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희망입니다
고도원 지음, 황중환 그림 / 오픈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고도원을 처음 알게 된지도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아마도 군을 전역하고 이듬해 복학하면서 신청해 들은 경영대학의 어느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리포트에 적은 이메일 주소로「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날아들어 여태껏 좋은 글귀며 좋은 생각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작으나마 실천하려 노력중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확인도 잘 안했었는데 요즘은 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며칠 몰아서라도 확인할 때면 위안도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한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는 앞서 말한「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만화와 함께 새로 엮어낸 책이다. 눈에 익은 내용도 더러 있어서 부담 없이 읽었으며, 카투니스트 황중환의 그림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도 저자 고도원을 아는 독자라면, 더불어「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익숙한 독자라면 더없이 의미 있거니와 아기자기하고 색다른 맛까지 느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저자에 대해, 아침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라 할지라도 편안하고 의미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재능’은 어떤 뛰어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좇는 사람에게 있고, 그 뒤에서 박수 쳐주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p101)  


나는 종종 재능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는 어떤 재 능이 있는가하고.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다른 이들의 재능에 더 관심이 많고 그들이 발휘하는 재능을 내심 부러워하고만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작 내게 잠재된 재능을 찾아내고 구체화시키기는커녕 스스로를 재능 없는 인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한 문제 혹은 나에게만 미안해할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곰곰이 생각건대, 결국은 여태껏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기만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정녕 꿈을 좇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고, 이를 응원하는 이들의 박수소리가 재능을 키우는 것이라면, 생각보다 나는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 있답니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지만 물살이 무척이나 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하나씩 짊어진답니다.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돌을 짊어지고 건너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것은 거친 강물에 휩쓸리지 않게 해줄 고마운 돌인지도 모릅니다.(p21) 

 

요즘 읽고 있는 조셉 M. 마셜의『그래도 계속 가라』에 보면, 삶이라는 여정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나 사건은 양면성을 지니고 인간은 늘 그 속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맥락이지만 약점이 곧 장점이고, 장점이 곧 약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며 이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활용하라고 말한다. 슬픔이나 고통, 비탄, 근심 등의 부정적이거나 안 좋은 상황 역시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을 깨닫고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되새기게 할 만큼 앞서 인용한 구절은,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이 일화는 의미가 깊지 않나 싶다.  


카투니스트 황중환의 그림(만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의 좋은 구절뿐만 아니라 저자 고도원이 삶을 바라보는 어떤 시각 역시 의미 깊지만, 그림 역시 다채로우며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서려있는 듯하다. 때론 잔잔한 색감으로 슬픔에 잠긴 우리를 위로하고, 지친 영혼을 가볍게 터치한다. 유머와 위트로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미소를 잃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 쏟고 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어찌 보면「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오래도록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조금 심심했을 수 있을 이 책을 더욱 감칠맛 나게끔 한 게 황중환의 그림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 이웃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살아간다. 때론 세상으로부터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우주로부터 힘을 얻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늘 누군가로부터, 당장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어느 시공간으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응원하고 박수쳐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거니 받거니 어떤 편에 서 있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스스로를 위해 밝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일 수 있는 아주 작은 힘이나마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희망이고 희망의 전령사가 아닐까. 
 

 

‡‡‡‡‡‡‡‡‡‡‡‡‡‡‡‡‡‡‡‡‡‡‡‡‡‡‡‡‡‡¨¨주워 담기¨¨‡‡‡‡‡‡‡‡‡‡‡‡‡‡‡‡‡‡‡‡‡‡‡‡‡‡‡‡‡‡ 

 

미소 짓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에 다섯 번 씩 미소를 지으세요.
평화를 위해서 for Peace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진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야 한다.
리얼리즘 사진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리얼리즘 사진은 현실에 대한 물음을 그 시작으로 한다.
단지 미학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  


∥..본문 中..∥

때론 아주 겁 없이 달려들 때가 있다. 내 능력으로는 쉽사리 풀어내지 못할 문제에 대해 나도 모르게 달려든다는 말이다. 물론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처럼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고민도 해보고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결론은 늘 모자란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임을 안다. 그저 겁 없는 척 달려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

『사진이란 무엇인가』는 사진작가 최민식의 물음인 ‘나는 사진을 왜 하는가?’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왜’를 시작으로 ‘어떻게’ 와 ‘무엇을’로 나아가는 저자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갈증이 해소되는 듯하다. 적어도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중요시되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묵직한 물음 앞에서 양껏 겁을 먹고 뒷걸음치며 외면할 때마다 느꼈던 답답함은 해소되는 듯했다.  


최민식이 말하는 사진, 즉 ‘가치 있는 사진, 힘 있는 사진’이란 아주 선명하고 명확하다. 리얼리즘과 사실주의를 기본으로 한 사진, 작가정신이 뚜렷한(투철한) 사진,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을 딛고 진화하는 사진, 굳이 컬러만을 고집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진, 객관과 작가의 철학적 교감의 산물로 탄생한 사진, 역사성(기록) · 고발성(사회부조리, 모순 등에 대한) ·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진을 최민식은 생명력이 있는 사진이라고 말한다. 리얼리티! 최민식은 이 리얼리티를 사랑하고 이 사회를, 사람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힘이 느껴진다.

어느 책에선가 최민식에 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딸이 ‘아빠는 다른 사람의 가난을 팔아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했다던 말을 듣고 몹시도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한없이 유약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유약하다는 느낌과는 달리 단호하고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한없이 따뜻한 감성, 그런 마음을 지닌 멋진 사람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최민식은 참으로 강골하면서도 유연하고 부드럽다. 신념과 주관이 뚜렷하다 못해 투철하다. 그의 카리스마가 페이지마다 작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사진작가 김홍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민식과 김홍희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물론 나는 아직 이 두 사람에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태 내가 접한 이 둘의 작품(김홍희의『나는 사진이다』와 최민식의『사진이란 무엇인가』)만을 가지고 비교했을 때, 느낌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나는 사진이다』의 경우는 사진에 입문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았고,『사진이란 무엇인가』는 대체적으로 전문사진작가들의 프로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느낌은 기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김홍희는 편안한 어투이면서 친근한 느낌이다. 그는 내 고물 휴대전화에 탑재된 볼품없는 카메라마저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에 반해 최민식은 대체적으로 전문사진작가를 대상으로 냉정하고 확고한 어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같이 사진에 대해 문외한 사람은 멋모르고 들었던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즉, 최민식은 사진예술을 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관이나 사진에 대한 정신, 철학이 정립되어야 함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최민식 앞에서는 꼭 야단맞는(??) 기분이랄까.  


가장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내가 사랑한 작가’ 와 ‘나의 사진이야기’라는 부분이었다. 최민식이 소개하는 ‘내가 사랑한 작가’에는 대부분 리얼리티를 목숨과 같이 생각하는 작가들이 열거되어 있다. 덕분에 여태 몰랐던 사진작가를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또 ‘나의 사진이야기’에는 최민식의 진솔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한층 더 그에 대한 내 마음이 깊어진 것 같다.  


**

포토저널리스트.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인 지성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이 세계의 모습을 얼마나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가급적 윤색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진 포토저널리스트와 그것을 다이렉트로 받아들고는 스스로 이 세계를 인식해가는 독자(민중)층이 두터워지고 현명해짐으로써 세계는 좀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가지 않을까 싶다.  


‡‡‡‡‡‡‡‡‡‡‡‡‡‡‡‡‡‡‡‡‡‡‡‡‡‡‡‡‡‡¨¨주워 담기¨¨‡‡‡‡‡‡‡‡‡‡‡‡‡‡‡‡‡‡‡‡‡‡‡‡‡‡‡‡‡‡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
“나는 어떻게 찍으려 하는가?”
“나는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p215)
========================================================================  


나는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사회란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된 사회를 말한다. 나는 이를 위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한다. 모든 사진은 순간이다. 그 순간이란 작가의 집요한 관찰에 의해 순간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도 비슷하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가리봉동의 다방에서 책을 읽은 그 학생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즉각적이고 기능적인 판단을 한다.
누군가가 청담동이나 회기동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물건을 사기 위해 남대문시장이나
명동 롯데백화점에 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즉각 판단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 남대문 시장이오, 하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니컬한 금언이 하나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  


∥..본문 中..∥

나는 좀처럼 낯선 시간 혹은 공간에 들어서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여태 대구에 붙박여 살아가고 있고 대구 안에서도 늘 내 걸음이 닿는 곳은 웬만해서는 변화가 없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낯선 시간 속에 있는 나를, 그런 낯선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내가 대구를 떠나 혹은 한국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하철에서 내린 그곳은 평소 내가 종종도 아니고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은 곳이었다. 거리의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햇살까지도 생경한 느낌을 받았으므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는 평생 대구에서 살았기에 웬만큼 대구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로교통(량)실태조사를 몇 개월 한 적도 있어서 어디 근처라고만 해도 ‘동’을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린 그곳은 전혀 내 의식과 다른 분위기로 나를 낯선 이방인처럼 만들었다. 안다는 것, 특히나 어느 한 도시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한 무엇인 듯하다. 또 내가 확고히 믿고 있는 인식에 대한 불확신을 불러일으킨다. 

 

*

『김영하 여행자 도쿄』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확신하는 어느 도시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린다. 김영하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된 것 마냥 특유의 산파술로 우리의 확신게이지(?)를 스스로 줄어들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김영하에 의해 방전된 상태에 이르게 되며, ‘밥 주세요!’를 외치는 휴대전화에 충전하듯 새로운 여행자의 자세 · 마음을 충전하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김영하식 여행법! 단순한 것 같지만 쉽사리 간과할 수 없는 진중함이 묻어난다.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짧은 이야기로 시작해 도쿄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듯 펼쳐지는 사진들과 캡션, 그리고 비로소 만나게 되는 김영하식 여행에 관한 철학과 도쿄에 대한 이미지들. 우리는 이 구성에 따라 ‘앎’에 대한 무지와 만나고 마치 새하얀 의식처럼 방전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의 말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구성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무엇을 풍긴다.  


내 생각에 생뚱맞기도 한 이 짧은 이야기(단편소설?)는 여행 전의 워밍업이 아닌가 싶다. 워밍업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방전’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하게 ‘무지’한 상태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떤 판단도 예상도 없이 그저 도쿄라는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비운 채로 오감으로 도시를 느낀 후에야 비로소 ‘텍스트’라는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보지 않은 곳, 실제 경험하지 못한 곳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의식을 고착화시키는 텍스트가 아닐까. 김영하는 이런 고착상태로의 여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듯하다. 텍스트란 무지한 상태로 느끼고 반응하고 난 후에 생성되는 것이지 굳이 처음부터 다수가 인정하고 말하는 텍스트에 갇힐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는 비단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또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라면 우리는 늘 텍스트에 ‘이미’ 갇혀버린 여행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영하가 말하는 여행자의 특권이란 도시에 대한 무지를 만끽할 수 있는 권리이다. 우리가 평소에 간직하고 의식적으로 무한히 상상할 수 있게 바탕을 제공하는 것은 ‘앎’ 때문이다. 어쩌면 각각의 여행자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앎으로부터 스스로를 과감히 추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추방시킴으로써 우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기운을 받고 느끼게 된다. 그로인해 자신이 숨 쉬고 걸음을 내딛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편견이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방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주워 담기¨¨‡‡‡‡‡‡‡‡‡‡‡‡‡‡‡‡‡‡‡‡‡‡‡‡‡‡‡‡‡‡

그렇지만 내게 여행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호텔은 집이 아니고 여행 가방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며 먹고 싶은 것을 다 찾아 먹을 수도 없다. 카메라도 만찬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거기 익숙해지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뽑아내면 되는 것이다.(p215)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p2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가는 독서 행위에서 책을 ‘매개’로 삼을 뿐 ‘주체’로 삼지 않는다.
독서가는 자기 자신을 주체로 삼는다. 

인간의 사유가 언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서가는 언어의 성찬인 책을 읽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독서가에게 모든 책은 참고문헌일 뿐이며,
책에 있는 텍스트를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고로 하여 자기 내부의 텍스트를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

∥..본문 中..∥

 

언젠가부터 책읽기는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열렬한 독자이면서 고급 독서가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조금 책읽기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예전에는 흥미나 재미위주로 혹은 어떤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책읽기를 해왔다면, 요즘은 자발적인 지적 호기심 때문에 궁리하고 모색하며 책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독서편식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늘 내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어서 오직 그것만으로도 왠지 위안과 안심이 되고 즐겁고 힘이 나는 듯해서 좋다.  


『책 읽는 책』은 책읽기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책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지부터 꾸준한 독서를 이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저자의 경험에 빗대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고급 독서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내재되어야 할 필요사항을 제시하고 더불어 책읽기 초보자(?)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즐거움도 컸던 책이고, 배우고 익혀둘 만한 좋은 습관들도 많아 아주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된 것 같다.  


다분히 책읽기에 관한 어떤 기술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이 고찰한 흔적이 짙고, 책이 갖는 의미와 그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책은 부분이면서 전체인 것이다. 또 수단이면서 목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그 책을 읽는 자신의 생각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를 인식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창조해나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저 ‘책’일 뿐이고, 스스로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창조하는 ‘주체성’이 없다라면 책은 의미 없는 시간 속을 부유하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 중 하나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들 속에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듯하다. ‘정말일까?’로 시작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명제들에 딴지(?)를 걸듯 스스로 묻고 답하고 되묻기를 반복한다. 그런 시간이 축적되어 앞서 인용한 부분처럼 ‘자기 내부의 텍스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이며 사고를 바탕으로 생산된 하나의 창조물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과 시각을 빚는 방법을 배우는 도공과 같은지도 모른다.

결국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 중 가장 성실한 방법이 아닐까. 책 속의 텍스트를 그저 읽고 머릿속에 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인 텍스트는 어떻게든 내 사고와 관계를 맺게 되는 듯하다.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의 형태로 잠재되어 있다가 불현듯 스파크를 일으키며 새로운 시각을 빚어내기도 하고,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낳기도 하는 책은 정말이지 나와 관계 맺는 그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책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텍스트를 성실하게 생산하고 피드백을 통해 수정하고 다시 좀 더 나은 재생산을 반복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의 의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 또한 책이 아닐까 싶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 손에서, 내 일상에서 책이 사라진 모습을. 지금당장에야 그게 가능하지 않을, 코웃음 칠 상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책 좀 읽는다고, 읽었다고 자만하거나 편견 혹은 독단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노력할 따름이다. 그저 평범한 독서가일 뿐이지만 좋은 시력만큼은 유지하고 싶은 바람과 함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9-1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안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결국 책도 자기세계를 만들어 가는 수단이 되어 주는 그 무엇...리뷰에 요점이 잘 되어 있어서 안 읽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디테일이 또 궁금해지네요...요췤!

ragpickEr 2009-10-22 22:16   좋아요 0 | URL
제로님^^*

저도 어느 이웃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요~괜찮은 내용이 많더라구요~^^*

영양가 없는 낙서인걸요..^^*; 늘 좋게 봐주셔서 쌀쌀한 날씨에도 늘 후끈거립니다~으흐흐흐^^*;

디테일..후훗.. 제가 가지고 있다면 드리고 싶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난 책이라서..아쉽습니다~요췍~! 으흐흐~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
악셀 하케 / 대원미디어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된다는 건, 아직도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할뿐더러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이처럼 살아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사람이 단순해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나는 얼마나 단순해져야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게 될까. 본래 쥐뿔도 모르거나 아예 많은 걸 익히 알고 있다라면 생각보다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좀 안다’ 싶을 때 여실히 찾아오는 그런 ‘위험’의 처지에 놓인 듯하다.  


그렇다고 어찌 꿈꾸지 않을 수 있으랴. 말장난 같지만 난 매일 같이 잠자리에 들면 하루에도 몇 개씩 꿈을 꾼다. 그렇게 꿈들은 차곡차곡 기억에 담겨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잊히고 사라져버린다.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멍하니 지난밤의 꿈을 되새김질하며 죄다 기억하려고 애써 보지만 그것도 특별한 꿈이 아니고서야 며칠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다. 무엇 때문일까. 왜 꿈은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일까.  


엉뚱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과 잠자리에서 꾸는 꿈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 관계란 것이 꿈에서 비행사가 되었으니 내 꿈은 비행사야, 는 것과 다른 의미이다. 그것은 밤사이 펼쳐진 꿈이 자꾸 잊히거나 사라진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현실에서 내가 꿈꾸는 삶의 방향이 지난밤의 꿈처럼 자꾸 잊히거나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할까. 낮이라는 또렷한 시간동안 늘 꿈은 희미하게 옅어지는 듯 하달까.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자고 일어나 지난밤의 꿈을 자꾸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야 늘 옅어지기 일쑤이지만····

*

『사라진 데쳄버 이야기』는 우리네 세계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많은 것을 배우면서 점점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르는 그 당연한 삶에 대해 한 번쯤 비틀어보게 한다. 어른이 되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꿈도 바삐 치닫는 발걸음들 사이로 뭉개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는 우리네 삶을 데쳄버 왕은 불쌍하게 생각한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데쳄버 왕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데쳄버 왕이 사는 세계는 삶에 필요한 모든 걸 익히고 배운 상태로 태어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키는 점점 줄어들고 기억력도 흐릿해져만 간다. 데쳄버 왕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작아지고 작아져 자연히 사라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어느 날 먼지처럼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질 때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홀연히 사라짐에 더 가까운 죽음 아닌 죽음이랄까.

데쳄버 왕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신체(키)의 변화도 차이가 있지만 그보다 단순히 말해 생각의 차이, 사고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한히 펼쳐지는 상상력과 누구도 감히 의심할 수 없는 꿈꾸는 나날의 연속이 데쳄버 왕의 세계에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완전 반대인 그 세계로부터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배우게 된다. 꿈이란 결코 나이 듦에 따라 사위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왕이 지난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묻는 부분이었다. 비행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는 말에 왕은 넌 이미 비행사야! 지난밤 꾼 꿈이 현실이고 지금 눈뜨고 생활하고 있는 지금이 단지 꿈일 뿐이야, 라고 한 부분이다. 내가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읽고는 한참을 멍하니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난밤에 혹은 지지난밤의 꿈들을 기억해내려고 집중했었다. 데쳄버 왕의 말이 사실이라면 눈뜬 채 보낸 내 지난날은 모두 허상이고, 지난 밤마다 꾼 꿈들이 내겐 현실이 되는 것이니. 철썩 같이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더듬어보면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

언젠가 걸핏하면 서글퍼지던 때가 있었다. 어찌나 서글프든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혼자 걸어다녔다. 비가 오면 기뻤다.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우중충하고 축축했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 반사되는 나의 슬픔, 그 영상이 나에게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그것을 본 다음에는 아주 외로운 것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서는 다시 터덜터덜 내가 사는 집의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와 의자 위에 떨썩 주저앉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서가와 벽 사이의 작은 틈새에서 데쳄버 2세가 나타났다.(p27)

나는 걸핏하면 서글픈 심정이 된다. 이건 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다. 막연히 서글퍼지는 날은 해가 쨍쨍하고 화사한 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때를 비집고 들어온다. 마침 비가 내리면 나는 조금이나마 행복해진다.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계획들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기 때문일지라. 계획된 일들, 어쩌면 똑같은 일상의 무료함을 비집고 내리는 비는 내게 활력소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 위안이 되고 옴팡지게 비를 맞으며 슬몃 미소 지어보기도 한다.  


언젠가 예고 없이 내리는 비처럼 내 삶에도 데쳄버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그가 내 이정표를 바로 세워줄 것만 같다. 그가 내 항해일지를 과감히 수정해 줄 것만 같다. 그가 나를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언젠가 데쳄버 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대해보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9-1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리뷰가 참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_^d 벤자민은 거꾸로 늙어 태어나도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데쳄버 왕은 그렇지 않았나 보군요... 데쳄버왕도 만나는 그런 좋은 꿈들 많이 꾸고 또 가꿔나가기를! ^_-

ragpickEr 2009-10-22 22:14   좋아요 0 | URL
제로님^^*
코멘트가 너무 늦었지요? 제가 이렇게 살아요..;;

사진은..우연이 만들어준 행운이었다랄까요..^^*; 후훗..
잘 어울린다 해주셔서 참 기분 좋은걸요? 으흐흐~

맞아요~많은 분들이 벤자민을 떠올리시더라구요~후훗..데쳄버 왕은 모든 걸 아는 상태에서 태어나더라구요~그게 차이점인가봅니다..^^*

네~! 언젠가는 만날 테지요~^^*
늘 건강하시어요~으흐흐흐~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