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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오렌지색은 상큼하고 싱싱한 느낌을 주며 식욕을 북돋워주는 색깔이다. 또 안전색으로 쓰일 만큼 주목성이 대단히 높고 자극적인 색상인만큼 ‘튀기’는 하지만 가볍고 들뜬 느낌을 주기 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검은눈, 검은 피부색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쉽게 어울리지 않는 색상이다" 어느 색체전문 컨설턴트의 말이다. 나 또한 너무나도 상큼한 오렌지색에 반해 거금을 투자하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내 피부는 백옥처럼 희지도, 썬탠이 잘 된 매력적인 구리빛도 아닌 것이다. 그후로 내게 오렌지색은 열대의 햇빛처럼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이국적인 무엇이 되었다. 우수운 얘기지만 오렌지색이라는 이유로 토종의 한련이 더운 어느나라에서 물건너 온 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오렌지색은 구원의 빛이 되었다.
저자 얀 마텔은 이야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이 놀라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작가로서 허기에 시달리던 그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향한 인도 봄베이, 그곳에서 그는 신을 믿게 될 얘기를 알고 있다는 노신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 파이와 오렌지색에 검은 줄무늬를 드리운 리처드 파커의 기막힌 227일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과의 오렌지색에 검은 줄무늬를 드리운 리처드 파커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신을 믿게 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때론 고난이 삶의 원천이 되고, 도전이 있어 발전을 이루듯이, 우리의 삶은 좋고 아름다운 무엇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무엇이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인생에 대한 새롭진 않지만 또다른 시각을 던져주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네가 없었으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227일간의 표류기라고는 하나 일초일초, 매순간순간이 죽을 고비였을 파이의 고백이다. 그렇다. 자신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희망마저 삼켜버린 거대한 바다, 그 막막한, 빛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어둠의 절망속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분명 '리처드 파커' 호랑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든지 자신을 배를 채울 먹잇감으로 여길 수 있는 맹수 호랑이가 존재했기에, 알지도 예상할 수도 없는 바다위 작은 구명보트에서 파이는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상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의 푸른 바다로 뛰어드는 것보다는 호랑이의 비위를 맞추고, 호랑이를 훈련하며 작은 구명보트에서 살아 남는 것이 훨씬 수월 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파이 이야기'를 통해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파이의 종교, 신앙심이 그것이다. 매우 이상스럽게도 파이는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카톨릭까지 세가지 종교의 예배를 다 드린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세 종교의 사제들은 여지없이 그에게 하나의 종교를 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라며 자신의 독특한 신앙생활을 지켜나간다. 나는 지난 연말 각종 시상식을 tv를 통해 보면서 어찌나 '하나님'을 운운하는 사람이 많은 지 우리 사회에 이렇게 기독교도가 많은 지 새삼 놀랐다. 하긴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집단에서도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한다. 참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기관의 장의 신앙생활이 그리고 같은 종교의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같이 공공연하게 기도를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은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집단의 목표에 도달해야하는 사회적인 윤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비정상적으로로 한 종교가 세를 확장해가고 있고, 종교의 핵심인 궁극적인 '신'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행복만을 비는 요상한 '신앙심'만이 가득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진실한 의미에서 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신앙인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많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파이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푼으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 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너무 힘들다. 그러니 독선적인 자들이 편들어주러 달려갈 곳은 신이 아니라 그런 이들인 것이다. "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한마디로 좋은 책이다.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번쯤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또한, 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 줄거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반전을 만들어 그저그런 한 인간의 성장과 모험의 표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인간의 이성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섬뜩하리만치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파이 이야기' 와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낼 순 없어도,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세상이 좀더 공평한 곳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