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끓여준 국에 밥 말아 먹고 싶다고 전화 왔다.  '밥 도' '묵자'밖에 비하면 상당히 세련된 표현이지만, 저 말 뜻을 짚어보자면 대충 이것들 중 하나이리라.

 

1. 식당에서 밥 사먹었은데 솜씨 딕하게 없더라. 차라리 당신이 끓여준 국이 낫더라구. (전체가)

 

2. 배는 고프고 어디 뜨끈한 국물 없나? 새벽에 그 국 남았어? 아참, 새벽부터 국 끓여줘서 고마워. 국 맛있더라. 밥 말아 먹고 싶다. (12세이상)

 

3. 한나절만 떨어져 있어도 당신 생각이 나. 감기는 좀 어때? 약도 챙겨 먹고 밥도 든든히 좀 먹는지 모르겠네. 이제 곧 차 출발해. 3시간 후에 집에 도착하겠네. 여보 사랑해~ (19금. 응?)

 

옆지기가 오늘 새벽 댓바람에 서울로 갔다. 나는 더 이른 새벽에 육개장을 끓였다. 추운 날 나가서 떨지 않으려면 속을 뜨겁게 덥혀 나가면 좋은데 육개장이 제격이다. 어제 고깃집에 가서 A+ 등급으로 600g 정량으로 맛있는 부위로 소고기 한 근 사놓고, 바람들지 않은 제주 무 한 통을 납작납작 썰고 표고버섯과 대파와 마늘로 국을 끓였다. 다른 재료없이 무와 대파만 넉넉히 넣어 주재료 고기 맛을 살렸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고기를 다글다글 덕었더니 깔끔하면서도 얼큰한 국이 되었다. 대가리 딴 콩나물을 넣지 않고 끓이니 또 다른 맛이 난다. 옆지기도 입맛에 맞는지 이른 시간인데도 고봉밥에 투가리 그득한 국을 비웠다.

 

 

하루 볼일 다 보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전화 한 통 넣어준다는 것이 저렇게 말 한다. 종일 함께 지내다가 오늘처럼 떨어지면(옆지기가 볼일이 있어 먼길 나가거나, 내가 볼일이 있어 나가면)왜 이렇게 걱정이 많은걸까. 서울은 춥다던데 발은 안 시려운지, 차는 놓치지 않았는지, 길은 잘 찾아갔는지 쓸데없는 불안에 마음이 무겁다. 돌아와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남들이 보면 초등학생 아들을 서울 보낸 줄 알겠다. 그래도 나는 좀 낫다. 나는 걱정을 생각으로만 끝내고 말지 옆지기처럼  세 시간에 한번 꼴로 전화하진 않으니까. 다정하기로 따지면 나보다 옆지기가 한 수 위다. 사실 쓸데없는 걱정의 정체란 불안으로 위장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부부란 연리지가 아니던가. 떨어지면 그립고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 

 

 

나와 다르지 않을 걱정들을 했을지는 안 봐도 아는데 이 경상도 남자, 막상 전화 걸어서는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3번도 충분히 정답이 될 수 있다는 말씀. ㅋㅋ 그런데 진짜로 3번처럼 말한다면 아규..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우리 보리문딩이들은 원래대로 '배고프다 밥 도'가 더 편하다. 그냥 이대로 살련다.

8시 15분, 옆지기는 지금쯤 어디만큼 오고 있을까. 20120209ㅁ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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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12-02-09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이들은 아파트 장에서 산 국에다 밥 말아먹으면서 '맛있다'하는걸요^^
제가 진주님의 국에다 밥 말아 먹고 시퍼요~~
19금은-마님은 왜 저에게만 고깃국을 주셨나요?? 아닌가요? 헤헤

진주 2012-02-10 09:47   좋아요 0 | URL
아웅~~수니나라님~~~~~반가워요! 이제 쭉 이어서 계속 오실거죠?
서재동네가 너무 썰렁하단 말예요....ㅠㅠ
장터 국은 어쩔 수가 없어요. 가마솥으로 끓이는 그 맛을 우리가 어떻게 당해내요? ㅋㅋ
국은 많이 끓어야 맛있잖아요^^ 그리고 MSG랑 소고기 비계 같은 것도 넣었잖아여
저야말로 수니나라표 묵은지 감자탕 잘 우려먹어요.
지금도 묵은지가 감자탕 한번 끓여낼만큼 남겨놨어요.
우리애들이 묵은지감자탕 좋아해요.제가 먹어봐도 맛있는걸요 ㅎㅎ

책읽는나무 2012-02-09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울신랑도 육개장을 참 좋아하는데 그걸 할줄 몰라서 매번 타박당하는 마누라에요.
친구는 육개장을 끓여서 신랑을 준다더라~ 는 말을 몇 년전에 했었는데
고때부터 줄곧 우려먹더라구요.넌 언제?라면서..ㅠ
그래서 유심히 님의 레시피를 봤는데..육개장에 저것만 넣음 되나요?^^
고사리인가? 시꺼먼 줄기도 눈에 보였던 것같은데 그건 뭔가요?
고기는 참기름이 아니라 고춧가루로 볶는군요.흠~
쇠고기국이랑 비슷하네요.
암튼..저도 님의 국에다 밥 말아 먹고 싶네요.이추운 날엔 정말~~
옆지기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만해요.^^

저도 19금에서 좀 뭔가가 빠진 것같이 허하네요.더한 것을 기대했나봐요.ㅋ

진주 2012-02-10 09:56   좋아요 0 | URL
허걱..당연히 참기름에 고춧가루와 고기를 볶아요^^;;(고기를 미리 양념에 재웠다가 볶으면 국 다 끓인후에도 고기가 맛있어요. 양념:간장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토란대나 고사리도 넣고 숙주데친것(이런 재료들도 양념에 조물락조물락 무쳐서 재어놓았다가 국에 투하시키면 맛있어요), 콩나물대가리딴것도 넣고 그러죠.그런데 무가 달고 맛있어서 그런거 다 생략해도 맛있었어요.'온천 가마솥'인지 온천가마골인지 하는 유명한 쇠고기국이 그렇게 끓이더라구요^^

울보 2012-02-1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육개장 잘 끓이고싶어요, 한번 끓였는데 옆지기왈 뭔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만들지 않았는데 요즘 종종 육개장이 먹고 싶다고 하네요,

진주 2012-02-10 09:53   좋아요 0 | URL
맛이 좀 없더라도 맛있다고 칭찬해주면 솜씨가 늘 텐데 남자들은 왜 그걸 모를까요 ㅎㅎ
울보님은 어머님 솜씨 물려받았을 텐데 맛있게 잘 하실거예요^^

차트랑 2012-02-10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 사랑해~ 가 19금이면??
상당히 압축된 언어입니다요 ㅠ.ㅠ (19금^^)

진주 2012-02-10 09:57   좋아요 0 | URL
네헤~ㅎㅎ압축이 좀..되었죠..ㅋㅋ

숲노래 2012-02-10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을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 마련인가 봐요.

진주 2012-02-10 09:58   좋아요 0 | URL
딱 맞는 표현을 못 찾았는데...걱정이라기 보다...아무튼 걱정 비슷한 그런 느낌이예요. 마음이 안 놓인다고 해야하나, 허전하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실제로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요..가서 사람만나 하는 일이 제대로 잘 풀리나 싶은 그런 걱정요..

라로 2012-02-1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서울가요,,,서울 보내는 남편이 걱정이 많은가봐요,,,

경상도 말은 자꾸 들으면 친근한데 처음 들었을 때 정말 깜놀했어요!!!ㅎㅎㅎㅎㅎ

진주 2012-02-10 10:00   좋아요 0 | URL
깜놀요? ㅎㅎㅎ 표현이 좀 억세긴 하죠? ㅎㅎ
조심해서 서울 잘 다녀오세요^^

비로그인 2012-02-1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저는 중년은 아니구요~ 아줌마도 아니구요~ 그냥 소년입니다 ㅎㅎ
이런 글은 마치 묵은지 같은 맛이 나는 글이네요 ^^
아차차, 그리고 제 이미지는 브라질 배우 '페르난다 몬테네그로'에요!
영화 <중앙역>에 나오는 모래와 먼지에 둘러싸인 여신이죠!

진주 2012-02-10 19:01   좋아요 0 | URL
역시~ㅋㅋㅋㅋ어쩐지 완전 반대로 헛다리 짚은 것 같았어요!ㅎㅎㅎ
저 이미지는 음....엉뚱한 선입견을 갖게 하는거 같아요..

프레이야 2012-02-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진주니~임~ 요렇게 달콤한 페이퍼를...
정말 깨소금 냄새나서 못살겠어 ㅎㅎ
지금쯤은 이미 오셨겠네요~

진주 2012-02-14 10:18   좋아요 0 | URL
흠...다들 이런 페이퍼 좋아하시나보네요...
20분만에 휘딱 갈겨 썼는 걸. ㅎㅎ

북극곰 2012-02-13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마을엔 왤케 알콩달콩한 부부들이 많으시답니까?
앙... 질투나 ==33333

진주 2012-02-14 10:19   좋아요 0 | URL
아이그 저런...절대 질투의 대상이 못 됩니다 앙~ㅋㅋ

icaru 2012-02-1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슬이 아주 그냥~~~ ㅎㅎㅎ (쌍칼 식으로..)
진주 님 음식 솜씨는 굳이 안 먹어봐도 알 것 같은 거 있죠...
저 첫아이 임신해서 입덧 있을 때, 달아주셨던 코멘트 전 아직도 기억하는데...ㅋㅋ

진주 2012-02-15 14:06   좋아요 0 | URL
앗~제가 뭐라고 했었지요?
너무 먼 옛날이라 저 기억 못해요.
옆에 가까이 살면 드시도록 제가 뭘 좀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던가요???

icaru 2012-02-16 13:53   좋아요 0 | URL
하하핫 맞아요! 그댓글 받고, 잠깐 고민했잖아요! (이사갈까?) 라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