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포포 레인보우
심승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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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판기 커피 한 잔이 그립다. 특히나 밤이 깊어질수록 더 그런 건 왜일까. 슬리퍼를 끌며 한밤중에 커피 한 잔 뽑으러 느릿느릿 걸어간다. 깊은 밤, 막창에 소주 한 잔 걸치는 무리들에게만 이 밤이 허락된 듯 한 기분이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다시금 아파트 입구 계단 앞으로 냉큼 걷는다. 쪼글시고 앉아 담배 한 대 빼문다. 그리곤 커피 한 모금 마셔본다. 어느새 미적지근히 식은 커피만. 자판기에서 계단까지 오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사이로 뭔가 흘러 빠져나간 기분이다. 아아, 가을이, 가을도 이젠······. 가을은 야속하게도 담배 한 대 빼무는 틈을 타 내뺐구나, 싶다. 


*

『파페포포 레인보우』가 내게 왔다.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펼치면 손가락 사이로 숭숭 죄다 빠져나가버리듯, 여태껏 나 살아오면서 그렇게 숭숭 빠져나가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모아 일곱 빛깔 상자(꿈, 사랑, 눈물, 평화, 하모니, 열정, 그대라는 이름의 무지개)에 각각 담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간 기억, 나 모르는 사이 도망간 기억, 그저 시간에 묻히고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기억 등 다시는 오롯이 마주할 수 없지만 아직도 티끌처럼 내 몸 구석구석 어딘가에 남아 있을 기억들을 바람이 죄다 실어가기 전에 여밀 수 있게끔······. 


어머니의 헤진 머리카락,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의 손마디,
마냥 행복해하는 아기의 미소,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잊을 수 없는 너의 그 눈빛.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고래와 하마」_ p25∥ 


어쩌면 그저 저대로 아름답다는 것은 그리움에 가까운 심정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세월이 보일 듯 말 듯, 알 듯 모를 듯 다듬고 다듬은 흔적들은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저대로는 변했음을 안다. 그걸 알기에 그리운 법이고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늘 거기에 있다, 는 이들의 말에 가슴이 저린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묵묵하게 저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에 아름답다, 불리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도, 세월도 다듬어 비껴내지 못한 본질이라나, 그런 마음이려나. 


새하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편지는 ‘수취인 불명’이란 소인이 찍혀 되돌아왔다.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받는 이 없는 자작나무 편지가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은들 무엇 하나.∥「자작나무」_ p82~83∥ 

 

우리가 누군가에게 당장이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짤막한 문자메시지이건,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통화이건, 천 년은 고사하고 일백 일도 겨우 피어 견디다 떨어지는 백일홍에 남몰래 살짝 사랑을 고백해보는 일이건 간에 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만약, 스스로가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아무이유 없이 문자메시지 한 통, 전화 한 통, 편지 한 통을 전할 수 있는, 전하고픈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문득,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어렴풋하지만, 학교 구석진 곳에 숨어사는 새하얀 한 그루 자작나무 수피에 볼펜으로 보일 듯 말 듯 살짝 적어놓은 내 바람은 지워지지 않고 잘 있으려나,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바람이 오고갈 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원형」_ p115∥ 


나는 종종 바람처럼 살고 싶다, 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런 기별 없이 왔다가 또 아무런 기약 없이 떠도는 삶을 말이다. 이는 불확실하고 막연하며 미련한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언젠가는 바람처럼 두서없이 살포시 가닿을 거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런 바람이 되어 내 흔적이 지난 자리 곳곳에 이런 속삭임을 남겨두고 싶다. 바람이 오가기를 바란다면 그리워하라고, 바람은 그리움을, 그 시간을 못견뎌하는 이에게는 불지 않는 법이라고····  


**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미적지근하게 식혀버리고 어느새 내빼버린 바람을, 금방이라도 그렇게 가버릴 것만 같은 가을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부디 바람이 실수 없이 들을 수 있도록 벌써부터 네가 그립다고, 그리움의 시간을 못견뎌하며 안달하지 않을 거라고, 조곤조곤 속삭여 이 까만 밤 속에 몰래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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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만두 2009-12-2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엄마가 커피 마시는 거 한번만 더 눈에 띄면 쫓아낸데요...ㅠ.ㅠ 숨어서 마셔요..밖에 나가서..

ragpickEr 2009-12-28 00:31   좋아요 0 | URL
우아한 냉혹님^^*
어머님께서 무서우신가봐요..^^*;
어째요..숨어서 마셔서..^^* 그래도 스릴(?)이 더해져서 더 맛있겠어요~^^* 후훗.. 추운데 밖에서? ^^* 따숩게 잘 숨어 마시어요! ^^*
(그래도 적당히 마시어요! ^^* 과하면 탈납니다~@_@;;ㅋ)
고맙습니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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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며칠 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희생》을 봤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화 속 인물들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제각각 무너져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물론 한 인간이, 인간의 의식이, 인간이기에 가능한 모든 행위들이 어떻게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고 파괴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전쟁이란 것이 ‘파괴적 미학’에만 국한된 행위라고 한다면, 이는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처럼 들릴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지 않다. 전쟁이, 전쟁이후의 삶,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그 폐허 더미 속 희망이란 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뒤이을 완전무결한 파멸의 시간으로 가는 전조에 불과한 것이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작년쯤에 읽은 미셸 깽의『처절한 정원』을 읽고 관심을 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데이드리머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신 책이다.(묵혀두기로서니 너무 오래다 싶어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 잉에 숄은 두 남매동생 한스 숄과 조피 숄이 활동한 나치저항조직 ‘백장미단’에 대한 자료와 증언, 기억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짧았지만 불꽃처럼 강렬하게 주어진 삶과 임무에 충실했던 두 남매를 비롯한 백장미단의 활동은 감동적이면서도 처절한 아픔처럼 쉽사리 씻기지 않는다. 


“큰 위기가 닥치면 많은 문제들이 눈앞에 드러나게 된단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라. 우선 1차 세계대전이 있었지. 전쟁이 끝난 직후에 많은 문제들, 엄청난 빈곤과 실업난 등이 터졌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마치 꽉 막힌 회색 벽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면, 그럴듯한 약속에 귀를 기울이게 된단다. 그 약속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따져보지도 않고.”(p30)  

 

나는, 감히, 상상해본다. 모든 곳곳은 폐허처럼 파괴되고 무너져 내렸으며, 당장의 끼니도 해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날이 솟구치는 것은 날카로운 신경이었을 테고, 짐승의 그것처럼 당시 사람들의 이성이란 오직 빵 한 조각을 갖기 위한 투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를 비집고 히틀러, 즉 나치정권이 들어선다. 이미 사람들은 ‘그럴듯한 약속’이 속삭이는 천국행 기차표를 거머쥔다. 그것이외에 그 무엇도 더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여물통만 가득 차면 만족하는 짐승이 아니란다. 인간은 자유로운 의견과 신념을 가지고 있지. 이러한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해서는 안 돼.”(p32) 

 

결과는 참담했다. 천국행 기차에는 빵도, 자유도, 안락함도 없었다. 더 참담한 것은, 인권이라는 단어가 성립하기 위해 기필코 존재해야할 인간이, 사람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혹시나 지금 우리가 몸을 싣고 있는 이 시대의 종착역 역시 저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치가 떨린다. 


아무 일 없이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선물이 아니겠는가?(p33) 


모든 건 상대적이라지만, 동시에 절대적일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무탈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행복이 아닐까. 행복이란 것은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상대치로 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행복은 그저 절대적으로, 본질적으로 행복일 뿐이고 스스로 행복할 뿐이지 않을까. 계량화, 수치화, 현상화, 일반화 등등이 일반의 모든 가치의 척도일 수는 없다. 단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숨이 붙어 있고 제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 오늘을 잘 버텨냈다는 그런 안도의 상대치일 뿐이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인간이 누리고 추구하는 모든 가치라는 상대치에 대해 함구함으로써, 의연해짐으로써 비로소 선물이라는 본질에 가까워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다른 이유보다도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 이 모든 것 앞에 너무 쉽게 굴복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전쟁이 생산하는 최대의 공포란, 도시가 파괴되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사라져버린다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없는 데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는 존재 스스로의 파멸보다 더한 공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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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만두 2009-12-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감동감동+.+ 교보에서도 분명히 봤는데...다시 봐도 감동이에요. 특히 마지막 문단이요...저는 2012보면서 이런 생각했어요.(영화는 좀 별로...돈을 쏟아부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글구 투모로우랑 너무 똑같아서요..매사에 넘 삐딱한가..=.=;;) 지구 멸망하는 것보다...그 앞에선 사람들의 모습이...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요..슬펐어요..ㅠ.ㅠ

ragpickEr 2009-12-28 00:34   좋아요 0 | URL
우아한 냉혹님^^* 아..;; 그냥 자세하게는 모르고 제 생각만 끼적였어요..;부끄러워요~그런 반응..ㅋㅋ ^^*;; 2012..영화 좀 별로 인가봐요? ^^* 저는 외화를 잘 안봐서..;더군다나 그래픽 들어간 영화는 거의 안봐서..^^*; ㅋㅋ
사람이..인간이 제 모습..제 본성을 잃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서로가 못할 짓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하구요..
그래도!! 희망은 그런 인간의 틈바구니 속에 있겠지요? ^^*
으라차차차차!! 남은 한 해도 으라차차차!! 마무리 잘 하셔요! ^^*
고맙습니다!! ^^*
 
나무 동화
이탈로 칼비노 외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뭣도 모른 채, 그냥, 나무를 좋아한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어느 구석에서 약간은 삐딱하게 자라는 측백나무가 좋고, 내가 졸업한 대학교 동문에서 우리 집 앞까지 아주 길게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 회화나무가 좋다. 높다라니 웃자라 늘 시원시원한 메타세쿼이아가 좋고, 여느 초등학교 운동장에나 꼭 한 그루씩은 있는 두툼하고 훤칠한 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좋다. 지하철 타러 가는 지름길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배롱나무가 좋고, 샛노란 꽃술이 소담스러운 산수유나무가 좋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서 좋고, 목련이며 자목련은 큼지막한 꽃이 벌름하게 피어서 좋다. 


졸업하고 나서는 나무에 대해 공부(?)하는 게 아예 시큰둥해졌지만, 그나마 영영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언젠가 말했듯이 북로그를 하면서 나무를 조금이나마 공부한 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 중 하나인 나무를 통해 나는 조금 더 개구쟁이처럼 살갑게 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척이 아니라 북로그 세상은 잠시나마 학교에서 했던 나무공부의 연장이라 할 수 있고, 만남이고 소통이며, 위안이고 행복인 듯하다. 어디든 배움은 움트고 마음먹기에 따라 배움은 내 것이 되며 나눠가질 수 있는 작은 지혜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

『나무동화』는 아주 단순하게도(요즘은 책을 비교적 단순(?)하게 선택한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사들였다.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럽고 기분 좋은 일일진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동화!’라 하지 않는가! 비록 어릴 적에는 나무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에라도 이렇게 그저 바라볼 줄 알게 된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늘 보고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 아래에 코 흘리던 시절의 나를 살포시 그려보는 심정으로 이 책을 들춰본 게 아닌가 싶다. 


이 책 속에는 세계 각국의 나무와 관련된 전설이나 민담이 담겨져 있다. 또 창작동화가 몇몇 함께 담겨 있기에 더없이 다채로운 빛깔을 낸다고 할 수 있다. 중간 중간에 조금은 뜨악한 느낌으로, 조금은 피식하고 웃어볼 수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다. 지루하다니! 이 무슨 망발인고! 오, 천벌을 받을진저(요즘『그리스인 조르바』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런 말투가 나온 것 같네요.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구미가 확하고 당긴 결정적인 이유는 미셸 트루니에, 르 클레지오, 이탈로 칼비노와 같은 눈에 익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작가들 역시 신선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조금은 당황(?)했던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 동화라고해서 너무 아름답고 잔잔하며 푸근한 이야기만을 잔뜩 기대한 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동화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몇몇은 동화라기엔 조금은 당황스럽고 섬뜩할만한 이야기도 있으니 혹시나 이 책을 보실 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라! 


**

언젠가「숲과 문화」라는 야외수업전용(?)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수님(쥐똥나무)은 교정을 이곳저곳 거닐면서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해주신 기억이 난다. 샛노란 개나리꽃 앞에서는 먼 옛날 인도의 어느 공주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벽계수나무 앞에서는 설탕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양버들 앞에서는 손수건이 흠뻑 젖을만한 애잔한 이야기를, 살구나무 앞에서는 그 옛날 공자가 행단(杏亶)에 서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이야기를, 소나무 앞에서는 진 시황제 이야기를, 배롱나무 앞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에 관한 이야기를, 모란꽃 앞에서는 당태종과 진덕여왕에 관한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에는 동화도 있고 전설이나 민담도 섞여 있었으며, 역사이야기도 많았다. 죄다 기억할 순 없지만 나무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몇 안 되지만,『나무동화』속에 등장하는 나무들 각각 내포하고 있는 ‘정서’는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가령, 이 책에 나오는 수양버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드러내는 정서란 그리움, 애잔함과 같은 것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역시 그와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이야기에는 장수(長壽)라는 의미도 포함한다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나무란 대체로 비슷한 정서와 의미를 내포하고 상징하는 일종의 ‘공통어’ 혹은 ‘공용어’처럼 들리더라는. 


***

만약,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나무동화-한국판』을 만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여도 좋고, 그것을 각색한 것이라도 좋다.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여도 좋고,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여도 좋다. 해서, 우리만의 색을 가진, 우리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나무동화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너나할 것 없이 널리 읽히고 전해지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오기를 소망한다. 이야기 속에 꿈과 희망은 물론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디딤돌 같은 나무동화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언젠가는 분명, 반드시, 높다란 빌딩 숲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주변에 널리고 널려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전해줌으로써 아름다운 지혜가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속에 한 그루 나무처럼 견실하고 미련하리만치 우직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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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슈운지 감독, 스즈키 안 외 출연 / 엔터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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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날이 쌀쌀해지면 질수록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붕어빵이 등장하고, 군고구마가 등장하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거의 본능에 가까운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끈한 어묵국물이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것, 갓 구워낸 붕어빵에서 피어나는 것, 군고구마 통이 그 옛날 기차에서처럼 칙칙폭폭 하며 뿜어내는 것,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따끈한 콩나물국이 전하는 것 등은 그리움 때문에 더욱 애잔한지도 모른다. 호오,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불어보는 따숩은 입김처럼, 본능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움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디 눈에 보이는 것, 특히나 먹을 것만이 그러할까.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마음이 쓰이고 조금은 허한 기분으로 그리움과 대면한다. 누구는 이미 떠난 사람을 바람결에 살며시 부여잡아볼지도 모른다. 누구는 지난 시간을 반추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하는 바람 역시 알듯 모를 듯 한 그리움이 아닐까. 

 

*

마침맞게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이때,《하나와 앨리스》가 나를 감싸주러 왔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그 속에 뭔가 꽁꽁 숨긴 듯 한 표정으로. 무엇을 꽁꽁 숨겨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이야기는 이렇다.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선배’라는 미야모토가 내게 준비해온 연극을 펼친다.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순조롭게 시작해서 점점 실타래처럼 꼬이고 어느새 눈두덩이만큼 커진다. 미야모토를 짝사랑하는 하나가 미야모토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최면(?)을 걸면서부터 미야모토는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다니고, 하나는 그 최면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앨리스는 엉겁결에 미야모토의 옛 애인이 되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역시 줄거리 요약은 너무 어렵다! 나머진 상상에 맡깁니다!?). 


재미난 것은 이 세 사람이 사랑을 이해하는, 사랑에 눈떠가는 방식이다. 뭔가 가슴 뭉클하면서도 절실한, 알듯 모를 듯 한 이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치 갓 알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본능적으로 날아보려고(?) 시도해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사랑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하나는 결국 진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걸었던 최면을 풀고 앨리스와 미야모토 그리고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미야모토는 사랑의 관대함에 대해 한 수 배운 듯하다. 앨리스는 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틀을 깨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기억상실증. 마치 오래된 연인이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가 너무도 흐릿하고 아련해지는 듯 한 그런 느낌이 기억상실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채로 어떤 관계라는 끈에 묶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명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난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찾아봐야 오롯이 그 기억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서로를 관계라는 오랏줄로 묶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볼 일이다, 기억상실이란 지금, 내일 더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인지도 모른다. 


***

이와이 슈운지. 검색해보니 영화《4월 이야기》의 감독이더라는. 이번에는 음악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영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왕벚나무 아래에서 흐드러지게 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꽃싸움’을 하는 모습,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하나와 미야모토가 달리고 앨리스는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잔한 음악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4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덧붙여, 일본영화를 많이 못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에 배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숨은 배우(?)를 찾는 재미를 알아가는 요즘이다. 영화《비밀》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히로스에 료코가 끄트머리에 에디터 역으로 잠깐 나온다. 또 몇 해 전 조성모의 어느 뮤직비디오에서 소지섭이랑 김정은과 함께 출연(아마도 조직의 보스로 나왔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오오사와 타카오(이름은 오늘 알았다!)도 나오더라는. 괜스레(?) 반가운 배우를 그것도 둘이나 덤(?)으로 만나서 보는 재미를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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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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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이웃님들이 말씀하시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때가 있다면,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신 게 생각난다. 특히나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과 넘치는 감성을 설명해 뭣하랴. 때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선의 대혼란기(?)처럼 가을이, 청명한 하늘이, 스산한 듯 이는 바람이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는 불평의 소리 또한 없지 않지만, 그마저도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이 귀엣말을 하는 것 마냥 혹은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걸을 때만 만끽할 수 있는 아련하면서도 아릿한, 그런 기분 좋은 속삭임마냥 사람들은 예의 그 사치스러운 불평을 즐기며 만끽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가을이란 어떤 의미일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것 하나만은 명징하게 말해주는 셈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설익은 독자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 같다고 할까. 봄에는 너무 싱그러워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기피하고 등한시한 시를 가을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설익은 독자래도 매해 깊어가는 가을마다 시 한 수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 같다고, 다시금 얼치기 같은 핑계를 내뱉어본다.  

 

*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시집인 것만은 아니다. 만약 지난 시간들 속에 여기저기 너부러져있는 기억들을 아주 촘촘한 그물로 한데 그러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안도현의 이 시집은 그보다 더 디테일한 무엇이다. 가령, 어린 날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뛰어다니다가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간 아이가 방에 들어서면서 마주하게 되는 군침 도는 점심밥상 같다고 할까. 그보다 점심밥상 위를 살포시 감싸고 있는 ‘밥보(밥보자기)’를 보면서 온갖 맛있는 상상에 빠져들 수 있는 잠시잠깐의 숨고르기 같다고 할까. 시라는 진수성찬을 살포시 덮고 있는 ‘시보’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들춰내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 된 듯했다. 


저녁 먹기 직전인데 마당이 왁자지껄하다 

 

문 열어보니 빗줄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와서 진을 치고 있다 

 

둥근 투구를 쓴 군사들의 발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온다 


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빗소리」_ p21∥ 


눈을 감고 오래도록 상상해본다. 아주 어린 날,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간 외가에서 때 아닌 ‘백만대군’이 쳐들어와 마루에 하염없이 걸터앉아 심심함에 몸서리치던 때를 기억 아니 상상해본다. 비의 장막이 쳐지고 밥 짓는 냄새가 알싸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당 쪽인지, 비의 장막 너머 아련한 산이며 논이며 밭의 풍경 쪽인지, 이도저도 아닌 아예 부엌 쪽으로 코만 뻐끔하게 열어뒀는지 모른다. 방아깨비의 안부보다 낮 동안 비닐하우스 안에서 성글게 익어가는 참외의 달달한 맛이 궁금했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무말랭이」_ p45∥  


무말랭이라는 말을 언제 처음 ‘알아’듣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보다 여전히 나는 오그락지, 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시인처럼 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그락지’를 보며 눈물 글썽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 일 년 내내 빠지지 않고 항상 냉장고에서 제 맛으로 익어가는 것, 늘 밥상 위에 올라 나를 폭식하도록 꾀어내는 반찬이 바로 오그락지다. 엄마는 나 때문에 다른 식구들은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오그락지를 일 년 내내 마련하신다. 꼭 무를 직접 썰어 베란다 화초들 사이에 잘 말려낸 탓인지 아직은, 시인처럼 슬프지 않고 향긋한 맛이라 더없이 행복하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예천 태평추」부문_ p59∥ 

 

예천에 가본 적도 그곳에서 태평추를 먹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일명 ‘묵국’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대구에도 있다. 태평추처럼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을, ‘볶은 돼지고기’는 없지만 아무렴 어떨 묵국을 종종 먹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옆 서문시장에 즐비한 일명 ‘할매 포장마차’에서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추석 때도 큰고모가 묵을 손수 해 오셔서 성큼성큼 잘라 푸짐하게 먹었던 게 아직도 선명하다. 밥까지 말아먹어서 그런지 내게는 ‘갯내’보다 ‘논내’며 ‘상수리숲내’가 더 짙게 남아 있다. 물론 ‘수더분하고 매끄’럽게.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_ p62∥  

 

어린 날, 세 들어 살았을 적에, 엄마가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아빠가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만, 종종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아빠도 엄마도 종종 들고 왔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런 날, 내가 좋아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작은 방안이 어딘지 모르게 따숩고 정겨웠던 환했었던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그것이 아빠 혹은 엄마의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처럼 느끼기엔 난 너무 어렸었다. 

 

한 3분쯤 마당귀 두드리다 가는 빗소리 데리고 살까  

 

까치발, 까치발로 크는 상사화 옆에 살까 


풀어놓은 다람쥐 불러들여 도토리 던져주며 살까 

 

땅에다 혼자 혀를 박고 있는 삽 한 자루 되어 살까 

 

짐승의 발소리 하르르 알아맞히는 고사리 되어 살까
∥「허기」_ p79∥ 

 

어쩌면 아무리 진수성찬의 밥상 앞에 만날 삼시세끼 잘 챙겨먹는다고 한들, 삶의 허기까지 채워질까. 물론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나, 대개가 물질문명의 병폐니 어찌나 하는 시시껄렁한 소리로 위안을 삼지 않더라도 그 허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안다. 그 무엇이란 조금은 두려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또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살은 탓에 부대끼지 못해 이미 쇠약해져버린 오성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허기를 오롯이 만족할 만큼 채우거나 대체할 순 없다하더라도 조금은 살살 달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

『인생은 지나간다』에서 구효서가 추억의 통로로 삼은 것은 사물이었다. 그 사물들 중에는 이미 ‘지나간 것’도 있었으며 다분히 아직도 ‘지나가는 것’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아직 실체가 없는, 미래의 사물 또한 ‘지나간 것’ 혹은 ‘지나가는 것’의 익숙한 것을 통해 그 낯설음을 상쇄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도현은 아주 상다리 으스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을 차렸다. 추억의 통로임과 동시에 지난 생을 반추하고, 지금 지나고 있는 생을 잠시 쥐어본다. 그리곤 지금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서 허기진 삶을 배불리 먹이고픈, 시인 홀로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욕심쯤을 거뜬하게 부리는 듯하다. 


덧붙여, 이젠 배곯을 시절도 아니고 그런 처지도 아니지마는 어쩐지 이 시집을 보노라면 허기가 지는 듯하다. 그 허기란 끼니를 챙겨먹지 못한 배고픔 따위가 아니라 잃은 것, 잊은 것에 대한 애달픔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천진하리만치 단순하고 해맑았던 내 미각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시인이 이렇듯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는데, 눈으로 우걱우걱 먹는 일만 했음에도 여전히 허기가 지는 건 왜 일까. 숭늉 대신 비저 나오려는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훌쩍 삼켜보는 서글픔이어라. 그런 밤이어라. 

 

《이 시집에 나오는 그물로 낚고픈 자글거리는 햇살 같은 말》

욜랑욜랑, 우묵하게, 나박나박, 도닥도닥, 오슬오슬, 싸리울, 허청허청, 오글오글, 하르르, 차랑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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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11-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는 아들이구나..^^

ragpickEr 2009-11-25 10:48   좋아요 0 | URL
후훗..^^*;; 저는..내놓은 자식(?)인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