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는’ 투의 말이 유행인데 과연 맞는 말인가?
qualia 님의 글을 읽어 보면서 '아하' 하고 절로 무릎을 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건 좀 이상한 걸' 하면서도 무심코 계속 써 왔던 애매한 말들이 이제야 비로소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자세히 드러나 보이니까 말이지요.
SNS가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면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언어 파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걸 마냥 좋게만 받아들이면 그저 일종의 '언어 유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언어 파괴'를 뛰어 넘는 '언어 오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서 qualia 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내용은 참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오늘 예쁘겠는 그녀와 만나 재밌겠는 영화를 본다면 정말 오늘 하루가 멋지겠는~’과 같은 일종의 ‘겠는체’를 자연스럽고 올바른 우리말로 받아들이기는 아직은 좀 이른 듯하다.
qualia 님의 글 덕분에 저도 오늘 '국어 공부'를 좀 해봤습니다. 그런데 '겠'과 '는'의 결합은 참으로 기묘한 데가 있더군요.
알겠다, 모르겠다, 맜있겠다, 피곤해 죽겠다, 미치겠다, 등등에서 보듯이, '겠'은 '미래의 일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로서 우리가 평소에 너무나 자주 쓰는 말이지만, 이 말이 '는'과 결합하는 순간 '시제'가 이상하게 뒤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는'은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볼 때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이기 때문이지요
알겠는, 모르겠는, 맛있겠는, 죽겠는, 미치겠는, 등등과 같이 '겠'과 '는'을 곧바로 붙여 쓰는 표현은 '미래의 일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와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가 동시에 쓰이는 셈이니, '표현하고자 하는 상태의 시제' 자체가 불가피하게 '미래'와 '현재'를 뒤섞게 되므로 '시제 감각'에 혼동을 일으키는 셈이지요.
알았었는, 몰랐었는, 맛있었는, 죽었는, 등등이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리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이치로 보입니다. '었'이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어미인데 이걸 '는'이라는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와 함께 쓰니 '시제 감각'이 어색할 수밖에요.
결국 제가 대충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1. '겠'을 '는'과 함께 쓸 때는 항상 '시제의 일치'를 고려할 것.
2. '겠'과 '는'을 굳이 붙여 쓰고 싶을 땐 '는'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말을 적당히 덧붙일 것.
가령 '잘 모르겠는...'이나 '피곤해 죽겠는...'이나 '못 믿겠는...'이나 '참 맛있겠는...'등과 같은 표현을 굳이 쓰고 싶으면 그 뒤에 알맞은 어미를 조금만 덧붙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예를 들면 '잘 모르겠는데...' 또는 "피곤해 죽겠는데...' 혹은 '못 믿겠는데...' '참 맛있겠는데..." 등과 같이 표현하면 조금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는'은 어쨌든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볼 때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이기 때문에, 거기서 곧바로 '문장' 자체를 끝맺게 되면 순식간에 '어색함'과 곧장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는 듯합니다. 그 문장이 아무리 생략형이라도 말이지요.
-겠- [어미]
1.미래의 일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어미.
2.주체의 의지를 나타내는 어미.
3.가능성이나 능력을 나타내는 어미.
시간토 [時間-]
시제 표현에 쓰는 선어말 어미. ‘-는/ㄴ-, -았/었-, -겠-’ 따위가 있다.
선어말 어미 [先語末語尾]
어말 어미 앞에 나타나는 어미. ‘-시-’, ‘-옵-’ 따위와 같이 높임법에 관한 것과 ‘-았-’, ‘-는-’, ‘-더-’, ‘-겠-’ 따위와 같이 시상(時相)에 관한 것이 있다.
(예문)
나는 시인이 되겠다.
내가 말해도 되겠니?
별사람을 다 보겠다.
들어가도 좋겠습니까?
네가 와 주면 고맙겠구나.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하겠니?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알겠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동생은 낚시하러 가겠다고 한다.
지금 떠나면 새벽에 도착하겠구나.
는[는] [조사]
1.어떤 대상이 다른 것과 대조됨을 나타내는 보조사. 2.문장 속에서 어떤 대상이 화제임을 나타내는 보조사.
3.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는-
[어미]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볼 때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 종결 어미 ‘-다’, ‘-다고’, ‘-다나’ 따위와 결합하여 확대된 종결 어미 ‘-는다’, ‘-는다고’, ‘-...
-는
[어미] 앞말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고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볼 때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
(예문)
사과는 먹어도 배는 먹지 마라.
산에는 눈 내리고 들에는 비 내린다.
비가 많이는 오지 않았다.
그 과자를 먹어는 보았다.
편지는 “형님 보십시오”로 시작하였다.
나는 거칠 것 없는 바다의 사나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는 해야지.
놀러 가더라도 멀리는 가지 마라.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는 지각하겠다.
길이 막히면 늦는 수가 있다.
(출처 : 네이버 국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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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깔끔하지 못한 말 / 우재욱
말글살이
골프 경기에서 한 선수가 친 공이 해저드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 다음 플레이가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중계방송 해설자가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말의 깔끔하지 못한 부분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해설이었다. 우리말은 서술어가 문장의 마지막에 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주술 관계가 틀어지기 쉽다. 또 문장 마지막의 서술어는 한 단어로 끝나지 않고 다른 말이 이어 붙기 쉽다.
해설을 꼼꼼히 살펴보자. “최악의 상황입니다” 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해설도 이렇게 끝낼 일이다. 그런데 ‘상황’에 ‘이라고’라는 조사를 붙여 ‘상황이라고’로 한 다음 ‘말씀드리다’를 이어 붙였다. ‘말씀드립니다’로 끝냈으면 차선은 되겠는데, ‘드립니다’를 관형형 ‘드릴’로 만들어 다시 의존명사 ‘수’와 이어 놓았다. 의존명사 ‘수’에 조사를 붙여 ‘수가’로 만든 다음 ‘있습니다’라는 말을 이었다. ‘있습니다’에는 또 선어말어미 ‘겠’을 넣어 ‘있겠습니다’로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짧은 문장에 얼마나 많은 굴절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해설 문장에 문법적 오류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말을 이렇게 쓰기 때문에 깔끔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불명확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단정적으로 말했을 때 오는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