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행크스 #오토라고 불리는 남자


원작은 오베라고 불리는 남자다. 실제로 오베라고 불리는 남자라는 영화가 따로 있다. 이 작품은 헐리우드에서 재해석하여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탐 행크스에 대한 신뢰로 선택하게 되었는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끊임없이 생을 마감하려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때마다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변 이웃의 존재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간추리자면 Kant와 같이 자신의 신념과 도덕적 원칙에 따라 법 없이도 살 사람인 OTTO는 사랑스러운 아내 소냐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살아간다. 물론 불의의 교통사고로 임신 6개월된 자녀를 잃고 소냐가 반신불수가 되면서 장애인 시설에 무지한 이웃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소냐가 온전한 빛이 되었기에 하루하루 OTTO 그 자체로 살아간다.

 OTTO는 분리수거도 철저히, 눈 오는 날 집 앞 눈 치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최우선으로, 마을의 안전과 편리를 위한 순찰을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주차 위치와 구역 등은 예외없이 등등 우리가 소외 '꼰대'의 특징이라고 불릴만한 항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직장에서도 정리해고 된 듯하다.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면....이 정도라면 사실 삶을 마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부딪힌다. '푸른사자 와니니' 시리즈를 보면 병들거나 다친 사자나 코끼리는 같이 이동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거나 이를 너무한다고 생각하는 건강한 사자나 코끼리는 없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병들고 다친 존재를 거두기엔 야생이 너무 위험하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그런 야생으로부터 진일보하여 안전망을 확보한 것 아닌가? 의지할 곳 없고, 다치고, 병들고, 쓸모없는 이들을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한없이 돌보고 함께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놀라운 문명을 이룩한 것 아닌가? 사실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더욱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수준으로까지 진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뉴스기사를 보면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다가 급격히 생활고에 빠져 10살 어린 자녀를 질식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기사 등 여러 경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살아남으면 누군가는 돌봐주겠지...어떻게든 살아나가겠지..라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아예 사라져버린 야생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이 영화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리솔...


 마리솔은 멕시코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 사는 곳은 미국이다. 마리솔은 멕시코에서도 대학교를 졸업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사 학위가 두 개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house wife로서도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같은 남편을 잘 돌보고 있다. 불만이 없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생면부지인 OTTO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내면이 강한 여인이고, 이런 여인이야말로 정말 멋진 사람이 아닐런지...그리고 또다른 모습의 소냐가 아닐런지...소냐가 죽은지 6개월만에 나타난 마리솔이 OTTO에겐 소냐가 보낸 천사였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깊이 생각하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마리솔의 존재와 소냐의 존재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다. 

 

 나의 존재가 작아지고 가치없게 느껴질 때...그럴 때 꺼내보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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