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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신갈나무 투쟁기'에 대한 관심은 벌써 5년이나 된 것이다. 그 제목이 흥미로워 처음 출판되었을 때부터 읽고 싶었으나 생물책 같은 느낌 때문에 선뜻 용기가 나질 안았다. 그러나 올 봄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봄은 분명, '사람의 계절'이 아니라 풀이나 나무와 같은 '식물들의 계절'이기에 그 찬란한 '봄'에 대한 경이로, 봄의 주인공인 그들의 시간을 쫓아 보기로 한 것이다. 왜? 봄이었으니까..그런데 책을 잡기 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다 읽기 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봄에 시작한 독서는 장마가 시작되기 바로 사흘전에 끝났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긴탓에 나의 심~플한 뇌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으나, 소설이나, 수필같은 문학처럼 오랜 시간 붙잡고 있기는 쉽지 않은 책이다.
제 잘난 멋에 살다가도, 오래 된 나무를 보면 어쩔수없이 숙연해진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에 그들은 좀더 강한 것 같으니까...그냥 거기, 그 자리에서 무던히도 세월을 버티어 내며 수없이 지고 피는 동료들의 투쟁과 인간사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찌 그들 앞에서 작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그런데 사실상 나무들이 장수를 하는 것이라기 보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생장과 발달이 정지된 상태로 머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얘기라고 한다. 예를 들면 '종자휴면'같은, 그러니까 대부분 식물의 씨앗들은 싹을 틔울 시기가 될 때까지 잠을 자게 된다고 한다. 씨앗이 더 성숙해 질 필요가 있다거나, 좀 더 적응하기 쉬운 환경이 됬을 때 싹을 틔우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식물들은, 손과 발을 쉴새 없이 놀려 삶을 영위해 가는 인간처럼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악조건 속에서도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신갈나무'는 우리가 흔히 '참나무' 혹은 '도토리나무'라 부르는 것이다. '참나무' 이 말은 엄밀히 말해 틀린 표현이다. 사람의 이름을 '개똥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참나무류에는 '상수리, 굴참, 갈참, 졸참, 신갈, 떡갈나무' 6가지가 있다. 동네 뒷산에 오를 때마다 유심히 살펴 보나 그들을 정확히 구분해서 부르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 한번 마음먹고 나뭇잎이라도 채집해서 관찰을 좀 해봐야겠다. 참나무류는 잎의 모양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선 잎이 길고 가는 형태로는 '상수리와 굴참 나무'가 있고 잎이 크고 두툼한 것은 '신갈과 떡갈 나무' 마지막으로 중간단계의 넓은 잎 모양을 가진 것으로는 '졸참과 갈참 나무'가 있다. 여기에다 잎의 뒷면의 모습이라든가, 두께, 털의 모양을 통해서 더 자세하게 구분할 수 있으나, 세 부류로만 나눌 수 있어도 꽤 유식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신갈나무 투쟁기'는 산림생태학과 식물 분류 및 생태를 전공한 차윤정, 전승훈 부부가 지은 것이다. 도토리가 어미 나무로 부터 떨어져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큰 나무들 틈에서 햇빛을 모으며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 열매를 맺으며 어떻게 당당한 숲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두 저자는 인간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처럼 하나의 당당한 개체로서 그들의 얘기를 풀어 간다. 만약 학교에서 배우는 생물 교과서가 이런 정도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학창시절, 너무 외울 게 많아서 싫어 했던 과목중에 하나가 바로 생물이었다. 이 책처럼 집앞에 서있는 느티나무의 이야기로, 운좋게 등산갔다 만난 줄무늬 다람쥐의 말로 생물 책을 만든다면 어릴 적에 가졌던 호기심들이 '공부'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고사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라, 누구하나 올챙이에 날아가는 새에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가 말이다... 지금의 교과서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공부를 재미없는 것이 아닌,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아니, 자연스런 호기심들이 짓밟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에 경남에 사과 주산지로 유명한 '얼음골'에 가본 적이 있다. 구불구불 높은 산 하나를 넘고 나면 저 아래 작은 나무가 안쓰러울 만큼 크고 탐스런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느 사과밭이 펼쳐진다. 물론 꽃처럼 그 모습이 이쁘기도 하지만, 어쩐지 자연스럽진 않다. 사과의 맛 또한 어찌나 달고 단지, 하나를 다 먹고 나면 물로 입가심을 해야 할 정도다. 난 그 역시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런데 개량 작물들은 대부분 야생에 비해 키가 작고 필요 이상의 잎은 만들지 않으며 오로지 많은 수의 큰 이삭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작물인 것이다. 그러나 본성과 기능을 거세당한 개량작물들은 품종단일화로 인해 갑작스런 환경변화나 병, 해충등에 꼼짝없이 당하게 되며 결국엔 인간의 식량안보도 불안해 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한다. 또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집에 진열되어 있는 대부분의 꽃들 역시, 제 기능을 상실하긴 마찬가지다. 크고 탐스런 꽃을 위해 꽃은 피되 씨앗은 맺지 않게 된 것이다. 요즘은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유기농이나 무농약, 생태적인 농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생계'라는 것과 '환경보존',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발전 시키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저 평화롭게 무던히 세월을 버티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신갈나무 투쟁기'를 다 읽고 나서는 더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어쩌다 드러난 나무의 뿌리를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의 눈이 미치지 않는 저 땅속에서 나무들끼리, 수많은 식물들이 벌이고 있을 뿌리들 간의 전쟁을 떠오르니 삶이란 인간의 것이든, 식물이 것이든 다 그렇게 처절할 수 밖에 없는가 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많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