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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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내 꾀에 ‘꼴까닥’ 보기 좋게 당할 때가 있다. 그리 두껍지 않으니 수삼 일 안에는 읽어낼 수 있겠거니, 사진이 많으면 그만큼 만만하겠거니, 글이 많지 않으니 이번에는 굼벵이 책읽기를 면할 수 있겠거니 하며 집는 책들은 죄다 나를 정신 못 차리게 옭아맨다. 종종 이런 나의 오만방자함은 보기 좋게 ‘즉결심판’ 당한다. 세상 어느 것도 만만한 게 없듯이, 책 역시 적어도 ‘읽어내기’라는 끈기와 의무, ‘주워 담기’라는 자기화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하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이 그 출처이다. 그보다 앞서 출간된『지울 수 없는 이미지1·2』에 담은 사진 1천2백여 매 가운데 1백 장면을 엄선해 문인들이 직접 겪은 체험담(「내가 겪은 6·25전쟁; 김원일·문순태·이호철·전상국」)과 함께 엮은 것이 바로『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다. 다시 말해, 앞서 출판된 책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은 일반 대중을 위한 보급판 포토에세이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글이 참 빼어난 책이다. 6·25전쟁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을 만큼 생생한 네 문인의 체험담은 정말이지 ‘명품’이라 할만하다. 조금 과장해 덧붙이자면, 신랄한 굿판에 빠져드는 기분이랄까. 신명나게 한(恨)서린 넋두리를 풀어내는 그들의 필력은 단숨에 나를 당시의 전쟁고아로 만들어버렸다. 말로는 죄다 표현할 수없는 내 속에 숨은 응어리와 글로는 죄다 담아낼 재간 없는 나를 아예 6·25전쟁 통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귀중한 자료로써 사진이 갖는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것 또한『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 갖는 매력 중 하나이다. 한 컷에 담긴 이미지들은 6·25라는 시공간의 ‘현재진행형’으로써 살아 숨 쉰다. 내 시선은 과거를 보는 초점을 상실한다. 아득한 미지의 소실점으로 내달리다 그 ‘현재진행형’에 동화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체된 것 혹은 지난 것, 과거사에 대한 사실이나 하나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나와 함께 숨 쉬고 생동하는 ‘공간성’을 확보한다고 할까. 사진과 메모, 문인들의 생생한 경험담, 문학작품을 비롯한 참고문헌들이 빚어내는 빛은 가히 눈이 멀고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충분하다.

가슴이 아픈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학살에 대한 증언들과 마주할 때마다 치가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사진은 학살의 과정을 차례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운명조차 가늠하지 못한 표정으로 손이 묶인 채 카메라를 의식하는 모습, 곧장 손에 쥐어진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간 모습, 그 위에서 많은 총부리들이 구덩이를 향해 발악한 뒤 죽은 자들의 표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처형을 담은 한 장의 사진 속 까까머리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자갈밭에 엎드린 채 서로의 허리께 높이로 묶은 손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그 까까머리 청년의 표정은 아직도 지우기 힘들다. 너무도 앳된 얼굴에 곧 온몸에 총구멍이 날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메라에 복잡한 표정을 들이민다. 내 눈을 응시하던 청년의 서글픈 눈빛과 복잡한 표정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말을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어디 가슴 아픈 사연과 사진이 앞서 말한 것뿐이랴. 그 원혼들을 고작 한 시간 가량에, 그것도 달랑 종이 몇 장도 안 되는 공간에서 위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그럴만한 능력도 내겐 없지만. 이 책에서 사진이 전쟁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전하고 있다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네 문인들의 경험담은 60년 가까운 그 기나긴 세월을 좁혀준다. 여러 문학작품과 참고문헌들은 설득력 있게 사진과 경험담을 뒷받침해주며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을 곱씹어보며 반성해본다.

‘당신은 6·25전쟁에 대해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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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겪은 인공치하 석 달」_ 김원일 소설가
전쟁으로 농사조차 짓지 못한 들판은 황량했고, 더러 철길 가에 버려져 있는 시신을 보기도 했다. 한데라 밤이면 추위가 살을 저몄다. 누울 자리조차 없으니 누나와 나는 꼭 안고 하늘에 뜬 별빛을 바라보며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났다. 가장 고통스럽기는 기차가 굴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석탄의 힘으로 가는 증기기관차가 뿜어내는 매연 탓이었다. 기차가 속력이 늦은데다 아무리 코를 막아도 스며드는 석탄 매연을 참을 수 없어 모두 기침을 쏟아내며 어질머리를 앓았다. 굴이 길 때는 그 매연에 질식하고 마는 갓난애와 병약한 노인도 있었다.[p41~p42]

*「골짜기마다 떠도는 고혼들」_ 문순태 소설가
어느 사이엔가 다발총을 든 카키색 제복이 사라지자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경찰들이 돌아왔다. 그 무렵 낮에는 경찰들이 진을 쳤고, 잠에는 산사람들이(빨치산을 산사람, 밤손님이라 불렀다) 마을로 돌아와 밥을 지어 달라고 하여 먹거나 식량을 가져가곤 했다. 산사람들이 마을에 나타난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경찰들이 몰려와서 밥을 해준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낮과 밤의 세상이 서로 달랐으며 마을 사람들은 양쪽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지서에 붙들려 간 사람들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문을 받았고, 성한 마을 사람들이 초주검이 된 이들을 지게에 짊어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나타난 밤손님들은 마을 남정네들한테 식량을 지워서 산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낮 세상과 밤 세상 사이에서 시달리게 된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살얼음판을 딛는 듯했다. 단 한 순간도 생과 사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p72~p73]

그날, 나는 토벌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죽은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당이며 고샅, 동구 밖 느티나무 밑, 하천가 자갈밭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이날 우리 마을에서는 일곱 사람이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골 할머니와 아낙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p77]

한국전쟁이 남긴 결과를 먼저 살펴보면, 우선 지적돼야 할 것은 엄청난 규모의 인적 손실이다. 전쟁은 무려 4~5백만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남겼는데, 이것은 당시 남북한 인구 3천만 명의 약 6분의 1, 즉 약 6명당 1명의 한국인이 전쟁으로 인해 손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좁은 영토에서 이토록 집중적으로 많은 인명이 손실된 전쟁, 도는 혁명적 격변은 근대 이후의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그리 많지 않다. 1가구당 최소한 1명의 피해를 말해 주는 이 수치는 당시 한국인 누구도, 어느 가족도 전쟁의 광포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말해 준다.|박명림「한국전쟁의 구조: 기원, 원인, 영향」.『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박현채 엮음), 소나무, 1992, 124쪽|[p83]

전쟁은 대규모 집단학살을 수반했다. 전쟁 초기의 학살로는 형무소 재소자 학살과 보도연맹원 학살이 규모가 컸다. 가장 규모가 큰 집단학살인 보도연맹원 대학살은 경찰과 군에 의해 7월초 평택 부근에서부터 시작되어 북한군이 들어오지 못한 경상남도와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자행되었다. 이 대학살로 최소한 5만 명 이상, 많으면 1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은 최고위층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학살은 빨치산 등 좌익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서중석 지음,『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05, 104쪽|[p83]

어린 남매가 이미 숨을 거둔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길가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이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사진자료; p115]

한 미군 병사가 안양에서 전투중 눈먼 소녀를 돕고 있다. 소녀는 왼쪽 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때때로 전쟁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홀로 살아가야만 했다. 전쟁이 잔인하다는 것은 아이들은 전쟁의 부조리에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양, 1951. 2. 5.[사진자료; p118]

해군 소장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낮 없이 폭격했다. ··· 그것은 아마도 한 도시에 이루어진 함포 공격이나 공중 폭격으로는 역사상 최장시간일 것이다.” 그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산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원산에서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다. 24시간 내내 어느 곳에서도 잠을 잘 수 없다. 잠은 죽음을 의미했다.”|브루스 커밍스·존 할리데이 지음, 차성수·양주동 옮김,『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89, 158쪽|[p143]

*「내가 겪은 6·25전쟁」_ 전상국 소설가
내가 북한군 병사를 처음으로 가까이 본 것은 우리 집 마루에 걸터앉아 여봐란 듯이 자기 키만큼 긴 총을 내게 보여주다가 오발 사고를 낸 한 열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빡빡머리 소년 병사였다. 그날 이후 나는 북한군 생각만 하면 그날 자신이 낸 총소리에 놀라 나와 함께 마루에 나자빠졌던 그 어린 병사의 얼굴부터 떠올랐다.[p154]

무서웠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낯선 사람은 낯설어서,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무서웠다. 다른 세상을 만나 살기 띤 눈으로 기세등등하던 어른들이 그해 9월쯤에는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을 청년들한테 잡혀 죽임을 당했다.
마을 사람들 칼에 찔린 자식이 빠져나온 창자를 끌어안고 신음하다가 죽자 그 시신을 부둥켜안고 밤새 절규하던 그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해 가을 퇴각하는 북한군 패잔병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키고 숨어 있던 어른들의 살기 띤 눈만 봐도 우리는 오줌이 마려웠다. 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힌 북한군 하나가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태극기를 꺼내 만세를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우리 집 부엌에 숨어들었던 북한군 병사가 마을 청년들한테 잡혀 나가면서 나를 바라보던 그 절망적인 눈빛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붙잡힌 북한군 패잔병들은 진격해 오는 국군에게 인계되기도 했지만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의해 대부분 마을 인근 골짜기로 끌려가 땅속에 묻혔다.
어른들이 북한군을 산속에서 그렇게 처치하고 돌아온 밤은 유난히 마을 사람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북한군 부대가 곧 마을로 들이닥쳐 그 보복을 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가 산 속에 숨은 채 밤을 새웠던 날도 있었다.
사람 목숨이라는 게 정말 별게 아니었다.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비행기 폭격에 온 가족이 살점을 흩뿌리며 죽었어도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원초적인 증오심과 동물적 공포감만이 번뜩였을 뿐이다.[p155~p156]

청주 근처 그 광산촌에서 장질부사를 앓을 때, 바로 우리 옆의 움막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피란을 나온 만삭의 아낙네가 해산을 한 뒤 배가 고파 실성을 한 끝에 낳은 아기를 끓는 물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그 아낙네도 죽고 말았는데 경찰 가족으로 아버지마저 만나지 못한 그 집의 어린애들 둘이 움막 앞에 쪼그려 앉아 볕쪼임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p157~p158]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민족상잔의 전쟁도 3년으로 끝났다. 얼마나 많은 동포가 서로 쏘고 찌르고, 죽고 죽였는가! 얼마나 많은 동포가 남북에 들어온 외국 군대의 폭격으로 살상되었는가. 가뜩이나 가난한 겨 례 의 재산이 잿더미로 화해 버렸으니 살길이 막막하였다.|이영희,『분단을 넘어서』, 한길사, 1984, 304쪽|[p161]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
|최인훈,『광장』, 문학과 지성사, 1980|[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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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4-2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가면 꼭 한 번 봐야겠군요. 눈빛은 좋은 빛깔의 책을 만드는 곳인 듯...

ragpickEr 2009-04-29 03:51   좋아요 0 | URL
나무처럼님^^* 반갑습니다. 한 번 접해보셔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눈빛'은 그래도 의미있는 책을 많이 만든 곳이라 들었답니다. 코멘트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라며..

에샬롯 2009-05-2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농사를 잘 지으시네요.^^ 잘 보았습니다. 육이오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겠지요.

ragpickEr 2009-05-30 07:17   좋아요 0 | URL
글농사..^^* 정감있는 표현이네요~(기억해뒀다 몰래 써먹어야겠어요..후훗.)이 책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진도 있고..오는 달 25일에 그 아픔 되새겨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에샬롯 2009-06-01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 데가 있다니 기쁜데요. 다음달에 육이오가 있군요. 잊고 있었어요. 잊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하 마음이 또 무거워지네요. 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어선 안되는 것이죠. 동포가 겨레가 피를 흘린 그날 기억해야겠지요.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ragpickEr 2009-06-01 08:19   좋아요 0 | URL
정감있는 표현을 만나서 저 역시 기쁩니다..^^*
네. 육이오가 있지요.. 잊으면 아니되는..^^*..
맞아요..다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요. 요즘의 불안감이 그로 그치기를..^^*
 
따뜻한 슬픔 - 조병준, 사진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2008년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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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슬픔.

어떤 슬픔들은 따뜻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그 알량한 온기로
서로 기대고 부빌 때,
슬픔도 따뜻해진다.

차가운, 아니다, 이 형용사는 전혀 정확하지 않다.
따뜻한 슬픔의 반대편에서 서성이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주어야 하는가.
시린 슬픔?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다.

기대고 부빌 등 없는 슬픔들을 생각한다.
차가운 세상, 차가운 인생 복판에서 서성이는 슬픔들······
「따뜻한 슬픔」전문; p77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그 ‘기적’같은 말을 믿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말로는 정확하게 꼬집을 수 없지만 그 ‘느낌’이란 게 좋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교감에 나도 모르게 몸이 달아오를 때가 있다. 느낌이 좋은 사람, 느낌이 좋은 가게, 느낌이 좋은 그림 등을 만날 때, 그 알 수 없는 ‘한순간’은 내 몸을 파고든다.

책과 첫눈에 반하기. 아마 이번이 처음이거나 몇몇 손꼽을 만큼도 안 되는 듯하다.《따뜻한 슬픔》은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게 파고든 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 한 장과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애달피 우는 듯 한 ‘거부할 수 없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나 할까. 우연일지도 모르고, 운명일지도 모를, 어쩌면 아주 우아하게 ‘숙명’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그 ‘한순간’은 나를 다독이고 내 안의 모든 슬픔을 녹이는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다채로운 사진과 더불어 시를 함께 담고 있다. 오롯이 이해할 수도, 그럴 만한 능력조차 없는 내게 조금은 버겁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영상미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시인이 남긴 흔적(시)을 내 낙서로 채워갈 수 있게끔 이끌었다. 정제된 단어로 완성된 시가 사진을 통해 영롱한 빛깔로 날아올랐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시구들은 제 빛깔을 찾아 방황하다 내 손에 잡혔다. 오롯이 이해할 수 없던 시들이 그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엇을 읽어냈으며 무엇을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그 ‘한순간’을 느꼈을 뿐이다.

때때로 사진과 시가 너무 착! 하고 달라붙는다. 억지로 구겨 넣어 구색을 맞추려한 실수(?)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귀여운 어린애 장난처럼 보이는 것은, 시가 그렇던 사진이 그렇던 간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것’들로 구겨져 있기 때문이랄까. 좋다면 한없이 좋아 책이 지저분해질 만큼 부인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해, 그렇게 끝남이 없었다. 그뿐이다.

모든 생은 더부살이어라. 당장에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결별을 선언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다짐해보지만, 결국은 어느 곳에, 누군가의 어깨와 잇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그걸 순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런 꼬리를 달고 애써 닿아있지 않은 척해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닿아있는 우리네 생.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의 시린 겨울 앞에 조금은 담담하고 따뜻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주워 담기¨¨‡‡‡‡‡‡‡‡‡‡‡‡‡‡‡‡‡‡‡‡‡‡‡‡‡‡‡‡‡‡

네, 미친 것 맞습니다.
물에 허천 들린 것 맞습니다.
마른 땅에서 자라야 하는 천성 따위 엿먹이고 싶었습니다.
굴러 굴러 물가로 갔고 거기에 뿌리내렸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홍수 찾아와도 뿌리 악물고 버텼습니다.

네, 미친 것 맞습니다.
물에 허천 들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천성 따위 내 알 바 아니었습니다.

마른 땅에 자라는 나무에는 내려앉지 않는
당신들, 날개 달린 종자들이 그리웠습니다. (「물 속의 나무」전문; p21)

분별하지 않고 살기,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생,
고단하다.

저 안개 속 강처럼, 나무들처럼,
분별없이, 분별하지도, 분별당하지도 않으며 살고 싶다는,
흐릿한 욕망. (「분별」부문; p45)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그래서 멈춘 시간 속에 함께 멈춰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린다」부문; p60)

비 그친 도시에 내리던 마지막 햇빛.
그 추운 햇빛 아래 겨울 나무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에 날개 젖은 새 한 마리 있었다.

내가 나무였는지 새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생인들 나무였던 적, 새였던 적 없을까.
상대가 나무이길 원하면 새가 되고
새이길 원하면 나무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들, 누구에겐들 찾아오지 않을까.

추운 겨울비 속을 날아온 새 한 마리 위해
겨울비 그친 저녁의 차가운 햇살 가려줄
이파리 하나 없는,
참 한심하게도 가난한 나무,
내가 그 나무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추워졌다.

너와 나, 숲으로 가자꾸나, 새야 (「새, 나무」전문; p64)

언젠가 그런 꿈을 꾼 듯하다.
나, 나무처럼 늙었을 때
역시 나무처럼 늙은 그대와 함께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서는 꿈.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저 나란히 늦은 오후와 이른 저녁 사이를 걷다가
늙은 나무 옆에서
어느 여행자의 카메라에 들어가는 꿈. (「오래 나이 먹은 꿈」전문; p123)

우기에는 비가 내려야 옳다
우기에 쏟아지는 땡볕은 옳지 않다
벼가 시들고 소가 여위고 개가 마르는 건 옳지 않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세상은 옳지 않다
쏟아지는 땡볕을 향해 방패 치켜드는
검은 피부를 향해 비웃는 것도 옳지 않다
눈물 한 방울 보태야 옳다 (「방패」전문; p125)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는
어린 햇빛을 기억하라
틈만 있으면 뿌리내리고 덩굴손 뻗는
담쟁이 잎을 기억하라
산책 나오는 노인들보다 더 일찍 깨어
서로 간지럼 태우며 키득대는
어린 햇살과 담쟁이 잎을 기억하면
생에 놓은 거대한 심연 따위
가볍게 뛰어넘지 않겠느냐 (「틈」전문; p161)

흥, 어떻게 뿌리내린 생인데요
죽기는요
악착같이 기어서
저 높은 햇빛 세상 살아서 봐야죠 (「기어라」부문; p174)

오래 사랑한 자들은 서로 닮는다고?
그리하여 오래 사랑한
꽃과 벌, 꽃과 나비, 꽃과 등에,
꽃과 풍뎅이까지 서로 닮는다고?

잎들 다 똑똑 떨어져 나가도록
꽃잎 너덜너덜해지도록
사랑 찾아오지 않은 저 꽃은
누구를 닮았는가?
하필 장마에 태어난 죄에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오래 외로운 자들은
누구를 닮아야 하는가? (「꽃이 피는 방식에 관하여 3」전문; p189)

종종종 한 시절 살다간 발자국들
저리 고운데 아직도 매달려들 있느냐
집착이라 욕먹고 천하다 구박받던 한 시절
이제 다 지나갔으니
툭 놓아버리면 편해질 것을
훨훨 가볍디가볍게 날아갈 수 있을 것을 (「흔적」부문; p203)

날마다 죽는 해
날마다 뭐 볼 거 있다고 모여드는가
날마다 죽어가는 생 확인하며 서럽기만 할 것을
죽어야 아름답기 때문이지
죽어야 또 살아나기 때문이지 (「선셋 포인트」전문; p230)

모든 흐르는 것들은 덧없다
흐르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없다

덧없는 것들도 모이면 무거워진다
무겁지 않은 기억은 없다

구름, 흩어져 있어도 좋을 텐데
자꾸 모인다
기억, 꼭 그 자리에서 덧나
피고름으로 터진다 (「구름, 기억」전문; p235)

플라타너스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몸에 버짐 퍼진 채로
쑥쑥 키만 자라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손가락 닮은 봄이파리
비 오면 우산 되던 여름잎
방울방울 대롱대롱 따고 싶었던 겨울씨
그렇게 얼른얼른 쑥쑥 자라서
무성하게 그늘 던지고
장난감 선물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방울도 되어주고 총알도 되어주고
그러고 싶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버짐 온몸에 퍼져도
빼빼 말라서 키만 커도
플라타너스로 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착한 나무로 살고 싶었던 시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플라타너스」전문;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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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의 약속 -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 이창성 사진집
이창성 지음 / 눈빛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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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을 시작으로『장날』,『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인상 깊게 보면서 사진집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졌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28년 만의 약속』은 일단 제목에서 뭔가 사연이 있음이 느껴져 관심이 증폭(?)됐다. 5·18에 관한 사진집이라기에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부제 ‘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을 포착(?)하고는 뭔가 불안한(?)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특종과 낙종사이에서’라는 목차를 보면서 내 불안(?)은 깊어졌다. 반면, 취재일지를 통해서 그날의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던 건 꽤나 괜찮은 수확이었다.

전체적으로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진집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강의시간에 여러 영상자료를 통해본 암울하고 보다 사실적인 장면들을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 사진들만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저자 서문 ‘광주항쟁과 나의 사진기자 30년’이라는 제목을 찬찬히 뜯어봤다면, 도중에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서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사진기자 30년’을 회고하고 때론 ‘특종’을 통한 기념의 순간, ‘낙종’을 통한 아쉬움의 순간이 ‘광주항쟁’보다 더 짙게 배어있기도 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혼자만의 기대감 때문에 ‘항쟁에 관한 보고’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감흥이 줄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5·18에 관한 사진들은 여태 본 것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다. 도입부 스무 장 남짓 사진은 컬러사진이다. 5·18을 늘 흑백사진으로 접해온 나로서는 컬러사진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굉장히 다채롭고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는 점은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들의 중요도(?)와는 무관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또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사진, 발악하는 사진 등의 일색이 아니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운이 감도는 순간을 담고 비장함까지 서려있는 모습들을 주로 담아냈다. 5·18전체를, 그 피의 현장이 타깃이 아니라 그해 오월, 그곳에 살았던, 오로지 오월을 견디고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담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달리 보면, 아주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나부러져 있는 시신들, 도청 진압작전 직후 상황,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군이 아닌 일반 시민의 죽음, 시신운구 과정에 투입된 청소차량(일명, ‘쓰레기차’) 등의 사진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진 속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씁쓸하고 건조한, 어떤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듯 한 그 표정들이 더더욱 나를 아프게 했다. 그네들의 마음을 죄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늘도 한두 시간이 고작이지만 조용히 그 ‘오월’을 잊지 않으려 애쓴 나를 위로해본다.

저자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매년 5월이면 나는 광주항쟁 기간에 마주쳤던 시민군들의 그 형형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게 취재편의를 제공해준 시민군 지휘부는 계엄군 진압 때 거의 모두 사망했다. 살아남은 자로서 그들에 대한 채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낸 의도가 무엇인지 잘 배어있다. 하지만 사진집을 덮고 이 구절을 곰곰이 되새겨보며, 차라리 제목(‘28년 만의 약속)을 부제(‘5.18 광주항쟁과 특종의 순간들’)로 정했다면 좀 더 솔직한 책(?)이 되어 좋았을 걸, 생각했다. 그랬다면, 내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독자가 이 책의 리뷰에 “책 제목을 ‘28년 만의 약속’보다 차라리 ‘28년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 했던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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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의 약속』찾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다. 도서관에서 혼자 30여 분 동안 책을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총 두 권 중 한 권은 다른 캠퍼스에, 나머지 한 권은 분명 이곳에 있다고 나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 끙끙대다가 결국은 근로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참을 찾더니, ‘이 책 여기 없네요. 잠시만요.’ 어디론가 가더니 담당자를 포함해 세 명이 두 팔 걷어 부치고 와서 뒤적뒤적한 결과 근 한 시간 만에 찾았다. 무튼 엉뚱한 곳에 책이 꽂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책을 찾느라 고생한 그네들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던 게 생각난다. ‘다들 시험공부 하느라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건(?) 뭐임?’하는 눈빛이랄까. 전공서적도 아닌, 전혀 연관성조차 찾을 수 없는 책 네 권(『말과 사람』,『다신전茶神傳(사진으로 읽는)』,『탐욕의 시대』, 그리고 어렵게(?) 찾은『28년 만의 약속』)을 든 나를 의심스레 쳐다보더라. 책상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책을 뒤적이는 내내 뒤통수가 따갑더라니.(ㅡ,.ㅡ*;) 앞으론 열심히(?) 혼자 힘으로 책을 찾으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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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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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햇귀님 덕분에 ‘최종규’라는 작가와 이 책을 알게 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접해보면서 왜 진작 접하지 않았나, 하고 나를 책망했을 만큼 의미 있고 좋은 책이다. 묵혀 뒀다 읽어야지,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핑계와 게으름 탓에 늘 가벼움과 흥미위주의 유희에 의미 있는 시간들을 저당 잡힌 꼴이 되기 일쑤이다. 이젠 좀 재깍재깍(?) 바지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추천받은 책, 선물 받은 책, 괜찮은 느낌이 드는 책 등등을 너무 묵혀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헌책과 헌책방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헌책의 개념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이는 굳이 헌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이며, 우리가 암암리에 잘못 규정하고 받들고 있는 책에 대한 오류(?)들을 다잡아주는, 다잡아가자는 노력이 잘 배어 있다. 다시 말해, 책이 갖는 총체적 의미를 하나씩 뜯어봄으로써 우리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기도 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다음과 같다.

∥헌책이란?∥
*‘누군가가 읽거나 보며 사람 손을 거친 책 가운데 상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책이거나, 다른 손을 거치지 않았지만 새책방에서 더는 팔 수 없는 책이거나, 비매품, 자비출판물 가운데 책에 붙은 값(정가)을 안 따지고 요즘 시세에 맞춰 파는 책’(p54~p55)

*‘어느 곳을 가더라도 다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책’
*‘비싼 찻삯을 치르고 품과 시간을 들이면서도 책 한 권을 찾으러 먼 나들이를 떠날 수 있도록 이끄는 책’
*‘두 손과 얼굴, 옷과 몸에 책때와 책먼지를 잔뜩 묻히면서도 씩 웃으면서 고를 수 있는 책’
*‘세상에 딱 하나뿐인 책’(p56)

*‘어떤 책 하나를 읽고 만지고 다루고 즐긴 사람들 손길과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
*‘우리 문화사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
*‘옛사람들 발자취를 거슬러올라가면서 살필 수 있는 터전’
*‘어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모습과 느낌을 간직한 자취’(p57)


이렇게 헌책에 대한 저자의 색다른 해석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또 다른 맛인 헌책방 탐방(?)과 맞물려 그 재미를 더한다. 대체로 수도권지역에 있는 책방을 위주로 정리를 해놓았으며, 부분적으로 부산, 청주, 대전 등등의 헌책방도 몇몇 정리가 되어 있다. 각각의 헌책방에서 자신이 만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책방 임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사진,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한홍구, 백창우, 윤구병),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오에 겐자부로, 최민식, 이오덕, 안정효) 등 먼지를 한 움큼씩 머금은 채로도 즐거울 수 있는 알곡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헌책방의 책손으로서 지켜야 할 다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헌책방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어서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해묵은 책들을 다시금 책장에서 꺼내 손질(?)하게 된 것도 저자가 말해준 책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본래 갖고 있던 책뿐만 아니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보다 깨끗한 모습으로 기존의 책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을 선사해준다.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뿐만 아니라 책등이나 책날개, 그 속, 내지 등의 묵은 때와 먼지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책을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둘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을 아끼고 바로쓰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이를 알리기 위해 집필을 하기도 한다. 격월간 1인 잡지인《우리말과 헌책방》을 통해서도 그를 만날 수 있고,《헌책방에서 보낸 1년》에는 수도권지역을 위주로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는《모든 책은 헌책이다》보다 더 많은 전국의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북로그(‘함께살기’라는 북로그 제목으로)활동을 한 경험도 있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저자와 그가 말하는 헌책방,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를 엿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많은 자료와 좋은 정보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도움이 될 만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저자만큼 골수까지 헌책방을 탐닉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헌책방을 자주 가는 책손 중 한사람이다. 매번 불규칙하긴 해도 한 달에 적어도 두어 번은 헌책방에 들러 묵은 먼지와 함께 몇 시간씩 그 좁은 곳에 쪼그려 앉아 반가운 책, 생소한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잡지 등을 만난다. 덤으로 주인할아버지(책방 임자)와 일상적인 담소도 나누면서 책에 대해, 요즘의 책손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요즘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고른 책을 셈할 때처럼 긴장된 순간도 없었다. 마치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한 순간이랄까. 좋은 책을 골랐구먼, 나도 자네만할 때 이 책을 본 것 같아, 등등 한마디씩 던지시는 말씀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마냥 기분 좋은 무엇이다.

재미난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면,《모든 책은 헌책이다》 이 책을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구입했다는 것이다. 신기하면서도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나 스스로 만족함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오묘한 만남이었다고 할까. 또 자주 가는 헌책방 주인할아버지께서 내가 들고 간 이 책을 보시면서 알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시며, ‘참 재미난 책도 다 있네, 한 번 봐도 되겠나?’ 하시며 뒤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저자 최종규 씨가 이곳, 내가 자주 가는 이 헌책방에도 들린 적이 있고 앞서 말한 다른 책과 인터넷에 그 정보를 올려둔 걸로 안다. 기억하시는지 어떤지 모를 주인할아버지의 미소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 흐뭇한 그 무엇으로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끝으로, 책 곳곳에 ‘즐김이’라고해서 헌책방 주변의 괜찮은 먹거리, 산책로, 식당 및 포장마차, 술집 등의 정보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헌책방 찾아가는 길을 저자가 설익은 그림솜씨로나마 직접 그려놓아 그 주변에 사는 책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헌책방 나들이를 통해 ‘책’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기호에 따른, 취미나 직업적인 성향에 따른 책 혹은 책읽기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알게 모르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함께 삶아가는 ‘책’이란 존재와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워 담기¨¨‡‡‡‡‡‡‡‡‡‡‡‡‡‡‡‡‡‡‡‡‡‡‡‡‡‡‡‡‡‡

우리는 보통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이 헌책방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예요.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은 새책방에 많습니다.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돈벌이 거리로 만든 시류와 흐름을 타는 책들이 새책방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달라요. 헌책방 헌책은 맞돈(현금)을 주고 사서 책방 안에 갖춰 놓는 책들입니다. 반품이 없이 파는 헌책방 헌책이기에 엉뚱하거나 안 읽힐 책은 한 권도 안 갖춥니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기에 갖추는 게 헌책방 헌책이에요.(p23~24)

책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이 하나되어 묶여야 나옵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려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 위에 또 한 가지 더 붙여야 됩니다. 그건 바로 좋은 책을 알아보는 우리들입니다. 알아보고 사서 읽는 우리들이에요.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서 읽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p84)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책방도 가 보고 동네에 있는 작은책방도 가 보세요. 그리고 가끔은 먼 곳에 있는 헌책방으로 마실가듯 가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책을 느껴 보아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어떠한지, 책 한 권이 가진 느낌과 무게가 어떠한지 말이에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우리 삶에 어떤한가를 찬찬히 느낄 수 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서 나 한사람도 튼실하게 가꾸고 내가 몸담은 사회와 나라나 모임도 알뜰히 북돋을 수 있답니다.(p141)

출판 문화와 사회 의식구조 모두에게 헌책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그냥 ‘폐기물’로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분리수거로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헌책방을 돌고 돌며 싼값으로 여러 사람들이 즐겨읽을 수 있도록 내놓을 수 있는 ‘사람 손을 타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p150)

==>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화의 그늘이랄까, 그것은 철저하게 고급정보를 소수자들이 공유함으로써 빈부의 격차와 계급간의 격차를 발생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며, 끝내는 소수에게 다수가 종속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나 책이라는 정보의 형태는 팍팍한 가계를 꾸려가는 많은 이들에게는 섣불리 쥘 수 없는 정보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빌어, 헌책방이 보다 체계적이고 좋은 발전을 함으로써 계급간의 정보력의 격차를 줄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천 원짜리 책이라고 헐하거나 모자란 책은 아닙니다. 다만 값이 천 원밖에 안 할 뿐이에요. 값이 천 원이든 만 원이든 책마다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는 남다릅니다. 헌책방을 다닐 때 천 원짜리 책도 꼼꼼히 살피고 눈여겨본다면, 책마다 다르게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를 느끼고 익히는 가운데 책을 보는 눈길도 새롭게 익힐 수 있다고 봅니다.(p172)

라면값, 콩나물값 오르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이요, 농산물값은 늘 제자리걸음이라 등허리가 휘도록 죽을 고생을 하는 농사꾼 걱정도 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삶이 참 팍팍합니다.
어둡고 어려운 곳에서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 이야기는 묻힙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낡은 가계부와 편지와 일기장 속에 그런 이야기가 묻혀서 흐르고 흐르지 싶어요.
어렵던 사람들 삶, 힘들던 우리들 삶, 애먹고 가슴 아픈 이야기는 묻힌 채 흐르다가 어느 때엔가 헌책방에서 다시 살아나지 싶어요.(p222~p223)

<흙서점>아주머니는 거의 그냥 얻다시피 하는 그릇이 많아, 흠이 있는 물건은 거저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공짜로 줄 수는 없어 500원, 100원 정도 받고 판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을 남을 생각해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알아 보셨답니다. 바깥에 내놓는 헌 그릇이 한 달에 십만 원어치쯤 팔린다고 하시는데, 그 그릇을 팔아 얻은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신다고 합니다.(p247~p248)

<고구마>아저씨는 “대학교에 헌책방학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과가 없어도 “문헌정보학과에서 헌책방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현실 감각에 맞는 수업도 하면서 책 문화를 키워 나가야 좋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p284)

==> 요즘 대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비인기학과와 생산성과 경쟁력 면에서 매력이 없는 학과들을 ‘줄 폐업’시키고 있다. 장영희 교수가 말하는 ‘문학의 수난시대’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나도 얼마 전까지 느꼈었다. 친구 녀석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는데, 녀석의 수업을 자주 숨어(?)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강의내용이긴 했지만, 너무 틀어박힌 듯 한 느낌이 강했다. ‘하이브리드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언제고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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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글쓰기 나남산문선 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기획 / 나남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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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꽤나 오래전에 사들이고는 드문드문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본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사들일 당시에는 내가 아는(?) 작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분히 이름만 들어봤거나 작품을 한두 개 혹은 아예 접하지 못한 내 부족한 경력(?) 때문에 다소나마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뭔가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저자들의 작품을 차례차례 접해보는 것?)를 거쳐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은 판단미스(?)였다. 작품에 이끌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 못지않은 매력이《내 인생의 글쓰기》에 배어 있다.

전체적으로 ‘그’들의 사생활이 잘 녹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어떤 시절을 거쳤으며 어떤 동기들이 지금에 그들이 있도록 했는지 간략하게, 비교적 상세하게 녹아 있다. 더군다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각자 한마디씩 던지고 있어서 기분 좋은 무게감(심오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조금은 친숙한 느낌. 동네 아저씨, 삼촌, 이모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문학의 길’에 대한 이야기랄까. 무튼 편안함을 기본으로 자질구레한 이야기와 적잖은 무게감까지 두루 섞인 그들의 ‘문학일기’를 엿본 건 정말이지 행운인 듯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그들 대부분은 ‘읽기’로부터 다시 태어났다. 무엇을 읽었나? 동시집, 시집, 세계문학전집 등등 통칭 ‘책’읽기가 그들을 시인, 소설가로 재탄생하게 만들었다.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를 하거나 어떤 책을 읽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딱딱함은 없다. 그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그때 이러이러한 책을 만났지, 그냥 책이 좋았어,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지,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험(감동)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러웠어, 아마도 그래서 글을 쓰게 된 건지도 몰라, 내 속에서 용솟음치는 어떤 강렬한 욕구가 내게 펜을 들게 한 것 같아, 라고 회상하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도 글쓰기에 대해 거창하거나 고귀한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보는 책을 쓴 사람이 ‘사람’이니까, 뭔가 의미가 있든 없든 한 편에 글을 썼다는 것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에 빠져 등 소소한 자기성취라는 개인적인 욕구와 보편·단순한 진리를 따라 실행에 옮기다보니 어느덧 글쓰기가 인생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 세상 누구나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며 그 책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읽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적인 것이며, 소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며, 그런 서로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읽음으로써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학의 근본은 무엇일까.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문학의 뿌리는 외로움, 슬픔, 고독, 불완전, 물질로는 죄다 채울 수 없는 뭔가 아쉬운 것에 대한 의문, 마냥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 물밀듯 밀려오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 등등이다. 문학은 글을 씀으로써 탄생하지만 그 시작은 앞서 말한 이 모든 것에 기인한다. 자기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생각이 견고해지고, 세상을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려 기꺼이 펜을 들게 되는 것. 그로 인해 문학은 시작되고 만들어지며 비로소 탄생한다. 읽는 이와 교감함으로써 문학은 끊임없이 재탄생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비록 문학의 길이 좁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그 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일상과 삶 속에 그 씨앗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고 싹을 올리고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소멸하더라도 이곳은 문학을 기억할 것만 같다. 물질적인 모든 것과 육신의 소멸과는 무관하게 우리네 의식은 어느 곳이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의식은 문학적 씨앗이 가진 가능성을 기억할 것이고, 찬란하면서도 일상적인 소소한 멋을 자랑한 꽃봉오리를 추억할 것이다.

어쩌면 ‘문학수난시대’라 일컫는 요즘, 역설적이게도 그 좁은 길은 더욱 뚜렷해지고 보이지 않는 의식의 끈으로 묶인 결속력은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문학의 뿌리는 고통과 슬픔, 외로움 등등을 근간으로 하기에 이러한 시련을 먹고도 더욱 견고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문학수난시대라는 지금의 위태로운 이 시기에 비로소 문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곳곳에서 피어나는 그윽한 문학적 향기에 취해보는 것, 그 향기를 직접 세상으로 날려 보내보는 것, 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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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시작되었고, 나는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썼다. 그 길고도 긴 인생의 길이 책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내 책이 다른 책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나는 신기하다. 내가 처음 글을 써보려고 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많은 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저 책을 쓴 것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그리고 나는 글을 써보기 시작했던 것이다.(p030)

【김원우; 책읽기와 글쓰기의 고락】
잘 썼든 못 썼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그 득의감은, 과장이 심한 상투적 표현을 끌어다 쓰면, 천하를 얻은 성취감과 견줄 만하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세상의 이치에 대한 부분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나름의 시각·설명·해석으로 풀어보였으므로 자가당착의 빈말만도 아니다. 게다가 극소수의 독자들로부터나마 동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자부심은 꽤나 알찬 것이기도 하다.(p053)

【도종환;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려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삶에서 받은 상처를 오래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해와 사랑의 부족, 그 결핍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소외의 기억, 소통의 부재 그런 것이 글을 쓰게 하는 원인인 경우가 있다. 이런 상처와 소외와 고통이 도리어 재산이 되는 분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상처가 스승이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인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인 것이다.(p064)

글을 쓰는 이들 중에는 개인적 시간, 개인적 공간 속에 오래 갇혀 지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언가를 쓰고 또 쓰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끝없이 자기를 알리고 싶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기표현이야말로 자기존재의 확인인 것이다. 부재의 시간 속에서 소통을 향한 신호를 끝없이 날리는 일이다.(p065)

【서정오; 글장이는 별종인가?】
이제는 정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 농사꾼과 행상과 어부와 노동자가 글을 써야 한다. 공연히 어려운 말로 젠체하는 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절로 터져나오는 내 생각과 내 느낌과 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글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글이 온 세상에 강물처럼 흘러넘쳐야 한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글을 읽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쓴 글을 국회의원이 읽고, 농사꾼이 쓴 글을 대학교수가 읽고, 염전노동자가 쓴 글을 장관과 법관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감동하며 배워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바꾸어 말해도 물론 마찬가지다.(p092~p093)

【성석제; 문학의 뿌리와 샘, 감동】
“내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흙손이다. 언제나 밭을 매고 김매고 흙과 떨어지지 않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은 흙처럼 거칠다. 흙처럼 메마르다. 흙처럼 볼품없고 푸석푸석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싸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바로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
왜 나는 감동했을까.(······) 내 어머니의 손에는 흙이 묻어 있기보다는 부지깽이가 들려 있을 때가 많았다. 동네에서는 비교적 농사를 많이 짓고 식구가 많은 집안인 데다 머슴까지 두고 있어서 늘 밥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손은 빨래 때문에 거칠 수도 있었지만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흙 묻은 손이나 어머니 때문에 감동한 게 아니었다.
나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 보편의 감동에 닿았던 것이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감정, 감각에 나는 당황했다. 왜 머리카락이 곤두설까. 왜 눈꼬리가 시큰할까. 왜 침이 마르고 혀끝이 아릿할까. 나는 일어나 앉아서 다시 그 동시를 읽었다.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이가 두 자리 숫자인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눈물이.(p101~p102)

【신달자; 문학적 자전 - 여자의 길, 문학의 길】
그 많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고 외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얼굴은 보이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찾는 마음의 내면읽기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문학 그리고 시를 찾아 나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p118)

【안도현; 처음처럼】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p155)

【안정효;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된 사연】
나는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어디엔가 응모하고 당선되어 나의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과정은 설계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썼다.
밤낮으로 썼다.
정말로 행복했다.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답답한 구석방에 틀어박혀, 바깥세상을 뒤덮은 한여름 열기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방석 깔고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는, 서예라도 치는 듯 펜촉에 잉크를 듬뿍 찍어 검(劍)처럼 치켜든 다음,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채워 나갔던 모든 순간이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는, 거의 50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p178~p179)

【우애령; 뗏목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과 슬픔이 평안과 기쁨보다 더 많이 삶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휘두르는가···, 우리는 운명에 맞서 싸울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한 무력한 존재인가···. 의문은 지금도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해 보려고 절망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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