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술을 많이 먹인다. 술을 못하지는 않는 편이라 그러한 강요가 다소 불편하되 힘들진 않다. 다만 술 덕에 간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뚜렷이 알게 됐다. 제 존재를 욱신거림으로 표현하는 탓이다. 간에게 미안하다. 지친 간은 쿠퍼스로 달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도 늦다. 새벽 2시가 기본이다. 한 번은 술은 너무 많이 마셔 필름이 끊겼다. 다행히 출근 시간 즈음하여 눈을 떴다. 문제는 오디오에 쌓여있던 토사물이었다. 비싼 한우 등심도 이지러지고 나니 그냥 가여운 오염물이 따름이었다. 그 오염물은 방 공기뿐만 아니라 오디오도 오염 시켰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던 오디오는 더욱 비참해졌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음악을 멀리했다. 노래방가면 항상 댄스나 트로트를 불러야하고 몸은 알코올로 스스로를 가다듬지 못하니, 클래식은 사치였다. 그러다 며칠 전 쇼팽이 정녕 미칠 듯 듣고 싶었다. 굳이 저급한 표현을 하자면 첫 휴가를 나온 사병이 제 씨앗을 여성에게 나누려 하는 욕망의 딱 절반 정도였다. 핍진한 몸을 이끌고 불량한 오디오를 매만지며 쇼팽을 듣는다. 피레스의 녹턴이다.

작품번호 9-2번이 나온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와 입을 맞추었을 때, 어떤 이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을 때처럼 그 설렘은 여전히 따스하다. 밤은 오롯이 쇼팽의 것이다. 야상곡(夜想曲)으로 명명된 녹턴의 그윽함이 술에 절은 몸을 다독인다. 밤은 깊었다.

일상의 피로함은 취향의 간절함을 배가 시킨다. 덕분에 사소한 취미는 절절한 그리움으로 자리매김 한다. 술도 밥도 다 부족하던 시절에, 야위어가던 마음을 눅여주던 음악이다. 술도 밥도 넘치는 시절이지만 그 한가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 언젠가 다시금 한가해 질 때 여투어둔 그 사소함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그대를 사랑하고프다. 네가 그립다. 오늘 하루는 내게 쇼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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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하지 않아도 적당히 못하는 척 해야 회사생활이 편해지는 법이예요 ^^*
아휴 넘 힘들지 않은 직장생활이라야 될텐데.
한 일년지나면 괜찮아질듯 해요.

바밤바 2010-02-15 02:06   좋아요 0 | URL
직장 생활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ㅎ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정녕 그렇답니다.
다만 일찍 일어나야하는 거랑, 나를 드러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죠.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서인지 좋아라 한답니다^^

페크pek0501 2010-02-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 책 구입 신청을 했어요.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구입하면서 땡스투를 누르려는데, 낯익은 바밤바 라는 이름이 있겠지요. 그래서 주저없이 바밤바를 눌렀답니다. 제 덕에 돈 벌으셨어요. ㅋ 전 이 책을 이제야 사보네요. 한 박자 늦는데 뭐있습니다, 저는.

바밤바 2010-02-20 22:07   좋아요 0 | URL
ㅎ 그 책 좋은 책이에요. 제가 좀 까기는 했지만서도.^^;;
페크님 땡스 투~ 감사합니다~~ ㅎㅎ

비로그인 2010-02-2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은 쇼팽 듣기에 더 괜찮아 보입니다. ^^

모라베치의 쇼팽은 그냥 들어도 술한잔 걸치고 듣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ㅎ

바밤바 2010-02-20 23:54   좋아요 0 | URL
오늘 밤에도 쇼팽을 들었습니다. ㅎ
오늘 날이 풀렸다고 옷을 얇게 입고 다녔더니 조금 으슬으슬하네요~
모라벡의 쇼팽 음반은 참고로 갖고 있진 않고 다른 경로로 몇 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모라벡의 다름을 말로써 풀어내려면 좀 더 엄밀한 시간을 가져야할 듯 하네요^^
 


간만에 예전에 쓴 글을 읽어 본다. 조금 더 단아했으면, 조금 더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장을 벼리려고 애써왔으나 그러한 노력이 미진했음을 오롯이 글로써 드러난다. 2주 동안 신문만 읽던 시간이었다. 스스로가 더 미욱해졌을까 저어했지만 글을 보는 눈은 좀 더 밝아진 듯하다. 희원(希願)의 대상을 멀리하며 차분해진 시각을 가진 덕일 테다.

막힌 도로를 기어가는 새벽녘 창원행 버스 속에 많은 생각을 했다. 밥벌이와 이어지지 않은 그 나른한 사유의 조각들은, 내가 나다울 수 있음을 다시금 각인 시켰다. 바쁘지만 마음만은 슬거웠던 지난 2주일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긴장해서 잔실수가 많았던 첫째 주. 조금 풀어진 듯하여 나를 간헐적으로 재촉하던 둘째 주. 사회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즐겼던 건 나를 치유하려 했음이란 게 지난 2주로 명징해졌다. 자잘한 충돌과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전에 읽었던 소설 속 군상을 보았다. 제각기 다른 그들의 말을 알기 위해 전에 읽었던 심리학의 도움을 빌렸고 스스로가 초라해 질 땐 좋아하는 음악과 그림을 떠올렸다. 조직의 질서가 과하게 나를 누를 적엔 경영학과 철학 서적을 떠올리며 내 부족함을 메웠고, 다소 관계가 버성길 때마다 내가 맺었던 관계들과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그 거리감을 좁혔다. 명쾌하지 않은 상황에 처할 땐 경제학에서 나온 비용편익분석으로 나름의 최선책을 택했다. 꽤나 힘들다는 수습사원 생활이 내겐 기회고 배움이 장이 되었다. 내겐 그랬다.

삶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일 수 있는 건 기연(奇緣)이 아니었던 거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어야겠다.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정을 도탑게 할 시간이긴 하다. 허나 나는 내 불안을 눅이고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더 오래되고 다양한 사람을 책을 통해 뵈어야 한다.  



 

 

 

 

 

 

 지난 2주를 즐길 수 있음으로 해서 독서 무용론을 주장하는 강경한 이들의 언사에 보란 듯 대거리할 수 있어 좋다. 사회와 맞닿아 살을 부딪치다 보니 내 사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변(思辨)적 삶이 현실적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나는 인문학의 희망을 읽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흔들림이 찾아올지 모른다. 내 삶은 꾸준히 변증법적이기에 그렇다. 오늘 새벽까지 창원엔 얕은 눈발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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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길..집에는 잘 도착하셨나요? 근데 댁이 창원이세요? 창원이라..후후 제가 군생활을 39사단에서 했는데 말이죠~ ㅎㅎ

오랜만에 올리신 글 가운데 "내가 나다울 수 있음", "삶은 꾸준한 변증법" 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네요. 짧은 연휴.. 기름진 음식 많이 드시고, 또 다시 시작하는 소설 속에서 보는 듯한, 보다 압축해 놓은 듯한, 생각보다 평이한, 그런 일상도 잘 시작하셨음 좋겠네요
:D

바밤바 2010-02-13 17:5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39사단 한 번 가봤어요. ㅎ

좋은 글 감사요~ 조만간 휘모리 누나랑 한 번 봬요~ 제 입김이 일상에 영향을 미칠 때 즈음 연락 드릴께요^^
 

 

 공지영은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제 아비를 원망한다. 왜 그럴까. 공지영의 아비는 탈권위적이고 자상했다. 지성인이었고 자식의 의견을 존중했다. 허나 공지영은 말한다. 그런 아비의 보살핌이 대학 초년생 시절 자신을 힘들게 했다고.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는 그녀의 가정과 달랐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이고 군대 같은 분위기를 일찍이 그녀는 경험한 적이 없다. 사회생활에 대한 면역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거친 말이 난무하고 서열에 의해 사람을 재단하는 사회는 그녀를 길들여지지 않은 낙오자 취급을 했다.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낙오자 말이다. 
 


 

 

 

 

 

 

 

 

 

 

 

 나 또한 공지영과 비슷한 아비를 두었다. 내 아비는 언제나 자상했고 내게 손찌검이나 욕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 같았고 편했다. 불의를 혐오하고 세상의 그릇됨을 종종 탓하곤 했다. 

 그렇기에 권위주의적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게 그건 ‘다름’이 아닌 ‘그름’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었다. 종종 그 그름을 역설하기 보단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세월이 내 삶이었다. 헌데 그런 회피만으론 나를 지킬 수 없는 시절이 찾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그름을 긍정하고 나의 옳음을 부정해야하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일주일 정도 하다 보니 나또한 공지영처럼 사회에 대한 면역력이 현격히 낮은 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아비를 원망하진 않지만 아비가 심어준 ‘아비투스’가 종종 나를 고민에 빠트릴 듯하다. 워낙 정신없는 일주일이라 그런 고민 또한 사치였지만 생각이란 실타래의 매듭을 지어주지 않으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게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생각할 것 같기’에 이런 고민은 나름 유의미하다. 

 술을 많이 마셔 다크써클이 팬더처럼 내려온 눈두덩을 살핀다. 단순히 술 때문만은 아닐 테다. 자지레한 언어폭력과 억압기제에 대해 적응하려는 애씀과 나를 지키려는 저항의 몸부림이 핍진한 육신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다. 조금은 무뎌지기로 한다. 내 가치관을 지킴이 내 몸을 지킴보다 더 아름다운 시절은 이미 사위어 든 듯하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잗다란 충돌 때마다 마음을 눅이려 애쓰는 건 또 다른 자아부정이다. 다들 그렇게 변해간다 하지만 그 절박함은 제 생의 의지와 바투 이어진 신실한 것이다. 김훈이 말했듯 밥벌이는 지겹고 그 던적스러움이 이겨내는 일이야 말로 제 자신의 가치관으로 오롯이 서는 일보다 더 훌륭한 법이다.   

 

 

 

 

 

 

 

 

 

 

 

 

 

 

  물론 내 무뎌짐이 ‘타협’이 아니라는 비겁한 언사를 늘여놓을 생각은 없다. 단지 미당을 긍정하진 않지만 이해하려 애쓰던 그런 마음처럼 내 노력은 가여운 것이다. 자기연민처럼 가난한 게 없다지만 그런 돌아봄만큼 도타운 일도 없다. 그런 가여움으로 나는 삶을 꾸리고 그네들을 사랑하련다. 글로 마음을 엿살피다보니 나를 옥죄던 기분이 조금은 헐거워진 듯하다. 

 

 ‘별이 바람에 스치우던 일’에도 가슴아파하던 윤동주의 고결함이 나약함과 닿아있다는 걸 지난 일주일은 말해준다. 아니 고결하지 못하고 나약함을 긍정하려는 나를 다독이려 부러 동주를 폄하한 듯하다. 일주일을 더 보내면 생각은 절로 명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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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2-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생활 일주일! 요즘 알라딘을 멀리했더니 바밤바님의 취업소식을 이제야 봤네요. 축하해요 축하해!! ^^
어떤 사회생활을 하실지 무척 기대도 되고 궁금하네요. 얼핏이나마 바밤바님의 성정을 볼 때 당연히 저보단 잘 해내실 수 있을거라 봅니다. ㅎㅎ 힘내세요!

바밤바 2010-02-12 19: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성정이 다소 간사하여 잘 적응하고 있답니다^^
사회 생활~ 생각보다 재미있네요~ㅎㅎ

비로그인 2010-02-0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을 더 보내면 아마 배가 고프다거나, 좀 쉬고 싶다거나, 잠을 더 자고 싶다거나 하는 본능에 가까운 것들이 생각나지 않으실까..^^ 하하 웃자고 한 소리고요~

몸 상하지 않게, 건강히 하루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D

바밤바 2010-02-12 19:40   좋아요 0 | URL
몸은 나날이 상해가는 듯 한데 그런 망가짐이 생각보다 즐겁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ㅋㅋ
 


김훈의 문장이 좋았다. 부러 따라한 건 아니었다. 그저 가슴에 맺히다 보니 어느새 조금 닮은 듯 했다. 내 글을 쓰는데 남의 문체를 차용한다는 건 생각의 뿌리마저 남의 것이 아닐까란 의심을 낳는다. 하나의 의심은 미욱한 마음을 낳고 나를 채찍질하기 보단 글쓰기를 두렵게 한다. 글쟁이도 아닌 자연인이 이러한 고민을 하는 건 사치일 수도 있다. 허나 누군가에게 사치로 보이는 그 유유자적함이 본인에게만은 절실함일 수 있다. 삶과 바투 이어진 일상의 잗다란 고민을 글로 눅여왔기에 그 무게는 가볍지 않다.  



 

 

 

 

 

 

밥벌이를 하게 됐다. 신체검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다들 걱정하지 말란다. 죽을 병 아니면 취업 시켜 준 덴다. 근데 내겐 지극히 걱정되는 사안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방기(放棄)하며 살았기에 그렇다. 그건 하늘을 원망함과도 닿아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수렁에 빠지는 일련의 사안들 앞에서 생의 의지가 무참히 흩어졌던 계절이 있었다.

한 때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뒷담화의 중심이 된 적이 있다. 처음엔 다들 축하를 해주던 이들이었다. 박수가 삿대질로 변해가며 내 마음은 나날이 핍진해져 갔다. 내 선택이니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세상의 짐이었지만 가뭇없이 바뀌는 세상의 인심 때문에 나날이 야위어 갔다. 글에 드러나듯 나는 지극히 섬세하고 인간적 아름다움을 중시한다. 그런 생의 버팀목이 내 선택으로 침강되었으니 애꿎은 하늘만 원망했다. 나를 변명하지 못하고 아픔마저 숨기려하다 보니 구접스런 일상이나마 평안한 마음으로 대하기 힘들었다. 시절은 그렇게 잔인했다.

그러다 아비가 병이 났다. 나를 감당하기도 힘든 시절에 아비의 아픔은 삶을 뒤흔들었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또 공전을 하듯 아비는 그 자리에서 나를 지키고 나는 아비의 어깨에 기대는 게 지극한 공리(公理)였다. 공리가 무너지려하니 핍진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나를 놓기로 했다. 세상이 흘러가는 데로 나를 맡기다 보면 언젠가 벨에포크(La belle époque)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찬란한지도 몰랐던 그 시절이 절절히 그리워 나는 심리적 퇴행을 겪었다. 도망쳤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세상의 나무람은 여전했다. 삶이 진정 비루했다. 아비를 지키기도 나를 감당하기도 버거웠다. 아비는 끝내 귀천(歸天)했고 그제서야 그들의 언어는 온건해졌다. 허랑한 삶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봤다. 허나 고민만 깊게 했다. 그런 것들이 미웠다. 최선의 복수는 미워하는 대상에 대한 탐닉이었다. 여전히 인간관계는 두터웠었다. 그래도 상처는 깊었다. 나도 모르게 벽을 쌓았다. 그 벽은 그들만이 아닌 나를 향해서도 겹을 이루었다. 무얼 하고 싶지도, 나를 돌보기도 싫었다. 상처는 곪아갔고 심신을 피폐하게 했다.

르상티망. 난 그렇게 르상티망을 안고 살았다. 패자의 원한이었다. 세상을 감내하지 못한 모자람을 탓하기 보단 세상 그 자체를 욕하는 게 오롯이 정당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자지레한 언어에 상처를 받을 때도 나는 안으로 침강하기 바빴다. 그래서인지 니체에 매혹을 느끼는 자들에게선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곤 한다. 그들 각자의 르상티망. 사회적으로 도태된 자들의 자위현상이 니체에 대한 갈망을 낳은 게 아닐까 하는. 결국 사람은 제 자신의 삶으로 타인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내게 니체 애호가와 니체란 사람 자체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헌데 어느 날부터 그런 미욱함이 시나브로 사위어갔다. 아마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일 테다. 블로그에 쓰던 글들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굿윌헌팅’에서 맷 데이먼이 로빈 윌리엄스의 그림에서 그의 상처를 읽어낼 수 있었듯 내 글에선 나만의 상처가 문장으로 녹아있다. 



 

 

 

  

티핑 포인트가 찾아왔다. 세밑 어느 새벽, 내 베프는 내 옆에서 곤히 잠을 잤다. 책도 티비도 볼 수 없는 그 어두움은 실로 간만이었다. 책에 치이고 일상에 근심하던 나를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해라’는 잠언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 이후로 나는 좀 더 열심히 책을 보고 하루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주위 사람을 살갑게 대하며 몇 년간 방기했던 스스로를 위로했다.

 

 

 

 

 

 

 

 

 결심은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한 가여운 마음다짐일 뿐이다. 그렇기에 살도 빼고 다크써클도 없애고 소위 말하는 ‘몸짱’이 되기로 했다. 미디어가 창출해 낸 이상적 신체에 대한 탐닉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바를 증명키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3주 정도 밖에 하지 않았는데 꽤나 갑작스레 밥벌이를 하게 됐다. 툭하면 끼니를 거르고 운동할 시간엔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음주가무를 즐기던 생활을 했기에 내 몸은 아직 온전치 못하다. 그 온전치 못함이 신검을 통해 숫자로 드러날까 다소 걱정이 된다. 3주간 무산소운동만 종일 했더니 몸은 더 불었고 혈압은 정상치를 벗어나는 양태(130에서 140사이)를 보였기에 남들이 말하듯 지나친 걱정만은 아닐 테다.

4년 정도 나를 방기했으니 갑절의 시간을 들여 그 그릇됨을 갚아야 한다. 밥벌이를 하며 오히려 더 튼실한 스스로를 발견하고프다. 벤자민 버튼처럼 내 생체 시계도 거꾸로 가게끔 해야겠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장을 입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좋은 일이 곰비임비 일어난다. 약간의 불안과 함께.

덧붙여 나를 언제나 아껴주시고 대학가 두 달 치 월세에 값하는 정장을 사주신 베프의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두 분은 아비의 장례식장에서 6학기에 걸친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원해주신다 하시곤 기부가 아닌 나눔으로 그 말을 증명하셨다. 일방적 베풂이 아닌 충실한 말의 이행이었다. 거드름이나 젠체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마냥 그저 당연한 일을 행하듯 그분들은 나를 뒷바라지 해주셨다. 친구 또한 그런 베풂을 한 번도 티내지 않았다. 심리적 우월감이 생길 법도 한데 그는 그전보다 더 자신을 낮췄다. 일전에 이야기했듯 ‘바밤바’란 닉네임은 친구 별명에서 유래했다. 내 베프가 바밤바다. 조르바란 별명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렇듯 나를 지나치게 방기하지 않은 데는 친구와 그의 부모님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마음 씀씀이가 부담보다 자랑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밥벌이를 하더라도 글은 꾸준히 쓰련다. 삶과 부딪히며 벼리는 사유가 책과 대화하며 누리는 명상보다 더 살가운 이야기를 해 줄 듯하다. 첫 문단은 우울하고 중간 부분은 침울하며 그 이후론 밝은 이 글의 전개마냥 삶 또한 그리되길 기원해 본다. 마음을 써 누군가에 의탁하는 일의 미욱함을 알지만 그런 미욱함마저 사랑하련다. 불행한 이성주의자보다 행복한 자연인이 되련다. 오늘 점심에 상경해야 한다. 서울도 이곳만큼 따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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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0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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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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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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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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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3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 취업하셨군요!!
취업도 그렇고, 마음속 얘기도 그렇고 늦은 밤 저 훤한 달빛처럼 제게 뭔가를 전해줍니다.

섣불리 말하긴 그렇지만 왠지 흐뭇해집니다. 서울은 좀 따듯해졌지요? 편안한 밤 되고 있으시길 빕니다. (오늘 날 좋아서 울집 담벼락 고양이들도 나들이 갔나봅니다 ㅋ)

바밤바 2010-01-31 18: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서울은 좀 따스하네요~ 바람결 님도 좋은 하루~ㅎ
 

 

 어제, 방문자 수가 20000명이 넘었다. 방문자 수가 아니라 방문 횟수가 정확하긴 하다. 하루에 몇 번씩 드나드는 이도 있을 테니 그들 각자의 방문 횟수 누적분이 20000번이 넘었다 해야 할 테다.

 기실 이 20000만 번의 방문 중 누군가는 사소한 그리움으로, 어떤 이는 심상한 마음으로 드나들었겠다. 있는 글이라 해봤자 내 일상과 그와 연계된 영화와 음악 그리고 책이 다 이니 간절함이란 단어는 사치겠다. 그저 바지런 떠는 누군가의 손품이 그대와 나 사이를 바투 이어준 게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애절함보단 조금 덜 한 그리움으로, 버릇삼아 방문한 적이 있다. 드팀전, 바람구두, 로쟈의 서재가 그것이다. 팀전님의 서재는 음악에 대한 깊이와 삶에 대한 성찰로 빛났다. 그 분의 올곧음과 일상의 사소함에 대한 고민들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자지레한 일상과 싸우는 그 묵직한 걸음이 좋았다. 일전에 내 서재를 방문하여 글을 남겨 주었을 땐 그 발품이 고마워 하루가 가도록 행복한 적이 있었다. 지금 그 분은 가고 서재는 괴괴하니 시절이 참 부질없다.

 바람구두님은 언제나 좋은 글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분의 글은 상식을 넓혀주고 감성을 살찌우게 했다. 수많은 말이 오가는 현실 속에 무엇이 옳은지 알기 힘들 때도 그의 서재를 찾아가곤 했다. 그분의 생각을 읽고선 나를 바로 세웠다. 나와 그의 생각을 겹쳐 보기도 하고 에둘러 생각을 벼려가기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이제 풍소헌엔 겨울바람만 그득하니 그 적적함이 실로 안타깝다.

 로쟈님의 서재는 다소 어려웠다. 수많은 철학자와 상징어가 미만한 글 속에서 내 삶은 비루해보였고 그 분의 앎은 지극히 높아 보였다. 덕분에 내 미욱함을 탓하며 이것저것 책을 읽는데 적잖은 모티브가 됐다. 그 분 서재에 나오는 여러 생각과 철학자들이 하나씩 눈에 익어갈 때마다 나는 감사하였다. 내 부족함을 채워감이 감사했고 꾸준히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생각의 넓이가 고마웠다. 허나 얼마 전 다소 부질없는 논쟁에 휘말려 운신의 폭이 위축된 듯하여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위 세 분의 서재 중 넉넉한 드나듦이 지금껏 계속 돼오기에 그 꾸준함이 고맙다.

 20000번의 방문 횟수 중 절반 이상은 즐찾을 등록한 이들의 발품이었을 테다. 항상 아껴주시는 휘모리 누나와 바람결님 또한 언제나 마음을 슬겁게 해주어 실로 소중한 인연이다. 오늘도 소중한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알라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다들 멋진 분들이기에 항상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빈말이 너울대는 세상이지만 실로 마음을 담은 간절함이니 그 마음 씀이 다름을 알아줬으면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희원(希願)하며 인정받기를 원하는 이 잗다란 마음부터 우선은 두루 살펴야겠다. 겨울의 드셈도 이젠 사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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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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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7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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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8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0-02-0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만명의 방문자 수,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한 번 들어온 방문자가 같은 날 또 들어온다고 해서 방문자가 추가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루에 2만명이 들어온 셈입니다. 그러니까 참 대단한 일입니다. ㅋ 더욱 전진하시길...

바밤바 2010-02-12 19:4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밥벌이에 열중하다 보니 글 쓸 시간이 없네요.
ㅎㅎ 그래도 틈틈히 생각을 벼리려 자주 들릴테니 님 도 많은 방문 바라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