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슈운지 감독, 스즈키 안 외 출연 / 엔터원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날이 쌀쌀해지면 질수록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붕어빵이 등장하고, 군고구마가 등장하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거의 본능에 가까운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끈한 어묵국물이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것, 갓 구워낸 붕어빵에서 피어나는 것, 군고구마 통이 그 옛날 기차에서처럼 칙칙폭폭 하며 뿜어내는 것,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따끈한 콩나물국이 전하는 것 등은 그리움 때문에 더욱 애잔한지도 모른다. 호오,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불어보는 따숩은 입김처럼, 본능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움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디 눈에 보이는 것, 특히나 먹을 것만이 그러할까.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마음이 쓰이고 조금은 허한 기분으로 그리움과 대면한다. 누구는 이미 떠난 사람을 바람결에 살며시 부여잡아볼지도 모른다. 누구는 지난 시간을 반추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기억이라면, 하는 바람 역시 알듯 모를 듯 한 그리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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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맞게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이때,《하나와 앨리스》가 나를 감싸주러 왔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그 속에 뭔가 꽁꽁 숨긴 듯 한 표정으로. 무엇을 꽁꽁 숨겨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강 이야기는 이렇다.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선배’라는 미야모토가 내게 준비해온 연극을 펼친다.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순조롭게 시작해서 점점 실타래처럼 꼬이고 어느새 눈두덩이만큼 커진다. 미야모토를 짝사랑하는 하나가 미야모토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최면(?)을 걸면서부터 미야모토는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다니고, 하나는 그 최면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앨리스는 엉겁결에 미야모토의 옛 애인이 되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역시 줄거리 요약은 너무 어렵다! 나머진 상상에 맡깁니다!?). 


재미난 것은 이 세 사람이 사랑을 이해하는, 사랑에 눈떠가는 방식이다. 뭔가 가슴 뭉클하면서도 절실한, 알듯 모를 듯 한 이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마치 갓 알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본능적으로 날아보려고(?) 시도해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사랑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하나는 결국 진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걸었던 최면을 풀고 앨리스와 미야모토 그리고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미야모토는 사랑의 관대함에 대해 한 수 배운 듯하다. 앨리스는 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틀을 깨고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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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 마치 오래된 연인이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가 너무도 흐릿하고 아련해지는 듯 한 그런 느낌이 기억상실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채로 어떤 관계라는 끈에 묶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명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난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리 찾아봐야 오롯이 그 기억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서로를 관계라는 오랏줄로 묶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볼 일이다, 기억상실이란 지금, 내일 더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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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슈운지. 검색해보니 영화《4월 이야기》의 감독이더라는. 이번에는 음악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영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왕벚나무 아래에서 흐드러지게 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꽃싸움’을 하는 모습,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하나와 미야모토가 달리고 앨리스는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잔한 음악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4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덧붙여, 일본영화를 많이 못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에 배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숨은 배우(?)를 찾는 재미를 알아가는 요즘이다. 영화《비밀》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히로스에 료코가 끄트머리에 에디터 역으로 잠깐 나온다. 또 몇 해 전 조성모의 어느 뮤직비디오에서 소지섭이랑 김정은과 함께 출연(아마도 조직의 보스로 나왔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오오사와 타카오(이름은 오늘 알았다!)도 나오더라는. 괜스레(?) 반가운 배우를 그것도 둘이나 덤(?)으로 만나서 보는 재미를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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