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동화
이탈로 칼비노 외 지음, 전대호 옮김 / 궁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뭣도 모른 채, 그냥, 나무를 좋아한다. 볕이 잘 들지 않는 어느 구석에서 약간은 삐딱하게 자라는 측백나무가 좋고, 내가 졸업한 대학교 동문에서 우리 집 앞까지 아주 길게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 회화나무가 좋다. 높다라니 웃자라 늘 시원시원한 메타세쿼이아가 좋고, 여느 초등학교 운동장에나 꼭 한 그루씩은 있는 두툼하고 훤칠한 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좋다. 지하철 타러 가는 지름길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배롱나무가 좋고, 샛노란 꽃술이 소담스러운 산수유나무가 좋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서 좋고, 목련이며 자목련은 큼지막한 꽃이 벌름하게 피어서 좋다. 


졸업하고 나서는 나무에 대해 공부(?)하는 게 아예 시큰둥해졌지만, 그나마 영영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언젠가 말했듯이 북로그를 하면서 나무를 조금이나마 공부한 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 중 하나인 나무를 통해 나는 조금 더 개구쟁이처럼 살갑게 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척이 아니라 북로그 세상은 잠시나마 학교에서 했던 나무공부의 연장이라 할 수 있고, 만남이고 소통이며, 위안이고 행복인 듯하다. 어디든 배움은 움트고 마음먹기에 따라 배움은 내 것이 되며 나눠가질 수 있는 작은 지혜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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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동화』는 아주 단순하게도(요즘은 책을 비교적 단순(?)하게 선택한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사들였다.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럽고 기분 좋은 일일진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동화!’라 하지 않는가! 비록 어릴 적에는 나무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에라도 이렇게 그저 바라볼 줄 알게 된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늘 보고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 아래에 코 흘리던 시절의 나를 살포시 그려보는 심정으로 이 책을 들춰본 게 아닌가 싶다. 


이 책 속에는 세계 각국의 나무와 관련된 전설이나 민담이 담겨져 있다. 또 창작동화가 몇몇 함께 담겨 있기에 더없이 다채로운 빛깔을 낸다고 할 수 있다. 중간 중간에 조금은 뜨악한 느낌으로, 조금은 피식하고 웃어볼 수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다. 지루하다니! 이 무슨 망발인고! 오, 천벌을 받을진저(요즘『그리스인 조르바』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런 말투가 나온 것 같네요.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구미가 확하고 당긴 결정적인 이유는 미셸 트루니에, 르 클레지오, 이탈로 칼비노와 같은 눈에 익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작가들 역시 신선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조금은 당황(?)했던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 동화라고해서 너무 아름답고 잔잔하며 푸근한 이야기만을 잔뜩 기대한 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동화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몇몇은 동화라기엔 조금은 당황스럽고 섬뜩할만한 이야기도 있으니 혹시나 이 책을 보실 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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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숲과 문화」라는 야외수업전용(?)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수님(쥐똥나무)은 교정을 이곳저곳 거닐면서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해주신 기억이 난다. 샛노란 개나리꽃 앞에서는 먼 옛날 인도의 어느 공주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벽계수나무 앞에서는 설탕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양버들 앞에서는 손수건이 흠뻑 젖을만한 애잔한 이야기를, 살구나무 앞에서는 그 옛날 공자가 행단(杏亶)에 서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이야기를, 소나무 앞에서는 진 시황제 이야기를, 배롱나무 앞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에 관한 이야기를, 모란꽃 앞에서는 당태종과 진덕여왕에 관한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에는 동화도 있고 전설이나 민담도 섞여 있었으며, 역사이야기도 많았다. 죄다 기억할 순 없지만 나무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몇 안 되지만,『나무동화』속에 등장하는 나무들 각각 내포하고 있는 ‘정서’는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가령, 이 책에 나오는 수양버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드러내는 정서란 그리움, 애잔함과 같은 것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역시 그와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이야기에는 장수(長壽)라는 의미도 포함한다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나무란 대체로 비슷한 정서와 의미를 내포하고 상징하는 일종의 ‘공통어’ 혹은 ‘공용어’처럼 들리더라는. 


***

만약,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나무동화-한국판』을 만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여도 좋고, 그것을 각색한 것이라도 좋다.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여도 좋고,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여도 좋다. 해서, 우리만의 색을 가진, 우리 정서로 이해할 수 있는 나무동화가 어른이건 아이이건 너나할 것 없이 널리 읽히고 전해지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오기를 소망한다. 이야기 속에 꿈과 희망은 물론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디딤돌 같은 나무동화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언젠가는 분명, 반드시, 높다란 빌딩 숲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주변에 널리고 널려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전해줌으로써 아름다운 지혜가 아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속에 한 그루 나무처럼 견실하고 미련하리만치 우직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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