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than Blue -샤갈의 사랑


이 진 숙

 

7월 7일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생일입니다. 그의 연인 벨라는 아침부터 마을 근교를 돌아다니며 꽃을 꺾어  커다란 꽃다발을 만듭니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보자기와 숄, 달콤한 과자와 생선 튀김까지 연인이 좋아하는 것 모두를 들고 마을을 가로질러 그의 집으로 갑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벨라는 잽싸게 파티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날이 자신의 생일인 줄 몰랐던 샤갈은 예기치 못한 방문을 받은 셈입니다. 종달새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벨라를 바라보다가 샤갈은 이젤 위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꽃다발을 들고 있던 벨라는 마침내 샤갈의 색채의 마법에 걸려서 한폭의 그림으로 되었습니다. 그 순간을 그린 그림에 ‘생일’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샤갈이 그린 그림은 단순한 생일 꽃다발을 든 벨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원한 신부인 벨라에 대한 깊은 사랑, 평생을 그의 마음을 지배할 영혼을 사로잡은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벨라를 바닥에서 떠오르게 했고, 샤갈 자신도 그녀를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날아 오른 샤갈은 그녀의 귀에 살짝 키스하며 속삭입니다. 그 열정적인 고백에 깜짝 놀란 그녀는 눈이 동그래졌고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창밖의 풍경들, 지붕, 안뜰, 교회, 꽃밭도 그들과 더불어 흘러갑니다.

 

 

 

 

 

 

 

 

 

 

 

 

 

 

 

 

 

 

 

 

Birthday, 1915, Oil on canvas, 81x100cm


작품의 초안을 잡고 난 뒤에 샤갈은 벨라에게 말합니다. “내일 또 와주겠어? 다른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가 함께 날아다니는 그림을.” 그리고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소박한 목조 건물들. 멀리 보이는 교회, 목책, 울타리 옆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일을 보는 남자.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려지는 러시아의 조그만 유태인 마을 비테브스크의 겨울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풍경 위를 날아다니는 두 연인은 바로 샤갈과 벨라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하늘을 나는 환상 - 모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꿈꾸는 최고의 환상일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신랑과 신부, 그리고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경-이 그림 속에 이미 샤갈이 앞으로 그릴 그림의 모티브는 모두 다 담겨 있습니다. 샤갈의 작품 세계의 윤곽을 결정지은 것은 바로 그의 첫 사랑이자 첫 아내인 벨라와의 사랑이었습니다. 

 

 

 

 

 

 

 

 

 

 

 

 

 

 

 

 

 

 

 

Over the Village, 1914-18, Oil on canvas, 141x198cm


샤갈은 “나의 인생‘이라는 자서전에서, 그리고 벨라는 ”첫 만남“이라는 글에서 사랑의 첫 순간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벨라가 친구 테아의 집에서 샤갈을 처음 보았을 때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머리가 타는 것 같다. 누군가가 가느다란 회초리로 나를 때리는 듯, 온몸이 아프다.“ 그녀가 평생 앓아야 하는 사랑이라는 열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샤갈이 벨라에게 첫 말을 건넵니다. "당신 목소리가 아름다워요. 당신 웃음소리를 들었거든요.” 수줍은 벨라는 도망치듯이 친구의 집에서 뛰어나와 버립니다. 그녀의 뒤로 “눈꼬리가 아몬드처럼 갸름하고”, “막 튀어 오르려는 짐승” 같은 남자가 따라옵니다. 반짝거리는 하얀 이빨로 자기를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달려가는 그녀의 귀에 그의 이름은 “크고 강하게 종소리처럼” 울립니다. 그녀는 이것이 한 번쯤 왔다가 지나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사로잡아 버릴 운명의 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끝내 승복하고만 그녀는 이렇게 씁니다.  “머리가 어지럽다. 나는 이제 창가에 서 있지 않고, 구름에게로 떠오른다. 그 남자의 구름에게로....... 나는 긴 잠을 잔다. 그리고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가난한 집안의 9남매의 장남인 샤갈과 유복한 상인의 총명한 딸인 벨라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을 다니던 벨라는 연극배우의 꿈을 접고 샤갈과 프랑스로 떠납니다. 벨라 로젠펠트가 아닌 벨라 샤갈이라는 “다른 인생”을 그녀는 살기 시작합니다. 샤갈이 이후에 썼듯이 해가 지날수록 그녀의 사랑이 그의 예술 속에 스며들어갑니다. 샤갈의 그림들 자체가 바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진솔하고 아름다운 기록들입니다. 그가 그녀를 처음 얻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듯이 샤갈은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 1917-1918, oil on canvas, 233x136cm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부였으며 뮤즈였고 당나귀, 수탉, 꽃다발, 다리와 마을의 종소리였습니다. 복잡한 현대 미술의 계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결국 ‘에꼴 드 파리’라는 불투명한 묶음으로 표현된 샤갈의 작품들은 벨라와 함께 한 영원한 사랑의 변주곡이었습니다. 결혼식 예복을 입은 신부와 그 신부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신랑은 빠지지 않고 그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샤갈은 신부인 벨라를 꼭 끌어안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그곳이 파리의 하늘이든, 비테브스크의 하늘이든, 성서 속의 이야기 속이든 단 한순간도 신랑은 신부를 놓지 않습니다. 절대로.

 

 

 

 

 

 

 

 

 

 

 

 

 

 

 

 

 

 

 

 

 

 

 

  

The Bride and Groom of the Eiffel Tower, 1938-39, oil on Canvas, 150x136.5cm

그러나 샤갈의 현명하고 아름다운 유대인 신부는 1944년 미국 망명 중에 불현듯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러 가지 사물들을 정리를 합니다. 놀란 샤갈이 묻습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많은 걸 정리하고 있소?” 그녀가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무엇이든 필요한 걸 제때 찾아낼 수 있지요.” 그녀는 자기 없는 샤갈의 삶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29년을 함께 한 그녀는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 충격으로 샤갈은 한동안 붓을 들 수 없었습니다.

 

 

 

 

 

 

 

 

 

 

 

 

 

 

 

 

 

 

 

 

 

 

 

Homage to the Past, 1944, Oil on canvas, 71x75cm

그녀를 잃은 깊은 슬픔은 “Homage to the past"라는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세상은 빛을 잃고 깊은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비테브스크의 풍경도 슬픔으로 침묵하고 샤갈은 신부대신 묘비를 끌어 안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그의 뮤즈인 벨라를 볼 수 있습니다. 샤갈을 바라보는 벨라의 변함없는 온유한 눈빛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샤갈의 애절한 시선이 교차됩니다. 이 가슴을 에는 슬픔은 푸르고 푸르러서 모든 빛이 잦아들어 채도가 낮아진 서글픈 푸른색입니다. 벨라를 잃은 후 한 동안 그의 화면은 이 깊은 푸른색이 지배합니다. 후에 이 푸른색은 정제되고 단련되어서 가히 ”샤갈의 푸른 색“이라 할 맑고 환상적인 색채에 이르게 됩니다.

 

 

 

 

 

 

 

 

 

 

 

 

 

 

 

 

 

 

 

 

 

 

 

 

 

 

 

 

 

 

 

Le Champ de Mars, 1954-55, Oil on canvas, 149x105cm


벨라가 세상을 떠난 뒤에 샤갈은 다른 여인들을 만납니다. 샤갈의 매니저 역을 하던 딸 이다는 아버지가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를 돌보아줄 사람을 적극적으로 구해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샤갈은 이미 평범한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젊은 버지니아는 유명한 화가의 아내, 사교계의 중요한 호스티스이자 작가의 섬세한 관리인이어야 하는 역할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여인, 바바가 그의 무덤을 지켜줍니다. 그런데 버지니아를 만난 뒤에도, 바바를 만난 뒤에도 샤갈은 비슷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립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의 여인의 얼굴은 왠지 자꾸 벨라의 얼굴과 겹쳐집니다.


 

 

 

 

 

 

 

 

 

 

 

 

 

 

 

 

 

 

 

 

 

 

 

 

 

 

 

 

Artist at his Easel, 1955, Oil on canvas, 55x46cm

 

벨라가 죽은 지 11년이 지난 1955년의 작품 “Artist at his easel"에서도 한 여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샤갈을 찾아와 부드럽게 위무합니다. 샤갈은 기꺼이 그녀에게 기댑니다. 그런 샤갈의 표정에는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The Painter, 1976, Oil on canvas, 65x54cm

그가 89세에 그린  회고적인 작품인 ”The Painter"(1976)에서 다시금 신부를 꼭 끌어안고 있는 신랑의 모습과 수탉이 등장합니다. 마치 보통 명사로서 “화가”가 그려야 할 것은 오직 “신랑과 신부-사랑”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말입니다.

 

 

 

 

 

 

 

 

 

 

 

 

 

 

 

 

 

 

 

 

 

 

 

벨라와 샤갈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영혼을 보듬는 듯한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 그 깊이는 그런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속에 샤갈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림 속에서처럼 그녀를 꼭 그렇게 끌어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The Bridal Couple, 1927-35, Oil on canvas, 148x80.8cm

 

 

-- 웹진 <Essay.co.kr>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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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에서 샤갈 전시회를 하고 있다. 거리에 부담이 좀 적다면, 샤갈을 만나러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까지 '샤갈' 하면 아름다운 선과 색채로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을 즐겨 그리는 화가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우연히 이런 글을 읽고 나서 다시 보는 샤갈은 이전과는 다른 울림과 깊이로 내게 다가왔다.

미술 공부를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 때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라도 '미술에 접근하는 방식'이 좀 달라지면 좋을 텐데......

화가와 그림 제목을 줄긋기하는 식의 상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식이  아니라, 그림에 담겨 있는 화가의 시선과 손길과 삶의 이야기와 다채로운 느낌과 울림을 자연스레 음미할 수 있는 방식.......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명제는 그리 멀리 있지도, 그리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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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9-12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샤갈 전시회 가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가고 있네요.

로드무비 2004-09-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즐길 줄 아는 것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샤갈과 벨라, 정말 멋지군요.

에레혼 2004-09-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죠?
샤갈과 벨라의 사랑... 저 사진 속에 보이는 두 사람의 눈빛, 눈길만으로도 잘 전달되지요, 그 눈길 속에 흐르는 공기가 바로 샤갈의 그림을 낳지 않았나 싶어요.
저런 사연들을 밑에 깔고 보면, 샤갈은 자신이 그릴 수밖에 없는, 자신이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어블루님, 서울에 계시다면 시간 한번 만들어 보세요, 전시회, 10월 초순까지 한다던데...
 

 

비가 내리는 날이면

허수아비도

사람처럼 보이네

 

-- 세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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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1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09-1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漏氣가 빠르게 말라 가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에 익숙해지는 대신에 심드렁해집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추천이란 말이 좀 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냥 서로 통한다는 눈빛 한번 건네신 걸로 받겠습니다
(오늘 아침 내내 저는 ....님의 방에 들어가 있었어요, 많은 말들이 '말해지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갑니다)

플레져 2004-09-1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니깐 우리 동네가 참 맑아보여요.
 

 


세르게이 예세닌. 러시아의 '농촌 시인'이라고 알려진 그는 어느 날 이런 시를 썼습니다.



어머니의 편지

이제
뭘 더 생각할 게 있겠는가,
이제 뭘 더 쓸 게 있겠는가?
내 눈 앞
우울한 책상 위에
놓여진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는 이렇게 쓰신다.
“될 수 있으면 말이다, 얘야,
크리스마스 때
우리한테 내려오려무나.
내게는 목도리를 하나 사주고,
아버지께는 바지를 한 벌 사다오.
집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단다.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나도 이젠 늙었고
몸도 영 좋지 않단다
........

사랑하는 내 아들아,
대체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토록 얌전하고,
그토록 순한 아이였는데.
모두들 앞을 다퉈 말하곤 했지.
저 아이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네게 품었던 우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구나.
게다가 더 가슴 아프고
쓰라린 것은,
그나마 네가 시로 버는 돈이
꽤 많을 것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네 아버지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믄 
얼마를 벌든 간에,
네가 돈을 집에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
네 시가 그토록 서러운 걸 보면
나도
알겠다,
시인들한텐 돈을 잘 안 주나 보다는 걸.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요즘은 온통 슬픈 일 투성이다.
암흑 속에서 사는 것만 같구나.
말(馬)도 없단다. 
네가 집에만 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에겐 모든 게 있을 텐데,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

그랬더라면 더 당당하게 살았을 텐데,
아무한테도 끌려 다니지 않고,
너 역시나
필요없는 고생은 안했을 텐데,
네 처한테는
실 잣는 일이나 시키고,
너는 아들답게,
우리의 노년을 돌보지 않았겠느냐.” 
................
편지를 구겨 버린 나는
우울해진다.
정말이지 내 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그러나 내 모든 생각은 
나중에 털어놓으련다.
답장에서
털어놓으련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정말로 '답장'이란 시를 썼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내 늙은 어머니, 
사시던 대로 그냥 사세요.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구요,
하지만 
내가 무얼 위해 사는지,
이 세상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어머니는 눈꼽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
어머니!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지요?
굴뚝에선 웅웅대는 소리가
그렇게 불평하듯 늘어지는데.
몸을 뉘려 하면,
보이는 건 침대가 아니라
좁은 관이고,
꼭 무덤에 들어가는 것만 같을 테지요.

....
내가 사랑하는
그 봄을 
나는 위대한 혁명이라
부르지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거예요.
그 하나만을
기다리며 불러대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가증스러움이란!
레닌의 태양으로도
여태 덥혀지지 않는,
우리의 이 차가운 지구 말이에요!
바로 그래서
시인의 아픈 가슴을 안고
추태를 부리기로 나선 거예요.
술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말이예요.

....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시라구요.
죽음이라니요?!
왜 그러세요?
내가 뭐 외양간에서 끌어내야 하는
소는 아니잖아요,
말이나
당나귀도 아니구 말이에요.

때가 오면,
지구에
불을 지펴야 할 때가 오면,
내 발로 나가겠어요,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목도리를 사드리지요,
아버지께는 
말씀하신 바지도 사드리구요.

        
  
예세닌, 「답장」




저도 가끔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삶에게!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시라구요.

... 때가 오면, 지구에 불을 지펴야 할 때가 오면, 내 발로 나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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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목도리도 사드리고, 아버지 바지도......
'다믄 얼마라도..."하는 어머니의 편지도 마음에 아프게 와닿습니다.

로드무비 2004-09-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다시 와서 추천하고 퍼가요.(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네요.)
답장에 쓰인 사진도 좋아요.^^

플레져 2004-09-1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한텐 돈을 안주나보다... 돈과 문학은 멀리 떨어뜨려놓아야 마땅한 것 같은 씁쓸한 풍경이네요. 추천하고 퍼갈게요. 너무 좋습니다...흑흑...

hanicare 2004-09-1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한국의 어머니들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지는군요.왜 씁쓸한 웃음이 나올까요. 자식이 꽤나 싸가지없이 말하는 것도 여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

에레혼 2004-09-1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머리카락은 괜찮으세요?^^
"다믄 얼마라도..." 정말 절절하지요, 어머니가 가릴 것 없이 저렇게 직설적으로 나올 때 가슴이 철렁 무겁게 내려앉지요.

플레져님, 저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흑흑,까지는 아니어도 스물스물 눈물이 차오르는 듯합니다, 예세닌과 그 어머니, 멀지 않은 바로 우리들의 풍경이라서......

하니케어님은 눈물 대신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는군요... 싸가지가 좀 없나요, 아들내미가? 그래도 저는 저 정도의 싸가지가 마음에 들어요.
 

 

* 외국 배우 한 명을 꼽으라면

케빈 클라인은 무겁지 않으면서 캐릭터를 선명하게 표현한다.

스스로 즐기고, 관객에게 " 나 연기 잘하고 있어"라고 내세우는 것 같지가 않다.

--최형인 교수의 인터뷰(한겨레, 9월 10일) 중에서

 

 

무겁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내 삶을 살고 싶다

스스로 순간들을 즐기고 싶다

"나 잘하고 있지"라고 의식하지 않으면서......

내 삶의 관객이 나 하나라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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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f4f4f darkslategray 어두운푸른빛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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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969 dimgray 칙칙한회색
808080 gray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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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5deb3 wheat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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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e0 lightyellow 밝은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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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ff blue 파랑
483d8b darkslateblue 어두운푸른빛회색파랑
5f9ea0 cadetblue 이하의파랑
87ceeb skyblue 하늘파랑
4169e1 royalblue 황실의파랑
b0e0e6 powderblue 가루파랑
000080 navy 짙은검은빛을띤남빛
00008b darkblue 어두운파랑
8a2be2 blueviolet 파란제비꽃색
8b008b darkmagenta 어두운짙은분홍색
9932cc darkorchid 어두운연보라색
9400d3 darkviolet 어두운제비꽃색
ff00ff magenta 짙은분홍색
ff00ff fuchsia 붉은빛깔이나는자줏빛
c71585 mediumvioletred 중제비꽃빨강
ba55d3 mediumorchid 중간의연보라색
9370db mediumpurple 중간의자줏빛
dc143c crimson 짙게붉은색깔
ff1493 deeppink 짙은연분홍색
ffb6c1 lightpink 밝은연분홍색
ff69b4 hotpink 강렬한연분홍색
ffc0cb pink 연분홍색
dda0dd plum 짙은 보라색
800080 purple 자줏빛
ee82ee violet 제비꽃색
d8bfd8 thistle 엉겅퀴
da70d6 orchid 연보라색
4b0082 indigo 남색
a52a2a brown 갈색
e9967a darksalmon 어두운주황색
f08080 lightcoral 밝은산호빛
cd5c5c indianred 인디언빨강
ffa07a lightsalmon 밝은주황색
db7093 palevioletred 옅은제비꽃빨강
f4a460 sandybrown 엷은갈색
fa8072 salmon 주황색
ff6347 tomato 토마토색
ff4500 ornagered
ff0000 red 빨강
800000 maroon 붉은빛을띤갈색
8b0000 darkred 어두운빨강
b22222 firebrick 내화
d2691e chocolate 갈색
8b4513 saddlebrown 안장갈색
a0522d sienna 붉은빛을띤갈색
bc8f8f rosybrown 장미빛갈색
ff7f50 coral 산호빛
ff8c00 darkorange 어두운붉은빛을띤누른색
ffa500 orange 붉은빛을띤누른색
b8860b darkgoldenrod 어둔운국화과의다년초
ffd700 gold 금빛
ffff00 yellow 노랑
7fff00 chartreuse 연두색
7cfc00 lawngreen 잔디녹색
00ff00 lime 열대산의레몬비슷한과일
32cd32 limegreen 라임녹색
00ff7f springgreen 봄녹색
3cb371 mediumseagreen 중간의바다녹색
adff2f greenyellow 녹색의노랑
8fbc8f darkseagreen 어두운바다녹색
90ee90 lightgreen 밝은녹색
98fb98 palegreen 옅은녹색
2e8b57 seagreen 바다녹색
00fa9a mediumspringgreen 중봄녹색
20b2aa lightseagreen 밝은바다녹색
66cdaa mediumaquamarine 중엷은청록색
228b22 forestgreen 숲녹색
008b8b darkcyan 어두운푸른정도
008080 teal 암록색을띤청색
006400 darkgreen 어두운녹색
556b2f darkolivegreen 어두운올리브녹색
008000 green 녹색
808000 olive 물푸레나뭇과의상록교목
6b8e23 olivedrab 올리브엷은갈색
bdb76b darkkhaki 어두운누른빛에엷은다색
daa520 goldenrod 국화과의다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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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9-10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볕에 탄 빛깔, 낡은끈, 물푸레나뭇과의상록교목. 자주 애용하는 색상인데.
한글 이름이 정말정말 이쁘네요. 음...곱다, 고와~~

2004-09-10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09-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세상의 모든 빛깔들은 다 예뻐요, 정작 그 빛깔들에 어떤 이름을 붙이려는 우리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래도 그 이름들도 가만히 음미해 보면... 한 편의 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볕에 탄 빛깔, 낡은 끈, 물푸레나뭇과의 상록교목......

에레혼 2004-09-1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이런 걸로 뒤통수 맞으면 외롭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지요. 자주 맞고 싶어요.

tarsta 2004-09-1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의 코멘트는 ....?)

와와. 안그래도 저렇게 정리해서 한눈에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져다가 잘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

에레혼 2004-09-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의 코멘트가 좀 선정적이었나요? 새도 마조히스틱한.... ㅎㅎㅎ)

타스타님, 가져다 잘 쓰세요, 고맙습니다!

플레져 2004-09-1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저 요거 추천하고 퍼갈게요 ^^
언젠가...멋진 태그를 만들어서 님께 선물할게요. 요 색상표가 꼭 필요해요 ^^

로드무비 2004-09-1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갑니다.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