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술을 많이 먹인다. 술을 못하지는 않는 편이라 그러한 강요가 다소 불편하되 힘들진 않다. 다만 술 덕에 간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뚜렷이 알게 됐다. 제 존재를 욱신거림으로 표현하는 탓이다. 간에게 미안하다. 지친 간은 쿠퍼스로 달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도 늦다. 새벽 2시가 기본이다. 한 번은 술은 너무 많이 마셔 필름이 끊겼다. 다행히 출근 시간 즈음하여 눈을 떴다. 문제는 오디오에 쌓여있던 토사물이었다. 비싼 한우 등심도 이지러지고 나니 그냥 가여운 오염물이 따름이었다. 그 오염물은 방 공기뿐만 아니라 오디오도 오염 시켰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던 오디오는 더욱 비참해졌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음악을 멀리했다. 노래방가면 항상 댄스나 트로트를 불러야하고 몸은 알코올로 스스로를 가다듬지 못하니, 클래식은 사치였다. 그러다 며칠 전 쇼팽이 정녕 미칠 듯 듣고 싶었다. 굳이 저급한 표현을 하자면 첫 휴가를 나온 사병이 제 씨앗을 여성에게 나누려 하는 욕망의 딱 절반 정도였다. 핍진한 몸을 이끌고 불량한 오디오를 매만지며 쇼팽을 듣는다. 피레스의 녹턴이다.
작품번호 9-2번이 나온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와 입을 맞추었을 때, 어떤 이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을 때처럼 그 설렘은 여전히 따스하다. 밤은 오롯이 쇼팽의 것이다. 야상곡(夜想曲)으로 명명된 녹턴의 그윽함이 술에 절은 몸을 다독인다. 밤은 깊었다.
일상의 피로함은 취향의 간절함을 배가 시킨다. 덕분에 사소한 취미는 절절한 그리움으로 자리매김 한다. 술도 밥도 다 부족하던 시절에, 야위어가던 마음을 눅여주던 음악이다. 술도 밥도 넘치는 시절이지만 그 한가한 추억을 잊지 못한다. 언젠가 다시금 한가해 질 때 여투어둔 그 사소함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그대를 사랑하고프다. 네가 그립다. 오늘 하루는 내게 쇼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