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과 그 속에서의 개인의 갈등은 분명 난제이다.
집단 이성(이념)과 개인성의 충돌은 정말 풀 수 없는 숙제일까?
이 작품은 한 가닥의 실마리를 건네준다.
도그마가 도그마인 줄 알고, 그로부터 벗어나며, 변화해야 한다.
따지고 보니 여러 가닥의 실마리이다.
황혼이 낮과 밤의 접변이 되듯이 이 소설은 한설야의 이후 행방을 가늠하는 좋은 지침서가 돼준다.
지식인과 노동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설야는 이후 전향하고 만다.
그 진통이 여실히 느껴지는 소설이다.
한설야(1900-?)
박완서의 작품들에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화된 환경과 그 속에서 고통하는 인간 군상이 보여지고 있다.
박수근의 그림도 전쟁으로 고통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내게는 그 시절이 앙상한 나목같이 느껴진다.
저자가 말하는 퇴폐는 대충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의 아픔에만 집착하여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존재는 잊어버린 모습들.
내 생각이 맞다면 이제 퇴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대인의 보편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시인이 앞서 그 모습을 감지할 뿐이다.
이청준이 이 소설을 구상하던 시기는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하여 그는 '말이 통하는', 즉 이성적 대화가 가능하기를 바라며 창작에 임했을 것이다.
요즘은 폭력은 많이 사라진 대신 말이 너무 많은 사회가 되어 버렸다.
문제는 그 말에 담긴 폭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