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길
베르나르 포콩 사진, 앙토넹 포토스키 글,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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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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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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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딴엔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헌책방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쾌적하고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곳이고, 다른 한 곳은 그나마 선풍기 두 대가 있긴 하지만 여름에는 정말이지 사우나 하러 간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지 않으면 안 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거기다가 주인 할배는 정말이지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하기까지 한 곳이다. 당신이라면 이 한여름, 더군다나 그것도 극서지라 불리는 이 대구 땅에서 어느 헌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길 텐가? 어느 헌책방을 더 자주 가겠는가?  


나는 여름이면 비교적 사우나(?)를 하러 더 자주 간다. 그저 헌책방이 통상적으로 갖는 낭만적 이미지, 허름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꼬장꼬장하기까지 한 주인 할배가 있는 헌책방에는 깔끔하고 쾌적한 헌책방보다 보물(사진작가 김중만의『동물왕국』을 두 시간 여의 사우나를 통해 찾았다!)이 많이 숨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 할배를 감히 비교하자면, 무뚝뚝한 할배가 내공(?)이 더 세다(?)! 아무리 오래되고 낡아빠진 책이라도 좋은, 괜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결코 똥값(?)으로 셈하지 않는 걸 보면서 그 내공(?)을 느꼈다고 한다면 이해가 가시려나 모르겠다.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역시 사우나 헌책방에서 만났다. 사실 오래 전부터 늘 그 자리에 꽂혀 있었던 걸 얼마 전에 사들였다. 헌책방에 쭈그려 앉아 표지며 책 곳곳을 훑다가 뭔가 필(?)이 오더라는! 사진 속 전우익 선생(?)이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한 사우나 헌책방 주인 할배랑 어쩜 이렇게 닮았을까! 오, 놀라운지고. 깊고 선명한 주름하며 머리 모양새, 얼굴형과 눈매 그리고 분위기(?)까지 놀랍도록 닮았더라는. 주인 할배와 사진 속 전우익 선생을 연신 번갈아 보면서 내 심장은 콩닥거리기까지 했다.  


이 책은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가 수년 간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엮은 책으로 단순히 안부를 묻는 차원이 아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움도 배어 있으며,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아닌 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자연 · 생태적인 삶을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손수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고 그 결실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그 값진 노동의 가치를 실천하고, 땅의 진정한 가치와 쓰임에 대한 철학이 아주 짙게 배어 있다.  


오늘날 일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정신 노동, 육체 노동으로 나누어졌는데 이것도 빨리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耕讀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耕은 독讀을 필요로 하며, 독讀도 경耕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방에 틀어박혀 책상 붙들고 앉아서 천하명문이 나온다면 천하는 무색해질 것입니다.(p57) 

 

저자는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자처한다. 하루하루가 달갑고 다르며 값지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농사꾼이다. 이런 저자를 두고 육체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경독耕讀의 일체화’ 없이는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 좀 굴린다한들 진정한 노동이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육체만 놀려서 힘써 일한다한들 마찬가지가 아닐까.  


예전에 읽었던 수공업자들에 관한 책에서 깨달은 바는 그네들은 몸을 놀리면서 일을 하고 밥을 생산하지만 결코 육체적으로만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의 철학이나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노력이라는 구슬땀을 통해서 ‘제구실’을 하고 ‘만족’하더라는. 그런데 과연 정신노동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 역시 이러할까? 머리 쓰고 펜대 굴리는 것에 익숙한 대부분의 정신노동자들에게는 아무래도 ‘경독耕讀의 일체화’를 찾아보기가 힘들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건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제가 거처하는 방에 우이牛耳 선생님의 글씨 한 폭이 걸려 있습니다. ‘한울삶’이란 것인데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삶 자에서 가장 작은 점 하나 떼어 보자고 그랬더니 싦이 돼요. 싦이란 사전에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래요. 확실히 싦은 싦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점 하나를 찍으니 ‘삶’자가 되어요. 삶에서 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점 하나는 누구나 뗄 수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 힘 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점 하나가 삶이 되고 뒤범벅이 되는 큰 일을 하는 건 마치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는 이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뒤범벅이 삶이 되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아주 작고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올 봄의 소원으로 삼고 싶습니다.(p67)  


며칠 전에 본 아우구스토 쿠리의『드림셀러』에서 ‘스승’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난다. 마치 제비처럼 작으나마 제 날개에 알맞은 일을 하고 그만큼의 나눔과 도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야말로 세상은 바뀐다고. 즉, 제 존재에 알맞은 삶을 인식하고 재량껏 세상을 위해,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주변 이웃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에서부터 삶은 변화하기 시작하고 세상을 바꾸는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 자랑할 요량도 없이 조금은 수줍은 듯 자신을, 주변을 보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바라는 그런 좋은 세상,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최근에 읽은 에모토 마사루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작은 의식들이 모여서 발휘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하고 의식적으로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작게나마 노력하는 그 과정 속에서 ‘형태의 장’이 형성되고 이 장이 서로 ‘공명’함으로써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표현방식과 접근방식이 다를 뿐 전우익 선생이나 아우구스토 쿠리, 에모토 마사루 모두가 세상을 바꾸는 근본은 큰 힘이 아닌 작은 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

『드림셀러』를 읽어나가면서 ‘스승’의 정체에 대해 몹시(?) 궁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전우익 선생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는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어나가기 전에는 그저 어느 농사꾼이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읽어나가다 보니 앞서 말했던 사우나 헌책방 주인 할배처럼 내공이 상당하더라는.『드림셀러』에서 정체불명의 ‘스승’을 두고 그는 미치광이인가 현자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과연 전우익 선생은 정녕 농사꾼인가 철학자인가 혹은 인문학자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 


시인 신경림은 전우익 선생을 ‘깊은 산골에 약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편지글 속에 담긴 그의 철학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이해가 되더라는. 그는 세속적인 것을 거부한 채 은둔생활을 하는 풍류랑(?)이 아니다.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는 하지만 그는 고귀한 땅 위로 곡진한 땀 한 방울을 흘릴 줄 아는, 그 땀방울의 의미를 아는 철학자요 농사꾼이요 인문학자인 것이다. 약초를 캐는 사람도 아니고 약초 그 자체인 것이다. 깊은 산골에서 흙 묻은 손으로 두서없이 써내려 어디론가 부치는 그의 편지는 그런 약초의 기운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

이 책에 사진을 담당한 분은 사진가 주명덕이다. 그의 작품은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온『주명덕』밖에 접해보지 못했다. 아차! 얼마 전에 책엄마께서 보내주신「2009 오디세이」초대권 덕분에 서울에 올라가 직접 그의 작품을 만났었군! 무튼(?) 그의 심오한 작품 세계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이 책에 실린 전우익 선생의 사진을 보면서 전우익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살짝 맛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죄다 비슷한 모습과 표정, 포즈라 무성의하다고까지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 내용을 통해 전우익 선생이 전하는 따끔한 채찍질(?)에 단련(?)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이 무게감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디서나, 무엇에서건 늘 배우는 사람이 저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작은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서도 배울 게 있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으로 ‘늘 배우는 사람’이면서 ‘늘 행동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의 얼굴에 선명한 인생의 깊은 골은 배움으로 충만하고 하얗게 덥힌 머리칼 아래로 빛을 발하며 상대를, 사물을, 세상을 응시하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은 결연하게 느껴진다. 꾸밈없고 가식 없는 순수 빛 그 자체를 뿜어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만약, 인간 본연의 눈빛 혹은 심연의 눈에서 새어나오는 빛의 기원을 찾는다면, 아마도 그의 눈빛과 다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주워 담기¨¨‡‡‡‡‡‡‡‡‡‡‡‡‡‡‡‡‡‡‡‡‡‡‡‡‡‡‡‡‡‡

스님, 밭에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까 잡초 독초가 기를 쓰고 자랍디다. 곡식이 자리 잡고 제대로 크면 잡초가 맥을 추지 못합니다. 세상도 그런 게 아닌가 여겨 봅니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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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틀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틀은 사람을 잡습니다. 논밭만 있으면 농사  지을 수 있다고 여겨 왔는데 세상이란 큰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깨달은 농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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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요.(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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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지나간다
구효서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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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사진가 김홍희 때문이다. 김홍희 때문에 그의 흔적이 있는, 숨결이 녹아 든 사진이 담겨 있다는 이유, 그것만으로도 무작정 책을 구하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마침맞게 한 권을 구해서 사진만 연신 훑었다. 책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나는 조금이나마 그 흔적을 벗겨내려고 박박하게(?) 굴었다. 어리석은 짓이었지! 제목을 보라! ‘인생은 지나간다’가 아니던가! 때론 지나간 시간을 오롯이 간직할 줄 아는 지혜는 책에 깃든 세월과 소소한 흔적들 그리고 콧구멍으로 들이켜 마셔도 죽지 않을 만큼의 먼지를 음미하고, 감상하고, 털어내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

『인생은 지나간다』는 우리 곁에 늘 있고 익숙하다 못해 시시하게 느끼는 모든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란 ‘옛’이야기이며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통로’라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 사물들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물이란 때론 지금은 보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고 지금도 역시 흔하디흔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산재한 많은 사물들 혹은 이젠 우리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물들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넘어서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일지라. 


우리 곁에 널려 있는, 많은 사소한 사물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중층적 정보들로 가득차 있을뿐더러, 생명과 존재가 연출하는 ‘삶’의 충실한 반영자며 증거물이다.(p11)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많이도 만만하게 사소한 사물들을 등한시 하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그렇다. 사물이란 어쩌면 단지 도구로써의 역사적 증거물이기보다 한 인간 아니 인류 전체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인류 생활사의 단면이요, 인류의 삶의 패턴을 읽어낼 수 있는 정보로 가득 찬 삶의 지질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사물의 변천사는 곧 인간의, 인류의 변천사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과거를 지나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이 산재해 있다는 걸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나 있나 모르겠다.  


하나의 사물. 그 존재와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이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쓰임을 바꿔가면서 선명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볼품없이 버려졌다가도 어느 누군가를 통해 새로운 쓰임과 의미와 해석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묵묵히 인간보다 더 충실하게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인간의 기억 속에서 혹은 그날그날의 계획의 범주로부터 배제되는 그 순간에도 도처에 널린 많은 사물들은 역사성을 갖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인간은 역사라는 광대한 흐름 속에서 늘 ‘과거’ 아니면 ‘미래’에 속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현재’라는 이 시점이란 인간에게는 영원한 딜레마일 수밖에 없지만, 사물은 언제나 이 흐름 속에서 늘 ‘현재’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역사의 증거로 존재하는 건 아닐는지.  


이 책은 어휘의 풍부함을 맛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내가 워낙 어휘력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늘 어려운 책은 거들떠보지 않는 내 고약한 독서습관 혹은 그런 편식에 익숙했는데 이 책을 통해 어휘의 풍부함이 선사하는 ‘글맛’ 혹은 ‘문장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자동차」「주전자」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특히나 재미있었다. 짧은 삶을 살은 내게 페이지마다 꽤나 소중하고 흐뭇한 추억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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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sante님 작업실에서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난다. 그때 오갔던 대화중에 모든 사물은 우리네 기억과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물을 작은 여유를 가지고 5분 동안이라도 응시하고 마주하게 될 때면 까맣게 잊고 살다시피 한 나도 모르는 옛 추억과 조우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추억과의 조우를 틈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지도 모른다 등등의 대화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어떤 기억도 추억도 인간의 의식의 한 형태로서 존재하기에 끊임없는 창조의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사물은 기억을 틈타 추억 속으로 흐르고 추억은 다시 기억으로 저장된다, 저장된 추억은 내 속에 들끓는 어떤 열정 혹은 의지와 맞물려 의식화되고 어떤 행위를 낳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행위란 아마도 창조적 행위, 작은 몸짓에 불과할지언정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행위가 아닐까. 삶이라는 미완의 징검다리를 끊임없이 잇고 기어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 그 시발점에 사물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인생이란 지나가고 지나오는 건지도 모를 하나둘 엮인 징검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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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핸드백 속에 누구나 손거울 하나쯤은 갖고 다닌다. 아예 거울이 파운데이션 케이스에 부착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일까.(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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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씩 없어지는 걸 겪는 것이다.(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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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마셜 지음, 유향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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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그를 시작한지 2년 정도가 지나고 있다. 북로그 세상을 개구쟁이처럼 뛰어다니면서 절실하게 느끼고 깨달은 게 있다면, 이웃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내 삶의 스승이구나! 하는 것일지라. 매일같이 개구쟁이마냥 버릇없이 굴어도 자상하게 너그럽게 어르고 받아주신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양 오만한 낙서를 휘갈겨놓아도 ‘그건 아니다!’가 아닌 ‘그건 좀 다른 것 같다’고 나 스스로 잘못 인지한 점을 깨닫도록 이끌어주신다.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염려해주신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시고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주신다. 정말이지 북로그를 하면서 나는 이웃님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동시에 내 속에 가득 찬 삐뚤어진 생각을 비우게 되는 듯하다.  


북로그 세상의 많은 스승님들 중 개인적으로 ‘적재적소’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 드는 분이 있다. 햇귀님! 햇귀님 앞에서 나는 ‘꼼짝 마라!’다. 내가 부려놓은 생각들, 내가 휘갈겨놓은 낙서들 틈을 파고들어와 지금 내 마음 상태까지 꼬집는 햇귀님 앞에서는 정말이지 ‘꼼짝 마라!’다. 나도 인간이기에 때론 에둘러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고약한 것은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에둘러 놓고는 내 심정을 알아달라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바라고 바란다는 것. 햇귀님은 단칼(!)에 ‘네 속마음을 내가 알지, 요놈아!’하신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정말 북로그 초창기 때는 햇귀님이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

“ ······ 다시 한 번 일어서서 폭풍에 맞서는 행위가
어리석어 보이거나 심지어 자기 파괴적인 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게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마음 어느 구석엔가는 번뜩이는 도전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단다.
그것이야말로, 그 도전 정신을 일깨움으로써
폭풍이 우리에게 강해지는 법을 가르치는 방식이 아닐까 싶구나.

얼마나 많이 불어 닥치건 간에 폭풍에 맞서 대항하다 보면,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굳이 폭풍만큼 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단다.
그냥 서 있을 정도로만 강하면 되느니라. 

겁에 질린 채 떨면서 서 있든, 주먹을 휘두르면서 서 있든지 간에
우리가 서 있는 한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  


∥..본문 中..∥  


『그래도 계속 가라』는 마인드맵을 견실히 가꿀 수 있게 해주는 책인 것 같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자기계발서라는 꼬리를 달고 있는 책을 지독시리도(?) 안 보는 편이다. 사실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내 문제가 무엇인지, 적어도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확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걸 고백해야 하는 부끄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리뷰가 늘 엉망인 이유가 이와 다르지 않다(아! 지금도 삼천포로 빠져버리지 않았는가!).

마인드맵을 가꿀 수 있게 해준다고 느낀 이유는 삶에 대한 성찰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실천적 내용도 그런 과제도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은 기분이다. 삶이야말로 인간의 최종 목표이고 목적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삶은 삶일 뿐이고 그냥 ‘있는 것’이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렇게 ‘있은’ 삶을 어떤 마음으로 인식하고 살았는지 이야기해 줄 뿐이다. 삶은 그냥 그렇게 늘 ‘있는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길을 잘 다듬으며 그저 ‘살아가는 것’에 충실하고자 ‘마음먹음’으로 인해 길은 자연히 열리고 선명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운명도 숙명도 모두 그 속에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해.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더디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또 우리가 지닌 것이라고는 그 마지막 한 걸음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과 우리 자신에게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빚을 지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딘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하려무나.(p120~p121)

내 걸음걸음이 너무나도 무겁고 힘겨웠을 적에, 북로그 대문에 ‘체’아저씨의 고뇌에 찬 사진을 내걸고서 엉뚱한 낙서만 매일 같이 해댈 적에, 햇귀님은 단 한 문장으로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걸 기억한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이 한 문장에 정곡을 찔렸던 것이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한 건 전혀 부끄럽지도 더 이상 걸음이 무겁지도 않았음을 기억한다. 위의 인용한 구절은 햇귀님이 내게 하는 말 같기도 했으며, ‘체’아저씨가 ‘Hasta la victoria siempre!’를 외치며 시작한 멋진 연설문 같기도 했다. ‘단지’ 한 걸음이 아니라 ‘오직’ 한 걸음이라는 걸 가슴에 새기게 된 구절이다.  


**

앞에서 햇귀님과 어울리는 말이 ‘적재적소’라 했던가.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당시, 나는 마치 오줌이 마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심정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냥 가라! 어디든 가서 시원하게 오줌보를 비워라! 참아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꼭 이런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 책을 보았지만 그 당시에는 책 제목만 만날 쳐다보면서도 위안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런 틈을 파고들어와 어떤 메모도 없이 날아든 이 책. 제목처럼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계속 가라고, 지금은, 아직은, 물론 언제나 그렇게 계속 가야만하는 게 삶이라고. 햇귀님은 그렇게 차분한 인상과 참 어울리는 미소만 지긋하게 짓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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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의 하이쿠 기행 전3권 박스 세트
마쓰오 바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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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최고!! 고급스러운 박스며 재질이 정말 마음에 쏙들어요~무엇보다 두툼한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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