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슈운지 감독, 스즈키 안 외 출연 / 엔터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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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쌀쌀해지면 질수록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붕어빵이 등장하고, 군고구마가 등장하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거의 본능에 가까운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끈한 어묵국물이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것, 갓 구워낸 붕어빵에서 피어나는 것, 군고구마 통이 그 옛날 기차에서처럼 칙칙폭폭 하며 뿜어내는 것,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따끈한 콩나물국이 전하는 것 등은 그리움 때문에 더욱 애잔한지도 모른다. 호오,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불어보는 따숩은 입김처럼, 본능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움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디 눈에 보이는 것, 특히나 먹을 것만이 그러할까.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마음이 쓰이고 조금은 허한 기분으로 그리움과 대면한다. 누구는 이미 떠난 사람을 바람결에 살며시 부여잡아볼지도 모른다. 누구는 지난 시간을 반추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하는 바람 역시 알듯 모를 듯 한 그리움이 아닐까. 

 

*

마침맞게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이때,《하나와 앨리스》가 나를 감싸주러 왔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그 속에 뭔가 꽁꽁 숨긴 듯 한 표정으로. 무엇을 꽁꽁 숨겨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이야기는 이렇다.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선배’라는 미야모토가 내게 준비해온 연극을 펼친다.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순조롭게 시작해서 점점 실타래처럼 꼬이고 어느새 눈두덩이만큼 커진다. 미야모토를 짝사랑하는 하나가 미야모토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최면(?)을 걸면서부터 미야모토는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다니고, 하나는 그 최면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앨리스는 엉겁결에 미야모토의 옛 애인이 되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역시 줄거리 요약은 너무 어렵다! 나머진 상상에 맡깁니다!?). 


재미난 것은 이 세 사람이 사랑을 이해하는, 사랑에 눈떠가는 방식이다. 뭔가 가슴 뭉클하면서도 절실한, 알듯 모를 듯 한 이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치 갓 알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본능적으로 날아보려고(?) 시도해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사랑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하나는 결국 진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걸었던 최면을 풀고 앨리스와 미야모토 그리고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미야모토는 사랑의 관대함에 대해 한 수 배운 듯하다. 앨리스는 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틀을 깨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기억상실증. 마치 오래된 연인이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가 너무도 흐릿하고 아련해지는 듯 한 그런 느낌이 기억상실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채로 어떤 관계라는 끈에 묶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명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난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찾아봐야 오롯이 그 기억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서로를 관계라는 오랏줄로 묶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볼 일이다, 기억상실이란 지금, 내일 더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인지도 모른다. 


***

이와이 슈운지. 검색해보니 영화《4월 이야기》의 감독이더라는. 이번에는 음악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영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왕벚나무 아래에서 흐드러지게 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꽃싸움’을 하는 모습,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하나와 미야모토가 달리고 앨리스는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잔한 음악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4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덧붙여, 일본영화를 많이 못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에 배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숨은 배우(?)를 찾는 재미를 알아가는 요즘이다. 영화《비밀》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히로스에 료코가 끄트머리에 에디터 역으로 잠깐 나온다. 또 몇 해 전 조성모의 어느 뮤직비디오에서 소지섭이랑 김정은과 함께 출연(아마도 조직의 보스로 나왔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오오사와 타카오(이름은 오늘 알았다!)도 나오더라는. 괜스레(?) 반가운 배우를 그것도 둘이나 덤(?)으로 만나서 보는 재미를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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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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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이웃님들이 말씀하시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때가 있다면,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신 게 생각난다. 특히나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과 넘치는 감성을 설명해 뭣하랴. 때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선의 대혼란기(?)처럼 가을이, 청명한 하늘이, 스산한 듯 이는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는 불평의 소리 또한 없지 않지만, 그마저도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이 귀엣말을 하는 것 마냥 혹은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걸을 때만 만끽할 수 있는 아련하면서도 아릿한, 그런 기분 좋은 속삭임마냥 사람들은 예의 그 사치스러운 불평을 즐기며 만끽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가을이란 어떤 의미일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것 하나만은 명징하게 말해주는 셈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설익은 독자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 같다고 할까. 봄에는 너무 싱그러워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기피하고 등한시한 시를 가을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설익은 독자래도 매해 깊어가는 가을마다 시 한 수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 같다고, 다시금 얼치기 같은 핑계를 내뱉어본다.  

 

*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시집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지난 시간들 속에 여기저기 너부러져있는 기억들을 아주 촘촘한 그물로 한데 그러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안도현의 이 시집은 그보다 더 디테일한 무엇이다. 가령, 어린 날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니다가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간 아이가 방에 들어서면서 마주하게 되는 군침 도는 점심밥상 같다고 할까. 그보다 점심밥상 위를 살포시 감싸고 있는 ‘밥보(밥보자기)’를 보면서 온갖 맛있는 상상에 빠져들 수 있는 잠시잠깐의 숨고르기 같다고 할까. 시라는 진수성찬을 살포시 덮고 있는 ‘시보’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들춰내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 된 듯했다. 


저녁 먹기 직전인데 마당이 왁자지껄하다 

 

문 열어보니 빗줄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와서 진을 치고 있다 

 

둥근 투구를 쓴 군사들의 발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온다 


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빗소리」_ p21∥ 


눈을 감고 오래도록 상상해본다. 아주 어린 날,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간 외가에서 때 아닌 ‘백만대군’이 쳐들어와 마루에 하염없이 걸터앉아 심심함에 몸서리치던 때를 기억 아니 상상해본다. 비의 장막이 쳐지고 밥 짓는 냄새가 알싸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당 쪽인지, 비의 장막 너머 아련한 산이며 논이며 밭의 풍경 쪽인지, 이도저도 아닌 아예 부엌 쪽으로 코만 뻐끔하게 열어뒀는지 모른다. 방아깨비의 안부보다 낮 동안 비닐하우스 안에서 성글게 익어가는 참외의 달달한 맛이 궁금했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무말랭이」_ p45∥  


무말랭이라는 말을 언제 처음 ‘알아’듣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보다 여전히 나는 오그락지, 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시인처럼 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그락지’를 보며 눈물 글썽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 일 년 내내 빠지지 않고 항상 냉장고에서 제 맛으로 익어가는 것, 늘 밥상 위에 올라 나를 폭식하도록 꾀어내는 반찬이 바로 오그락지다. 엄마는 나 때문에 다른 식구들은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오그락지를 일 년 내내 마련하신다. 꼭 무를 직접 썰어 베란다 화초들 사이에 잘 말려낸 탓인지 아직은, 시인처럼 슬프지 않고 향긋한 맛이라 더없이 행복하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예천 태평추」부문_ p59∥ 

 

예천에 가본 적도 그곳에서 태평추를 먹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일명 ‘묵국’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대구에도 있다. 태평추처럼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을, ‘볶은 돼지고기’는 없지만 아무렴 어떨 묵국을 종종 먹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옆 서문시장에 즐비한 일명 ‘할매 포장마차’에서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추석 때도 큰고모가 묵을 손수 해 오셔서 성큼성큼 잘라 푸짐하게 먹었던 게 아직도 선명하다. 밥까지 말아먹어서 그런지 내게는 ‘갯내’보다 ‘논내’며 ‘상수리숲내’가 더 짙게 남아 있다. 물론 ‘수더분하고 매끄’럽게.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_ p62∥  

 

어린 날, 세 들어 살았을 적에, 엄마가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아빠가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만, 종종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아빠도 엄마도 종종 들고 왔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 날, 내가 좋아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작은 방안이 어딘지 모르게 따숩고 정겨웠던 환했었던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그것이 아빠 혹은 엄마의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처럼 느끼기엔 난 너무 어렸었다. 

 

한 3분쯤 마당귀 두드리다 가는 빗소리 데리고 살까  

 

까치발, 까치발로 크는 상사화 옆에 살까 


풀어놓은 다람쥐 불러들여 도토리 던져주며 살까 

 

땅에다 혼자 혀를 박고 있는 삽 한 자루 되어 살까 

 

짐승의 발소리 하르르 알아맞히는 고사리 되어 살까
∥「허기」_ p79∥ 

 

어쩌면 아무리 진수성찬의 밥상 앞에 만날 삼시세끼 잘 챙겨먹는다고 한들, 삶의 허기까지 채워질까. 물론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나, 대개가 물질문명의 병폐니 어찌나 하는 시시껄렁한 소리로 위안을 삼지 않더라도 그 허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안다. 그 무엇이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또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살은 탓에 부대끼지 못해 이미 쇠약해져버린 오성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허기를 오롯이 만족할 만큼 채우거나 대체할 순 없다하더라도 조금은 살살 달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

『인생은 지나간다』에서 구효서가 추억의 통로로 삼은 것은 사물이었다. 그 사물들 중에는 이미 ‘지나간 것’도 있었으며 다분히 아직도 ‘지나가는 것’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아직 실체가 없는, 미래의 사물 또한 ‘지나간 것’ 혹은 ‘지나가는 것’의 익숙한 것을 통해 그 낯설음을 상쇄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도현은 아주 상다리 으스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을 차렸다. 추억의 통로임과 동시에 지난 생을 반추하고, 지금 지나고 있는 생을 잠시 쥐어본다. 그리곤 지금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서 허기진 삶을 배불리 먹이고픈, 시인 홀로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욕심쯤을 거뜬하게 부리는 듯하다. 


덧붙여, 이젠 배곯을 시절도 아니고 그런 처지도 아니지마는 어쩐지 이 시집을 보노라면 허기가 지는 듯하다. 그 허기란 끼니를 챙겨먹지 못한 배고픔 따위가 아니라 잃은 것, 잊은 것에 대한 애달픔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천진하리만치 단순하고 해맑았던 내 미각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시인이 이렇듯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는데, 눈으로 우걱우걱 먹는 일만 했음에도 여전히 허기가 지는 건 왜 일까. 숭늉 대신 비저 나오려는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훌쩍 삼켜보는 서글픔이어라. 그런 밤이어라. 

 

《이 시집에 나오는 그물로 낚고픈 자글거리는 햇살 같은 말》

욜랑욜랑, 우묵하게, 나박나박, 도닥도닥, 오슬오슬, 싸리울, 허청허청, 오글오글, 하르르, 차랑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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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1-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는 아들이구나..^^

ragpickEr 2009-11-25 10:48   좋아요 0 | URL
후훗..^^*;; 저는..내놓은 자식(?)인데..;; ㅋㅋㅋㅋ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신비한 메시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더난출판사) 1
에모토 마사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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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나는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탄산음료를 즐겨 마시는 것도 아니다. 오렌지 주스와 커피는 종종 마시는 편이고 우유는 광적(?)으로 마신다. 물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고 몸에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식사 후 마시는 물이 내 하루 물 섭취량의 전부다.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물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다! 


*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을 ‘보여’준다! 여러 아름다운 결정들로 자신을 드러내는 물의 결정을 만날 수 있다. 그 결정들이란 일종의 실험에 의한 결정이며, 그 실험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글, 기도처럼 의식적인 인간 행위가 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이런 일련의 실험결과를 가지고 파동이론과 공명에 대한 이해까지 이끌어낸다. 


아차! 가장 중요한 조건을 빼먹었군. 그 조건이란 지구상에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최대 80%에 이른다는 것과 인간은 수정되는 그 순간 거의 99%가 물의 성질을 띠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90%~50%나 되는 물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 이러한 명백한 조건들을 가지고 저자 에모토 마사루는 물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결정이라는 결과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할는지를 조언해준다. 


좋은 말을 하면 그 진동음이 물질을 좋은 성질로 바꾼다. 나쁜 말을 던지면 어떤 것이든 파괴의 방향으로 이끌어간다.(p23) 

 

좋은 말이라. ‘감사’ 혹은 ‘사랑’이라는 말이 좋은 말에 속한다. 좋은 말 속에 담긴 진동이 우리 몸을 절반이상 차지하고 있는 물을 좋은 성질로 바꾼다는 말이다. 단, 진심이 담긴 말을 해야 한다는 것. 나쁜 말을 던지지 않았다고 해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좋은 말을 수천 번 뻥긋거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인류가 옛날부터 축제를 좋아한 것도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곳에는 밝고 좋은 파동이 소용돌이친다. 그 위력으로 고여 있던 좋지 않은 에너지를 날려버리는 것이다.(p70)  

 

아우구스토 쿠리의『드림셀러』에 보면, ‘스승’과 함께 그를 따르는 사람은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분위기 속에서 무엇엔가 홀린 듯 혹은 이끌린 듯 덩달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되듯이 그 파동이란 것은 소위 그런 기운이라는 것은 이처럼 아주 강력한 힘을 자아내는 듯하다.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움직일 만큼. 더 중요한 것은 부정의 에너지를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한 사람 혹은 어떤 사물에서 시작된 진동이 좋은 파동이 되어 다른 파동과 공명하고, 비로소 아름답고 의미 있는 형태의 장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시선은 에너지다. 선의를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용기를 주는 것과 같다. 반대로 적의나 악의의 시선은 에너지를 빼앗는다.(p98) 

 

말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 마음, 의식, 거기다가 시선까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네 의식이 생각이나 행위에 관여하지 않을 때가 없음을 안다. 인간의 모든 의식은 나에게, 나아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지긋이 바라보는 것은 결국 의식으로부터 돋아나 마음에서 발아하고, 눈을 통해 열매 맺으며 미소를 담은 시선에 이르러 비로소 아름다운 꽃 한 송이로 피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우리 모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지긋하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여러분이 물을 앞에 두고 사랑을 담아 감사의 말을 던질 때 세상의 어딘가에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 장소에서 조금도 움직일 필요가 없다. 눈앞의 유리잔에 담긴 물은 세상의 물과 연결되어 있다. 어디에 있든 물은 공명한다. 그것이 퍼져 나갈 때 세상 모든 이의 마음이 일제히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넘치는 사랑과 감사로 세상을 감싸보자. 그것이 멋진 ‘형태의 장’이 되어 세상을 바꿔간다.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지금 이 장소에서 멋진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p140) 


우리가 어떤 염원을 할 적에, 누군가도 같은 마음으로 염원할 것이다. 바라고 바라는 마음들이 하나의 형태의 장을 형성하고 서로를 보듬을 것이다. 분명 이루어진다, 는 보장과 확신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위로하고 보듬는 따스함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으로 마음은 평온함으로 가득 찰 것이며, 더 좋은 기운을 세상으로 뿜어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형태의 장이란 끊임없는 순환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순환의 순환을 거듭하다보면, 우리는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도 아름답게 정화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

물의 결정 사진도 아주 흥미롭고 인상적이었지만, 뒤이어 전개되는 파동이론과 형태의 장, 특히나 공명에 관한 부분이 더없이 기억에 남는다. 물을 통한, 절반 이상이 물로 이루어진 인간을 통한 파동이론과 형태의 장, 공명 등은 정말이지 홀린 듯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그런 건 내가 판단할 수도 없거니와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빠져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내재하고 있는 그의 주장과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한수를 떠놓고 기원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결국 이런 행위는 형태의 공명에 기인한 본능적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주 신비로운 체험을 한 기분이다. 하지만 꼭 신비스러운 느낌만은 아닌 단순하면서도 간명한 진리를 선물 받은 기분이기도 하다. 예전에 썼던 어느 리뷰에서 작은 힘에 대한 낙서를 끼적였던 게 생각난다. 그때 전우익 선생, 아우구스토 쿠리, 에모토 마사루는 이런 작은 힘을 믿는 사람들이며, 작은 힘이 세상을 기필코 변화시키리라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바라는 마음을 녹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없이 행복하고 밝은 세상을 그리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다. 


덧붙여, 너무나도 엉뚱하고 생뚱맞지만 허경영 의원이 주장하는 바(?)가 뇌리를 자꾸 맴도는 건 왜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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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1-2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건 어느 이웃분이 주신 거여요. 글씨가 참 정갈한데요. 선생님 같다.^^ㅋ

ragpickEr 2009-11-21 12:49   좋아요 0 | URL
나마스떼..님께서 주신 거야요..^^*
필체가 참 담임선생님(?) 같지요? ^^* 으흐흐~

난 악필이라서 이런 필체 부럽더라구요..ㅋㅋ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출판기획 시리즈 2
강주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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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 나무인간(?)께서 나와 친구 녀석을 일요일에 연구실로 부르셨다. 전공학생도 아닌 우리를 부른 그도 이상하지만, 천금 같은 휴일을 그의 부름에 주저함도 없이 응했던 나도 이상했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는 연구실 책상 위에 <생태문화아카데미 기획안>이라고 적힌 종이 뭉치(?)를 주시더라는. 나는, 워낙에 계획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계획성 없기로 유명한 내 앞에 놓인 기획안이라니!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훑어보고 수정할 부분이나 세부계획을 정리해봐”라는 말만 남기고는 회의일정을 잡느라 관련 기자며 교수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당시, 내가 그 기획안을 제대로 수정하고 보완했는지, 썩 괜찮은 아이디어를 보충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또한 별 연관성도 없는 전공자인 내 의견이 반영이 되었는지 그저 일종의 ‘테스트’였는지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기획안이란 걸 거의 처음 접했던 그 새로움이랄까, 더불어 조금은 두렵고 긴장된 상태로 기획안과 마주했던 그 순간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날,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던 것 같다. 기획안 속의 많은 세부계획들을 훑으면서 전체적인 그림이란, 어떤 일에 대한 구조는 계획성 없이 뭉뚱그려 막연하게 연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 즉 비교도 안 될 만큼 선명함은 물론 마구 실행에 옮기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는 것. 


*

『기획에는 국경이 없다』는 출판에 관한 책이다. 또 ‘책’에 관한 책이며 ‘읽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독서교육에 관한 책이면서도 이 시대의 출판계가 나아가야 할 길이랄까, 추구해야 할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현 출판업계의 문제점은 물론 그로 인해 빚어진 많은 독서에 관한 사회적인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의 주축에 있는 것, 그 시작에 있으면서도 끝에도 있는 아이러니한 것, 즉 이 모든 과정들이 의미 있고 원활하도록 만드는 쟁점이 기획이고 기획력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어떤 책이라도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거기서 좋은 책이 결정됩니다. 두툼한 책을 지루하게 읽을지언정 한 문장에서라도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습니다.(p5) 


종종 좋은 책에 대해 홀로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은 좋은 책인가, 하는 식으로. 어제 읽었던 책은? 누구의 책은? 좋은 책의 기준은? 하면서 물음을 던지다 보면, 결국엔 ‘책’이라는 섣불리 정의내릴 수도, 그러기도 힘든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단어로 적절히 타협(?)을 보고는 다시 이 책 저 책 뒤적이게 된다. 엉뚱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이다. 


책은 문화상품일 수 없다. 책은 교육을 위한 상품이다. 언젠가부터 평생교육이란 낱말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었지만 그 역할은 교육기관만의 것이 아니다. 출판계가 만들어낸 책을 통해서 진정한 평생교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브 미쇼처럼 살아 있는 목소리를 전해줄 저자들을 찾아나서는 출판사들이 우리에겐 얼마나 될까?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서 묵묵히 사색을 거듭하며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하는 출판사가 얼마나 될까?(p129~p130) 


책이 문화상품인지 교육상품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책은 그냥 ‘일상용품(?)’인 듯하다. 상품으로 평생교육을 이룬다하기엔 좀, 뭔가 뉘앙스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서 차라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품이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보태본다. 어쨌든, 저자가 말한 것처럼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미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서 묵묵히 사색을 거듭하며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 있는 출판사가 많아진다면, 그네들이 만들어 제공하는 책은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정말이지 일상생활의 필수품처럼 구매하고 사용하며 활용하고 여럿이서 나누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집자는 교정을 보고 교열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책을 어떤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출판인을 뜻한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기획력과 편집력을 겸비한 사람이다. 쉬플린이 말하는 편집자의 기획은 대중의 취향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독자에게라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능력이 기획이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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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해서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리스 올랑데와 같은 기획자가 필요하다. 시장을 읽기 전에 독자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지닌 기획자, 더 크게 말하면 새로운 독서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꿈을 지닌 기획자가 필요하다. 그런 기획자에게 필요한 조건은 장인 정신이며 책과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런 기획자가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p188) 

 

가끔,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둥, 이런 주제를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놓은 책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입맛에 맞는 책, 즉 소수의 독자가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책을 찾아내고 읽어내어 구미에 맞도록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출판업계의 사정을 끊임없이 변명처럼 입에 올리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이 책에 예로 소개된 출판사들의 자기만의 개성과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탄탄한 기획력과 편집력을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이룩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에게도 조금 더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늘어나기를 소망해본다. 


독서교육은 구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 권장도서를 발표해서 읽으라고 강요한다고 독서교육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수학 부분의 권장도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필독서로 충분하다. 학생들에게 책과 현실, 책과 교과서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면 된다. 꼭 신간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매달 추천도서를 선정해서 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 것도 아니다. 독서교육은 프랑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분위기 조성이다. 정부, 교육계, 문화계 모두가 나서야 한다.(p201) 

 

다니엘 페나크의『소설처럼』에서 제시하고 있는 독서교육에 관한 해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효과를 발휘한다.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 많았던 책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 조성’이라는 말을 다니엘 페나크처럼 명확하고 단순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저 읽어주는 것, 어릴 적 그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선물해준 부모들이, 선생님들이 다시금 다 자란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그 옛날처럼 읽어주는 행위만으로도 분위기 조성은 물론 엄청난 자발적인 독서효과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책-해일에 휩쓸려 저 멀리 둥둥 떠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이와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획력이란 꼼꼼하고 치밀하며 계획성과 실천성이 아주 높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독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 독자들의 욕구와 욕망을 캐치하는 것, 독자들이 그리워하는 시간이나 그런 향수에 마음껏 젖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소소하면서도 선명하게 책을, 이야기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을 디자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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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소년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누군가 서점에서 책을 훑다가 혹은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거나 훑어보다가 이 책을 보니 그 사람이 떠오르는 걸, 이 책은 그 사람한테 어울릴 것 같아, 이 책은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하고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자애롭고 따뜻한 사람인가. 반대로 ‘그 사람’에 해당하는 이는 또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고 보면, 책벗이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각자 자신의 책꽂이 앞이나 서점의 한 귀퉁이, 서재가 있는 방을 통해서 혹은 그런 공간 속에 버젓이 책등을 보이며 제각각 진열된 책을 통해서 아주 긴밀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달과 소년』은 인천에서 대구라는 먼 시·공간적 거리를 단숨에 초월한 책이다. 단숨에 초월했다는 말이 ‘특급배송’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를 떠올려준 책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일진대 그 ‘찰나’를 통과해 나에게 닿았다는 의미에서 분명, 초월했음직하다는 말이다. 무심코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를 그 찰나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이가 있다면, 정말이지 이런 일련의 사건(?)과 그 과정이란 게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

『달과 소년』은 말없이(그림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베란다에 걸터앉아 달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추락하면서 잠깐 정신을 잃은 탓인지 아니면 정말 달이 실종 혹은 달의 몰락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평소 볼 수 없었던 파르댕댕한 아기달과 여행을 시작한다. 그것은 여행이면서 동심이라는 여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원형과도 닮았다. 달이 사라진 세계로의 여행이라기보다 아직 달이 어렸던 세상, 밤하늘을 온화하게 밝혀줄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그렇게 우리에게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노을이 질 때면 사람들은 가슴 졸이며 기다리곤 했지만,
이제, 달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본문 中..∥

온정이 깃들지 않은 것, 사랑을 받지 못한 모든 것들은 식어버리기 일쑤다. 파르댕댕하게 식어버려 쪼그라든 채로 땅에 추락해버린-달의 ‘출생’이 본래 그런 모습이었는지도 모르지만-달은 이미 지는 해가 펼치는 장관에 묻혀 온정이 식어버린 모습이다. 뒤늦게 달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달을 대량생산(?)해낸다. 달 아닌 달이 넘쳐나는 세상, 그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 아닌 행복을 즐긴다. 


오직 한 소년만이 식은 채 아주 작게 쪼그라든 달을 살려내기 위해 천진하게 노력할 따름이다. 파르르 떨며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달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빛을 쬐어주기도 한다. 다시금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늘,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달의 친구가 되어준다. 학교에도 함께 가는 것은 물론 밤이면 동화에나 나올법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소년의 사랑으로 달은 더 이상 땅 위에서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다. 몸집도 커져서 소년의 방은커녕 집 현관문조차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다. 비로소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소년은 달과 함께 이별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이란 달을 다시금 밤하늘을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하늘로 데려다 주는 일. 광풍이 몰아치던 순간에도, 비바람과 먹구름이 살을 에고 하늘로 오를 수 없도록 시련을 내리던 순간에도 달과 소년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서로를 지킨다. 이 얼마나 가슴 아리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달과 소년은 안간힘을 쓰면서 먹구름을 헤치고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에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다.

그 모든 소음이 눈 깜짝할 새 다 사라져버렸다.
그 모든 번민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버렸다.
촘촘이 하늘에 박힌 별들이 사방으로 흐른다.
달과 소년은 흐뭇했다.
..  


∥본문 中..∥

달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비로소 소년은 물론 달도 흐뭇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또한 모든 세상에 평온함이 내린 듯 고요했다. 세상구석구석 용케도 숨어들었던 번민도 녹아내렸다. 별들은 다시금 생기롭게 흘렀으며, 밤은 어둠을 걷어내고 은은한 달빛으로 빛났다. 사라졌던, 보이지 않던, 우리 마음이 보지 못한 채 식어가도록 방치했던 달이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한 소년의 따뜻한 사랑 덕분에 밤은 비로소 밤이 될 수 있었고, 우리는 비로소 밤에게 위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은은하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 그 아래에서. 

 

**

우리네 의식 저 밑바닥 어딘가에 있을 법한 달에 대한 추억이랄까. 그 알 수 없는 어떤 원형의 이끌림이랄까. 그런 의문의 꼬리를 잡고 떠나는 여행이랄까.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달’이라는 그 알 수 없고 오묘한 원형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길어 올려야 마땅하며 기필코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그것은 정녕 무엇일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달’과 천연의 ‘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스릴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행여, 그런 것을 가지고 어느 것이 맞니 아니니 혹은 진짜니 가짜니, 하는 어쭙잖은 효용을 따지고 있는 건 아닐는지. 인위적인 것에 미친 듯 탐닉하고 만족이라는 허상을 쥐어튼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 옛날 닭장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던 미싱처럼 잘도 도는지. 짧지만 많은 의문과 생각을 낳는 이야기와 그림이었다. 


끝으로, 문득 공포라는 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남는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현상이나 그런 상상이 만들어내는 불안감만이 공포일까. 때때로 공포는 평소 눈에 보이지 않던, 우리네 관심 밖에서 늘 버려진 채로 방치되었던, 그렇게 식어가고 있는 존재의 실종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인간의 상상력은 얄스그레한 구석이 있어서 그 소중함에 대해 뒤늦게 깨닫는 순간, 공포라는 이미지가 갖는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왠지 모르게, 오늘밤은, 전기톱을 들고 내 방에 누군가가 쳐들어오는 상상에서 비롯되는 공포보다 달 혹은 해, 꽃, 동물 등의 실종으로부터 파생될 공포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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