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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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도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책을 읽은 그 학생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청담동이나 회기동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이나
명동 롯데백화점에 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즉각 판단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 시장이오, 하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  


∥..본문 中..∥

나는 좀처럼 낯선 시간 혹은 공간에 들어서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여태 대구에 붙박여 살아가고 있고 대구 안에서도 늘 내 걸음이 닿는 곳은 웬만해서는 변화가 없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낯선 시간 속에 있는 나를, 그런 낯선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내가 대구를 떠나 혹은 한국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그곳은 평소 내가 종종도 아니고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은 곳이었다. 거리의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햇살까지도 생경한 느낌을 받았으므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는 평생 대구에서 살았기에 웬만큼 대구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로교통(량)실태조사를 몇 개월 한 적도 있어서 어디 근처라고만 해도 ‘동’을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린 그곳은 전혀 내 의식과 다른 분위기로 나를 낯선 이방인처럼 만들었다. 안다는 것, 특히나 어느 한 도시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한 무엇인 듯하다. 또 내가 확고히 믿고 있는 인식에 대한 불확신을 불러일으킨다. 

 

*

『김영하 여행자 도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확신하는 어느 도시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린다. 김영하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된 것 마냥 특유의 산파술로 우리의 확신게이지(?)를 스스로 줄어들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김영하에 의해 방전된 상태에 이르게 되며, ‘밥 주세요!’를 외치는 휴대전화에 충전하듯 새로운 여행자의 자세 · 마음을 충전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김영하식 여행법! 단순한 것 같지만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 진중함이 묻어난다.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짧은 이야기로 시작해 도쿄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듯 펼쳐지는 사진들과 캡션, 그리고 비로소 만나게 되는 김영하식 여행에 관한 철학과 도쿄에 대한 이미지들. 우리는 이 구성에 따라 ‘앎’에 대한 무지와 만나고 마치 새하얀 의식처럼 방전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의 말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구성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무엇을 풍긴다.  


내 생각에 생뚱맞기도 한 이 짧은 이야기(단편소설?)는 여행 전의 워밍업이 아닌가 싶다. 워밍업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방전’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하게 ‘무지’한 상태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떤 판단도 예상도 없이 그저 도쿄라는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비운 채로 오감으로 도시를 느낀 후에야 비로소 ‘텍스트’라는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보지 않은 곳, 실제 경험하지 못한 곳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의식을 고착화시키는 텍스트가 아닐까. 김영하는 이런 고착상태로의 여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듯하다. 텍스트란 무지한 상태로 느끼고 반응하고 난 후에 생성되는 것이지 굳이 처음부터 다수가 인정하고 말하는 텍스트에 갇힐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라면 우리는 늘 텍스트에 ‘이미’ 갇혀버린 여행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영하가 말하는 여행자의 특권이란 도시에 대한 무지를 만끽할 수 있는 권리이다. 우리가 평소에 간직하고 의식적으로 무한히 상상할 수 있게 바탕을 제공하는 것은 ‘앎’ 때문이다. 어쩌면 각각의 여행자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앎으로부터 스스로를 과감히 추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추방시킴으로써 우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기운을 받고 느끼게 된다. 그로인해 자신이 숨 쉬고 걸음을 내딛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편견이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방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주워 담기¨¨‡‡‡‡‡‡‡‡‡‡‡‡‡‡‡‡‡‡‡‡‡‡‡‡‡‡‡‡‡‡

그렇지만 내게 여행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호텔은 집이 아니고 여행 가방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며 먹고 싶은 것을 다 찾아 먹을 수도 없다. 카메라도 만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거기 익숙해지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p215)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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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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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는 독서 행위에서 책을 ‘매개’로 삼을 뿐 ‘주체’로 삼지 않는다.
독서가는 자기 자신을 주체로 삼는다. 

인간의 사유가 언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서가는 언어의 성찬인 책을 읽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독서가에게 모든 책은 참고문헌일 뿐이며,
책에 있는 텍스트를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고로 하여 자기 내부의 텍스트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

∥..본문 中..∥

 

언젠가부터 책읽기는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열렬한 독자이면서 고급 독서가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조금 책읽기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예전에는 흥미나 재미위주로 혹은 어떤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책읽기를 해왔다면, 요즘은 자발적인 지적 호기심 때문에 궁리하고 모색하며 책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독서편식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늘 내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어서 오직 그것만으로도 왠지 위안과 안심이 되고 즐겁고 힘이 나는 듯해서 좋다.  


『책 읽는 책』은 책읽기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책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지부터 꾸준한 독서를 이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저자의 경험에 빗대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고급 독서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내재되어야 할 필요사항을 제시하고 더불어 책읽기 초보자(?)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즐거움도 컸던 책이고, 배우고 익혀둘 만한 좋은 습관들도 많아 아주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된 것 같다.  


다분히 책읽기에 관한 어떤 기술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이 고찰한 흔적이 짙고, 책이 갖는 의미와 그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책은 부분이면서 전체인 것이다. 또 수단이면서 목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그 책을 읽는 자신의 생각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를 인식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창조해나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저 ‘책’일 뿐이고, 스스로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조하는 ‘주체성’이 없다라면 책은 의미 없는 시간 속을 부유하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 중 하나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들 속에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듯하다. ‘정말일까?’로 시작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명제들에 딴지(?)를 걸듯 스스로 묻고 답하고 되묻기를 반복한다. 그런 시간이 축적되어 앞서 인용한 부분처럼 ‘자기 내부의 텍스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이며 사고를 바탕으로 생산된 하나의 창조물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과 시각을 빚는 방법을 배우는 도공과 같은지도 모른다.

결국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 중 가장 성실한 방법이 아닐까. 책 속의 텍스트를 그저 읽고 머릿속에 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인 텍스트는 어떻게든 내 사고와 관계를 맺게 되는 듯하다.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의 형태로 잠재되어 있다가 불현듯 스파크를 일으키며 새로운 시각을 빚어내기도 하고,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낳기도 하는 책은 정말이지 나와 관계 맺는 그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책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텍스트를 성실하게 생산하고 피드백을 통해 수정하고 다시 좀 더 나은 재생산을 반복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의 의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 또한 책이 아닐까 싶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 손에서, 내 일상에서 책이 사라진 모습을. 지금당장에야 그게 가능하지 않을, 코웃음 칠 상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책 좀 읽는다고, 읽었다고 자만하거나 편견 혹은 독단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노력할 따름이다. 그저 평범한 독서가일 뿐이지만 좋은 시력만큼은 유지하고 싶은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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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1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안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결국 책도 자기세계를 만들어 가는 수단이 되어 주는 그 무엇...리뷰에 요점이 잘 되어 있어서 안 읽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디테일이 또 궁금해지네요...요췤!

ragpickEr 2009-10-22 22:16   좋아요 0 | URL
제로님^^*

저도 어느 이웃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요~괜찮은 내용이 많더라구요~^^*

영양가 없는 낙서인걸요..^^*; 늘 좋게 봐주셔서 쌀쌀한 날씨에도 늘 후끈거립니다~으흐흐흐^^*;

디테일..후훗.. 제가 가지고 있다면 드리고 싶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난 책이라서..아쉽습니다~요췍~! 으흐흐~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
악셀 하케 / 대원미디어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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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아직도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할뿐더러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이처럼 살아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사람이 단순해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나는 얼마나 단순해져야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게 될까. 본래 쥐뿔도 모르거나 아예 많은 걸 익히 알고 있다라면 생각보다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좀 안다’ 싶을 때 여실히 찾아오는 그런 ‘위험’의 처지에 놓인 듯하다.  


그렇다고 어찌 꿈꾸지 않을 수 있으랴. 말장난 같지만 난 매일 같이 잠자리에 들면 하루에도 몇 개씩 꿈을 꾼다. 그렇게 꿈들은 차곡차곡 기억에 담겨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잊히고 사라져버린다.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멍하니 지난밤의 꿈을 되새김질하며 죄다 기억하려고 애써 보지만 그것도 특별한 꿈이 아니고서야 며칠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다. 무엇 때문일까. 왜 꿈은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일까.  


엉뚱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과 잠자리에서 꾸는 꿈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 관계란 것이 꿈에서 비행사가 되었으니 내 꿈은 비행사야, 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그것은 밤사이 펼쳐진 꿈이 자꾸 잊히거나 사라진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현실에서 내가 꿈꾸는 삶의 방향이 지난밤의 꿈처럼 자꾸 잊히거나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할까. 낮이라는 또렷한 시간동안 늘 꿈은 희미하게 옅어지는 듯 하달까.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자고 일어나 지난밤의 꿈을 자꾸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야 늘 옅어지기 일쑤이지만····

*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는 우리네 세계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많은 것을 배우면서 점점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르는 그 당연한 삶에 대해 한 번쯤 비틀어보게 한다. 어른이 되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꿈도 바삐 치닫는 발걸음들 사이로 뭉개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는 우리네 삶을 데쳄버 왕은 불쌍하게 생각한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데쳄버 왕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데쳄버 왕이 사는 세계는 삶에 필요한 모든 걸 익히고 배운 상태로 태어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키는 점점 줄어들고 기억력도 흐릿해져만 간다. 데쳄버 왕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작아지고 작아져 자연히 사라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어느 날 먼지처럼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질 때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홀연히 사라짐에 더 가까운 죽음 아닌 죽음이랄까.

데쳄버 왕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신체(키)의 변화도 차이가 있지만 그보다 단순히 말해 생각의 차이, 사고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한히 펼쳐지는 상상력과 누구도 감히 의심할 수 없는 꿈꾸는 나날의 연속이 데쳄버 왕의 세계에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완전 반대인 그 세계로부터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배우게 된다. 꿈이란 결코 나이 듦에 따라 사위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왕이 지난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묻는 부분이었다. 비행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말에 왕은 넌 이미 비행사야! 지난밤 꾼 꿈이 현실이고 지금 눈뜨고 생활하고 있는 지금이 단지 꿈일 뿐이야, 라고 한 부분이다. 내가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읽고는 한참을 멍하니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난밤에 혹은 지지난밤의 꿈들을 기억해내려고 집중했었다. 데쳄버 왕의 말이 사실이라면 눈뜬 채 보낸 내 지난날은 모두 허상이고, 지난 밤마다 꾼 꿈들이 내겐 현실이 되는 것이니. 철썩 같이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더듬어보면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

언젠가 걸핏하면 서글퍼지던 때가 있었다. 어찌나 서글프든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혼자 걸어다녔다. 비가 오면 기뻤다.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우중충하고 축축했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 반사되는 나의 슬픔, 그 영상이 나에게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그것을 본 다음에는 아주 외로운 것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서는 다시 터덜터덜 내가 사는 집의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와 의자 위에 떨썩 주저앉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서가와 벽 사이의 작은 틈새에서 데쳄버 2세가 나타났다.(p27)

나는 걸핏하면 서글픈 심정이 된다. 이건 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다. 막연히 서글퍼지는 날은 해가 쨍쨍하고 화사한 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때를 비집고 들어온다. 마침 비가 내리면 나는 조금이나마 행복해진다.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계획들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기 때문일지라. 계획된 일들, 어쩌면 똑같은 일상의 무료함을 비집고 내리는 비는 내게 활력소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 위안이 되고 옴팡지게 비를 맞으며 슬몃 미소 지어보기도 한다.  


언젠가 예고 없이 내리는 비처럼 내 삶에도 데쳄버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그가 내 이정표를 바로 세워줄 것만 같다. 그가 내 항해일지를 과감히 수정해 줄 것만 같다. 그가 나를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언젠가 데쳄버 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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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1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리뷰가 참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_^d 벤자민은 거꾸로 늙어 태어나도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데쳄버 왕은 그렇지 않았나 보군요... 데쳄버왕도 만나는 그런 좋은 꿈들 많이 꾸고 또 가꿔나가기를! ^_-

ragpickEr 2009-10-22 22:14   좋아요 0 | URL
제로님^^*
코멘트가 너무 늦었지요? 제가 이렇게 살아요..;;

사진은..우연이 만들어준 행운이었다랄까요..^^*; 후훗..
잘 어울린다 해주셔서 참 기분 좋은걸요? 으흐흐~

맞아요~많은 분들이 벤자민을 떠올리시더라구요~후훗..데쳄버 왕은 모든 걸 아는 상태에서 태어나더라구요~그게 차이점인가봅니다..^^*

네~! 언젠가는 만날 테지요~^^*
늘 건강하시어요~으흐흐흐~고맙습니다!
 
정관정요의 인간력
나채훈 지음 / 바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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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정관정요』를 읽어본 적도,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본 적이 없다. 다분히 강의시간에 이러이러한 책이고 그 내용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적나라하다, 고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신하가 군주에게 다이렉트(?)로 직언을 서슴지 않고 그것을 너른 마음으로 군주가 새겨들을 말을 고려하고 살피어 백성과 나라와 자신을 위한 것으로 삼았다고.

 

『정관정요의 인간력』은 일명 ‘제왕서’라고 불리는『정관정요』를 바탕으로 이 시대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에 대해 조목조목 말하고 있다. 나라살림을 맡은 대통령에서부터 경영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새겨듣고 실천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고사를 제시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서 짤막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큰 가닥 아래 많은 작은 가닥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기에 편하다. 다만,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은 것은 그 의미가 중첩되는 부분이 생각보다 잦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모름지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요. 근본이 튼튼하면 지엽은 자연히 번성하게 되오. 군주가 욕심을 버리면 백성들은 자연히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오.”(p142)  


세상 모든 일을 나무 심는 것과 같이 성실하고 끈기 있게, 정성을 다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주가 나무 한그루를 제대로 심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참 많이 보고 한탄하는 듯하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동안에 후다닥 뭔가 결실을 맺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군주, 이치대로 자라 자연히 우리 입으로 들어가야 할 농작물에 해코지를 했는지 요술을 부렸는지 쑥쑥 빨리, 크게 자라나게 해 이득을 취하고 부작용을 남발하고도 모른 체 하는 군주. 죄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무리수에 백성은 고달프고 모른 체한 부작용에 백성은 불안에 떠는 시대를 구할 지도자는 과연 나타나긴 할까 싶다.

 

끈기가 필요한 일이 있고, 아이디어가 반짝이거나 지혜가 뛰어난 인물만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런 분야에서도 능력 못지않게 인간 됨됨이가 중요하다. 휴머니즘이 없는 의사, 정의감이 없는 검사, 가르치는 즐거움을 모르는 교사, 나라의 장래보다 개인의 영달에 관심이 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지닌 병폐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p145)

한날 교생실습을 다녀온 한 친구에게, “요즘 학교는 어떻노?”라고 물으니, “첫날 교사들이 교생들 불러놓고 카드라. 엎어져 자는 아들이 많을 테니까 그냥 냅두라고. 준비해온 거나 열심히 하고 괜히 자는 아 깨울 생각하지 말라고. 현직교사들도 그냥 포기하고 그래 한단다.” 그래도 공립인 고등학교라서 내심 기대(?)하고 물었는데 ‘역시나’였다. 요즘의 직업이란 게 어떤 사명이나 소명의식이 백분 발휘되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물론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돌아가기에 어찌 손을 써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일 테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사례가 많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친구 녀석, 다음 달에 있을 치대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생실습 때 충격이 컸던 것인지 아니면 본래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대는 와?”라고 물으니, “일단 살짝 공부해보니까 할 만하더라. 그리고 깔끔하잖아!” 깔끔(?)이라. 배를 가르고 뭐 이런 거 안해도 된다는 뜻인가. 뭐 할 만하다니까 만류할 이유야 없다만 그렇다고 내 처지에서 딱히 해줄 말도 없더라는. 너무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뭐라 말하겠는가. “낸주 공짜로 치료해주나?” 이렇게 말하고 웃을 밖에야.

“민심이 천심이다.”는 말이 있다. 민심이란 포군의 입장에서 볼 때 하등 힘없는 자들의 넋두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생각을 가진 통치자에게는 정치의 요체이자 하늘의 뜻만큼이나 받들어야 할 원칙이다.(p277)  


귀동냥한 바에 의하면,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배는 물길을 잘 살펴야 바른 곳으로 무탈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물길을 거슬러 제멋대로인 배는 제대로 나아갈 수도 없으며 결국은 가라앉고 말 것이다. 민심의 이반은 물길을 잘 다스리지 못한데 기인한다. 백성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에도 어찌 귀를 막고 마음을 닫은 채로 방관할 수 있는가. 물이 모난 배 모서리에 찢겨 제 살길을 잃어가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차라리 모른 체 하는 것이라면 뻔뻔하다고 욕이라도 할 노릇이지만 정녕 모른다, 고 한다면 결국 배를 뒤집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낙마하면 죽기야 하겠는가마는 배가 뒤집혀 망망한 물에 빠지면 말 그대로 끝이라는 걸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이들이 그 됨됨이가 물과 같기를 바라. 요직에 있는 이들의 됨됨이가 꼭 물을 두려워하는 것만 같기를 바라.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됨됨이가 꼭 자신의 목만 겨우 물 위에 나온 것만 같기를 바라.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조화를 이뤄 풍파 없이 태평한 나날이기를 바라고 바라. 모쪼록 그런 날이 꼭 도래하도록 노력하고 합심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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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과 수성, 어느 쪽이 어려운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 일반 기업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창업의 어려움, 수성의 어려움,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요는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다.(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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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곳으로부터 - 지하철 1호선 첫번째 이야기
김수박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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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도서관 서가를 산책하다가, 내 방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는 책들을 눈으로 훑다가, 종종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겠다는 둥, 저 책은 ‘누구’에게 어울릴 것 같다는 둥, 요 책은 ‘누구’에게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둥 하는 생각. 반면에 누군가 서점의 한쪽 코너에서 책을 뒤적이다 내 생각이 나서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기분이란 그저 책 한 권 선물 받는 것 이상으로 오묘한 것이다. 

 

『사람의 곳으로 부터:지하철 1호선 첫번째이야기』는 생산자님이 보내온 책이다. 그냥 내 스타일(?) 같다며, 그냥 생각나서 보낸다는 메모에는 내심 부담감을 덜어주는 배려도 함께 담긴 듯하다.『을지로 순환선』을 보내드린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서 내가 떠오른 건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누군가 책을 보면서 나를 떠올려준다는 게 참 기분 좋은 일이며 오묘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김수박. 저자의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겠으나 이 여름과 어울린다(?)는 생각에 잠시 웃어본다.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김수박. 그의 만화가 품고 있는 주제는 아리송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관계’에 대한 모색이 차분하게 담겨 있다고 할까. 무수히 많은 익명의 사람들 틈바구니 속의 나, 남과 여의 관계,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이간질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사의 의식들이 슬며시 녹아 있는 맛이다.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색채가 참 오묘하다. 개중에는 흑백도 끼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감이 짙다. 인물들의 표정은 심하게 혹은 적당히(?)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적나라하게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솔직함을 우리네 가식 위로 덧씌웠거나. 강요도 비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김수박의 만화는 담백한 맛이 배어있다. 저자의 말처럼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미학일 수도 있고, 그저 ‘내뱉어 보는 권유’일는지도 모를 담백한 맛이랄까.  


‘관계’ 속에는 다양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는 듯하다. 저자가 만화를 통해 군데군데 드러내는 것 중에 이별도 있고 사랑도 있다. 꿈도 있으며 처절한 자기비판도 있다. 세상사를 향한 주정처럼, 푸념처럼 무심히 내뱉고는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할 넋두리와 한탄도 있으며, 어설피 보이는 욕지거리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적의도 보인다. 등장인물의 이름 중에 개 이름을 갖다 붙인 걸 보면 꽤나 솔직하다(?) 못해 매서운 맛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들은 ‘관계’ 속에서 피고 지는 역동성을 갖는 생명이 아닌가 싶다. 들숨과 날숨의 사이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일어나고 누우며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다채로움 그 자체이다. 때론 이 다채로움으로 인해 번민하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관계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관계의 재조명·재설정 과정을 통해 조금씩 관계라는 울타리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인간의식의 중요한 작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도 이 좁은 땅 그 어디에서 우리를 잠시 떠올려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음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 그것은 꽤나 흐뭇하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우리 역시 일상의 잠시나마 누군가를 자연스레 떠올리는 그런 기분 좋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부유하는 많은 생각들 틈에서 이처럼 소중하고 행복한 생각의 한 귀퉁이를 잡아 베어 물 수 있는 일상이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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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gpickEr 2009-07-15 16:32   좋아요 0 | URL
선물받은 책이랍니다..^^* 후훗.. 보내드리고 싶지만 역시나.. 선물 받은 책은 아직까지 나누지 못하겠더군요..^^*; 헤헤..

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헤헤..
좋은 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