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사서가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자기 학교에 보내준 책을 받지 않겠다며, 대신 열권의 그림책 추천 리스트를 올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trackback/psyche/9957482)
그 중 아홉권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보았다.
Auntie Yang’s Great Soybean Picnic written by Ginnie Lo; illus. by Beth Lo
미국에 이민 온 두 자매의 가족이 우연히 집 근처 농장에서 콩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소이빈 피크닉이 점점 커져 시카고 인근의 중국계 이민가정들이 모이는 커다란 연례행사가 되었었다고 한다. 실제 있었던 이 이야기를 양이모의 조카 둘이서 쓰고 그렸다. 이 자매는 한사람은 컴퓨터 사이언스 교수로 한 사람은 도자기 아티스트로 미대 교수였는데 각자 자신의 일을 하다가 이렇게 같이 그림책을 냈다고 한다. 자매가 어린시절 추억을 가지고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을 내다니 참으로 부럽다.
Drum Dream Girl: How One Girl’s Courage Changed Music written by Margarita Engle; illus. by Rafael López
예전에 쿠바에서는 여자는 드럼을 칠 수 없다는 타부가 있었다고 한다. 1932년 중국계 아프리카계 쿠바 소녀였던 Millo Castro Zaldatrriaga 가 그것을 깨고 여자들도 드럼을 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그림책으로 내용도 좋고 쿠바음악의 강렬한 리듬과 화려함이 느껴지는 그림이 좋다.
King for a Day written by Rukhsana Khan; illus. by Christiane Krömer
파키스탄의 라호르 (Lahore)에는 일년에 한번 연 축제인 Basant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싸움을 하는데 우리나라 연싸움과 다른 점은 넓은 운동장이 아니라 지붕위에서 하는 것.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 나라 연싸움도 떠오르고 린다 수 박의 책 The Kite Fighter 생각도 잠깐 났다, 각각의 연들을 종이, 천, 리본 등등을 이용하여 표현한 것도 좋았고 우리가 자주 볼 수 없는 파키스탄이 배경이라 더욱 좋았고, 또 주인공이 휠체어에 앉아서 멀리 연을 날리는 모습도 좋았다. 단지 보면서 이거 이렇게 위에서 연날리는거 위험 하지 않나?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고, 연줄을 금속줄로 사용해서 사람이 다치고, 전선이 끊어지는 사고가 속출해서 연날리기가 금지되었다고.
Mama’s Nightingale: A Story of Immigration and Separation written by Edwidge Danticat; illus. by Leslie Staub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 불법체류자로 감옥에 간 엄마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 뒤에 작가의 노트에 보면 매년 7만명의 부모가 아이와 떨어져서 추방당한다고 한다. 요즘은 더 늘었겠지?
My Cold Plum Lemon Pie Bluesy Mood written by Tameka Fryer Brown; illus. by Shane Evans
아이의 감정을 색깔로 나타낸 귀여운 책. 아마도 이 책이 선정된 이유는 주인공이 밝고 평범한 가정의 흑인 소년이기 때문이리라.
Red: A Crayon’s Story written and illus. by Michael Hall
아무리 나에게 빨강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빨강이라고 불러도 나는 파랑이라고!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말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받아 들이도록 하는게 진정한 도움이 아닐까. 재미있으면서 영리한 책. 많은 생각을 끌어내 볼 수 있겠다.
Separate Is Never Equal: Sylvia Mendez & Her Family’s Fight for Desegregation written and illus. by Duncan Tonatiuh
흑인들에 대한 분리정책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1940년대 캘리포니아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었다. 1944년 멘데스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산타 아나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학교에 등록하려고 한다. 실비아의 아버지는 멕시코 출신이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이고, 아이들 모두 미국인이고, 영어를 완벽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법이라면서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받아주기를 거부하고 멕시칸 스쿨로 보낸진다. 멕시칸 스쿨은 환경이 너무 좋지 않고 수업도 엉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비아의 아버지는 소송을 걸게 된다. 그 당시 공공 수영장에는 개 또는 멕시칸 금지 (No Dogs or Mexicans Allowed)라고 써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허탈하다. 아니 사실 남가주 지역은 원래 멕시코 땅 아니었던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어떤 차별의 역사가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깨뜨려나갔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책. 이런 책은 조금 고학년 아이들에게 북클럽 책으로 하면서 비슷한 다른 역사들도 찾아 연구해보면 좋을 거 같다.
Somos Como Las Nubes / We Are like the Clouds written by Jorge Argueta; illus. by Alfonso Ruano; translated by Elisa Amado
스패니쉬와 영어 두가지 언어로 다 씌여있는 이 책은 중미(엘살바도르, 와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멕시코에서 극심한 가난과 갱단의 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시로 쓴 것이다.
Two White Rabbits written by Jairo Buitrago; illus. by Rafael Yockteng; translated by Elisa Amado
이 책은 위의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We are like the Clouds 는 시로 씌여졌다면 Two White Rabbits 은 소녀와 아빠가 둘이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땟목에, 기차 기붕 위에, 트럭 짐칸에 실려 미국 국경까지 오는 아이의 모습이 눈물겹다.
이 두 책에서 내가 가슴 아프게 읽었던 The Only Road가 떠올랐다.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난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살 수 있는 길이 그거 하나 뿐이라서, 불법인 줄 알지만 먼길을 떠나는 아이들. 그 여정이 너무 위험하고, 성공확률이 적지만 그래도 앉아서 죽을 수 없으니 길을 떠난다. 그들이 그 모든 것을 이겨 국경을 넘더라도 삶은 그들편이 아니겠지. 특히 요즘 같을 때는. 안타깝고, 슬프고, 화난다.
이 리스트는 사서가 앞에 적어두었듯이 인종차별, 이민과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 가난과 폭력에 도망쳐 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등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양인에 관련된 책이 한 권 밖에 없는게 좀 아쉽기는 한데 트럼프 정부 이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멕시코 장벽과 미국으로의 밀입국에 대한 이야기에 관련한 책을 많이 고르게 되었으리라. 리스트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출판된지 얼마 안되는 책이라는 것이 더욱 맘에 든다. 이 리스트가 멜라니아 트럼프의 눈을 뜨게 하지는 않겠지만 어린이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살펴보고, 아이들이 읽고 많은 생각거리와 다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