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ayonara > [퍼온글] 유부남.유부녀 10대 헌장?

‘작은습관’ 바꾸면 아내가 웃는다

[서울신문]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말이 있다. 통하지 않는 남녀를 말한다.
그나마 연애할 때는 이런저런 노력을 하던 남자들이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는 순간 바뀐다.

아내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남편의 작은 변화가 아쉬운 아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누가 빨래까지 해달라고 했나요. 그저 옷을 뒤집어 내놓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걸 안하더라고요.”

“단축키 한번만 누르면 되는데 집 나가면 전화 한통 없어요.”

월급도 꼬박꼬박 갖다주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며 바람을 피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아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연예인처럼 몸짱이 되라는 것도, 수억원을 벌어오라는 것이 아니다.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작은 바람’은 무엇일까.

“같은 얘기 반복하는 것도 지겨워”

결혼 3년차인 김모(28)씨는 점점 잔소리꾼이 돼 간다는 생각에 속상하다. 남편에게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말해보지만 소용 없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나서는 가스밸브를 잠근다거나 다 쓴 수건은 다시 걸어놓지 말고 빨래통에 넣어달라는 것 등이 김씨가 바라는 전부다.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지만 남편의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김씨는 “혼자 밥 먹을 때 반찬을 접시에 덜어먹지 않고 반찬통째로 놓고 먹거나 다리미를 쓰고 나면 제자리에 넣어두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서 “어쩌다 그럴 수는 있겠지만 매번 같은 말을 하게 만든다.”면서 “이제는 얘기하는 게 지겹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웃으면 내 자식, 울면 네 자식

아내들이 갖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역시 육아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육아휴직이라도 해서 아이를 봐 달라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남편들이 육아 자체에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는 데 화가 난다.

두돌된 아이를 둔 주부 남모(31)씨는 남편이 얄밉다. 맞벌이를 해 낮시간에는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밤에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남씨 몫인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재롱떨 때는 “아빠한테 와봐.”하면서도,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거나 떼를 쓰고 울 때는 아내를 찾기 때문이다. 남씨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나는 밤새 우는 아이 때문에 잠을 못잤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다른 방으로 가 쿨쿨거리면서 잤다.”면서 “정확히 절반의 육아 책임을 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아빠 역할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화 부재가 가장 큰 문제

지난 98년 결혼해 아이 하나를 두고 현재 또 한 명을 임신 중인 손모(34)씨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이 늘 아쉽다. 맞벌이를 하는 탓에 가족이 함께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지만 주말 전에 남편이 과음을 하고 결국 주말 내내 피곤하다며 잠만 잔다. 자연히 집안일은 모두 손씨의 몫이다. 손씨는 “직장생활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는 대청소도 함께하고 외출도 하고 싶다.”면서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가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손씨는 무엇보다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실제로 상당수의 아내들이 손씨처럼 대화 부재를 호소한다.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 부설 연구소의 러브코치 정영씨는 “전화상담 가운데 고부간의 갈등이나 성적인 고민만큼 많은 것이 남편과의 대화 문제”라면서 “대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아내들의 사소한 바람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를 하더라도 그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 정씨는 “아내들은 자신의 바람을 얘기할 때 비난조나 명령조로 해서는 안된다.”면서 “특히 부부싸움 도중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그저 잔소리로만 들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편 쪽에서는 아내가 얘기할 때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부부는 한팀이라는 생각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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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연달아 두다보면 갑자기 성적이 급락할 때가 있다.
질 때는 화가난다 특히 이 정도 수준의 상대에게도 지나, 내가 당연히 이겨야 하는데 하던
바둑을 지게 되면 무척 화가난다.
하지만 분을 가라앉히고 하나 씩 돌아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드러난다.
우선 바둑은 하나의 승부다. 따라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졌던 바둑들에서는 대체로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어려운 바둑에도 승부에 결정적인 변화를 줄 기회는 분명 있다.
많지 않더라도 몇번은 다가온다.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고민을 해서 좋은 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던 것은 왜 일까? 정작 문제는 상대를 너무 쉽게 보았기 때문이다.
승부의 과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무조건 결과만을 탐했다.
그래서 바둑을 두다가 다른 책도 보면서 영어 단어도 듣고 강좌도 듣는 식으로 시간 효율을 높였다.
결과는 다 잡았던 말도 실수로 놓치고 그 다음판은 아예 기분 나빠져서 또 지고하는 식이 되어버렸다.

이런 점은 인생경영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결과는 누구나 원한다. 하지만 과정의 고됨은 원치 않는다.
얼마전에 끝난 쇼트트랙을 보면서 한국선수가 하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는 왜 못하나라는 물음이 나왔다.
내가 넌지시 짚었던 답은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아무도 하루 8시간씩 훈련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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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성 한분이 바둑을 배우겠다고 오셨다. 왜 배우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 바둑에 인생이 들어가 있다고 하더러, 그래서 바둑을 배우고 싶다" 였다. 너무 어려운 답변인지 바둑은 오락입니다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기원의 사범의 모습이 어색해보였다.
내가 지금 보아도 바둑에 인생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을 논하는 입장에서 보면 바둑에 경영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은 꽤 타당한 것 같다.

우선 바둑은 싸움의 기술이다. 상대방이 있고 서로 경쟁을 하는데 머리를 써서 이득을 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승리를 얻으려고 한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보면 전쟁과 유사하고 현대 기업들의 경쟁과 유사하게 된다. 덕분에 이 세가지를 묶어서 생각하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보면 미국 최고의 투기꾼이 손자병법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바로 이 책 손자병법이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상대방과 나의 실체라고 강조한다. 내가 약할 때 정면대결은 매우 무모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때는 차라리 싸움을 피하고 우회공격을 하는 쪽이 좋다. 마찬가지로 바둑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강조하기 보다 나의 안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생연후살타, 내가 불안한 곳에서 상대와 싸우지 말라는 격언들이 그러한 가르침이다.
또 상대의 강점이나 약점이 파악되지 않았을 때 무조건 달려드는 것도 피하라고 한다.

다음으로 싸움에 들어가면 전략이 필요하다. 전면전, 포위전 모두 힘을 위주로한 공격이다. 단 바둑이란 한 수 한수 서로 두기 때문에 상대를 포위한다는 것은 내가 엷어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 한곳이라도 포위망에 구멍이 뚫리면 결과가 허망해진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보아도 섯부른 포위가 참패로 이어진 예가 많다.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냉철히 꽤둟어 볼 힘이 없다면 이런 포위에 기가 죽어 그대로 침몰하게 될 수 도 있다. 상대가 약하면 내가 강한척 하는 엄포 전술이 통한다는 점은 포커와도 비슷하다. 바둑에서도 양쪽의 수준이 비슷할 때 보다는 접바둑을 둘 때 이런 상황들이 많이 나타난다.

바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돌의 효율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한 가지를 놓고 양쪽을 쳐다보는 것이다. 이럴 때 상대방은 당황하게 된다. 전쟁터에서도 요충지라는 곳은 대체로 여러곳을 제압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쟁이란 지리적 공간을 해석해서 군대의 배치를 그려내는 시뮬레이션 역량을 요구하는데 비해서 바둑은 기존의 놓인 돌의 배치를 통해 지리적 공간을 만들고 상대방과의 대결에 대해 수읽기라는 시뮬레이션을 대입시키게 된다. 어쨌든 항상 하나를 투자해 둘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요충지를 찾아야 한다.
기업이라면 어떨까 이런 노력을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 특정한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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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중심의 양반사회의 하층 문화를 이루고 있던 음란물 유통 시장에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있었는데 외설적 표현이 점점 강화되더니 이제 화려하게 채색된 삽화가 등장하게 된다. 문자의 한계를 넘어 비주얼로 표현된 이 작품의 경우 문장은 당대 최고의 궁중 관료가 그림 또한 지위 높은 관료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곧바로 영상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되어 당당히 1위를 고수하며 경쟁작을 압도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의 강점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랑을 잘 묘사했다는 리얼리즘 문학의 효시라는 점이다. 처음 출발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배경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처럼 사랑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초반 상상에 의존하던 묘사가 후반에 가니 아주 구체성을 띄게 된다. 특히 그림의 적나라함과 신선함은 당대 한양의 지가를 올리도록 만든다.

하지만 좋은 일에도 마가 끼듯이 이 그림의 제작을 놓고 대상이 되는 모델들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초상권을 주장하는 모델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다 보니 제작자와 서로 오해가 생겨버렸다. 나는 예술을 하려고 한겁니다라고 우겨보았지만 이건 그냥 몰래카메라를 통한 사생활 누설이라고 주장해서 서로 갈등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이 모델 중 하나가 바로 지고지순한 왕비마마라는 사실 때문이다. 어찌 이렇게 난해한 문제가 생겼는지 고민이 이어졌고 덕분에 바빠진 곳은 바로 의금부의 감옥과 궁정경찰이었다.
아래로는 음란물 유통업자, 위로는 왕비와 임금까지 결부된 이 사태의 귀결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과정에서 작품의 현실성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찌 지엄한 양반 사대부가 포르노 문학을 만들어 스스로 화를 자초했을까 하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한글문학인 허균의 홍길동전이나 박지원이 심혈을 기울인 호질 또한 심히 위험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대부의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내용들이 서민 대중들과의 교감이 적었고 문화적 측면에서 보아도 한편에 치우친 내용이 많았다. 여기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모든 백성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학을 만들어 유통시킨 것이다.
즉 자신의 감정을 관찰해서 이를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 작품의 강점인데 이러한 흐름은 서양에서는 프랑스 혁명 전후에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조선 리얼리즘의 선구자였던 당시의 시도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은 당시 왕의 피해의식에 의해 많은 작품이 불태워지고 금서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조의 경우 자기 주변의 문인들의 문체까지 엄격히 규제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적나라한 작품이라면 더욱 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랜기간 묵혀서 비전으로 전해오던 이 작품이 다시 발굴되어 여기 영화로 까지 재생된 것은 기쁜일이다.

단 화려한 비주얼을 강조하는 것은 좋았지만 작품속 인물들의 행동 논리가 제대로 설정되지 못하였다. 최고의 사대부가 왜 대중에게 가까이가려고 했는지에 대해 아직 쉽게 납득가지 못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화려하고 사랑이 치열하고 위험한데 비해서 저작활동에 매진하려는 그의 의욕 또한 설명이 부족하다. 반면 느릿느릿 진행되는 작품 제작과정의 세세함은 결국 전체적인 흐름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작품끼리 비교하자면 왕의 남자는 물론이고 이전의 스캔들보다 못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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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조가 주변 문인들 문체까지 규제하려고 했군요..
사마천님, 잘 읽고 갑니다. 새로 알게된 사실들..^^ 종종 님의 영화비평 읽고가야겠어요^^

사마천 2007-08-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까지 오셨네요. 잘 지내시죠. 문체 규제는 이덕일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읽고 이해했던 내용입니다. 재미 있는 책이여서.. ^^
 

테러와 암살이라는 어두운 내용이 화면을 꽉채우며 관객들을 무겁게 만들어간다. 무려 2시간 40분 가량 이렇게 어두운 장면들을 그려가면서 주인공이나 보는 관객 모두에게 서서히 도대체 진정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키워나가게 한다. 마침내 말미에 이르러서는 피에 대해 피로 보복하는 것이 꼭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라는 회의적 태도로 주인공을 변화하게 만든다.

시작은 올림픽선수촌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인질극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시작한 올림픽이란 모든 다툼을 중지하고 하나가 되어 신에 대한 제사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축제였다. 그 평화의 자리에 바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친것이다. 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우리들은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나타났다. 이 인질극이 피로 종결되자 암살의 배후였던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을 대상으로 이스라엘은 특수요원을 투입해서 보복 암살작전을 벌인다.
요원 에브너에게 있어 처음 출발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었다. 유럽으로 건너간 그가 끄나풀을 이용해 타깃을 하나씩 성공적으로 제거해갈 수 있었다. 한번의 암살이 성공할 때 마다 그들은 축배를 들었고 격려의 목소리에 감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상이 되는 상대방과 주변 사람들을 보다 가깝게 보게 된다. 옆방에 투숙한 이웃에게 친절히 말을 걸고 걱정해주는 자상한 모습의 행동가, 아름다운 부인과 딸을 가진 가장,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지식인 등 적으로서의 면모에 겹쳐진 인간으로서의 또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이렇게 나뉘어진 두 집단이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가능성을 첫번째로 연 것은 음악이다. 암살 대상의 아파트에서 딸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유럽의 고전음악이 담겨 있다. 즐겁게 치는 모습과 음악을 듣는 자신과 사이에 어느새 가벼운 공감이 만들어진다. 갑자기 이대목에서 큐브릭의 전쟁영화인 영광의 길 마지막 부분이 생각난다. 독일 소녀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적인 프랑스의 장병들이 슬픈 감동을 느끼는 장면이다. 음악은 그렇게 문화와 민족을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 기능은 본의아니게 PLO 단원과 한방에 투숙하는 장면에서도 발휘된다. 두 집단은 라디오 하나를 놓고 좋아하는 음악 채널로 서로 바꾸려고 한다. 어정쩡하지만 그래도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채널을 발견하고 서로 웃는다. 이어진 정치적 대화는 언어를 통해 양자간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음악은 둘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암살단원의 공통점은 있다. 양쪽 다 부모 혹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돈을 받고 정보를 파는 루이라는 세력의 두목 또한 아이들을 먹여살리는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아이들에 둘러싸일 때는 냉혈한 암살자도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에브너가 가진 사적인 시간의 상당부분은 아내의 임신, 출산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대한 내용이다.  어머니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첫번째 기도 또한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고 그게 자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사람의 생명이란 이렇게 귀한 것이다. 반면 본인은 적이라고 규정지워진 사람들을 찾아 악착같이 없애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면 무언가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그와 함께 행동한 단원들 전반에 퍼져나간다. 동료 단원을 죽인 여자를 찾아가 악착같이 해치웠지만 돌아오면서 그녀의 나신에 옷가지 정도는 덮어주는게 좋지 않았을까 회의를 가진다.
양쪽 다 가족이 있고 싸움을 그칠 수 없다면 그들 모두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에게까지 짐을 넘겨주는 것이다. 영원히 싸워야하는 업보를.

돼지 등 잡아 먹을 가축이라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까워져서 정을 주면 죽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낯섬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전쟁은 계속되기 어렵다. 상대방의 인간적 면모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서서히 조직에서 이탈하게 된다.

영화가 길어지다 보니 스필버그가 괜스리 옛날 이야기를 가지고 길게 사람만 붙들어놓는다고 투덜대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서 그가 민감한 문제를 늘어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브루클린에서 바라본 강너의 맨하탄에는 9.11 때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고스란히 서 있다. 관객의 시점을 굳이 그곳으로 붙들어 놓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현재에도 고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보복이 보복을 피가 피를 부르는 장면은 바로 어디일까? 그곳은 70년대의 파리도 베이루트도 아니고 바로 이라크를 비롯한 전세계 곳곳이 되고 있다. 골다메이어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최고지도자의 결연한 결의의 모습을 그대로 부시로 바꾸어 보라. 모든 국제적 규칙을 깨고 있는 미국의 전쟁행위와 이 영화가 보여준 암살의 현장이 고스란히 중첩되지 않는가?
그럼 여기서 감독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짙은 회의와 조직으로부터의 이탈을 불러온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이 바로 그 답일 것이다. 보복은 더 큰 보복을 가져올 따름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종결되지 않는다. 오늘 이라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란을 어떨때는 북한을 위협하는 부시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굳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함이다.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인간은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족을 좀 더 달자면 스필버그는 유태인이다. 그 말고도 유태인은 많다. 가깝게 보면 스타벅스 사장 슐츠도 유태인이다. 회사에서 벌어진 돈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타벅스 한잔을 마시면 그 돈이 멀리 돌아 팔레스타인 소녀의 가슴에 박히는 총탄이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태인이라고 해서 꼭 이렇게 한 종류의 인간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주창자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후원만 하는 사람도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지원금이 없다면 현재의 이스라엘로는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트로츠키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상가를 보유한게 유태인이라 결코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있지는 않다. 날을 세운 말솜씨로 유태인과 부시를 비판하는 촘스키도 유태인이다. 조국 헝가리 공산주의 체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소로스도 유태인이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한 때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세력이 다수를 차지한 적도 있다. 특히 암살로 끝나버린 페레스 총리의 평화정책이 계속 되었다면 양쪽의 관계는 한결 나았을 것이다. 아마 스필버그의 생각도 또한 어디 중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점을 몇차례 강조했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대표작이고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한 코드는 여러차례 보여졌다.
이 영화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이스라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 시각으로 그려졌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두에게 던져질 수 있는 물음으로 만드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영화의 물음의 방향을 돌려보면 한반도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과 북 모두 끝없이 서로의 자녀들에게 싸움의 업을 남겨주어야 할 것인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어갈 때는 한사코 식량지원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한사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최근에도 보면 강정구 해임건 관련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시위를 한다. 동국대까지 찾아가서. 거기 가서는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할 자유는 주먹을 써가면서 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그들이 지키고 싶은 진정한 자유는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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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1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스타벅스 안가요...

사마천 2006-02-1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죠. 촘스키처럼 좋은 유태인도 많은데.
슐츠도 개인으로 보면 대단히 배울점이 많죠. 참 뉴욕 시장 블룸버그도 유태인입니다.

마늘빵 2006-02-1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봤던 <그림자 정부>란 책이 생각나네요. 나중에 2권이 또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안봤어요. 이 책 혹시 보셨나요? 유태인의 세계지배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사마천 2006-02-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들었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의 후원을 엎는다는게 가장 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