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추(<배운 사람>)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마치 지식인들을 통째로 비웃는 것 같다.
사물과 현상을 올곧게 보기보다는 뒤틀어 보는 것이 마치 자랑인양 생각하는 사람들.
소설 속 곱추 앞이라면 누구라도 부끄럼을 느끼지 않겠는가?
고난의 역사를 되새긴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있기에 보다 나은 역사를 꿈 꿀 수 있는 것이다.
부끄럽고 고통스런 역사는 모두 잊고 지우자는 뉴라이트 역사가들이 함석헌 선생의 정신 앞에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공동체의 모습.
하지만 그 안엔 아직 민중들의 웃음과 꿈이 있다.
그 웃음과 꿈을 기록하고 신뢰하는 게 작가들의 의무이리라.
박태원은 물론이고 그의 외손자인 봉준호 감독도 그 의무를 다하고 있다.
박태원(1909-1986)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주의를 언급할 때 숙고할 만한 것이 버트런드 러셀의 말일 것이다.
"사랑의 갈구, 진리 추구,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
이 세 말은 서로 다르면서도 결국은 서로 같다.
그러나 정말 어렵다.
똥도, 피도, 꿈도 많던 80년대 이야기이다.
그 시간들엔 올림픽의 찬란한 함성과 매운 최루탄 냄새가 함께 한다.
작가의 기억이 내겐 오롯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