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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ㅣ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도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책을 읽은 그 학생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청담동이나 회기동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이나
명동 롯데백화점에 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즉각 판단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 시장이오, 하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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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中..∥
나는 좀처럼 낯선 시간 혹은 공간에 들어서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여태 대구에 붙박여 살아가고 있고 대구 안에서도 늘 내 걸음이 닿는 곳은 웬만해서는 변화가 없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낯선 시간 속에 있는 나를, 그런 낯선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내가 대구를 떠나 혹은 한국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그곳은 평소 내가 종종도 아니고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은 곳이었다. 거리의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햇살까지도 생경한 느낌을 받았으므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는 평생 대구에서 살았기에 웬만큼 대구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로교통(량)실태조사를 몇 개월 한 적도 있어서 어디 근처라고만 해도 ‘동’을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린 그곳은 전혀 내 의식과 다른 분위기로 나를 낯선 이방인처럼 만들었다. 안다는 것, 특히나 어느 한 도시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한 무엇인 듯하다. 또 내가 확고히 믿고 있는 인식에 대한 불확신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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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확신하는 어느 도시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린다. 김영하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된 것 마냥 특유의 산파술로 우리의 확신게이지(?)를 스스로 줄어들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김영하에 의해 방전된 상태에 이르게 되며, ‘밥 주세요!’를 외치는 휴대전화에 충전하듯 새로운 여행자의 자세 · 마음을 충전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김영하식 여행법! 단순한 것 같지만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 진중함이 묻어난다.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짧은 이야기로 시작해 도쿄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듯 펼쳐지는 사진들과 캡션, 그리고 비로소 만나게 되는 김영하식 여행에 관한 철학과 도쿄에 대한 이미지들. 우리는 이 구성에 따라 ‘앎’에 대한 무지와 만나고 마치 새하얀 의식처럼 방전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의 말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구성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무엇을 풍긴다.
내 생각에 생뚱맞기도 한 이 짧은 이야기(단편소설?)는 여행 전의 워밍업이 아닌가 싶다. 워밍업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방전’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하게 ‘무지’한 상태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떤 판단도 예상도 없이 그저 도쿄라는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비운 채로 오감으로 도시를 느낀 후에야 비로소 ‘텍스트’라는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보지 않은 곳, 실제 경험하지 못한 곳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의식을 고착화시키는 텍스트가 아닐까. 김영하는 이런 고착상태로의 여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듯하다. 텍스트란 무지한 상태로 느끼고 반응하고 난 후에 생성되는 것이지 굳이 처음부터 다수가 인정하고 말하는 텍스트에 갇힐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라면 우리는 늘 텍스트에 ‘이미’ 갇혀버린 여행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영하가 말하는 여행자의 특권이란 도시에 대한 무지를 만끽할 수 있는 권리이다. 우리가 평소에 간직하고 의식적으로 무한히 상상할 수 있게 바탕을 제공하는 것은 ‘앎’ 때문이다. 어쩌면 각각의 여행자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앎으로부터 스스로를 과감히 추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추방시킴으로써 우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기운을 받고 느끼게 된다. 그로인해 자신이 숨 쉬고 걸음을 내딛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편견이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방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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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게 여행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호텔은 집이 아니고 여행 가방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며 먹고 싶은 것을 다 찾아 먹을 수도 없다. 카메라도 만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거기 익숙해지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p215)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