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예전에 쓴 글을 읽어 본다. 조금 더 단아했으면, 조금 더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장을 벼리려고 애써왔으나 그러한 노력이 미진했음을 오롯이 글로써 드러난다. 2주 동안 신문만 읽던 시간이었다. 스스로가 더 미욱해졌을까 저어했지만 글을 보는 눈은 좀 더 밝아진 듯하다. 희원(希願)의 대상을 멀리하며 차분해진 시각을 가진 덕일 테다.

막힌 도로를 기어가는 새벽녘 창원행 버스 속에 많은 생각을 했다. 밥벌이와 이어지지 않은 그 나른한 사유의 조각들은, 내가 나다울 수 있음을 다시금 각인 시켰다. 바쁘지만 마음만은 슬거웠던 지난 2주일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긴장해서 잔실수가 많았던 첫째 주. 조금 풀어진 듯하여 나를 간헐적으로 재촉하던 둘째 주. 사회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즐겼던 건 나를 치유하려 했음이란 게 지난 2주로 명징해졌다. 자잘한 충돌과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전에 읽었던 소설 속 군상을 보았다. 제각기 다른 그들의 말을 알기 위해 전에 읽었던 심리학의 도움을 빌렸고 스스로가 초라해 질 땐 좋아하는 음악과 그림을 떠올렸다. 조직의 질서가 과하게 나를 누를 적엔 경영학과 철학 서적을 떠올리며 내 부족함을 메웠고, 다소 관계가 버성길 때마다 내가 맺었던 관계들과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그 거리감을 좁혔다. 명쾌하지 않은 상황에 처할 땐 경제학에서 나온 비용편익분석으로 나름의 최선책을 택했다. 꽤나 힘들다는 수습사원 생활이 내겐 기회고 배움이 장이 되었다. 내겐 그랬다.

삶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일 수 있는 건 기연(奇緣)이 아니었던 거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어야겠다.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정을 도탑게 할 시간이긴 하다. 허나 나는 내 불안을 눅이고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더 오래되고 다양한 사람을 책을 통해 뵈어야 한다.  



 

 

 

 

 

 

 지난 2주를 즐길 수 있음으로 해서 독서 무용론을 주장하는 강경한 이들의 언사에 보란 듯 대거리할 수 있어 좋다. 사회와 맞닿아 살을 부딪치다 보니 내 사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변(思辨)적 삶이 현실적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나는 인문학의 희망을 읽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흔들림이 찾아올지 모른다. 내 삶은 꾸준히 변증법적이기에 그렇다. 오늘 새벽까지 창원엔 얕은 눈발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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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길..집에는 잘 도착하셨나요? 근데 댁이 창원이세요? 창원이라..후후 제가 군생활을 39사단에서 했는데 말이죠~ ㅎㅎ

오랜만에 올리신 글 가운데 "내가 나다울 수 있음", "삶은 꾸준한 변증법" 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네요. 짧은 연휴.. 기름진 음식 많이 드시고, 또 다시 시작하는 소설 속에서 보는 듯한, 보다 압축해 놓은 듯한, 생각보다 평이한, 그런 일상도 잘 시작하셨음 좋겠네요
:D

바밤바 2010-02-13 17:5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39사단 한 번 가봤어요. ㅎ

좋은 글 감사요~ 조만간 휘모리 누나랑 한 번 봬요~ 제 입김이 일상에 영향을 미칠 때 즈음 연락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