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중심의 양반사회의 하층 문화를 이루고 있던 음란물 유통 시장에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있었는데 외설적 표현이 점점 강화되더니 이제 화려하게 채색된 삽화가 등장하게 된다. 문자의 한계를 넘어 비주얼로 표현된 이 작품의 경우 문장은 당대 최고의 궁중 관료가 그림 또한 지위 높은 관료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곧바로 영상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되어 당당히 1위를 고수하며 경쟁작을 압도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의 강점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랑을 잘 묘사했다는 리얼리즘 문학의 효시라는 점이다. 처음 출발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배경으로 시작했는데 결국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처럼 사랑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초반 상상에 의존하던 묘사가 후반에 가니 아주 구체성을 띄게 된다. 특히 그림의 적나라함과 신선함은 당대 한양의 지가를 올리도록 만든다.

하지만 좋은 일에도 마가 끼듯이 이 그림의 제작을 놓고 대상이 되는 모델들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초상권을 주장하는 모델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다 보니 제작자와 서로 오해가 생겨버렸다. 나는 예술을 하려고 한겁니다라고 우겨보았지만 이건 그냥 몰래카메라를 통한 사생활 누설이라고 주장해서 서로 갈등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이 모델 중 하나가 바로 지고지순한 왕비마마라는 사실 때문이다. 어찌 이렇게 난해한 문제가 생겼는지 고민이 이어졌고 덕분에 바빠진 곳은 바로 의금부의 감옥과 궁정경찰이었다.
아래로는 음란물 유통업자, 위로는 왕비와 임금까지 결부된 이 사태의 귀결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과정에서 작품의 현실성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찌 지엄한 양반 사대부가 포르노 문학을 만들어 스스로 화를 자초했을까 하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한글문학인 허균의 홍길동전이나 박지원이 심혈을 기울인 호질 또한 심히 위험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대부의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내용들이 서민 대중들과의 교감이 적었고 문화적 측면에서 보아도 한편에 치우친 내용이 많았다. 여기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모든 백성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학을 만들어 유통시킨 것이다.
즉 자신의 감정을 관찰해서 이를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 작품의 강점인데 이러한 흐름은 서양에서는 프랑스 혁명 전후에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조선 리얼리즘의 선구자였던 당시의 시도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은 당시 왕의 피해의식에 의해 많은 작품이 불태워지고 금서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조의 경우 자기 주변의 문인들의 문체까지 엄격히 규제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적나라한 작품이라면 더욱 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랜기간 묵혀서 비전으로 전해오던 이 작품이 다시 발굴되어 여기 영화로 까지 재생된 것은 기쁜일이다.

단 화려한 비주얼을 강조하는 것은 좋았지만 작품속 인물들의 행동 논리가 제대로 설정되지 못하였다. 최고의 사대부가 왜 대중에게 가까이가려고 했는지에 대해 아직 쉽게 납득가지 못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화려하고 사랑이 치열하고 위험한데 비해서 저작활동에 매진하려는 그의 의욕 또한 설명이 부족하다. 반면 느릿느릿 진행되는 작품 제작과정의 세세함은 결국 전체적인 흐름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작품끼리 비교하자면 왕의 남자는 물론이고 이전의 스캔들보다 못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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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조가 주변 문인들 문체까지 규제하려고 했군요..
사마천님, 잘 읽고 갑니다. 새로 알게된 사실들..^^ 종종 님의 영화비평 읽고가야겠어요^^

사마천 2007-08-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까지 오셨네요. 잘 지내시죠. 문체 규제는 이덕일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읽고 이해했던 내용입니다. 재미 있는 책이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