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봄부터 기다려왔던 가을 산행을 끝마치고 일상으로 되돌아 오고 나니 내가 살던 세상이 갑자기 '순실의 시대'로 뒤바뀌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한동안 '순실의 시대'를 살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하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봉건시대에도 일어날 수 없다고 했던 일들'이 우리가 살던 '요즘 세상'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충격이 너무나도 컸던 탓일까. '그날 이후'로 좀처럼 뉴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벌써 3주일째를 공중에 붕 뜬 기분으로 보내고 있다. 책을 읽는 일조차 허망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허탈하고 분하고 참담한 마음을 좀처럼 떨치기 어렵다. 어이없고 분통 터지는 뉴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좀처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가만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정치적인 사건들로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이보다 더한 일들도 숱하게 많이 겪으며 살아왔는데 왜 하필이면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유난스레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좀처럼 삭일 수 없는지 그 까닭을 좀처럼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차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번 사건이 이토록 억누르기 힘든 분노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들이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그런 요인들을 지금부터 미리 억지로 끄집어내고 정리해 보려고 애쓸 필요까지는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어떤 식으로든 큰 틀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까지는 앞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크나큰 우여곡절을 더 겪을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크나큰 정치적 사건 때문에 '평범한 일상'조차 송두리째 흔들렸던 경험이 언제쯤 있었던가를 곰곰 되돌아 보니 내겐 1979년에 일어났던 '10.26 사태'가 처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7년 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계속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 굳건하게 군림해 왔던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오랜 심복들간의 권력 암투와 갈등 때문에 궁정동 안가의 술자리에서 느닷없이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 것부터 아주 드라마틱했고, 그 사건의 주역이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총을 들이대며 건넨 울분에 찬 욕설("이 버러지 같은 놈")도 좀처럼 잊기 어려울 만큼 생생해서 내내 신문 기사에서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 충격적인 시해 사건 이후로도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급변의 연속이어서 좀처럼 '대학 입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그때는 입시를 1년여 앞둔 시점이어서 조금은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난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한밤중에 탱크를 앞세우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시내로 진입한 신군부 쿠데타 세력들이 내전이나 마찬가지였던 12.12 사태를 일으켰고, 곧이어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서슬퍼런 국보위가 출범했고, 이듬해 봄에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처참하고 피비린내나는 군부의 잔악한 민중 학살사태(5.18 민주화 운동)까지 일어났으니 말이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난생 처음으로 '반정부 시위'라는 걸 경험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우리는 '대학생 형들의 가열찬 반정부 데모'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충정으로 '교련 수업'을 거부하면서, 교련 복장을 한 채 군사훈련 교육을 거부하는 대신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이듬해에 대학에 진학해서는 데모가 거의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선배들만 간혹 잡혀가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친구들이 하나둘씩 붙잡혀 들어가기 시작했고, 더러는 그 와중에 목숨까지 잃고 기어이 '열사'가 되기도 했다. 적잖은 학우들이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기도 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복무 3년을 거쳐 다시 복학하고 나서도 사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복학한 첫 해 봄부터 다시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1987년 봄에는 4.13 호헌조치가 발표되면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교내에서는 연일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었고 마침내 가열찬 가두투쟁에 나선 끝에 6.10 민주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학생 신분으로서 서울 시내까지 진출해서 전투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데모를 벌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29년이 흐른 지난 주말에 나는 다시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였다. 오후 네 시 무렵에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서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가 적힌 카드를 받아 챙긴 뒤에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본 끝에 세종문화회관 계단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광화문 한복판에서 수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마이크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시국 연설을 들었다. 그리고 오후 5시 50분부터 종로 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두행진에 나섰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범죄자다'라는 구호와 함께 틈틈이 집회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함성'도 크게 내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광화문 네거리와 종로와 시청앞 차도를 마음껏 활보하며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으로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도 들었고, '지금이 도대체 어느 시대인데 지금도 우리가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각자가 싶은 말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도 생각해 봤다. 지난 3주 동안 이미 수많은 논설과 칼럼과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나까지 여기에 잡설을 덧보태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나마 이렇게 감상 몇 줄만이라도 여기에 끄적여 꺼내놓지 않으면 너무나 답답할 듯싶어 내가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부터 약속이 잡혀 있었던 이번 주말의 1박 2일 동안의 계모임 약속조차 지키기 힘겨워 어젯밤엔 기어이 KTX 기차표마저 '반환'하고 말았다. 나라가 온통 들끓고, 광화문이 지척에 있는데 나홀로 한가하게 기차를 타고 지방을 여행삼아 다녀올 기분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오늘 또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면 늘 한결같이 거기에 우뚝 서 계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싶다. 이제는 이순신 장군 동상마저 혹여 '내가 이러려고 나라를 구했나' 싶은 마음을 품으실까봐 두려울 지경이다. 참으로 역사에 부끄러운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언젠가 먼 훗날에 지금 이맘때를 홀연히 되돌아보더라도 부끄러움과 후회보다는 웃음부터 먼저 떠올리며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든 게 결국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오늘 하루가 우리가 늘 희망하는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 가운데 하루'가 아니어도 좋다. 그런 평온한 하루 하루를 만드는데 오늘 하루가 결코 허투루 쓰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평범하고도 평온한 일상들을 더 자주 누릴 수 있기 위해, 오늘 하루가 '역사에 빛나는 그날 하루'로 격상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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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들은 이번 '가을 산행' 때 찍은 것들이다. 지난 10월 23일 토요일 새벽에 서울을 훌쩍 벗어나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1,561m)을 올랐었다. 하산한 뒤에는 정선 시내에서 쏘가리 매운탕으로 넉넉한 뒷풀이를 한 뒤에 팬션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다시 동해안으로 넘어가 강릉 경포대쪽 바닷가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월요일에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에 오대산 입구 둘레길을 다녀왔다. 서울로 되돌아온 그날(10/25) 저녁 이후로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어디론가 떠밀려나고 말았다. 언젠가는 또다시 따분하고도 평온한 일상이 틀림없이 누구에게나 다시 찾아오리라 믿는다. 적어도 내년 가을쯤에는(?) 나도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가을 단풍'을 반갑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 진부IC를 나오자 말자 서둘러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부일식당'에 들렀다.
2. 두툼하고도 따끈한 두부맛은 어릴 적 고향에서 자주 맛봤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릴 만큼 구수하고 좋았다.
3. 장구목이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드니 화려한 단풍이 금세 우리를 맞는다.
4. 단풍은 어떤 빛깔이든 모두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5. 인적도 드문 깊은 산골짝에서 만나는 화려한 단풍은 어딘가 몹시 고고한 자태가 느껴진다.
6. 이토록 자연스런 단풍은 낯선 방문객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7. 가리왕산은 이끼가 많은 산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철에 찾으면 더위를 식히기엔 더할나위가 없지 싶다.
8. 가을해가 짧아서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아도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이제 겨우 1/3 정도 올랐을 뿐이다.
9. 10월 하순에 느닷없이 피어난 진달래. 어이없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했다.
10. 꽤나 많이 올라왔는데도 여전히 물이 풍족하다.
11. 가리왕산은 주목 군락으로도 유명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참 짧다.
12. 오를수록 가파른 길의 연속이어서 악전고투 끝에 우리는 겨우 절반(6명 중 3명)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벌써 오후 4시 30분이라 인적도 모두 끊겼다. 저물기 전까지 다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13. 하늘의 구름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14. 김밥과 막걸리 한 잔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는 동안 하늘이 갑자기 맑아졌다.
15. 서둘러 하산에 나섰다. 저멀리 남쪽(영월 방향)으로 산능선들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16. 팬션에서 하루를 묵은 뒤 '정선 시내'를 거쳐 '정선 아우라지'로 향하고 있다.
17. '정선 아리랑'의 고향, 정선 아우라지에 왔을 땐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18. 따스한 봄날 여기를 처음으로 찾아왔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세월 참 빠르다.
19. 수수한 접시 위에 고스란히 회만 담아냈지만 맛은 끝내줬다. 경포대의 어느 허름한 횟집에서 주문한 '자연산 회'
20. 이튿날 아침 활짝 갠 경포 앞바다의 가을 풍경.
21.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길목에 늘어선 전나무 숲길.
22. 오대산 월정사를 지나 새로 꾸며진 '선재길'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고 가을이면 계곡을 따라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 선재길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9km 숲길로 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23. 눈부신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가을 단풍이 고혹적이다.
24. 오대천을흐르는 묽은 너무 맑아 계곡 바닥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25. 이곳 단풍은 절정을 조금 지난 듯하다.
26. 평일 오전인데도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27. 파란 하늘에 비친 붉은 단풍. 색깔이 유난히 곱다.
28. 노랗게 물든 단풍도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아낙네처럼 정겹게만 느껴진다.
29. 무더운 여름 한철엔 더위를 식히기 딱 좋을 듯하다.
30. 계속 위쪽으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길로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31. 커다란 바위를 이끼가 덮고, 그 위에 어느새 단풍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어느새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32. 이토록 따스한 가을 햇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머잖아 이곳에도 눈보라가 휘날리는 찬 겨울이 곧 닥쳐오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