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꽃소식을 묻는 서울 언니의 카톡 문자를 받고 문득 감상에 빠진 하루...
어딘가 꽃은 피었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아파트 화단에서 언뜻 매화꽃송이 몇 개 본듯하여 새삼 '봄'이란 계절은 '봄'이라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인지되는구나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친정 엄마 말씀으로는 마귀가 씌어서 그런다는데 매주 일요일 10시경이 되면 별다른 이유없이 급피곤함이 밀려오고, 안그래도 상당하던 게으름과 밍기적거림의 수치가 최고치에 다다른다. 적어도 10시경에는 교회갈 준비를 해야 예배시간에 맞춰 갈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내가 생각해도 매우 비상식적인 일들로써 심리적인 요인이 매우 강한 것 같다(설마 마귀가....흠....) 오늘도 나는 엄마의 예배보다 엄마의 잔소리 쪽을 할 수 없이 택하며 집에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대청소를 하고, 음식도 좀 여러개 만들고, 두 딸에게 이쁘다는 말을 한 40번 내외로 해주고, 뽀뽀도 20번 정도 해줬다. 큰 딸 유민이에게는 한글을 가르친답시고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바람에(내가 미쳤지....ㅡ,.ㅡ) 둘 사이가 살짝 서먹해졌다. 자신있게 쓸 줄 알았던 '목걸이'나 '반지' 등의 단어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채 쩔쩔매는 딸의 얼굴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겉으로는 쿨하게 '괜찮아 우리딸...이쁘니까 됐어'라고 했다.
둘째 유현이와는 애증관계임이 확실하다는 것을 매주 확인하고 있다. 아주 유치한 방식으로 서로를 시험해보는 모녀인지라 매순간 긴장된다. 흠흠. 이 친구는 좀 기대가 된다.
남편은 굉장히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일상도 단 몇 개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는데 '카메라' '자동차' '여행' '다이어트'가 그것이다. 어제도 뜬금없이 사진찍으로 가도 되냐고 묻더니 애들을 맡긴채 서천으로 휭하니 날아갔다. 석양사진 몇 장을 찍어서 마플로 보내줬는데 사진에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느낌 좋다'는 말 밖에 해줄 칭찬이 없었다. 오늘은 4월 11일 총선에 어디로 놀러갈 것인가를 놓고 굉장히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석가탄신일 연휴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기 때문에 그 둘의 스케쥴을 놓고 고민이 많다. 그 사람이 고민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내 고민이 될 문제이므로 나야 뭐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별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편한한 휴식같은 여행이길 기대하는 수 밖에.....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그런데 자기는 요즘 글 안써?'
라고 묻는 것이다.
'응?'
나는 스페인어로 된 질문을 들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글 안쓰냐고...요새 통 노트북 두드리는 모습이 안보여서...'
다행히 스페인어는 아니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 글이라는 걸 써본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청탁을 받거나 매달 넘겨야하는 원고 몇 개가 있지만 아 참 그리고 강의 원고도 있지만 내가 맘을 탁 잡고 쓴 글은 써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만년필 사줄까?'
'......?'
'왜...지난번에 말레이시아에서 몽블랑 매장 왔다갔다 하더만...'
이 사람이 허투루 지내는 것 같아도 나에 대해 굉장히 세심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실은 면세점에 몽블랑 매장이 있길래 어쩌나 싶어서 갔다가 가격을 보고 흠칫 놀라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됐어...그 비싼걸 내가 왜 써?'
'그래도 글은 좀 써야 하지 않겠어?'
요즘 내 주변엔 나의 글쓰기를 권하는 분들이 참 많다. 백남구 교장선생님께서도 악수하는 손에 힘을 꽉 주시며 기대한다고 수 번을 말씀하셨는데...쑥쓰럽게시리...
눈 깜짝할 사이보다 빠르다는 LTE 폰으로 이리저리 찾더니 기연시 만년필 하나를 사서 내 학교로 배달시켰단다. 선물 메세지도 정성들여 썼으니 잘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왜 갑자기 작가 아내를 원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지만(실제 그는 작년까지만해도 내가 글 쓴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으면 굉장히 짜증을 내던 평범한 남편이었다) 뭐 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서 관뒀다. 대신 스파라쿠아가서 마사지까지 받고 오라고 용돈을 챙겨줬다. 그 비싼 만년필을 선물받았는데 마사지쯤이야 뭐...ㅎㅎ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라는 걸 경험칙으로 알게 되었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글쓰기에서 만큼은 그런 패턴을 이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정년 퇴임을 10개월 앞두고 칸트를 읽기 시작했다는 백 교장 선생님의 고백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왜 젊은 시절에 재주만 믿고 공부하지 않았던가 후회막심이라는 진심어린 조언에 고개가 숙여졌다. 나에게서 큰빛을 보고 돌아간다던 그 교장선생님의 기대와 무심한듯 애정어린 눈빛으로 아내의 습작생활을 응원해주는 남편 그리고 내 가슴속 꺼지지 않는 등불을 위해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할거면 제대로 한다.
이게 김주연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