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것을 계속 생존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 즉 기념비적 역사의 저 어려운 횃불 경주가 그들에게서 벌어지리라고 누가 추측이나 했겠는가?

 

 - 니체, 『반시대적 고찰 』,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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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낯익은 인물들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다. 그런 인물을 마주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난 '낯익은 고대의 인물'을 다시 만날 때면 너무나 반가워 손이라도 덥석 마주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씩은 그런 인물이 그저 반갑기만 할 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를 잡아 이끌며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할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설 만큼은 못 되는 인물들도 있다. 그런 인물들은 대개 내가 그동안 그의 '이름'만 자주 들었을 뿐, 여태까지도 그가 쓴 작품이나 그의 생애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고찰해 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에 익은 인물들을 수없이 마주쳐도 여전히 낯설기만 했던 경험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때는 아마도 몽테뉴의 수상록을 맨처음으로 읽을 때였지 싶다. 그 책을 통해 만나는 인물들 가운데 우리에게 전혀 낯선 인물들은 의외로 드물다. 그처럼 비범한 인물의 입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 그보다도 덜 비범할 턱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몽테뉴를 처음 만난 때는 겨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으니 그가 내세웠던 수많은 인물들의 '위대성'을 내가 어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었겠냐 싶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몽테뉴는 '인용의 대가'다. 그처럼 뛰어난 인용술을 나는 달리 어떤 인물이나 책에서도 결코 다시 발견할 수 있을 성싶지 않다.

 

 인용의 기술이란 것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몽테뉴가 그 기술을 최고도로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몽테뉴 자신의 글과 인용이 어찌나 서로를 주해하고 서로를 비추고 서로를 보강해주는지, 그 인용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들어내고 싶지 않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 이 기술은 특별히 감명 깊었던 문장들, 구절들, 대목들을 소리를 내서든 혹은 내지 않고서든 자주 외워야만 습득할 수 있다. 감히 말하자면 임기응변으로, 전날 혹은 그 순간 우연히 집어 든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맞닥뜨린 문장을 인용하면, 왠지 모르게 깁고 덧댄 천처럼, 천박한 장식처럼 드러난다.”

 - 발레리 라르보,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어쨌든 몽테뉴가 여기저기서 그토록 자주 끌어오는 인물들이 내겐 영 어색하게 다가왔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시골, 1980년 겨울'을 고전이나 몇 권 붙잡고 씨름하던 때이니 설사 내가 그런 인물들을 안다고 한들 얼마나 잘 알았겠는가 싶다. 몽테뉴는 마치 내게, 내 친구가 그의 이름을 너무나 자주 들먹여 그에 대해서라면 언젠가 한 번은 꼭 만나보고 싶은 정도가 된, 그렇지만 정작 그런 친구를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런 인물들을 내게 쉴 새 없이 소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내가 그런 인물들에 대해 그저 마지 못해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 언젠가 그런 인물들을 다시 만날 때가 되면 그들에게 힘차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반길 줄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을 때 마주쳤던 여러 비범한 인물들 가운데 내게 가장 궁금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키케로였다. 몽테뉴는 그 책에서 키케로를 정말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인용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심사가 한결같은 색조를 띤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어떨 땐 그 인물에 대해 극도로 칭송하지만 또 어느 땐 그 인물이 지녔던 흠결을 지나치게 부풀려 말하면서 그를 깎아내리기에 바쁜 모습마저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키케로에게 우리가 온전히 다가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키케로를 읽기 위해 나는 그가 쓴 변론집(『카틸리나 탄핵』,『아르키아스 변호』)까지도 읽는 용기를 내봤지만 그는 여전히 저만큼 멀찍이 떨어진 채로 서 있을 뿐 내게 그다지 친근한 눈길을 주지는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키케로의 변론이 담긴 그 책(동서문화사판)의 말미에는 친절하게도 역자가 쓴『키케로의 생애와 사상』이 무려 200쪽에 가까운 분량으로 실려 있어서 그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 해설만 읽어보더라도 그가 '로마 공화정 말기'뿐만 아니라 '서유럽 정신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아울러 그가 로마 공화정 시절 당대 최고의 정치가로 활약할 만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저술에 얼마나 많은 정열을 쏟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서구의 지성사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던 게 분명한 인물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페트라르카와 마키아벨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엔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다 보니 그의 영향이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단다. 이쯤에서 '키케로가 볼테르에게 끼친 영향'을 책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자.

 

볼테르

 

프랑스 계몽주의의 중심 '볼테르의 시대'와 18세기 중엽을 품위 있게 묘사하는 활동을 펼친 문필가 볼테르는 18세기에서 키케로의 최대 칭송자이다. '키케로 없는 볼테르는 생각할 수 없고, 또 볼테르 없는 키케로는 생각할 수 없다'(라마르틴). 볼테르는 특히 키케로의 작품들 가운데 철학 관련의 책들을 숙독했다. 《신들의 본성에 대하여》에서는 스토아파의 신의 섭리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투스쿨룸에서의 대화》에서는 영혼이 불사(不死)인가 불사가 아닌가에 자극을 받았다. 볼테르는 통상의 해석과 달리 키케로가 혼은 죽어야 하는 것으로 역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무에 대하여》는 시대를 초월해 타당한 도덕의 서술로서 그 뒤 어떤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이론과 학설로 절찬을 받고 있다. 볼테르는 키케로를 미신에 지나지 않는 실정 종교를 거부하는 자유사상가로 간주하고 있다. 또 카틸리나 사건을 둘러싼 키케로의 대처를, 이 프랑스 계몽기에 지나치다고 비난하는 저작이 몇 개 나타났는데 볼테르는 로마의 구제자로서 키케로를 옹호했다.

 

볼테르는 이신론자(理神論者)인데 이 사상을 그대로 책으로 펴내면 투옥되거나 추방될 위험이 있으므로, 키케로에게 보내는 메니우스의 편지ㅡ때마참 바티칸의 도서관에서 러시아의 후작이 발견해 그것을 볼테르가 러시아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했다는 형식ㅡ라는 치장하에서 공개한 것도 알려져 있다. 또한 볼테르를 궁정으로 초청한 둑일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대왕도 대단한 키케로 팬이었다.

 

 - M.아우렐리우스/키케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 인생론』, 《키케로의 생애와 사상》중에서

 

그런데 이쯤에서 내게 문제가 되는 인물은 오히려 볼테르였다. 볼테르 또한 내게는 이름만 귀에 익을 뿐 한번도 그의 작품을 찾아 읽은 적이 없어서 '소문으로만 들어서 아는 인물'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엄청난 작품들을 써낸 천재 작가였고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정말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84세까지 살았는데 평생 동안 수많은 비극작품을 써서 크게 성공했고 드높은 명성을 떨쳤다. 일찌기 24세 때 비극『오이디푸스』가 대성공을 거뒀고, 『햄릿』의 모작인『에리필』,『카이사르의 죽음』, 『메로페』,『오레스테스』, 『미노스의 법』등을 늙은 나이가 되도록 줄기차게 써냈다. 그의 창작열은 70대와 80대에 접어들고도 도무지 식을 줄 몰랐다. 그가 쓴 작품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는 다음 인용문이 증명한다.

 

볼테르는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유럽 지성계의 왕관 없는 제왕이었고, 계몽 시대의 우뚝한 지도자였으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붕괴된 구체제의 기반을 가장 맹렬하게 파괴한 자로 평가되었다. 극작가, 시인, 역사가, 이야기꾼, 재담가, 신문사 특파원, 논쟁가, 화려한 성격의 소유자 등으로 엄청난 명성을 거두었다. 그의 창작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1만 4천 통의 편지와, 2천 건 이상의 책과 팸플릿을 남겼다. 하지만 사흘 만에 써냈다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가 써낸 무수한 냉소적 작품들도 이 단 한 편의 아이러니를 당하지 못한다.

 

『캉디드』는 후대의 소설들이 즐겨 취하는 성장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령 『적과 흑』도 성장소설이며 『마의 산』은 좀 더 심화되고 확대된 형태의 성장소설이다. 캉디드가 받은 교육은 아주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볼테르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최선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우리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위악적인 아이러니가 넘치는 걸작을 읽고서 볼테르가 조롱의 대가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버나드 쇼처럼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쇼처럼 인간의 정신의 해방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였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방금 확인했듯이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라는 작품을 '사흘 만에 써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책 속에서 내게 '낯익은 인물들'을 불쑥 다시 만난 건 정말 뜻밖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인물들을 볼테르의 안내에 따라 전세계를 다 돌아다니다시피 하다가 무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까지 이끌려가서 만난 건 더욱 놀라웠다. 어느 누가 그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볼테르의 말에 따르면 그토록 고리타분한 인물들을 만날 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더군다나 '키케로 없는 볼테르는 생각할 수 없고, 또 볼테르 없는 키케로는 생각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키케로'에 대한 혹독한 인물평까지 들을 줄이야...

 

비록 볼테르는『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인류를 빛낸 위대한 작가들을 그다운 솜씨로 거침없이 깎아내렸지만 그의 말엔 '고전을 경멸하는 듯한 인물들에 대한 우회적인 공격'을 포함하는 '묘한 아이러니'가 깔려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짐짓 칭찬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자신의 취향'이 아님을 내비친 호라티우스만 해도 그렇다. 그는 무려 78세 때『호라티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작품을 썼을 정도로 그에 대한 열렬한 애독자였다.

 

후세 사람들로부터 '볼테르의 고백록'이라 불릴 만큼 작가 개인이 실제로 겪은 경험담이 다채롭게 녹아 있는 작품이 바로『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사생아 캉디드는 영주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한 죄로 하루 아침에 '엉덩이를 발길로 차여' 툰더텐트론크 성에서 내쫓긴다. 그때부터 그는 '성 안에서' 가정교사이자 철학자 팡글로스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순진무구한 낙관주의'가 어딘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어리석은 철학임을 차츰 깨닫게 된다. 그러나 캉디드의 '인생유전'을 통해 불합리와 부조리로 가득찬 세상을 풍자하는 볼테르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그리 과격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늘 '어린아이 같은 캉디드의 어깨 너머로 독자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가 볼테르 특유의 아이러니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만큼 그의 작품을 읽는 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볼테르가 '키케로'를 포함해서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인물들에 대해 늘어놓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짓자.

 

그들은 식탁에 앉았다. 훌륭한 식사가 끝나자 그들은 서재로 들어갔다. 캉디드는 멋진 장정을 한 호메로스의 저서를 보고 주인의 높은 취향을 찬양했다.

 

「이게 바로 독일 최고의 철학자 팡글로스 박사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책입니다.」

 

그러자 포코쿠란테가 쌀쌀맞게 말했다.

 

「나는 그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그 책이 재미있다고 해서 나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너무도 지루했습니다. 전투장면은 다 비슷비슷하고 게다가 그런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여러 신들이 계속 개입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결정적 역할도 못하지요. 헬레네는 전쟁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작품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요. 게다가 모두들 계속 트로이를 포위 공격하지만 함락시키지도 못하지요. 나는 학자들에게 그들도 나처럼 이 책이 지루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진실한 사람들은 모두 내게 솔직하게 대답하더군요. 너무 지겨워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고대의 걸작이니까 서재에는 꼭 갖춰 놓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내다 팔 수 없는 녹슨 메달처럼 말입니다.」

 

「각하께서는 베르길리우스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겠지요?」

 

캉디드가 물었다.

 

「물론 『아이네이스』의 제2, 4, 6권은 뛰어납니다. 그러나 독실한 주인공 아이네아스와 힘센 클로안투스, 충실한 친구 아카테스, 키 작은 아스카니우스, 어리석은 라티누스 왕, 속물인 아마타 왕후, 그리고 개성 없는 라비니아 공주와 같은 인물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무미건조하고 불쾌합니다. 그보다는 타소가 나아요. 심지어는 아리오스토의 지루한 이야기도 그보다는 나을 겁니다.」

 

「의원님, 호라티우스를 감명 깊게 읽으셨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격언들은 꽤 괜찮아요. 사교계 인사가 참고할 만해요. 힘찬 시구로 압축되어 있어서 기억하기도 쉽고. 하지만 브룬두시움 여행기나 형편없는 식사에 대한 묘사나 푸필루스인가 뭔가 하는 작자와 또 다른 한 작자 사이에 오간 상스러운 말다툼은 시원찮더군요. 호라티우스의 표현대로 푸필루스의 말은 <상스러운 독설로 가득 차> 있고, 상대편의 말은 <식초에 절인> 것 같더구먼요. ······ 어리석은 자들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라면 무엇이든지 높게 평가하죠. 하지만 내 독서는 나만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내 취향에 맞는 것만 좋아합니다.

 

절대로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배워온 캉디드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그러나 마르틴은 포코쿠란테의 사고방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서가를 살펴보던 캉디드가 탄성을 질렀다.

 

「아! 여기 키케로의 책이 있네요. 이 위대한 인물의 작품은 암만 읽어도 안 질리시지요?」

 

그 사람 책은 절대 안 읽어요. 그 사람이 라비리우스나 클루엔티우스를 위해 변호한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내가 판결해야 할 소송만 해도 너무 많아요. 그 사람의 철학책에는 좀 관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한다는 것을 안 뒤로 그것도 그만두었어요.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그 사람만큼은 알고 있거든요. 무지를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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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에 대한 추억......

키케로는 왜 몽테뉴에게 밉보였을까?

『키케로의 의무론』에 대하여...

『일리아스』와『오뒷세이아』에 관한 기나긴 이야기

트로이아 전쟁과 헬레네의 행방을 둘러싼 이야기

최초의 로마인의 인생 역정을 다룬 로마 건국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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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이런 연설을 들을 수 있을까?
    from Value Investing 2016-11-03 11:23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을 잠시라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나날의 연속이다. 책 조차 읽기 싫을 정도로 도무지 뉴스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어렵사리 옛 고전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고대 로마시대의 명연설문'에 이르러서야 겨우 글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금 만난 글이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키케로의 연설이 행해졌던 날로부터 무려 2,000년도 더 시간이 흘렀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