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옛날(심지어 이 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인)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쓰여진 책이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요즘 배우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일까?

 * * *

(밑줄긋기)

 













예쁘고 우아한 여자들과 교제하는 것도 내게는 포근한 재미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 점에 박식한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키케로) 그렇다. 심령은 이 점에는 먼젓것만큼 누릴 거리를 갖지 못한다 해도, 이 편에 더 많이 참여하는 육체적 감각은, 내 생각으로는 그 비중이 서로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자와의 교제는 전자에 가까운 정도의 무게를 준다. 하나 이 방면의 교제에는 미리 경계하며 다가서야 한다. 특히 나와 같이 육체 생활의 비중이 큰 자에게는 그렇다. 나는 젊었을 적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의 절도없이 무비판적으로 끌려가는 자들이 당한다는 식으로, 이런 일에 뜨거운 거동을 보고, 모든 광분의 고통을 겪었다. 이 호된 매를 맞은 것이 다음에 내게 교훈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르고의 함선을 타고

카팔레아의 암초를 피해 온 자는 누구든지,
항상 에우보이아의 수로(水路)에서 이물을 돌린다.                                                    (오비디우스)


우리의 모든 생각을 거기에 매어 두고 무분별하고 맹렬한 정열로 덤벼드는 것은 철부지 같은 짓이다.


그러나 한편에는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연극배우처럼 풍습과 나이가 모두 하는 버릇이라고 거기에 달려들며, 말로만 하고 마음을 주지 않는 일은 사실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지마는, 그 비굴한 꼴은 마치 위험이 무서워서 명예도 이익도 쾌락도 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교제를 실천하는 자는 아름다운 심령을 감동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아무런 성과도 바랄 수 없다. 진심으로 누려 보았으면 하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야만 한다. 운이 부당하게 그들 가면의 사랑을 유리하게 꾸며 준 때에도 말이다. 이런 일은 여자들이 아무리 팔자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해도, 자기가 아주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자기 나이로나 그 웃는 모습으로나 그 동작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여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하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예쁜 여자가 없듯이 전체가 못생긴 여자도 없다. 그래서 브라만 교도의 처녀들은 다른 장점이 없으면 장터로 나가서 이런 취지로 소리질러 광고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에 여자의 부분을 들춰 보이는데, 적어도 그것만으로도 남편을 얻을 값어지차 있나 없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믿음직하고 착실하게 섬기겠다고 하는 첫번 맹세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남자들이 여자를 예사로 배반하는 결과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피하려고 서로 단결해서 스스로 뒤로 물러서거나 자기들끼리 놀게 되었다. 또는 어느 때는 우리가 보여 주는 본을 떠서 그녀들도 연극을 꾸미면서 정열도 생각도 사랑도 없이 교제해 온다. "자기에게서 오건, 타인에게서 오건, 정열에 무감각하며"(타키투스), 플라톤에 나오는 리시아스가 설복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여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을수록 그만큼 그녀들은 우리에게 유리하고 편리하게 몸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극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연극 배우들만큼의, 또는 더 많은 재미를 볼 것이다.

나로 말하면 어린애 없는 모성애를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큐피드 없는 비너스를 생각해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을 서로 빌려 주고 서로 부채를 지고 하는 사물들이다. 그러므로 이 속임수는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그에게 부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대신 그는 쓸모 있는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다. 비너스를 여신으로 만든 자들은 그녀의 미(美)를 비육체적이며 정신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이 찾는 여자는 인간적인 것도 아닐 뿐더라 짐승과 같은 욕정을 지닌 것도 아니다. 짐승들도 그렇게 둔중하고 속된 것은 원치 않는다. 짐승들은 무리 속에서 이성(異性) 간에 그들의 애정에 쓸 것을 쓰고 버릴 것은 버리며, 그들 사이에 오랜 호의의 교분 있는 것을 본다.

늙어서 체력이 다한 놈들도 아직도 몸을 치떨며 사랑으로 이히잉거리며 울부짖고 전율한다. 우리는 이 짐승들이 일에 앞서 희망과 열성으로 충만함을 본다. 그리고 육체가 할 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추억의 달콤한 맛에 취하며, 거기서부터 의기양양해서 뽐내며, 피로하고 포만하면서도 경축과 승리의 노래를 불러 대는 것을 본다. 신체를 생리적 욕구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밖에 없는 자는 그렇게 복잡한 마음씨를 준비하여 남에게 바쁘게 굴 필요는 없다. 그것은 무례하고 수준 낮은 배고픔과 목마름에 대한 음식은 아니다.


- 제3권 <3.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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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3-08-2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궁금한데 타이핑을 엄청 빨리 치시나 봐요? 늘 많은 내용을 책에서 옮겨 적으시는 걸 보면요.
또 한가지 오렌님 페이퍼를 보며 놀라는 점입니다. ^^

oren 2013-08-23 11:56   좋아요 0 | URL
책 내용을 손으로 옮겨 적는 일도 '습관'이고 재미가 있는 일이에요. 자꾸만 쌓여가는 '독서노트'를 보는 즐거움도 있고, 그걸 나중에라도 가끔씩 들춰보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날로그로 남긴 메모들은 '검색'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심심할 땐 밑줄친 내용을 펜으로 쓰기 보다는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판에서 눈을 뗄 수 있게 되고 나서는 타이핑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더라구요. 굳이 속도를 재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손글씨를 자주 쓰지 않는) 요즘은 '두드려 쓰는' 편이 조금 더 빠른 것 같기도 해요. ㅎㅎ

yamoo 2013-08-23 14:29   좋아요 0 | URL
저두요!!!!^^

프레이야 2013-08-2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누려보았으면 하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야한다! 귀한 구절 읽어내려가면서 특히 눈에 드는 단순하고 진실된 문장입니다.

oren 2013-08-23 11:4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가슴으로 다가오는 문장' 같아서 밑줄을 그었는데, 프레이야님께서도 댓글로 공감해 주시니 저 말이 더욱 기억에 남을 듯해요. ㅎㅎ

yamoo 2013-08-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말이지요~ 저는 몽테뉴 수상록을 홍신문화사판으로 오래 전에 읽었어요. 정말 빽빽한 글자들을 헤치고 좀 지루하게 완독했던거 같은데...이상하게도 인용해 주신 내용들은 하나두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에요. 정말 내가 이 책을 읽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눈..ㅜㅜ
다~~오렌님 때문이어요~~~
압도적인 인용! 핵심적이고 시의적절한 발췌!! 같이 읽었는데, 전혀 기억 못하는...ㅜㅜ

oren 2013-08-23 15:20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오랜만에 몽테뉴의 책을 다시 읽으니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는 대목을 여러 번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나마 낯설지 않은 대목이 가끔씩 나올 땐 마냥 반가웠고, 제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촌철살인'과 같은 말들은 여전히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광채를 조금도 잃지 않고 있어서 더욱 기쁘기도 하더라구요.

몽테뉴를 다시 만나면서 '30년의 간극'이 결코 적지 않음을 느꼈고, 몽테뉴의 글은 그대로인데 제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은 생각도 여러 대목에 걸쳐 하게 되더라구요. 마치 30년 전까지 익히 잘 알고 지내왔던 친구를 다시 만나서 '맞다 맞아... 자네 조금도 변치 않고 여전히 그대로네.....' 하다가도, '그래도 뭐 달라진 건 없나' 하고 요모조모 살펴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더라구요.

yamoo님께서도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 몽테뉴를 다시 만나보면 틀림없이 제가 요즘 느끼는 심정을 아주 자세하게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ㅎㅎ