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암살이라는 어두운 내용이 화면을 꽉채우며 관객들을 무겁게 만들어간다. 무려 2시간 40분 가량 이렇게 어두운 장면들을 그려가면서 주인공이나 보는 관객 모두에게 서서히 도대체 진정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키워나가게 한다. 마침내 말미에 이르러서는 피에 대해 피로 보복하는 것이 꼭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라는 회의적 태도로 주인공을 변화하게 만든다.

시작은 올림픽선수촌에서 발생한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인질극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시작한 올림픽이란 모든 다툼을 중지하고 하나가 되어 신에 대한 제사와 함께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축제였다. 그 평화의 자리에 바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친것이다. 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우리들은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나타났다. 이 인질극이 피로 종결되자 암살의 배후였던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을 대상으로 이스라엘은 특수요원을 투입해서 보복 암살작전을 벌인다.
요원 에브너에게 있어 처음 출발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었다. 유럽으로 건너간 그가 끄나풀을 이용해 타깃을 하나씩 성공적으로 제거해갈 수 있었다. 한번의 암살이 성공할 때 마다 그들은 축배를 들었고 격려의 목소리에 감격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상이 되는 상대방과 주변 사람들을 보다 가깝게 보게 된다. 옆방에 투숙한 이웃에게 친절히 말을 걸고 걱정해주는 자상한 모습의 행동가, 아름다운 부인과 딸을 가진 가장,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지식인 등 적으로서의 면모에 겹쳐진 인간으로서의 또 다른 면모가 나타난다.

이렇게 나뉘어진 두 집단이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가능성을 첫번째로 연 것은 음악이다. 암살 대상의 아파트에서 딸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유럽의 고전음악이 담겨 있다. 즐겁게 치는 모습과 음악을 듣는 자신과 사이에 어느새 가벼운 공감이 만들어진다. 갑자기 이대목에서 큐브릭의 전쟁영화인 영광의 길 마지막 부분이 생각난다. 독일 소녀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적인 프랑스의 장병들이 슬픈 감동을 느끼는 장면이다. 음악은 그렇게 문화와 민족을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 기능은 본의아니게 PLO 단원과 한방에 투숙하는 장면에서도 발휘된다. 두 집단은 라디오 하나를 놓고 좋아하는 음악 채널로 서로 바꾸려고 한다. 어정쩡하지만 그래도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채널을 발견하고 서로 웃는다. 이어진 정치적 대화는 언어를 통해 양자간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음악은 둘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암살단원의 공통점은 있다. 양쪽 다 부모 혹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돈을 받고 정보를 파는 루이라는 세력의 두목 또한 아이들을 먹여살리는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아이들에 둘러싸일 때는 냉혈한 암살자도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에브너가 가진 사적인 시간의 상당부분은 아내의 임신, 출산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대한 내용이다.  어머니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첫번째 기도 또한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고 그게 자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사람의 생명이란 이렇게 귀한 것이다. 반면 본인은 적이라고 규정지워진 사람들을 찾아 악착같이 없애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면 무언가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그와 함께 행동한 단원들 전반에 퍼져나간다. 동료 단원을 죽인 여자를 찾아가 악착같이 해치웠지만 돌아오면서 그녀의 나신에 옷가지 정도는 덮어주는게 좋지 않았을까 회의를 가진다.
양쪽 다 가족이 있고 싸움을 그칠 수 없다면 그들 모두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에게까지 짐을 넘겨주는 것이다. 영원히 싸워야하는 업보를.

돼지 등 잡아 먹을 가축이라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까워져서 정을 주면 죽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낯섬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전쟁은 계속되기 어렵다. 상대방의 인간적 면모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서서히 조직에서 이탈하게 된다.

영화가 길어지다 보니 스필버그가 괜스리 옛날 이야기를 가지고 길게 사람만 붙들어놓는다고 투덜대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서 그가 민감한 문제를 늘어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브루클린에서 바라본 강너의 맨하탄에는 9.11 때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고스란히 서 있다. 관객의 시점을 굳이 그곳으로 붙들어 놓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현재에도 고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보복이 보복을 피가 피를 부르는 장면은 바로 어디일까? 그곳은 70년대의 파리도 베이루트도 아니고 바로 이라크를 비롯한 전세계 곳곳이 되고 있다. 골다메이어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최고지도자의 결연한 결의의 모습을 그대로 부시로 바꾸어 보라. 모든 국제적 규칙을 깨고 있는 미국의 전쟁행위와 이 영화가 보여준 암살의 현장이 고스란히 중첩되지 않는가?
그럼 여기서 감독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짙은 회의와 조직으로부터의 이탈을 불러온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이 바로 그 답일 것이다. 보복은 더 큰 보복을 가져올 따름이고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종결되지 않는다. 오늘 이라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란을 어떨때는 북한을 위협하는 부시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굳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함이다.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인간은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족을 좀 더 달자면 스필버그는 유태인이다. 그 말고도 유태인은 많다. 가깝게 보면 스타벅스 사장 슐츠도 유태인이다. 회사에서 벌어진 돈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타벅스 한잔을 마시면 그 돈이 멀리 돌아 팔레스타인 소녀의 가슴에 박히는 총탄이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태인이라고 해서 꼭 이렇게 한 종류의 인간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주창자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후원만 하는 사람도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지원금이 없다면 현재의 이스라엘로는 간신히 생존할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트로츠키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상가를 보유한게 유태인이라 결코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있지는 않다. 날을 세운 말솜씨로 유태인과 부시를 비판하는 촘스키도 유태인이다. 조국 헝가리 공산주의 체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었던 소로스도 유태인이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한 때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세력이 다수를 차지한 적도 있다. 특히 암살로 끝나버린 페레스 총리의 평화정책이 계속 되었다면 양쪽의 관계는 한결 나았을 것이다. 아마 스필버그의 생각도 또한 어디 중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점을 몇차례 강조했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대표작이고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한 코드는 여러차례 보여졌다.
이 영화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이스라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 시각으로 그려졌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두에게 던져질 수 있는 물음으로 만드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영화의 물음의 방향을 돌려보면 한반도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과 북 모두 끝없이 서로의 자녀들에게 싸움의 업을 남겨주어야 할 것인가?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어갈 때는 한사코 식량지원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한사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최근에도 보면 강정구 해임건 관련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시위를 한다. 동국대까지 찾아가서. 거기 가서는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할 자유는 주먹을 써가면서 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그들이 지키고 싶은 진정한 자유는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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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1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스타벅스 안가요...

사마천 2006-02-1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죠. 촘스키처럼 좋은 유태인도 많은데.
슐츠도 개인으로 보면 대단히 배울점이 많죠. 참 뉴욕 시장 블룸버그도 유태인입니다.

마늘빵 2006-02-1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봤던 <그림자 정부>란 책이 생각나네요. 나중에 2권이 또 나온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안봤어요. 이 책 혹시 보셨나요? 유태인의 세계지배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사마천 2006-02-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들었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의 후원을 엎는다는게 가장 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