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깊게 패인 주름의 할아버지, 그 어릴 적 ‘뻥이요!’하며 내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던 할아버지와 달달한 튀밥을 뱉어내던 튀밥기계,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에서 타고 있는 담배 한 가치, 그 뒤로 보이는 ‘바께스’와 양동이들. 이 모습이 표지에 실려 나를 부르는 듯했다. 장날의 경험이 전혀 없이 살아온 내게 뭔가를 전하려는 듯했다.

 

이 책은 일반 시장의 모습을 담은 게 아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5일장의 아련한 모습을 추억처럼 담고 있다. 아주 멋진 사진(?)을 기대하는 사진에 일가견이 있다는 독자들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장날의 모습과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사진을 몇 번 찍어 본 사람이라면 찍을 수도 있을 법한 모양새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이 책의 사진작가 분이 아마추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여기 담긴 사진에는 역동성이 있다. 정지된 사람이나 사물을 찍은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풍경을 억지로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려고 하는 무모함도 느낄 수 없다. 사진사진마다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까. 정지된 한 컷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다. 풍경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에 역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 책을 한 번 보고 다시 볼 때는 사진 속 사물이나 사람의 모습이 뭔가 바뀐 듯 한 착각이 든다고나 할까.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가둬놓은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일상적인 흐름이 주는 다채로움이 잘 배어있는 사진집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나는 호시노 미치오의『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 실린 사진에서와 비슷한 ‘호흡’을 느꼈다. 대상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더군다나 호시노 미치오의 야생동물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 자신의 호흡이랄까, 이 책 역시 작가의 호흡이 대상물과 함께 느껴진다. 다분히 거리만 가까워 느껴지는 호흡이 아니라 스스로 그 풍경에 뛰어 들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전해주는 편안함과 생동감은 나를 무척이나 편안하게 한다. 그로 인해 전해지는 감동은 ‘좋은 작품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하는 확신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장날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 역사 속에는 ‘터’가 있고 자연이 빚어낸 ‘금은보화’가 있으며 거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이 있다. 또 이 모든 것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다툼이 있는 인간역사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러한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젠 시들어져만 가는 장날의 모습, 그래도 꿋꿋하게 지켜내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미소 속 감춰진 슬픔에 가슴이 아린다. 사그라져 가는 장날이 갖는 역사성을 보존하고 그 불씨를 되살리려는 작가의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 역시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고 잃어버린 듯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 삶의 어려움 등은 온정이 오가는 ‘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터란 장터이며 그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지던 퍼포먼스, 즉 장날이 설 자리가 우리네 이 도시에는 없다는 것이다. 도시만을 위한 발전이 낳은 천벌로 지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실감과 고통을 맛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 

장터엔 문이 없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말 그대로 난전.
늘 열려 있으면서도 이젠
세월에 닫혀 버린 장터. 

 

언젠가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닫혀 버릴
가련한 운명에 놓인 장터.
열린 ‘터’ 위로 인간의 욕심이
높다라니 세워질 테지. 

 

‡‡‡‡‡‡‡‡‡‡‡‡‡‡‡‡‡‡‡‡‡‡‡‡‡‡‡‡‡‡¨¨주워 담기¨¨‡‡‡‡‡‡‡‡‡‡‡‡‡‡‡‡‡‡‡‡‡‡‡‡‡‡‡‡‡‡

 

오랫동안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우리네에게 5일 만에 서는 장날은 곧 모두의 만남의 장이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소식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 삶의 총체적 현장이었다. 인터넷이나 전자 상거래 등 정보와 생활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제 구체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 생활의 한 단면이었다.(작가의 말; p5)

저것 좀 보라.

하늘로 오르고 싶은 대형 할인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꾸 치솟으며 세력을 넓혀가지만, 노점상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지 않은가!(p31)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이 장터를 멀리하고, 장터에 가지 않으면서부터, 장터 대신에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으로 향하기 시작한 뒤부터 비로소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도시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노점상들을 받아들일 공간도 여력도 없다.
물건 구매자들에게 편익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골몰하는 도시에게 장터는 비효울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생산적인 장소일 뿐이다.
세련된 도시는 세련되지 않은 장터를 싫어하는 것이다.
장터는 도시에게 버림받았다.(p47)

아쉽고 부족한 것은 거기 다 있었으며,
넘치고 풍족한 것도 거기 다 있었으며,
반질반질한 것도 투박한 것도,

불쌍하고 가엾은 것도,
잘나고 못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는 것을 빼고 있는 것은 거기 다 있었다.(p85)

열세 살이 되던 해, 나는 그 장터를 떠나 도시로 갔다.
그때부터 나는 백화점의 쇼윈도와 마네킹을 들여다보며 그 옛날의 장터를 까맣게 잊어 먹었다.
아니, 잊어 먹었다기보다는 스스로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장터란 도시의 잘 꾸며진 상가에 비해서 불결하고 비위생적이며 예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학교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혐오감을 가져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내가 받은 교육은 낡고 오래된 것들, 시간의 이끼가 덕지덕지 낀 것들, 먼지와 파리똥이 쌓인 것들, 세월이 만든 주름살 같은 것들을 하루바삐 잊어버리기를 강요받는 훈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93)

한때 70년대 초반에 정부는 5일장을 없애거나 축소시키려고 무모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새마을 운동에 저해가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당시 정부가 지적한 5일장의 문제점은 불공정 거래가 성행한다는 것, 지나친 소비를 조장한다는 것, 농민들의 관습적인 시장 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그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 농촌에 퇴폐풍조가 조성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농촌 정책이었다.
그것은 전국의 들판에 있던 농민들의 휴식처인 ‘모정(茅亭)’을 그저 낮잠만 자는 곳으로 인식하고 막무가내 폐쇄하라고 주문했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농촌 죽이기는 과거 지우기를 통해 결국은 우리의 유구한 전통마저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시골 장터도 그렇게 스러져 갔다.(p97)

30년이 흘렀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시골 어디에도 친구들끼리 주머니를 털어 갈 색싯집 하나 없다.
달이 환한 마찻길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앞으로 또 30년이 흐르면?

마찻길이라는 말을 잊어버렸듯이 그때 가서 우리는 장터라는 말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장터의 모습을 기억해 내기 위해 이 사진집을 열심히 뒤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p113)

그는 그동안 장터를 찍은 게 아니라 장터 사람들을 사진 속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자신의 호흡을 장터 사람들의 호흡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그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내가 본 이흥재」; p126)

그리고 지난번에 강진장에서 대바구니를 팔던, 얼굴 붉은 백발의 노인을 순창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였다.
마침 나는 초등 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갔는데, 그 노인은 아이를 보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어이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한사코 사양을 했는데도 말이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한테서 용돈을 받아 든 아이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아이에 대한 시골 장터 어른들의 인사법을 아들 녀석이 이해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내가 본 이흥재」;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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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조차 사라져갈 풍경, 장날
흥재 사진, 안도현 글 / 마음의창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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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습니다. 두고두고 읽어도 좋고 선물하기도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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