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떠나는 여행에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무엇이든 다 느끼고 싶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떠났던 여행이 더 만족감도 크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 듯 하다. 일주일 만에 다시 떠난 여행이라 짜릿함은 덜 했지만, 뭔가 느껴야 한다는, 좀 더 많이 보고싶다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이것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경사 적광전 신방목에 조각된 사자상

이번 여행은 포항으로 향한다. 오래 전 부터 한번쯤 가 보고 싶었던 보경사를 찾아간다.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원진국사 부도, 오층석탑 등의 보물이 있지만 절 자체보다는 12개의 폭포가 있는 내연산이 더욱 매력적이다. 오르는 길이 험하지 않아 조금의 수고로도 깊은 골짜기에 닿을 수 있다. 해발 930m의 향로봉까지 오르는 것은 무리지만 내연산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려면 연산폭포 까지는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도 왕복 1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물빛이 짙은 고동색인데 아마도 활엽수가 많은 탓이 아닐까 싶다


연산폭의 제일 윗부분

내연산

내연산의 바람
뜨거운 한 낮에 산을 오르는 여행객에 더없이 고마운 바람이 참나무를 흔들고 있다. 바람을 찍고 싶었는데, 나의 내공으론 도저히....멋진 음악하나 배경으로 깔리면 그대로 천국이다.....내연산 보경사 입구에는 유난히 칼국수 집이 많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칼국수 맛이 좋다하여 자리를 잡았다. 휴일이라 하루종일 손님들에게 시달린 점원들이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 결국 칼국수는 맛 보지 못하고, 동동주와 도토리묵 한 접시만,, 넉넉한 나무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잔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다만 대낮부터 벌~게진 얼굴이 민망하다. ^^;;


매산종택(정재영 가옥)

포항에서 영천으로 약40분 쯤 가면 매산종택, 이 곳은 표지판이 잘 설치가 돼 있지 않아서 찾기가 힘들다, 거의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이곳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종택 뒤쪽 대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무섭기만 하다..

영천 시내로 가 숙소를 잡는다. 소도시라 그런지 8시 밖에 안 됐는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 빛과 소음에 익숙한 난 어둠과 고요가 무섭다


독락당의 별당 계정

다음날 아침, 10시 쯤 숙소를 나와 '동방오현'으로 추앙받는 회재 이언적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로 향한다. 위 사진의 독락당은 회재가 장년에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자옥산 골짜기에서 햇수로 7년동안 은거한 곳이다. 현재 그 후손이 살고 있어 독락당 안은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으나 주변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독락당은 살림집으로서는 드물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인데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개울이지만 그 위에 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수량이 많은 곳이었으리라, 지금도 너른 바위와 푸른 숲으로 인해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다. 또 계정으로 가는 곳엔 바깥 울타리가 흙담이 아닌 성긴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는데, 그곳은 대청에서 바로 바깥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고 한다. 인상적이라고 느끼면서도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정혜사 13층 석탑

독락당에서 약400m  정도 올라가면 왼 편에 정혜사터의 13층 석탑이 나온다. 신라시대의 석탑으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모양이다.  2층 이상의 탑신부가 급격히 줄어서 마치 지붕돌만 포개놓은 것 같고,  기단 또한 이색적인데 탑 주위에 네모지게 막돌을 두르고 그 위로 두둑이 흙을 쌓아올려 기단을 삼고 그 한 가운데 2단으로 다듬은 돌을 놓아 탑신부를 받쳐 놓았다. 쇠락해 가고 있는 토끼풀과 어울려 뜨거운 햇볕아래서 그 고즈넉함을 즐겨본다.


세심대에 놓여진 나무다리와 옥산서원

안강읍 옥산리 일대는 회재 이언적이 이름 지은 '4산5대'가 있다. 무학산, 도덕산, 화개산, 자옥산 이렇게 4개의 산과 계곡의 바위들 가운데 다섯 곳을 골라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라 하였다. 위 사진은 그 중하나인 세심대와 옥산서원(왼쪽으로 살짝 보이는)의 모습이다. 이곳은 회재가 죽고 20년 뒤인 1572년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묘우였다가 2년 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선조로부터 '옥산서원' 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누마루가 열려 있다면 훨씬 보기 좋을 터인데,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모든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참 답답하다. 하지만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만큼은 참으로 시원하다. 아침도 걸러 출출하여 근처의 산장식당으로 향한다. 파전, 동동주, 그리고 비빔밥...커다란 단풍나무 그늘아래 누워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 드디어 조껍데기 동동주가 먹음직스런 파전과 함께 나온다. 바람불어 좋고 탁트인 앞마당이 좋고 사랑하는 님있어 좋고...타고난 문장가라면 시조 한 수, 훌륭한 소리꾼이라면 소리 한 자락이 절로 나올 터인데....


양동 민속마을의 관가정

옥산서원에서 포항방면으로 약2km 정도 거리의 양동 민속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반촌하면 안동 하회마을과 이곳 양동마을을 꼽을 수 있다. 하회마을은 이름처럼 굽어진 내를 끼고 있고, 양동마을은 골짜기에 걸쳐져 있다. 국보 1점과 보물 3점 외에 많은 문화재들이 있어 마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고 다른 민속마을에 비해 덜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런 느낌이다. 이곳 역시 표지판은 있으되 쉽게 알아 보기가 어렵다. 마을 입구 안내소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포항시 오천읍에 있는 오어사로 향한다. 호반의 절이란 멋진 설명과 사진을 보고 찾아 간 곳이나, 실망스러웠다. 혹시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들 때라면 그 풍경에 반할지도....

여행의 맛도 나이따라, 경험따라 참 달라지는 듯 하다. 하기야 늘 같다면 무슨 재민가!!...이제 다시 일상~~! 나의 일상도 가벼운 여행처럼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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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6-1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좋군요^^

드팀전 2005-06-1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아...퍼가도 되겟죠..^^

로드무비 2005-06-1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무 사진 참 좋습니다.
보경사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분홍달 2005-06-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드팀전님, 로드무비님 모두 고맙습니다^^..즐건 주말 보내세요!!
 



                                                                   경주 남산의 상선암 부근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

강석경의 '능으로 가는 길'을 읽은 뒤부터 나이들면 경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오래된 역사와 만날 수 있는 경주,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가!! 또 감은사지의 그 웅장한 삼층석탑(국보)의 감동은 또 어떠한가!!(석굴암, 불국사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몇년 전부터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경주 '남산'을 가보리라 마음먹다 드디어 지난 연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그곳을 다녀왔다. 한마디로 '최고'였다.

남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세가지 코스가 있는데, 그중에서 A코스인 삼릉에서 용장까지를 선택했다. 배리삼존불(보)- 삼릉 - 석조여래좌상 - 마애관음보살입상 - 선각육존불 - 선각마애불 - 석조여래좌상(보) - 마애여래상 - 상선암 - 마애석가 여래좌상 - 냉골 암봉 - 상사바위 - 금오산 정상 - 용장사지 삼층석탑 - 마애여래좌상 - 삼륜대좌불(보) - 용장사지... 대충 이 정도이다. 문화재들을 3,4백미터 마다 보물찾기 하듯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여행인가....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여기 용장사지 부터 하산하는 길이 좀 험하다, 밧줄타고 기다시피 내려와야 하지만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다.하산후 숙소는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에 잡았다. 보문단지는 워낙 북적여서...새로지은 모텔이어서 깨끗하니 괜찮았다. 이 곳에서 시내 번화가까지는 걸어서 한 10분정도, 맛있는 '불고기 전골'로 저녁을 때우고 여행지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재미,,시원한 맥주와 노가리로 하루를 정리한다.

다음 날 아침, 시내에서 감포쪽으로 약 4,50분쯤 거리의 함월산 기림사로 향한다. 함월산과 토함산은 서로 마주보며 토함산에서 달을 토해내면 함월산에서 달을 삼킨다고 한다. 그만큼 산이 깊다. 절만큼 함월산 또한 참 멋지다.



                                                                                                                              '기림사의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기림사의 대적광전은 단청이 벗겨져 더욱 은근한 멋을 자아낸다. 그리고 꽃살 또한 참 아름답다. 위의 사진처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이 어우러져 있는 그림은 너무나 멋지다. 참 예전엔 불국사가 이 기림사의 말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접근하기 쉬운 불국사가 더 커져 지금은 전세가 역전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기림사는 기림사만의 멋이 있고, 성보박물관이 공사중이라 보진 못했지만 보기드문 '건칠보살좌상(보물)'같은 문화재들도 많고, 배롱나무와 소나무등 조경도 잘 되어있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더욱 좋은 곳이다.



                                                                                                       '골굴사의 마애여래좌상(보물)'

기림사에서 나와 한 10분정도 가면 '골굴사'가 나온다. 선무도 대학이 있어 나름대로 유명...다른 것은 별로 탐탁치 않지만, 위 사진의 마애여래좌상이 참 멋지다. 하지만 이곳에 오르려면 가파르고 위태위태한 바위를 올라가야 한다. 쪼께 무섭지만 오르고 나면 앞 산의 풍경하며 후회가 되지 않는 곳이다.



                                                                                                                                                                '장항사지 '

다음은 '장항사지', 골굴사에서 다시 경주쪽으로 들어오다 토함산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폐사지인데 아무생각없이 지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차를타고 가다 유심히 살펴보면, 개울건너 저편에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장항사지의 탑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특별한 표지판이 없어서 아쉽지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다리는 다 놓아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멀찌기서 쳐다보고 그냥 스쳐간다. 아쉬운 일이다. 조금만 수고를 한다면 후회하지 않을텐데...폐사지에서 만이 느껴지는 또다른 감동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뽕나무에 달려 있는 오디도 맛볼 수,,,ㅋㅋ(물론 좀 위험하다...) 주변에 복숭아 나무가 많으니 늦여름에 가면 달디 단 복숭아 횡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1박2일의 경주여행 참 좋았다. 또 가야지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으니까....그저 이름 난 곳이라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아쉽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그 이상의 멋과 아름다움이 숨쉬고 있는데 말이다...내가 사는 이 땅의,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감동이란 이름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나는 언제나 욕심쟁이 인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다~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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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0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상미 주연의 '미소'라는 영화에 보면 경주가 나와요.
전 신혼여행을 고물차 끌고 경주로 갔답니다.
제주도 갈 돈이 없어서......
그런데 참 좋았어요.
퍼갑니다.

난티나무 2005-06-0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퍼오신 거 보고 찾아 왔어요~^^
사진들 보니 넘 반갑네요~ 저도 거기 가 봤어요. 가까이 살았거든요.
기억이 새록새록하여 글 남깁니다.^^

미네르바 2005-06-0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용님, 저도 다시 경주 가고 시포요~ 몇년 전에 3박 4일 경주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어요. 저도 강석경의 <능으로 가는 길>을 읽고 나이 들어서 이 곳에 살면 참 좋겠다 싶었지요. 눈을 들면 오래된 역사와 만나는 경주... 비오는 날, 감은사지를 갔었어요. 참 오래 그곳에 있었지요. 님의 이 글을 읽으니, 다시 가고 싶네요.

드팀전 2005-06-10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어 경주라..... 나두 고민해봐야겠네요.현재까지 1순위는 충북 진천이었는데...하기사 좀더 돌아다니다 보면 더 맘에드는 곳들도 있을테니 순위는 늘 가변적이죠.
잘봤습니다...ㅆㅆ

분홍달 2005-06-1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짱 멋져요^^ 고물차와 신혼여행 그것도 경주로...우와~~참 근사해요!!
난티나무님~ 반가워요!! 가까이 사셨다니 좋은 추억이 많으시겠어요^^
미네르바님 으~~어떡해요!! 오늘도 하루죙~일 비오는 데...비 오는 감은사지 으~~생각만해도 넘~ 넘~ 넘~....안되겠다 커피 한 잔 마셔야쥐^^
드팀전님! 맞아요 생각은 늘 바뀔 수 있으니깐...암튼, 오래 된 도시라 그런지 오래 된 사람들이 살면 좋을 것 같은 거 있죠^^ 참 평화로운 느낌이에요 전^^
 

 





얼마 전 아는 분들과 점심을 먹으러 근교의 식당엘 다녀왔어요...그런데, 그곳에서 야생화 전시를 하고 있더군요...많은 꽃들 가운데 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꽃이랍니다...이름이 '아지랭이'  그 모습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지금도 잘 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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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6-0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아지랭이에요? 이름과 생김새가 정말 닮은 것 같아요. 마음을 흔들어 놓는군요. 화원에 가면 있나요? 저도 사고 싶어요. 정말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네요. 노란게 꽃인가요? 잎사귀도 안 보여요

드팀전 2005-06-10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요...잘키우세염

분홍달 2005-06-1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맞아요 노란 것이 꽃이구요 잎사귀는 꽃대 저 밑에 오글오글 모여있는 초록색이랍니당..글쎄요 화원에서 만나기 쉽진 않을 것 같아요...저도 화원에 참 자주 가는데 별로 못 봤거든요...암튼 만나시거든 고민마시고 얼른 사세요...키우기도 어렵진 않답니당^^
드팀전님! 이쁘죠~~덕분에 잘 키울 것 같네용^^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석같은 저녁바람에 향긋한 아까시 꽃향기가 묻어난다.. 해마다 찾아오는 이 계절은  어찌 된 일인지, 한번도 실증이 나지 않고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사랑에 빠져 달뜬 처녀의 얼굴처럼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저 초록의 산들을 보며 자연스레 '신', '절대자'에 대해 생각한다. 변함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이 자연의 조화는 아무래도 대단한, 어떤 무엇의 힘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의 신앙은 이러하다. 세상의 하찮은 무엇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 한없이 크고 넓은 사랑이 존재하리라 믿는 것이다.

'메타노이아(metanoia)', 이것은 예수가 대중을 상대로 첫 전도사업을 시작하면서 외친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에서 ‘회개’로 번역된 희랍어 원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메타노이아'는  한국어의 ‘회개(悔改)’나 영어의 ‘리펜턴스(repentance)’같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뜻보다 훨씬 더 깊은 뜻, 곧 가장 깊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변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예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 세례까지 받았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성경'을 읽어 본 적 없고, 늘 주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날라리 신자'의 의혹, 더 이상 나의 믿음이 자라날 수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카톨릭 신자인 고모를 통해 초등학교 6학년 즈음, '하느님'과 '예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호기심으로 '성당'에도 두어번 나가 보았다. 하지만 고모를 제외하고는 불교적 색채가 더 강한 집안 분위기 탓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사춘기, 둘 곳 없는 마음이 너무나 버거워 자발적으로 성당을 찾았고 세례를 받았다. 이후, 기도도 열심히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도 해보았지만, 결국 진리의 말씀이 가득하다는 성경 때문에 난 '날라리'가 되고 말았다. 마음잡고 앉아 성경을 펼쳐들면, 창세기부터 까막눈이 되어 하나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소심했던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의구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두쪽 눈을 다 감은 채로 나의 복만을 구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 한 교수님의 소개로 개신교에도 나가 보았지만, 근본적인 나의 질문들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저 모두 믿음만을 강요하는(믿고 나면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분위기와 적어도 신도보다는 큰 사랑을 실천해야 할 성직자가 결정적인 순간엔 자신의 자식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학문적인 호기심으로라도 성경을 공부하는 일은 끝이 났다. 결국 세례를 받기 위해 공부했던 성경지식이 내가 갖고 있는 전부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것마저도 대부분 잊었지만... 만일 그 당시에 오강남교수와 같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나의 종교생활은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성경지식과 예수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성경에 대한 몰이해는 나의 아둔함과 게으름의 산물이었지만, 어쨌든 오교수의 말대로 우리 사회에서의 기독교적인 모습들은(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구교와 신교 사이엔 분명 차이가 있다 )  문자를 넘어 그 참된 의미를 찾기 보다는 문자주의적으로, 율법적으로, 하늘나라 보다는 교회가 더 중요한, 혹은 자신과 가족만의 하늘나라 입성을 위한 이기적인 구복적 신앙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예수를 안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이 그릇 믿는 것이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인류사에서도 그릇된 믿음에 의해 비롯된 불행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믿는 이들도 믿지 않는 이들도 다같이 공평한 시선을 위해 공부하며, 더욱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종교적 제국주의에 물들어 있거나, 타인의 신앙을 배척하고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며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이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모습을 돌아 보았다. 혈기 왕성한 20대에 '나이듦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 얼굴에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삶의 지혜와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 더 많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참 근사한 일일진대,  생각보다 근사하게 성장한 어른도, 멋진 노년을 보내는 사람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깊이 패인 주름만큼 옹고집스럽게 자신과 다른 것들, 새로운 것들은 배척하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큼은 죽자사자 뺏기지 않으려는 어른들, 난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나도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모습을 조금씩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못난 고집쟁이의 모습으로 빈티나는 짓을 수없이 저질러 왔던 것이다. 신앙이 있든, 없든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지, 내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천국에 이르는 길은 의식의 변화를 통한 반성 '메타노이아', 참 깨달음 뿐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신앙인이라면 유치한, 이기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타인의 종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세상의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란다. 결국 우리가 믿는 모든 절대자의 삶도 그러하지 않았을까...기독교를 뒤집어 읽다가 나를 뒤집어 본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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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7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5-18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래 전 권정생, 이현주 목사의 책들을 읽으며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의 세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above god
자신을 뒤집어본 정말 의미있는 독서였네요.^^

분홍달 2005-05-1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합니당^^
글구 ...님도 고맙습니당..저도 늘 님의 안부가 궁금할거에요..가끔씩 흔적이라도 남겨주시길....

로드무비 2005-05-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신고하면서 그 몇 글자 안되는 댓글에 오타가 났네요.
는에 띈 -눈에 띈
고치고 갑니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ㅎㅎㅎ)

레드페퍼 2005-06-0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구입리스트에 올렸어요.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리뷰가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분홍달 2005-06-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페퍼님 반갑습니다..도움 되셨다니 기쁘네요^^
 





이 꽃은 '환타나'라는 꽃이에요...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함께 피어서

제가 '꽃잔치'라고 부르는 녀석이죠...허브의 일종이라 향기도 괜찮아요...

빛깔은 제 이름처럼 영락없이 환타색깔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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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0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뻐요^^

미네르바 2005-05-0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정말 예뻐요. 부용님은 꽃작명가이시군요. 빛바라기, 꽃잔치 등...

분홍달 2005-05-0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은 정~~말 꽃을 좋아하시나봐요!!...꽃 얘기엔 젤 먼저 나타나시죠^^
미네르바님도 역쉬~~~ 식물성을 꿈꾸는 사람들은 다르다니까요^^

물만두 2005-05-0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을 즐찾했으니 님 글이 뜨면 빠르게 찾아오는거지요^^ 백조의 센쓰~라고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