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함민복 시인은 요즘 인삼 장사 잘 하고 계시려나....

왜 시인은 시만 써서는 살길이 막막해지는 것일까?

전업 작가라 함은 소설가를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시인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인은 막노동이라도 해야 먹고 산다.

함민복 시인은 산문도 잘 쓴다.

이 문장은 시 잘 쓰는 시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의 산문을 읽다보니 그가 참 다양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었다.

어떤 시인은 다른 잡문 읽지 말고 그냥 하루에 한 권씩 시집을 독파해 나가야 좋은 시를 일 주일에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던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 하나는 이렇게 좋은 시인이 많은 세상에 굳이 나 같은 사람까지 시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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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생활 기록장

 

일주일만에 연필을 깎고

지우개를 찾고

온 몸을 짓누르던 갑옷들을 차례로 벗고

책상 앞에 반듯하게 앉아

나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십대가 저물무렵 이미 사망해버린

나의 나를 위로하며 하나둘 복기해가는 글자들

남이 엿보는 남을 엿보는 사생활의 기록들은

연필 끝에서 순서없이 날아올라

멀어져 간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끝끝내 사랑하였다는

지지부진한 고백들이 반복되는 기록은

아이큐 검사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매우 난해하며 난감하며 거의 쓸모없는 노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못 결연한 나의 연필들

부질없는 노동에 대한 애틋함

그래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지우개는 단 한번도 쓰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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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아침나절 시들어 버린 국화 모종의 어린 잎들을

무감히 털어버리고

하루가 다르게 타들어가는 녹황색 비루한 잎을 바라보며

왜 저리 목숨줄이 질길까 쯧쯧 혀를 차는 나는

측은지심 따위 잊어가는 중인 소소한 문명인

한옴큼 물이 없어 비명지를 경황마저 잃은

저 바스락대는 어린 잎들의 촉감

내가 처음 세상과 포옹하던 때의 그것

친숙함에 고개 숙여 인사나누네. 이것은 습관.

무심히 죽음을 지나치는 일

목도한 죽음에 대해 진심없는 애도를 표하는 일

이를 즐기려고 애쓰는 일은 분명 나의 습관 아니 일상

퇴화는 곧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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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밤은 늘 배가 고팠다.

매일 조금씩 달을 갉아 먹는 것으로

허기를 조금씩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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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느날 콩벌레가

 

벽에 다가서는 시간

뒤척이던 밤 사이 근질거리던 갈비뼈가

아치형 무지게로 변신하여

몸을 둥글게 말아 올리는 요가의 세 번째 동작에 집중하는 시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누군가를 향해 팡 소리를 내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는 시간

누군가의 마음이 저 콘크리트 벽을 뚫고 바람의 굳은 살을 헤치며

또 다시 누군가의 마음으로 달려가는 시간

마비된 하반신을 아무리 주먹으로 쳐봐도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시간

희롱과 성스러움의 구분이 없어지는 시간

고통을 모르는 나는 오로지 콩벌레에 집중해야만 하는 시간

콩벌레의 존재 이유와

통곡의 벽으로 질주하는 콩벌레의 본능에 대해

깊이 고찰해야 하는 매우 중차대하고 무료한 시간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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