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내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 *

 

 

때로는 간단한 대사 한 구절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령 "이 한심한 화상아!(Alas, poor caitiff)"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4막 1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나는 이 대사로부터 위안을 얻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후 고부 갈등으로 중간에 끼어 힘들었을 때, 첫 직장에서 타의로 퇴직하게 되었을 떄,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돈마저 떼었을 때, 나는 이 대사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불쌍해지면서 그런 나 자신을 격려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평생 독서 계획』은 소포클레스 항목에서, 연극은 운명 앞의 절망과 가능성 앞의 희망이 충돌하는 긴장이며 그 긴장의 해소에서 커다란 즐거움이 온다고 말한다. 그런 연극적 상황 속에 나 자신을 설정하면 기이하게도 긴장이 이완되면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런 간단한 대사에서 삶의 활력을 얻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령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Egom mihi placui(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나는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배울 때에는 "이 한심한 화상아!"라는 대사의 심오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젊은 대학생에게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벅찬 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읽고 또 배울까? 어릴 때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그 가르침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성숙을 촉진하는 교육의 본령이고, 『평생 독서 계획』의 원대한 취지이며,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인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것을 보여 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은 토마스 만의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너무 좋아하여 평생 30번 가량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죽기 한 달 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라 죽기 한 달 전의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베르펠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만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으리라.(475∼476쪽)

 

 - 『평생 독서 계획』, <역자 후기> 중에서

 

 

카시오(오셀로가 '연적'이라고 오해한 자신의 부관)가 말한 대사 "Alas, poor caitiff"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평생 독서 계획』을 번역한 분(이종인)은 그 대사를 "이 한심한 화상아!"라고 해석했지만, 민음사판 전집 시리즈(최종철 번역)에서는 "아, 딱한 천것!"이라고 번역했다. 두 번역 사이의 뉘앙스의 차이가 매우 크다. 내가 가진 또다른 오래된 책(『학원 세계문학전집』(전30권), 김재남 번역, 1993년 1월)에서는 "흥, 그까짓 게!" 라고 번역해 놓았다. 도대체 저 대사의 속뜻은 무엇일까.

 

이걸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조금 복잡하다. 간략하게 줄여서 말하자면 이렇다.

 

온갖 수작을 다 부려서 오셀로를 '질투심으로 미치게 만드는 공작'을 꾸미던 이아고는 4막 1장에 이르러 마침내 비앙카(매춘부, 카시오의 연인)를 끌어들여 '오셀로의 질투심'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이 대목에서 이아고는 오셀로를 잠시 물러나게 하고 '카시오의 행동'을 관찰하도록 만든다. 이아고는 카시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비앙카'를 화제에 끌어들여 오셀로가 오해하기 딱 좋은 '카시오의 행동'을 유발시키는데,  오셀로는 그런 카시오의 행동을 자신의 아내인 데스데모나에 대한 카시오의 반응으로 완전히 오해한다. 이아고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둘(카시오와 오셀로) 사이에 끼어들어 '질투심'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아고가 카시오한테 말하기를, '비앙카의 능력'을 이용하여 데스데모나에게 '복직 문제'를 부탁하면 어떻겠냐고 하자, 카시오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Alas, poor caitiff"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비앙카를 "딱한 천것" 혹은 "그까짓 게"로 여긴다는 투다. 그러면서도 카시오의 입가엔 웃음이 걸린다. 오셀로는 카시오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질투심을 더욱 활활 태우는' 연료로 쓰는 데 여념이 없다.

 

극중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의 내용이나 극의 흐름으로 판단해 볼 때 "Alas, poor caitiff"에 대한 해석으로는 까마득한 옛날에 나온 책에서 오늘 우연히 발견한 번역인 "흥, 그까짓 게!"라는 표현이 가장 이해하기 쉬워 보인다. 그런데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면 『평생 독서 계획』의 번역자가 말한 내용이 조금 이상해진다. "흥, 그까짓 게!"라는 뜻의 대사를 "이 한심한 화상아!" 라고, 다시 말하자면 '자책하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는' 대사로 잘못 받아들인 셈이 되고, 결국 번역하신 분이 오랫동안 그 대사 덕분에 여러 차례 위안을 얻게 되었다는 말도 우습게 변하기 때문이다. 기껏 글을 쓰고 나니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굳이 이런 점까지 말할 의도는 조금도 없었는데 말이다.

 

"흥, 그까짓 게!"

 

그까짓 대사 한 줄이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든다.

 

 

오셀로

알겠나, 이아고?

난 아주 교묘하게 참겠지만 ㅡ 알겠지? ㅡ

아주 잔인할 테야.

 

 

이아고

빗나간 건 아니지만

다 때를 맞추세요. 물러나시겠어요? (오셀로 물러난다.)

난 이제 카시오에게 비앙카 얘기를 물어야지.

그 계집은 자신의 욕망을 팔아서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사는데 고것이

카시오에게 혹했다. ㅡ 많은 사람 속이고

하나에게 속는 것이 그 갈보의 저주니까.

카시오는 그녀 얘길 들으면 넘치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여기 그가 오는군.

 

카시오 등장.

 

그가 지을 미소에 오셀로는 미칠 테고

무식한 질투심을 품었으니 불쌍한 카시오의

미소와 몸짓과 경박한 행동을 완전히

오해할 수밖에 없다. 부관님, 기분이 어때요?

 

카시오

내 직위를 불러 주니 더욱 나빠지는군,

그게 없어 죽을 지경이니까.

 

이아고

데스데모나를 다그치면 확보하실 겁니다.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이 청이 비앙카의 능력에 달렸다면

얼마나 빨리 성공하겠어요!

 

카시오

아, 딱한 천것!

 

오셀로

봐, 놈이 벌써 웃고 있어!

 

이아고

남자를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는 못 봤어요.

 

 카시오

아, 딱한 잡것, 정말 날 사랑하는 것 같아.

 

 오셀로

이젠 그걸 살짝 부인하면서 웃어 넘겨.

 

 이아고

들었어요, 카시오?

 

오셀로

이젠 그가 그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네. 허 참, 잘했다, 잘했어.

 

 

이아고

당신이 자기와 결혼할 거라고 하는데

그럴 작정이세요?

 

카시오

하, 하, 하!

 

오셀로

환희한단 말이지, 로마인아, 환희해?

 

 카시오

내가 결혼해! 뭐, 고객이! 제발 내 판단력을 자비롭게

봐 주게, 너무 부실하다고 생각하진 말게나. 하, 하, 하!

 

오셀로

그래, 그래, 이긴 자가 웃는다.

 

이아고

사실, 소문에는 결혼하실 거랍니다.

 

카시오

제발, 올바로 말하게!

 

 

이아고

아니라면 제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오셀로』, <4막 1장, 90∼125행>

 

 

 * * *

 

 

OTHELLO

 

Dost thou hear, Iago?
I will be found most cunning in my patience;
But--dost thou hear?--most bloody.

 

IAGO

That's not amiss;
But yet keep time in all. Will you withdraw?

OTHELLO retires

Now will I question Cassio of Bianca,
A housewife that by selling her desires
Buys herself bread and clothes: it is a creature
That dotes on Cassio; as 'tis the strumpet's plague
To beguile many and be beguiled by one:
He, when he hears of her, cannot refrain
From the excess of laughter. Here he comes:

Re-enter CASSIO

As he shall smile, Othello shall go mad;
And his unbookish jealousy must construe
Poor Cassio's smiles, gestures and light behavior,
Quite in the wrong. How do you now, lieutenant?

CASSIO

The worser that you give me the addition
Whose want even kills me.

IAGO

Ply Desdemona well, and you are sure on't.

Speaking lower

Now, if this suit lay in Bianco's power,
How quickly should you speed!

CASSIO

Alas, poor caitiff!

OTHELLO

Look, how he laughs already!

IAGO

I never knew woman love man so.

CASSIO

Alas, poor rogue! I think, i' faith, she loves me.

OTHELLO

Now he denies it faintly, and laughs it out.

IAGO

Do you hear, Cassio?

OTHELLO

Now he importunes him
To tell it o'er: go to; well said, well said.

IAGO

She gives it out that you shall marry hey:
Do you intend it?

CASSIO

Ha, ha, ha!

OTHELLO

Do you triumph, Roman? do you triumph?

CASSIO

I marry her! what? a customer! Prithee, bear some
charity to my wit: do not think it so unwholesome.
Ha, ha, ha!

OTHELLO

So, so, so, so: they laugh that win.

IAGO

'Faith, the cry goes that you shall marry her.

CASSIO

Prithee, say true.

IAGO

I am a very villain els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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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짧은 대사 하나 속에 작품 전체의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oren 2017-07-09 00:24   좋아요 1 | URL
『오셀로』의 4막 1장에 나온다는 ˝Alas, poor caitiff!˝에 대한 번역이 출판사마다 서로 다르더군요. 『평생 독서 계획』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우리가 흔히 쓰는 ˝이 한심한 화상아!˝라는 뜻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오랫동안 장식품처럼 책장에 꽂혀 있던 ‘학원 세계문학전집판‘ 『셰익스피어』에서 그 대목에 대한 ‘보다 정확한 뜻‘을 알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평생 독서 계힉』을 번역하신 분의 말대로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번역하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해석‘이나 ‘주석‘을 붙이는 이유 또한 궁극적으로는 ‘말이 지닌 결핍과 과잉‘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명박 물광피부 2017-12-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본까지 보니 좋네요

oren 2017-12-22 00:04   좋아요 0 | URL
영어로는 똑같은 세 단어를 두고 사람마다 이토록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