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의 실수에 대해 얼마나 관대해야 좋을까. 남의 실수 때문에 내가 어떤 심적이거나 물질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거기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 일일까. 무릇 모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른 대처는 '각자의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너무나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을 듯하다. '남의 실수'에 대해 내가 마땅히 혹은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려할 만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든다. 우선 당장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사정에 대해서도 따져볼 만한 요소가 어디 한둘이 아니다. 더군다나 어떤 한 사람의 실수에 따라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수십 명이나 수백 명 혹은 심지어 수억 명에 이를 수도 있으니 우리가 '실수'에 대해 어떤 성급한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실수'로 인해 아무도 예기치 못한 엄청난 파장을 낳을 때도 많은 듯하다. 각종 대형사고들이나 참사들도 따지고 보면 사소한 부주의나 실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근래에 온 국민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 물질적 고통을 주었던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등도 따지고 보면 '실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수로 인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참사들 가운데 우리는 쉽게 체르노빌 원전 사고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같은 대참사에 대해 우리가 온전히 '당국자의 실수'에게만 전적인 책임을 묻긴 어렵지만 어쨌든 '실수'가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어쩌면 실수를 매일 매일 경험하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밥을 먹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우리는 그만 나도 모르게 깜빡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심지어 업무를 보거나 연애를 할 때도 실수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찾아든다. 스포츠 경기만 보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수'를 목도하는가. 어떤 경기에서든 실수는 통제하기 어려운 난제로 항상 등장한다. 축구든 야구든 골프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실수들은 정말로 치명적이어서 단 한 순간의 미세한 실수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시간 동안의 숱한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 때도 많다.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의 경우는 어떤가. 사소한 실수 하나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때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어낸 가장 커다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이디푸스 왕》도 좋은 사례다. 그가 '운명의 삼거리'에서 조금만 더 이성을 차렸더라면 자신의 친부를 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된 엄청난 비극의 연속은 더이상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해 결국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경우에는 그 댓가가 너무나 혹독하다는 측면에서라도 새삼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오오, 삼거리여, 그리고 후미진 골짜기여,
너희들은 내 손에서 내 자신의 피인 내 아버지의
피를 마셨으니, 아마 기억하고 있으리라.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으며,
그 뒤 또 이곳에 와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오오, 결혼이여, 결혼이여, 너는 나를 낳고는 다시
네 자식에게 자식들을 낳아줌으로써 아버지와 형제와
아들 사이에, 그리고 신부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근친상간의 혈연을 맺어주었으니,
이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난 가장 더러운 치욕이로다.

 - 《오이디푸스 왕》1398∼1408행

 

 

지난주 금요일 밤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피아니스트가 저질러서는 안 될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클래식 연주 역사상 유례가 드문 '대참사'로 불러도 좋을 만큼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윤디 리가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그만 악보를 까먹고 제멋대로 내달리다가 결국 오케스트라 연주마저 멈춰 세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망측한 일도 내 눈앞에서 벌어질 수 있구나 싶었다. 음악 연주에서 연주가들이 악보와 다르게 혹은 엇박자로 연주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 명성이 확고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본인이 수도 없이 연주했을 바로 그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그것도 겨우 1악장 중간 부분에 이르러 오케스트라 연주와 완전히 빗나가면서 엉뚱한 악보 위를 내달린 끝에 협주 자체가 멈춰 버렸다면 이건 여간 심각한 실수가 아니다.

 

 

 

클래식 공연 도중에 벌어지는 이런 저런 실수들은 사례가 너무 많아서 새삼 나열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윤디 리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뒤에 정작 그보다 더 볼썽사나운 실수들을 거기에 덧보탬으로써 기어코 희귀한 헤프닝을 대참사로 격상시키고 말았다. 우선 그 무엇보다도 명백한 자신의 실수를 괜스레 남의 탓으로 전가하려는 듯한 애매한 행동부터가 보기에 참 딱했다. 자신의 실수로 연주가 멈춰버린 순간 그는 돌연 왼손을 치켜올리며 오케스트라 지휘자한테 뭔가를 어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협연을 맡았던 시드니 심포니의 지휘자가 더욱 당황해 하던 모습까지 지켜봐야 하는 관객들은 황당한 처지에 더해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도 마저 목격해야 했던 셈이다.

 

1830년 가을 바르샤바의 한 연주장에서 고국 폴란드를 떠나는 청년 피아니스트 프레데릭 쇼팽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단조 op.11'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쇼팽의 대표적인 피아노 협주곡이다. 예민한 감성과 꿈으로 가득했던 쇼팽이 스무살에 작곡한 곡이었다. 그 유명한 연주곡 덕분에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게 바로 윤디 리였고, 그가 유명해진 무대가 바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렸던 '쇼팽 피아노 콩쿠르'였다. 그는 5년 마다 열리는 바로 그 콩쿠르에서 불과 열여덟 살에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다. 그러니만큼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명연주들을 이번에 아주 생생한 감동으로 직접 느껴보고자 했던 관객들에게는 이번 연주 자체만으로도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결국 그보다 더 꼴사나운 모습마저 기어코 보고 만 셈이 되었다.

 

 

 

최근에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군이 바로 그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바로 거기서 윤디 리는 최연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었다. 2000년에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불과 18세의 나이로 우승했던 그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느덧 거장 피아니스트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런 '위치'와 '예우'가 이번 연주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향한 이해하기 힘든 제스쳐를 낳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나만의 억측일까.

 

어쨌든 피아노 협주곡 연주가 끝나고 짧게 주어진 인터미션 시간엔 온통 '윤디리의 공연 실수'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채워지면서 바쁘게 지나갔다. 엉망진창이 된 윤디의 연주는 인터미션이 끝난 뒤 말끔히 치워진 피아노와 함께 과거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2부에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은 지휘자의 경쾌한 몸놀림과 함께 아주 매끄럽게 이어졌고 멋진 휘날레는 관객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마저 안겨주었다. 윤디 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그렇게 잠시나마 묻혀지는 듯했다.

 

그런데, 연주가 모두 끝난 뒤에 예정되어 있었던 '윤디리 팬 사인회'가 갑자기 취소된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연주를 망치고 나서 어느 연주자가  '팬 사인회'에 당당히 얼굴을 디밀 수 있을까. 그런데 아마도 이 즈음부터 관객들이 슬슬 '본전 생각'에 화가 조금씩 치밀어 오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이미 연주회 이전부터 윤디 리의 음반을 구입했던 사람들이나 아주 멀리서 불원천리하고 이 연주회를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 또한 만만치 않은 티켓 가격을 지불한 터라  '윤디 리의 실수' 때문에 빚어진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형편없는 엉터리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은 끝까지 '뜨거운 박수'로 윤디 리와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아낌없이 격려하지 않았던가.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윤디 리는 연주가 끝난 뒤 마지 못해 겨우 두 번 더 얼굴을 내밀고 난 뒤에 서둘러 '앵콜 연주'도 없이 연주장을 떠나고 말았으니 많은 관객들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고 하더라도 누가 뭐라 나무랄 처지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기막힌 반전'은 연주가 끝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관객들이 초겨울 같은 쌀쌀한 날씨 탓에 총총 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동안 정작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는 다른 일로 바빴던 모양이다. 이미 윤디 리의 '서울 공연 대참사'가 슬슬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통해 장안의 화제로 이어질 바로 그 무렵, 윤디 리는 정말 뜬금없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모습으로 바로 그 인터넷 공간에 놀라운 코멘트를 불쑥 남겼던 것이다.

 

 

 

마침 다음날이 '할로윈 데이'였던 모양이다. 그날 밤 공연으로 너무나 놀라고 실망했던 '한국 관객'들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시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미 윤디 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결코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오명을 '예술의 전당'에 뚜렷이 새긴 터였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이건 너무 아니다 싶다. 그가 저지른 '실수'는 관대하게 인정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가 그 이후에 자신의 실수에 대처하는 모습들은 실망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윤디 리의 열렬한 팬들 가운데에는 이번 '서울 공연 참사' 때문에 벌써부터 '윤디 리 연주 음반'까지 불태우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들마저 생겨나는 모양이다. 나는 어디 변변한 CDP조차 없으니 불태울 만한 CD는 더더구나 장만해 놓을 턱이 없어 그런 고민까지 할 필요조차 없다지만 윤디 리를 향한 수많은 팬들의 뜨거운 애정이 실망을 넘어 분노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일 정도로 이번 사고의 여파가 커지는 듯하다. 

 

(내가 클래식 감상을 위해 장만해 놓은 건 고작 쓸 만한 'PC용 스피커'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동안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던 '윤디 리 서울 공연 참사' 소식도 결국 조용히 가라앉을 게 틀림없다. 뒤늦은 건지 빠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서야 다행스런 소식도 들린다. 윤디 리가 '서울 공연에서의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표명했다는 소식이다. 공연에 실망한 관객들이 '환불 소동'까지 빚은 데 적잖이 놀랐음에 틀림없고, 본인으로서도 그냥 뭉개고 넘어가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음에 틀림없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실수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포함해서 그 실수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는 좀 어렵다. 그런데 '실수'가 벌이지고 나면 정작 중요해지는 지점은 '누가 어떤 실수를 했느냐'에서 실수한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로 금세 옮겨가는 듯하다. 이미 수많은 사례들이 그걸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실수와 신뢰

펩시사의 회장인 크레이그 웨더는 "사람들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망가뜨린다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장군은 이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휘란 전략과 신뢰를 견고하게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전략을 포기하라."

 - 『위대한 기업의 조건』 中에서

 

윤디 리는 이미 15년 전에 '쇼팽 콩쿠르'를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번엔 '상상하기 힘든 실수'를 통해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부디 이번 실수를 교훈 삼아 미래엔 더 많은 사람들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놀라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어찌보면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조성진 군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록 조성진 군은 아직 한참 어리지만 왠지 윤디 리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 듯하다. 지금보다 더더욱 훌륭한 연주로 우리를 지금보다 훨씬 더 놀라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쇼팽 콩쿠르 우승자 두 사람 때문에 실망도 크고 기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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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11-04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건도 극적이고 서술도 극적이고 해서 한달음에 읽었네요.
그런 기막힌 일이 있었군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저 또한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렵군요.
독자들한테 던지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oren 2015-11-04 10:28   좋아요 0 | URL
제 예상보다는 훨씬 더 빨리 사과 표명이 이뤄진 듯해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요.
그래도 이번 일은 윤디 리에게는 씻기 어려운 깊은 내상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싶어요.
아직도 인터넷에는 그의 `실수보다 더 나쁜 대처방식`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계속 올라오네요.
`천재 피아니스트 윤디 리, 그대는 아직 멀었다` 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102_0010388584&cID=10701&pID=10700

살리미 2015-11-04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 공연을 실제로 보셨군요. 정말 대참사입니다. 뒤늦게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다행이지만요. 중요한건 어떤 실수를 했냐보다는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점 깊이 공감합니다.

oren 2015-11-04 10:30   좋아요 0 | URL
대가들은 자신의 실수를 멋지게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었죠. 그것도 방금 엄청난 실수가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지요.. `곧바로 사과하고 다시 반전을 이뤄내는 능력`도 정말 중요하다 싶어요...

[그장소] 2015-11-0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세술이란 것은 다 없애야 할지도 몰라요.
진짜 감동을 위해..왔는데..격이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낮춤이 왜 격이떨어짐인지..모르지만)
그 늘...그렇듯 알량한 처세술..갖은 계산들..이
진심을 말아 먹어요.

oren 2015-11-04 10:42   좋아요 1 | URL
윤디 리와 조성진 둘 모두 `쇼팽 콩쿠르 우승`을 차지할 때 연주했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최근에만 열 번 이상은 들어본 듯한데, 정작 가장 기대가 컸던 윤디 리 서울 공연에서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느낄 줄은 차마 몰랐어요. 윤디의 연주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처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무슨 `학예 발표회`에 끌려나온 학생의 연주를 듣는 것 마냥 몹시도 지루하고 맥이 빠지고 말았어요... 그래놓고도 윤디 리는 청중들에게 아무런 사과 제스쳐 하나 남기지 못하고 그 연주장을 빠져나가기 급급했던 듯해요. 그래놓고 다시금 sns를 통해 `자신의 놀라운 모습`을 기어코 만천하에 거리낌없이 다 드러냈으니...ㅠㅠ

[그장소] 2015-11-04 12:21   좋아요 1 | URL
음..자신을 쇼팽으로 착각하는가...흠..
그 엉킨 연주시간동안 ㅡ대체 그의 머릿 속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손가락...이제 더는 싫어...이 압박감..따위 ㅡ 조성진 ㅡ눌러 주겠어.하는 ..뭔가 달라야 하는
기대부응심리에 스스로 튕겨 나간 건가? 그러곤 이미 망가진거...하고..막..나가버린..걸 회사차원에서 수습...그런걸까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